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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에 대한 이야기(1)…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 살아가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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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해양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은 우리가 성찰할 화두 중 하나다. ▲ 송희영은 경제과학부장 시절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제목의 글을 노보에 기고했다. 김대중 주필이 ‘오늘의 잣대로 선배를 폄하 말라’라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은 바로 이 글 때문이었다. ▲ 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송희영 편집국장 시절 ‘명예퇴직’을 당했지만 최근까지 그를 존경했다. ▲ 송희영의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글을 전재한다. 독자들이 선입견 없이 송희영을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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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우조선해양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에 대해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이를 비난하는 글을 게재함으로써 화제가 됐다. 그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팩트올’의 이범진 대표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송 전 주필이 편집국장으로서 2005년 12월 명예퇴직을 강행했을 당시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었음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당시 명예퇴직 대상자였다.
선배들이 사실상 강제 퇴직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만 편집국 한켠에서 서성거리며 걱정스럽고 미안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퇴직 대상이었던 내가 그와 찰나의 눈길이 마주쳤을 때, 나는 “당신이 여기 낄 자리가 아니야.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눈빛으로’ 말했었다.
나는 당시 명예퇴직 대상자였다
퇴직은 축복이다. 퇴직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명령이며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에게 열린 퇴로다. 퇴직 이후에 나는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가 있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주로 “어떻게 살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이 부족했던 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지 못했고, 직장 생활의 치열함에서 동료들보다 뒤처진 면이 있었으며 그것이 퇴직의 원인이 됐다. 스트레스 가득한 세계에서 탈출의 길을 열어준 송희영 국장에게 나는 지금 감사한다. 당시 받은 ‘명예퇴직금’도 적지 않았다.
나를 내친 조선일보와 송희영 국장 개인에게 서운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정년을 맞아 감사패를 받으며 퇴직하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사보로 보면서 나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한눈팔지 않고 나름 열심히 기사 쓰며 살았는데, 아무런 ‘이별의 의식’도 없이 마치 죄인처럼 회사를 떠나, 나는 그냥 한 순간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편집국장실에 불려 들어가 자리에 앉자, 송국장은 “김차장이 결심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내 자신이 명예퇴직 대상자로 찍혔다는 사실을 겨우 인식하는 순간, 배석했던 K부국장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얘기하지 말자고”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으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노보를 통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변론을 해주었는데”라는, K부국장을 향한 부질없는 생각이 오히려 ‘빠른 체념’에 한몫 했다.
젊은 시절 내가 겪었던 송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송희영 국장에게 크게 나쁜 감정이 없다. 평소에 그가 하던 말이나 글과 그의 행동이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 송희영의 글은 나의 ‘기사 공부’에 있어서 ‘모범’이었다. 다른 많은 선배들의 글도 그랬지만, 나의 초년병 기자 시절 그의 글은 읽을수록 맛이 났고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범진 대표는 명예퇴직을 당했던 당시의 선배들을 대신해서 10년 후에 ‘복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사감(私憾)이 있을 때, 나는 그에 대한 기사 쓰기를 삼간다”라고 나의 페친인 한겨레신문의 길윤형 주일특파원은 페북에 썼는데, 나는 이것이 옳은 태도라고 본다. 이범진 대표의 글이 팩트를 왜곡하지는 않았지만, ‘사감’이 ‘시각’에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그의 글은 송희영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일면적이라고 나는 본다.
송희영이라는 한 개인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됐다. 그 화두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송희영을 개인적으로 겪어본 나도 그 ‘성찰의 과정’에 공헌하고 싶다. 우선 젊은 시절 내가 겪었던 송희영을 얘기하기 위해서 그의 글을 하나 소개한다.
이는 1997년 나의노조위원장 시절에 경제과학부장이었던 그가 노보에 쓴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글이다. 앞서 김대중 주필이 발끈해서 반박한 글이 바로 이 글이다. 이 글은 내가 송희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독자들에게도 그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1차 자료가 될 듯하다. 노보에 게재되던 당시보다도 지금 오히려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서, 여기에 글 전문(全文)을 싣는다.
<송희영(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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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 /송희영 경제과학부장(97. 3. 14)
술집에서건 사무실에서건 후배들과 마주쳤을 때 ‘엄마 어렸을 적엔’에 나오는 식의 대화처럼 쑥스러운 일도 없다. 하지만 선배란 걸핏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10년 전의 조그만 특종 기사를 뻥튀기하거나, 출입처 고관들과 고급 술집에서 어울려 국가와 민족과 역사를 토론했다고 자랑하기 십상이다.
이런 대화법은 필자를 포함해 선배라는 위치에 있는 누구나가 저지르고 있는 명백한 주책성 발언이다. 후배들은 술값을 내지 않는 대가로 큰 인내심을 발휘, 선배들의 어쭙잖은 “이 선배가 이래봬도 젊었을 적엔…” 식의 넋두리를 들어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자리에선 후배들에게 지도자적인 입장을 떠나서, 그냥 후배들을 보는 필자 ‘개인’의 시각을 들려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신세대 기자들은 선배들보다 능력 있고, 부지런하다는 점을 평가해 주고 싶다. 예를 들어 20년 전에 영어회화라도 더듬거리는 기자가 있었다면 편집국의 천연기념물처럼 대우를 받았다.
그땐 편집국 어귀에 외국인들이 들이닥치면 “야, 누구 불러와”라고 소리치는 풍경이 낯익었다.
지금은 외국인들이 몰려와도 누군가 한 사람이 조용히 안내하며 브리핑을 해 준다. 편집국에서 영어회화라도 못하면 뭔가 자격 요건이 미달된 기자가 되어 버린 분위기이고, 데스크 입장에서는 부원들 중 아무나 찍어서 외국인 인터뷰를 시켜도 정확하고 내용 있는 기사를 만들어 오는 현상을 이 순간 목격하고 있다.
단지 어학력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영어회화만 잘 하면 뭐해”라고 핀잔하는 노기자들도 있지만, 후배들의 취재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몇 해 전에 1년간 특종상을 6번 수상한 기자도 나왔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조선일보가 과거에는 지금처럼 특종이 많았던 신문은 아니었다. 반짝이는 기획 기사나 좋은 연재 기사로 화제가 되곤 했지만, 커다란 사건에서 연발해서 특종을 낚아챘던 민첩한 신문은 아니었다.
특종이 될 만한 뉴스가 있어도 경쟁지가 1보를 터뜨려 주기를 기다렸다가, 뒤따라가던 사례마저 없지 않았다. 덕분에 ‘점잖은 조선일보, 점잖은 조선일보 기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살아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선배들이 도전적으로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한때 “훔쳐야 생생한 기사가 나온다”며 출입처에서 자료를 훔치도록 지도 편달받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떻게 자료를 빼오는지 알 수 없는 경로로 비밀스러운 자료를 가져와도 사후에 전혀 말썽이 나지 않는 후배들의 도법(盜法 정보 훔치기)에 필자는 감탄하곤 한다.
내친 김에 후배들에게 감탄하는 또 다른 강점을 들고 싶다. 부지런함이다. 사건 기자를 거쳐 많은 경제부의 출입처를 다녔으나, 가는 곳마다 고스톱판과 침대가 없는 곳이 없었다. 기사가 없는 시간에는 도박을 즐기거나 낮잠으로 전날 저녁의 만취했던 두뇌를 달래는 일이 선배 기자들의 일상이었다.
선배들 중에는 간혹 “그때 말이야, ‘낭만’에서 대취했지만 1보를 듣고서는 곧장 현장에 가서…”라며 어쩌구 하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의 신세대 기자들은 아예 건강도 계산한 데다, 큰 사건에 대비해 대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얼마 전 한보사건이 터졌을 때 부원 중 1명에게 “모 은행장 집에 가서 만나고 오라”고 지시했더니 아픈 몸으로 밤새도록 열어 주지 않는 문 앞을 지켰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것도 “부인을 밤에 불러내 앞뒤 문을 나눠서 지켰답니다”라는 얘기를 다른 부원이 해 주었을 때는 ‘감탄 이상의 마음’이 생겼다. 과거 필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취재원에게 “야, 이 새끼야, 문 안 열어?”라고 몇 번 소리친 후 철수했다는 선배들 무용담을 듣고 기자생활을 해 왔다. 더구나 후배들이 기사 때문에 바빠서 기자실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을 때가 잦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점심 후에는 얼큰한 표정으로 회사에 들어와 술냄새를 풍기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아예 일을 작파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기자다움의 상징적인 행동이었던 것처럼 회상하는 필자를 도시락을 먹는 후배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후배들에게 고해성사해야 할 ‘꺼리’는 더 있다. 포커나 고스톱을 치다가 몇 달 전에 썼던 기사를 적당히 개작, 마치 새 것인 것처럼 전화통에 대고서 불러댔던 경우도 있었고, 노름판 판돈과 술값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일화도 많았다. 청정도(淸淨度)나 생산성 통계를 만든 적은 없지만, 신세대 후배들 쪽이 훨씬 청정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컴퓨터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덕분이라곤 해도, 후배들이 작성하는 기사의 양이나 질은 과거 선배들의 것을 능가하고 있다.
이번 지면을 빌려 후배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런 선배들의 약점을 제발 물고 늘어지지 말아 달라는 점이다. 만약 여러분 중 누가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20년 전의 필자와 편집국 후배 중 한 명의 생산성을 비교하는 통계를 작성한다면 필자는 “제발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과거 필자가 썼던 기사의 정확성을 점검해 보겠다는 아이디어도 필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결론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탁은 선배들로부터 배우지 말라는 것이다. 본사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계셨고 지금도 쟁쟁한 논객과 재재다사들이 정동 빌딩 안에 꽉 차 있지만, 조선일보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던 ‘성공 스토리’들은 이제 후배들에게는 맞지 않는 세상이 왔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성공은 반드시 복수한다’고나 할까. 선배들의 성공의 법칙과 여러분의 성공의 법칙은 다르다고나 할까.
정상 정복의 포만감에 사로잡혀 있는 선배들의 성공 스토리를 교과서처럼 신봉한다면 더 이상 조선일보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조선일보를 정상으로 끌어올렸던 튼튼한 법칙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이 시점에서는 빛이 사그라들고 있는 현실을 여러분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부탁은 비밀이 요구되는 은밀한 것이다. 필자에게 누군가 다가와 “그만두실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지 않는 분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로자라고 스스로를 평가절상한 후, 스스로 공적에 도취해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망치는 사례도 자주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좋은 신문을 위해서, 조선일보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후배들이 걱정이 돼서…”라며 어느 직책에 오래 남아있겠다는 행동을 할 때, 제발 누군가 조용히 찾아와 “그만 비켜 주시죠”라고 권유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절친한 어느 고위인사에게 필자는 퇴진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만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십수년 전 필자에게 자신이 그만두어야 할 때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첫 삽질을 했던 건물을 완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필자에게 부탁했던 말을 잊고 있었다.
입맛이 씁쓸해진 필자는 그를 경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필자가 그렇게 주책을 부릴 때 누군가가 필자를 경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조직의 간부가 된다는 것은 남에게 명령하고 지시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마피아 경영학’이라는 책 속에는 ‘섹스보다 짜릿한 것은 남에게 명령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필자가 ‘섹스보다 짜릿한 맛’에 빠져 있을 때 여러분 중 누군가가 필자에게 찾아와 달라. 그리고 진심으로 퇴진을 권유했는데도 굳이 눌러앉아 있을 때, 제발 경멸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나의 마지막 소망이요, 부탁이다.
/김왕근 (전 조선일보 기자<수습 24기> • ‘붓다로살자’ 편집장) <⑥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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