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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 법인 카드를 지원하는 회사

[GOODJOB TRIP | SOLVIC]

제조업의 새로운 판을 제시하다.

콘텐츠 제작과 배포가 주 업무인 필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야 했다. 원래는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오피스N 마케터 따콩의 Goodjob Trip
“우와!” 일단 환호성부터 지르고 시작하자.
평소 필자가 방문하는 굿잡(좋은 회사)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거리랄까? 분명 거리가 가까운 것은 기쁜 일이긴 했지만, 지난 8월의 대한민국 날씨가 폭염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함정. 국가 재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회사 밖은 위험했고, 대중교통은 날 더욱 지치게 만들었지….
반대로 이번에 방문한 ‘솔빅’이라는 기업은 무려 충남 당진에 위치해 있었다. 비록 먼 거리이긴 했지만, ‘쏘카’와 함께했기에 즐겁고 시원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나 기뻐해야 하는 맞지?)
사진 1. 후진 잘하는 난 ‘후진남’
보라. 저 사진 속에 보이는 필자의 여유와 미소를. 우리 일행은 제법 한산했던 서해안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사무실에 있어야 할 평일 오후 1시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마치 피크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신나는 노래도 듣고, 휴게소에 들러 통감자도 먹었다.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더라.
이번 기업 방문이 설렜던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오피스N 굿잡에 등록되는 최초 ‘에너지 솔루션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오피스N에서 소개했던 좋은 회사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이었고, 그중에서도 IT 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분명 좋은 회사들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업종의 다양성이었다.
이번 솔빅을 시작으로 제조업에도 굿잡의 4대 조건(비전, 성장, 소통, 보상)이 이루어지는 좋은 회사들이 많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진 2. 회사 밖은 위험해(흑역사).jpg
지난주 부채를 손에서 놓지 않던 필자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사진 3. 솔빅 도착!
서해안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충남 당진 송악읍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공장들이 모여있는 산업단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도에는 대형 트레일러가 쉴새 없이 달리고 있었다. 낯선 광경에 감탄하는 사이 장한기술이라는 이름이 적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주인공인 솔빅이 위치한 곳이다.
‘기업명은 솔빅인데, 건물은 장한기술이네?’라고 생각했다면, 다음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솔빅은 장한기술에서 분사한 회사다. 팽창 탱크, 부스터 펌프, 빙축 열시스템으로 유명한 ‘장한기술’에서 ‘브레이징 판형 열교환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분사한 것. 솔빅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이라는 비전으로 브레이징 판형 열교환기 제작과 이를 응용한 기계 장비를 만드는 곳이다.
판형 열교환기라는 기술명이 조금 어렵다.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판형 열교환기는 높은 유체의 열에너지를 낮은 유체로 전달하는 장치다. 우리가 거주하는 건물이나 식품, 섬유, 조선 등과 같은 산업에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기기다. 즉,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바로 판형 열교환기인 것이다. 솔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흡수한 열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열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열에너지를 가치 있게 활용하는 곳. 그곳이 바로 솔빅이었다.
사진 4.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전문가 ‘셀’
우리 일행은 솔빅의 사무 공간으로 이루어진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 2층에 위치한 커다란 회의실에서 대표님과 구성원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셀’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솔빅의 첫 번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솔빅은 구성원을 ‘000셀원’ 혹은 조직의 부서명을 ‘000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 솔빅은 구성원들이 자유와 책임 하에 유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규모가 작아야 한다고 믿는다. 조직의 최소 운영 단위인 셀은 최소 3인에서 최대 7인으로 구성되며, 6인이 되는 시점부터 분열을 고려한다.
또, 셀원들은 서로를 ‘님’이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두 번째 매력은 바로 셀원들의 자부심이었다. 자신의 직무에 관해 이야기하던 셀원들은 자신이 가진 스킬이나 능력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우리는 현장직 하면 ‘덥다’, ‘위험하다’, ‘고되다’, ‘힘들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제품 기술개발이나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먼저 현장 경험의 노하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커리어에 자부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셀원들이 정말 부럽고, 멋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셀원들이 입을 모아 자랑하던 문화가 있었는데, 바로 ‘컬쳐데이(Culture Day)’라 부르는 문화였다. 제조업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가정의 달로 지정했는데, 이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솔빅은 이날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것이 바로 솔빅의 컬쳐데이다. 아무래도 회사가 충남 당진에 위치하다 보니, 지리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기 쉽지 않을 텐데 솔빅은 컬쳐데이로 이를 해결하고 있었다. 컬쳐데이 만큼은 여러 부서로 나뉜 셀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분을 다지기 때문에 솔빅의 소통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컬쳐데이를 이야기하며 기뻐하던 셀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진 5.
사무 공간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임정아 셀원의 안내에 따라 공장 건물에 들어섰다. 공장 내부에는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기기들이 즐비해 있었다.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셀원들이 있었고, 개인 작업에 몰두해 있는 셀원들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용접이 한창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와 달리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셀원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작업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진 6. 유쾌한 셀
본격적인 사진 촬영에 돌입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 단체 사진을 찍는 경우가 흔치 않다 보니, 자연스러운 포즈와 표정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포토그래퍼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포즈를 취하던 셀원들, 이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는데, 필자도 괜스레 오피스N 동료들이 보고 싶더라….
우리도 솔빅만큼 화기애애한데. (촤핫)
한창 촬영을 진행하던 중, 현장에 흥겨운 종소리가 들려왔다. 필자는 깜짝 놀라 셀원 중 한 분에게 “이 종소리는 뭔가요?”라고 묻자, “아, 휴식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요.”라고 대답해 주더라. 솔빅은 10시, 3시에 중간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고, 이는 종소리로 공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업무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휴식시간을 통해 업무 집중도를 높이고 있었다.
사진 7. Open class (with. 백서연)
사진 촬영이 끝나자, 몇몇 셀원들이 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특별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솔빅의 대표적인 문화/복지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앞서 설명했던 ‘Culture Day’, 탁월한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Impact School’, 마지막으로 이번에 소개할 ‘Open class’다.
Open Class는 셀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인데, 재능기부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다른 셀원에게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프로그램 캐드를 배웠었단다. 캐드 클래스가 끝나고 진행된 것이 ‘백서연’ 셀원의 중국어 클래스였다. 매주 화, 목요일에 진행하는데, 마침 인터뷰 당일이 중국어 클래스가 진행되는 날이었고,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클래스가 진행되는 순간만큼은 셀원이 아닌, ‘선생님’으로 불린다고….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제법 진지하더라.
참고로 중국어 클래스의 홍보 포스터는 박형준 대표님이 직접 제작했단다.
사진 8.
중국어 클래스 촬영을 끝으로 솔빅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현재 솔빅은 열교환기를 의료 기기에 도입하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나 CT의 경우 내부에서 많은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솔빅은 장한기술에서 분사한 첫해부터 수익을 낼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겼는데, 인터뷰 내용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솔빅은 1인당 한 장씩 법인카드를 발급해주고 있는데, 구입할 물품이 진정 회사에 필요한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책임감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자연스레 대표에 대한 ‘신뢰’로 돌아가고 있었다.
비전과 성장, 소통과 보상으로 제조업에 새로운 판을 제시하는 솔빅, 솔빅은 지금 이 순간도 성장하는 중이다.
솔빅 더욱 흥해랏!
사진 9. 퇴근 길, 휴게소 돈까스 꿀맛(은 저녁먹는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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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체인, 세상을 바꾼 냉기의 혁명(3)
프레데릭 존스에게도 다른 위대한 발명가들처럼 영감이 불현듯 찾아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밤, 호숫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운전석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창문을 열자 선선한 밤바람이 차 안으로 불어들어왔죠.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열린 창문으로 불청객도 들어왔거든요. 모기가 들어와 윙윙거리자, 프레데릭은 짜증이 나서 창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차 안은 금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워졌죠. 창을 열자니 또 모기가 들어올 것같고, 그렇다고 창을 계속 닫고 있자니 더워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 때에 프레데릭에게 한 영감이 찾아옵니다. 바로 차량용 에어컨을 만들어 팔자는 생각이었죠. 그는 자기 상사이자 파트너인 누메로를 찾아가 자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걸 만드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으니, 분명 성공할 거라고요. 누메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누메로는 프레데릭의 아이디어에 대해 시큰둥하게 굴었습니다. 어째서 누메로가 새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더군다나 당시 회사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아야 할 처지였는데도 말이죠. 누메로의 회사에서 개발한 극장용 음향 시스템 설비는 미 중서부 전역에서 팔려 나갔습니다. 곧 선발주자인 웨스팅하우스와 RCA가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되죠. 치열한 경쟁과 소송전이 거듭되었습니다. 상대는 미 전역에 먼저 진출한 대기업들이죠. 누메로의 회사가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 승부를 거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누메로에겐 대안이 필요했죠. 프레데릭의 아이디어가 묻히나 싶자, 곧 다른 방향에서 기회가 돌아옵니다. 1983년, 누메로는 골프 친구들과 경기를 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개중 한 친구가 우연히 누메로가 듣는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죠. '요전번에 시카고에서 닭고기를 잔뜩 사들였는데 말야, 트럭이 길에서 퍼지는 바람에 고기가 다 상해버렸다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당시 운송용 냉각 시스템은 초보적이었고 취약했습니다. 트럭의 진동 때문에 민감한 장비는 쉽게 고장났고, 그나마도 차체와 독립된 동력원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죠. 때문에 육류나 상하기 쉬운 상품을 육지에서 수송하는 데는 한계가 따랐습니다. 누메로는 친구 말을 듣고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죠. '혹시 그 문제, 전문가가 해결 못 하면 까짓거 내가 해 버리지.' 누메로에겐 농담이었지만 친구에겐 아니었습니다. 이제 누메로가 기댈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죠. 자신이 운영하는 영사 기기 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를 맡은 프레데릭 존스가 아니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기껏 제안한 차량용 에어컨 아이디어를 걷어찬 고용주가, 뒤늦게 와서는 세상에 없는 차량용 냉각 설비를 발명해 내라고 합니다. 프레데릭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까요? 그의 생각이야 어쨌건, 프레데릭은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해냅니다. 1938년 최초의 육상 운반용 냉동장치 모델 A의 특허를 발표하죠. 1938년 발표된 모델 A는 냉각용 핵심 부품이 차체 하단에 설치되었습니다. 이것이 도로 사정에 따라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자, 프레데릭은 해당 유닛을 트레일러 상부로 옮깁니다. 무게가 2200파운드나 나갔던 초기 모델도 나중에는 950파운드까지 경량화하죠. 비록 우연히 이뤄진 개발이었지만, 누메로는 이 냉동 트레일러가 곧 자기 미래라고 판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그는 곧 자신이 운영하던 극장 설비 회사 Ultraphone과 보유하고 있던 음향 설비 특허, 티켓 발권 기계 특허를 RCA에 팔아치워 정리해 버립니다. 여기에 자신의 생명보험을 담보로 1만 달러를 빌려 자금을 융통하죠. 이 돈을 가지고 누메로는 몇몇 동업자와 함께 써모컨트롤 컴패니Thermo control company를 설립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프레데릭이 개발한 냉동 트레일러에 올인한 거죠. 하지만 초기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습니다. 이전에도 냉동 트레일러 기술이 여럿 소개된 바 있지만, 사용자들이 원하는 대로 작동한 경우가 아직 없었던 거죠. 누메로는 고민 끝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육류 포장 체인인 Amour 사와 접촉한 그가 담판을 짓습니다. '저희와 거래하시죠. 처음 트럭 두 대는 아무 비용 청구 없이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우리 장비가 고장나면 그로 인한 모든 손실도 보상해 드리죠. 어떻습니까?' 상대방 입장에선 손해보는 것이 없는 거래였습니다. 상대편 사장은 누메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Amour 사는 트럭 8대를 추가 구매합니다. 누메로와 프레데릭의 상품이 비로소 시장에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겨우 첫 시작을 끊었지만, 회사 경영은 여전히 순탄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곧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죠. 이때 회사 사장인 누메로는 진지하게 자원 입대를 고민했습니다. 이미 한 번 군대를 다녀왔는데도 말입니다. 마치 그 결심이 허풍이 아니란 듯, 누메로는 지원을 하러 워싱턴 DC로 훌쩍 떠납니다. 그가 모든 것을 걸어 이제 막 반석을 닦아놓은 회사는 다시금 표류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연애의참견3] 훈남셰프가 파스타싸대기 맞은이유
고민녀 = 푸드잡지 에디터 남자친구 = 훈남 셰프 왕미나 = 엄청 유명한 bj 및 유튜버 훈남셰프 레스토랑에서 개인방송 하고있었음 그러다 좋은 제안을 받는데.. 왕미나 연애컨텐츠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음 (요즘 유튜브에서 상황극하는 그런거) 아는 셰프형 방송 한번 탔더니 잘나감 요즘 적자라 월세 걱정되고 눈치보인다고 밑밥 깔죠? 해보면 안되냐 하지만 고민녀는 선뜻 허락해주기 어려웠음 주우재: 내가 홍보비 벌어올게!!!ㅋㅋㅋㅋㅋ = 절대안됨 서장훈: ㄴㄴ 김숙: 마이너스가 나오는 상황에서 고민은 충분히 할 수 있을거 같음 한혜진: 먹고사는 문제(=커리어)가 걸려있기 때문에 나라면 일단 출연 시킬 것 같아 출연시키지 않아서 올 뒷감당을 내가 감당 못할거 같아 곽정은: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 연애 컨텐츠가 자극적이긴 하지만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너무 큰타격을 입게 됨 고민녀는 결국 컨텐츠 출연 허락했고 대박이 터져버림 런치 끝나자마자 재료소진ㄷㄷㄷㄷ 레스토랑도 대박터짐 인스타라이브도 하고 컨텐츠에 열심히 출연함 왕미나가 여친행세하며 가게 도와줌 가게 갔다가 왕미나한테 불려옴 (손 가지런ㅋㅋ) 스벌ㅋㅋㅋㅋㅋ 리얼연애가 뭔말이여ㅋㅋㅋㅋㅋㅋㅋ 가게에서까지 애인행세 할 필요가 있냐! 라고 맞말 하니까 프로그램 끝날 때 까지 셰프님 만나지 말라고 협박 왕미나가 이 관계에서 가장 갑의 위치지만 사실은 남친도 성공과 연애 둘다 만족스러워서 즐기고 있는 것 촬영이 잦아지고 고민녀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짐 남친가게에 오랜만에 갔더니 세상에ㄴ(ㅇ0ㅇ)ㄱ 이딴.. 이딴 짓을!!ㅅㅂㅈㄷㄳㅂㅈㅓㅣㅏㅓㅁㄴㅇ (캡쳐하면서도 소름돋았다..) 파스타 싸대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고보니 촬영중ㅠㅠㅠ 그래 ㅅㅂ 너 촬영 끝나고 보자ㅠㅠㅠㅠㅠ 한달 후 촬영 끝나고 여전히 왕미나에게 휘둘리는 중 비즈니스 - > 현실 삼각관계가 됨 사실 여자친구도 푸드에디터였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가 사랑보다 성공 프리패스가 더 우선인 사람 언뜻보면 왕미나가 나쁘지만 사실 제일 나쁜게 남친...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