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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현재, 세미프로골퍼와 열애 중…내년 결혼


배우 조현재가 세미프로골퍼 여성과 3년째 열애 중입니다. 아직 날짜는 잡지 않았지만 내년에 결혼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늘(25일) 조현재의 소속사 HB엔터테인먼트 측은 “조현재가 프로골퍼 출신 사업가 여성과 예쁜 사랑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며 "상대 여성이 일반인인 만큼 구체적인 만남 기간이나 신상을 밝힐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조현재는 2000년 SBS ‘딱 좋아’로 데뷔해 SBS ‘카이스트’, ‘첫사랑’, ‘햇빛 쏟아지다’, MBC ‘러브레터’, KBS ‘구미호 외전’ 등에 출연했습니다.
지난해에는 SBS ‘용팔이’에서 악역으로 분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현재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분야에서 차기작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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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 그리고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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