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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에 대한 이야기(1)…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 살아가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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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해양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은 우리가 성찰할 화두 중 하나다. ▲ 송희영은 경제과학부장 시절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제목의 글을 노보에 기고했다. 김대중 주필이 ‘오늘의 잣대로 선배를 폄하 말라’라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은 바로 이 글 때문이었다. ▲ 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송희영 편집국장 시절 ‘명예퇴직’을 당했지만 최근까지 그를 존경했다. ▲ 송희영의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글을 전재한다. 독자들이 선입견 없이 송희영을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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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우조선해양과 유착 의혹이 불거진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에 대해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이를 비난하는 글을 게재함으로써 화제가 됐다. 그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팩트올’의 이범진 대표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송 전 주필이 편집국장으로서 2005년 12월 명예퇴직을 강행했을 당시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었음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당시 명예퇴직 대상자였다.
선배들이 사실상 강제 퇴직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다만 편집국 한켠에서 서성거리며 걱정스럽고 미안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퇴직 대상이었던 내가 그와 찰나의 눈길이 마주쳤을 때, 나는 “당신이 여기 낄 자리가 아니야.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눈빛으로’ 말했었다.
나는 당시 명예퇴직 대상자였다
퇴직은 축복이다. 퇴직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명령이며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에게 열린 퇴로다. 퇴직 이후에 나는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가 있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주로 “어떻게 살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이 부족했던 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지 못했고, 직장 생활의 치열함에서 동료들보다 뒤처진 면이 있었으며 그것이 퇴직의 원인이 됐다. 스트레스 가득한 세계에서 탈출의 길을 열어준 송희영 국장에게 나는 지금 감사한다. 당시 받은 ‘명예퇴직금’도 적지 않았다.
나를 내친 조선일보와 송희영 국장 개인에게 서운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정년을 맞아 감사패를 받으며 퇴직하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사보로 보면서 나는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한눈팔지 않고 나름 열심히 기사 쓰며 살았는데, 아무런 ‘이별의 의식’도 없이 마치 죄인처럼 회사를 떠나, 나는 그냥 한 순간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른 채 편집국장실에 불려 들어가 자리에 앉자, 송국장은 “김차장이 결심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내 자신이 명예퇴직 대상자로 찍혔다는 사실을 겨우 인식하는 순간, 배석했던 K부국장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얘기하지 말자고”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으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노보를 통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변론을 해주었는데”라는, K부국장을 향한 부질없는 생각이 오히려 ‘빠른 체념’에 한몫 했다.
젊은 시절 내가 겪었던 송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송희영 국장에게 크게 나쁜 감정이 없다. 평소에 그가 하던 말이나 글과 그의 행동이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 송희영의 글은 나의 ‘기사 공부’에 있어서 ‘모범’이었다. 다른 많은 선배들의 글도 그랬지만, 나의 초년병 기자 시절 그의 글은 읽을수록 맛이 났고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범진 대표는 명예퇴직을 당했던 당시의 선배들을 대신해서 10년 후에 ‘복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사감(私憾)이 있을 때, 나는 그에 대한 기사 쓰기를 삼간다”라고 나의 페친인 한겨레신문의 길윤형 주일특파원은 페북에 썼는데, 나는 이것이 옳은 태도라고 본다. 이범진 대표의 글이 팩트를 왜곡하지는 않았지만, ‘사감’이 ‘시각’에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그의 글은 송희영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일면적이라고 나는 본다.
송희영이라는 한 개인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됐다. 그 화두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송희영을 개인적으로 겪어본 나도 그 ‘성찰의 과정’에 공헌하고 싶다. 우선 젊은 시절 내가 겪었던 송희영을 얘기하기 위해서 그의 글을 하나 소개한다.
이는 1997년 나의노조위원장 시절에 경제과학부장이었던 그가 노보에 쓴 ‘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라는 글이다. 앞서 김대중 주필이 발끈해서 반박한 글이 바로 이 글이다. 이 글은 내가 송희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독자들에게도 그를 판단하기 위한 중요한 1차 자료가 될 듯하다. 노보에 게재되던 당시보다도 지금 오히려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서, 여기에 글 전문(全文)을 싣는다.
<송희영(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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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로부터 배우지 말라 /송희영 경제과학부장(97. 3. 14)
술집에서건 사무실에서건 후배들과 마주쳤을 때 ‘엄마 어렸을 적엔’에 나오는 식의 대화처럼 쑥스러운 일도 없다. 하지만 선배란 걸핏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10년 전의 조그만 특종 기사를 뻥튀기하거나, 출입처 고관들과 고급 술집에서 어울려 국가와 민족과 역사를 토론했다고 자랑하기 십상이다.
이런 대화법은 필자를 포함해 선배라는 위치에 있는 누구나가 저지르고 있는 명백한 주책성 발언이다. 후배들은 술값을 내지 않는 대가로 큰 인내심을 발휘, 선배들의 어쭙잖은 “이 선배가 이래봬도 젊었을 적엔…” 식의 넋두리를 들어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자리에선 후배들에게 지도자적인 입장을 떠나서, 그냥 후배들을 보는 필자 ‘개인’의 시각을 들려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신세대 기자들은 선배들보다 능력 있고, 부지런하다는 점을 평가해 주고 싶다. 예를 들어 20년 전에 영어회화라도 더듬거리는 기자가 있었다면 편집국의 천연기념물처럼 대우를 받았다.
그땐 편집국 어귀에 외국인들이 들이닥치면 “야, 누구 불러와”라고 소리치는 풍경이 낯익었다.
지금은 외국인들이 몰려와도 누군가 한 사람이 조용히 안내하며 브리핑을 해 준다. 편집국에서 영어회화라도 못하면 뭔가 자격 요건이 미달된 기자가 되어 버린 분위기이고, 데스크 입장에서는 부원들 중 아무나 찍어서 외국인 인터뷰를 시켜도 정확하고 내용 있는 기사를 만들어 오는 현상을 이 순간 목격하고 있다.
단지 어학력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영어회화만 잘 하면 뭐해”라고 핀잔하는 노기자들도 있지만, 후배들의 취재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몇 해 전에 1년간 특종상을 6번 수상한 기자도 나왔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조선일보가 과거에는 지금처럼 특종이 많았던 신문은 아니었다. 반짝이는 기획 기사나 좋은 연재 기사로 화제가 되곤 했지만, 커다란 사건에서 연발해서 특종을 낚아챘던 민첩한 신문은 아니었다.
특종이 될 만한 뉴스가 있어도 경쟁지가 1보를 터뜨려 주기를 기다렸다가, 뒤따라가던 사례마저 없지 않았다. 덕분에 ‘점잖은 조선일보, 점잖은 조선일보 기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살아왔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선배들이 도전적으로 기사를 쓰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한때 “훔쳐야 생생한 기사가 나온다”며 출입처에서 자료를 훔치도록 지도 편달받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어떻게 자료를 빼오는지 알 수 없는 경로로 비밀스러운 자료를 가져와도 사후에 전혀 말썽이 나지 않는 후배들의 도법(盜法 정보 훔치기)에 필자는 감탄하곤 한다.
내친 김에 후배들에게 감탄하는 또 다른 강점을 들고 싶다. 부지런함이다. 사건 기자를 거쳐 많은 경제부의 출입처를 다녔으나, 가는 곳마다 고스톱판과 침대가 없는 곳이 없었다. 기사가 없는 시간에는 도박을 즐기거나 낮잠으로 전날 저녁의 만취했던 두뇌를 달래는 일이 선배 기자들의 일상이었다.
선배들 중에는 간혹 “그때 말이야, ‘낭만’에서 대취했지만 1보를 듣고서는 곧장 현장에 가서…”라며 어쩌구 하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의 신세대 기자들은 아예 건강도 계산한 데다, 큰 사건에 대비해 대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얼마 전 한보사건이 터졌을 때 부원 중 1명에게 “모 은행장 집에 가서 만나고 오라”고 지시했더니 아픈 몸으로 밤새도록 열어 주지 않는 문 앞을 지켰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것도 “부인을 밤에 불러내 앞뒤 문을 나눠서 지켰답니다”라는 얘기를 다른 부원이 해 주었을 때는 ‘감탄 이상의 마음’이 생겼다. 과거 필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취재원에게 “야, 이 새끼야, 문 안 열어?”라고 몇 번 소리친 후 철수했다는 선배들 무용담을 듣고 기자생활을 해 왔다. 더구나 후배들이 기사 때문에 바빠서 기자실에서 도시락을 시켜 먹을 때가 잦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점심 후에는 얼큰한 표정으로 회사에 들어와 술냄새를 풍기거나, 아니면 술에 취해 아예 일을 작파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기자다움의 상징적인 행동이었던 것처럼 회상하는 필자를 도시락을 먹는 후배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후배들에게 고해성사해야 할 ‘꺼리’는 더 있다. 포커나 고스톱을 치다가 몇 달 전에 썼던 기사를 적당히 개작, 마치 새 것인 것처럼 전화통에 대고서 불러댔던 경우도 있었고, 노름판 판돈과 술값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일화도 많았다. 청정도(淸淨度)나 생산성 통계를 만든 적은 없지만, 신세대 후배들 쪽이 훨씬 청정하고 생산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컴퓨터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덕분이라곤 해도, 후배들이 작성하는 기사의 양이나 질은 과거 선배들의 것을 능가하고 있다.
이번 지면을 빌려 후배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런 선배들의 약점을 제발 물고 늘어지지 말아 달라는 점이다. 만약 여러분 중 누가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20년 전의 필자와 편집국 후배 중 한 명의 생산성을 비교하는 통계를 작성한다면 필자는 “제발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과거 필자가 썼던 기사의 정확성을 점검해 보겠다는 아이디어도 필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결론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탁은 선배들로부터 배우지 말라는 것이다. 본사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계셨고 지금도 쟁쟁한 논객과 재재다사들이 정동 빌딩 안에 꽉 차 있지만, 조선일보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던 ‘성공 스토리’들은 이제 후배들에게는 맞지 않는 세상이 왔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성공은 반드시 복수한다’고나 할까. 선배들의 성공의 법칙과 여러분의 성공의 법칙은 다르다고나 할까.
정상 정복의 포만감에 사로잡혀 있는 선배들의 성공 스토리를 교과서처럼 신봉한다면 더 이상 조선일보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조선일보를 정상으로 끌어올렸던 튼튼한 법칙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이 시점에서는 빛이 사그라들고 있는 현실을 여러분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부탁은 비밀이 요구되는 은밀한 것이다. 필자에게 누군가 다가와 “그만두실 때가 왔습니다”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지 않는 분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로자라고 스스로를 평가절상한 후, 스스로 공적에 도취해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망치는 사례도 자주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좋은 신문을 위해서, 조선일보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후배들이 걱정이 돼서…”라며 어느 직책에 오래 남아있겠다는 행동을 할 때, 제발 누군가 조용히 찾아와 “그만 비켜 주시죠”라고 권유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얼마 전 절친한 어느 고위인사에게 필자는 퇴진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만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십수년 전 필자에게 자신이 그만두어야 할 때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첫 삽질을 했던 건물을 완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필자에게 부탁했던 말을 잊고 있었다.
입맛이 씁쓸해진 필자는 그를 경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필자가 그렇게 주책을 부릴 때 누군가가 필자를 경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조직의 간부가 된다는 것은 남에게 명령하고 지시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마피아 경영학’이라는 책 속에는 ‘섹스보다 짜릿한 것은 남에게 명령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필자가 ‘섹스보다 짜릿한 맛’에 빠져 있을 때 여러분 중 누군가가 필자에게 찾아와 달라. 그리고 진심으로 퇴진을 권유했는데도 굳이 눌러앉아 있을 때, 제발 경멸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나의 마지막 소망이요, 부탁이다.
/김왕근 (전 조선일보 기자<수습 24기> • ‘붓다로살자’ 편집장) <⑥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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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암페타민이라는 마약이 있어 종주국 : 일본 증상 : 강력한 환각, 각성 특징 : 만들기 쉽다 존나 쉽다 개개개개개 쉽다 메스암페타민은 일본 의사가 1893년 감기약을 개발하다가 발견했어 성분이 감기약과 유사하다보니 아편 대마 코카인 등 원재료 중요한 다른 마약에 비해 화학지식만 있으면 쉽게 만들수 있음 울나라에서도 걍 고딩 이과생이 저거 만들었다가 걸려서 난리난적 있더라고 이 성분을 주목한 일본의 다이닛폰 제약은 메스암페타민을 첨가한 피로회복제를 만들어 대대적인 광고를 했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건너간 히로뽕은 시험공부 중인 학생이나 장거리 주행하는 트럭운전기사들을 중심으로 남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독현상에 대한 심각한 보고가 없었고, 위험성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히로폰 익숙하지? 맞아 흔히 우리나라에서 히로뽕, 필로폰으로 불리는 그 마약이야 이 히로뽕이 대대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바로 전쟁시기야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추축국 가리지 않고 많은 군인들이 마약을 했어 왜냐? 피로를 빨리 회복시켜주고, 더 용감하게 잘 싸우게 해주거든 각성제 효과로 죄책감이나 피로감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감춰주거나 원하는 환각을 보여주니까 당연히 만들기 쉬운 메스 암페타민, 히로뽕도 많이 사용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히로뽕은 연합국이던 추축국이던 거의 모든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보급됐다. 야간행군 때 졸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고, 한편으로 병사들의 겁을 없애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각 군의 지휘관들은 중요한 보급물자 중 하나로 이 메스암페타민을 수만정씩 보유하고, 병사들의 사기와 내구력 향상 등의 목적으로 정기 지급했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종주국인 일본은 특히 말할 것도 없었지 특히 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심각한 난전, 악전고투를 겪던 일본 군인들의 필수품이었음 가미카제에 탔던 병사들도 히로뽕을 투여한 채 자살테러를 감행했고 그 전쟁의 결과는 우리도 다 아는 빵 그렇게 전쟁은 한순간에 끝났고 일본에세 남은건 패배와 반쯤 박살난 국토 그리고 군창고에 쌓인 수많은 히로뽕이었어 사실 메스 암페타민은 화학 실험으로 만들어지는 마약이야=제조하는 화학 기술자가 따로 군대에 고용돼 있었다는 거임 근데 일본 패망 후 갑자기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하던 기술자들이 한번에 실업자가 된거야 굶어 죽을수는 없잖아? 그래서 기술자들은 군인을 위해 제조하던 메스암페타민을 민간에 팔기 시작했지 이미 메스암페타민이 첨가된 피로회복제가 팔리는 판에 군대에서 쓰이던 순수 메스암페타민까지 등장한거야 그러자 일본에는 이미 메스암페타민에 중독된 군인들 뿐 아니라 민간에도 많은 중독자가 발생에 큰 문제가 생겼고 1945년 패전 후에는 구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필로폰 재고가 암시장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본 전역에 마약 중독자가 속출했다. 일본은 1951년까지 각성제 유통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965년에는 ‘제2차 각성제 남용기’가 도래했다. 전쟁 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재건에 열을 올리는 노동자, 밤낮없이 활동하는 연예인과 그 뒤에 암약하는 야쿠자들의 손을 타고 각성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마약으로 자리 잡았다.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6&t_num=13608109 1951년 일본 정부가 금지약물로 지정해서 제조, 판매를 금지했어 어 정부가 잘했네 그..으렇긴 그런데... 2022년으로 점프해볼까?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하드드럭+일부 소프드드럭이 불법이야 강력하게 마약을 단속하고 있고 마약 단속반은 거의 특부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근데 미국에서..마약을 안해?? 존!!!!나 하잖아 미국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상이상으로 많음 가끔 길거리 걷는것도 무서움!!! 그것도 무시무시한 마약 갱단이 붙어서 하지 물론 미국의 마약 중독이 단순히 마약 금지때문만은 아니고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마약을 금지한다고 마약이 뚝 끊기는건 아니란거지 오히려 불법화되고 위험해지니까 폭력 조직들이 개입해 일본도 야쿠자가 메스암페타민 사업에 뛰어들었어 당연히 마약산업은 각종 불법+검은돈이 몰리는 산업이 됐음 일본 정부도 굉장히 강경해서 대대적인 체포 작전으로 5만명 넘게 체포하기도 했어 그야말로 일본판 마약과의 전쟁이었음 심지어 1960년대에는 마약 제조자에게 최대 사형까지 구형하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이렇게 마약관련 법이 강해지자 마약업자+야쿠자들은 눈을 돌리기 시작했음 잠깐 2022년으로 다시 점프해볼께 미국이 마약을 많이 한다고 했잖아 그럼 이 마약은 어디서 올까? 미국? ㄴㄴ 미국 아래있는 멕시코부터 더 아래있는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 제조되서 유통돼 그래서 그 국가들은 마약카르텔에 국가가 잠식되어 있는 수준이고 미국내 단속이 엄격하고 빡세질수록 마약 산업은 돈이 되는 산업이 됨과 동시에 근처 다른 곳에서 제조하려고 하는거야 그리고 미국이 단속 빡세질수록 그 카르텔에 마약상과 마약카르텔 갱들은 더 활개치고 시민들은 더 괴로워하지 OEM이라고 알지?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따지자면 미국의 마약은 멕시코와 중남미 국가에서 OEM 생산하여 판매되는거라고 봐야해 다시 1960년대로 가서 마약 제조업자들과 야쿠자들에게 메스암페타민 산업은 너무나 ~ 돈이 되는 산업이지만 자칫하다간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산업임 이때 얘네 선택을 고르시오 1. 회개하고 새삶을 산다? 2. 죽기를 각오하고 계속 만든다? 둘다 놉 3. 가까운 곳에 생산 기지를 만든다 돈도 되고 안전하고 개굿! 자 이제 눈치챘겠지 일본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좆같게도 우리나라야ㅋㅋ 그것도 제일 가까운 곳은 제2의 도시 부산 일본과 가깝고 항구라 해상교통도 편리하니까 맞아 일본에 유통할 마약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조하기 시작해어 이때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마약왕인데 안봐서 뭐라 말을 못하겠다 아무튼 스토리라인이 일본에 마약 파는 내용이더라구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한 제재가 별로 없고 큰 문제를 일으킨적도 없었어 소프트드럭이라는 대마도 시골 어르신들이 종종 키워서 사용했었고 은근히 피는 사람도 흔했으니까 그런 헛점을 이용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야쿠자 세력 및 마약 상들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그 아래 일하는 사람들도 점차 기술을 배우고 마약 장사에 참여하기 시작해 그리고 한국 조폭들의 큰 자금줄이 됐지 당시 한국에 뭐 4대 마약왕이니 마약 거물이니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걍..아오안이라 더 안찾아봄..알빠쓰레빠 방식은 이래 대만에서 원료를 사온다->부산에서 만든다->일본에서 판다 어 따지자면..가공무역?..을 가장한 카르텔이지 뭐 저기에 개입되는건 일본의 야쿠자/한국의 조폭들이었고 폭력 조직과 각종 불법이권의 돈줄이 되어준게 바로 마약이었거든 그렇게 60년대~70년대까지 일본 히로뽕 생산량의 80%를 한국, 부산이 차지헀어 그것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히로뽕보다 한국 히로뽕이 유독 질이 좋아서 일본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 참...어떻게 마약도 굳이굳이 더 잘만드네..재능낭비? 그렇게 1970년대까지 부산 지하경제는 히로뽕이 장악했고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왔어 그렇지만 히로뽕 중독자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었지 물량을 죄다 일본에 팔았거든 왜냐면 우리나라사람들은 가난했고 돈을 버느라 바쁘지 돈주고 비싼 마약을 살 여유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1980년대들어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해 1. 돈이 되니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 기술(???)이 발전했다 =양질의 히로뽕 생산량이 늘었다 + 2. 일본에서 코리안 마약 카르텔을 눈치채고 대대적으로 한국산 수입품을 단속했다 =대부분 일본에 수출되지 못하고 부산에 물량이 남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히로뽕 물량이 촤악 풀렸지 실제 우리나라에서 다른나라와 다르게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의 마약이 바로 히로뽕임 왜 오죽하면 SON of 정희, BROTHER of 근혜인 박지만 (=약쟁쓰)도 가장 많이 걸린게 히로뽕이겠어 헐 우리나라도 그럼 완전 약쟁이 나라 된거아냐? 놉 다행이 우리나라는 마약이 퍼지는 속도보다 정치 경제 사회 변화가 개빠른 나라였고 마약이 우리나라를 장악하기전 마약을 여러 선진적 체계가 빠르게 자리잡았어 단속반이 생기고, 마약단속법이 생기고 인식이 바뀌고 등 더불어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건비, 물류비, 물가 모든게 상승하다보니 계속 OEM을 하기엔 단가가 안맞았지 어쨌든 마약 산업(?)도 돈벌려고 하는건데 울나라에서 만들면 더이상 돈이 안되는거야 마이너스 수준임 걍 평범한 합법 공산품도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가격이 비싸지는데 하물며 마약은.. 그래서 많은 마약 제조상들이 다른나라로 떠났고 우리나라는 다행이 마약제조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만약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지 못했다면, 사실 거대한 마약카르텔이 나타났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마약 카르텔의 가장 최악의 결과는 현재 멕시코나 남미를 보면 되고 또 아프가니스탄 같은 최빈국+분쟁국가도 부자국가의 마약 OEM으로 먹고 살며 마약카르텔에 갇힌 나라거든 물론 그 흔적은 아직 남아있지만..우리나라 아직도 가장 높은 비율의 마약이 히로뽕임 히로뽕은 투약횟수, 정도에 비해 몸에 끼치는 해가 아주 큰 마약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손도 대지 말자 막간 TMI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엔칸토는 화려한 색감과 신나는 음악이 특징인데 그 밝은 연출 뒤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어 엔칸토의 시작이 바로 콜롬비아 내전이야 주인공 가족은 내전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고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의 큰 영향을 받은 나라고 당연히 콜롬비아 내전도 그 마약과 카르텔의 영향을 받았음 마약왕으로 불리던 나르코스가 콜롬비아 출신이기도 하고 마약과 콜롬비아는 절대로 뗄 수 없지 미국에서도 콜롬비아와 마약을 많이 연관지은 미디어,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본인들도 책임 아주 크다는건 가끔 망각하는 것 같아 ㅋㅋ ㅊㅊ
우러전쟁 이야기 (갈려 나가는 기갑)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흑토 때문에 이질적인 지형을 갖고 있음. 이 이질적인 지형은 우러전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 그것은 바로 라스푸티차라고 불리는 광역 슬로우 디버프임. 기갑의 이동을 제한하는 라스푸티차는 봄과 가을에 발생하고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에도 발생함.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모두 이 라스푸티차라는 페널티에 걸려 있음. 요즘 러시아군이 무리한 공세를 하다 많이 갈려 나가는 중이라 지형 페널티를 받고 갈려 나가는 우러전쟁 기갑에 대해 쓰려고 함. 우러전쟁 기갑은 진흙탕 서핑을 하고 싶지 않으면 길 따라 기동해야 함. 근데 우크라이나 도로는 협소하고 길이 많지 않아 진격로가 제한됨. 제한된 진격로, 좁디좁은 길, 거지 같은 도로. 기갑이 갈려 나가기 딱 좋은 조건임. 박살 난 선두 전차 때문에 잠시 멈춤 러시아 전차. 어버버하다가 결국 포격 엔딩을 맞음. 우러전쟁, 기갑 부대의 진격을 막는 방법. 대전차 지뢰든, 장애물이든 뭔가로 길을 막는다. 길이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기갑 부대를 차근차근 박살 낸다. 원숭이도 할 간단한 방법인데, 이게 계속 통하는 상황임. 그렇다고 도로가 아닌 진흙밭을 통과하는 것도 미친 짓임. 라스푸티차 때문에 굼벵이 속도로 진격하다 쓸려나감. 또 우러전쟁 기갑을 위협하는 문제점이 하나 더 있는데 너무 탁 트인 개활지라는 점임. 이런 전장은 공군이 활약하기 최적의 지형인데 아쉽게도 우크라이나, 러시아나 공군이 없음. 탁 트인 개활지여서 생기는 단점. 드론 정찰에 너무 쉽게 잡히고 조금만 멈춰 있으면 포격 맞아 사망임. 드론 정찰로 러시아 기갑을 찾을 우크라이나 보병대. 대전차 미사일 사격으로 깔끔하게 제거함. 라스푸티차로 인한 슬로우 디버프 & 개활지로 인한 엄폐 불가 때문에 기갑이 매우 취약함.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터져나가고 있음.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황에 맞춰 운영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갈려 나가는 중임. 그리고 러시아제 기갑은 종이 장갑이라고 할 정도로 장갑이 약해서 포격 몇 방에 쉽게 궤멸되는 편임. 궤멸된 기갑부대에 놀라 달아나는 러시아 병사들. 이게 우러전쟁 전선이 교착 상태인 이유임. 기갑이 힘을 쓰기 힘든 조건이 너무 많음. 다만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갈려 나가는 것은 기갑 자체의 문제라긴 보단 전장 상황을 무시한 무지성 작전 탓이 큼. 겨울 라스푸티차 기간에는 존버하고 강추위 시기에만 공세했으면 저런 일 없었음. 기념일 따위의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작전하는 게 문제임.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너무 쉽게 박살 나고 있지만 기갑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무지성 운용이 문제이며 기갑은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 3줄 요약 1. 우크라이나는 기름진 흑토 때문에 라스푸티차가 매우 매우 심함. 2. 제한된 진격로, 거지 같은 지형 때문에 기갑이 무수히 많이 갈려 나감. 3.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진격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궤멸됨.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2월 3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3/02/03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은 가운데, 전임 문재인 정부가 훨씬 더 낫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더 잘한다는 38%에 그친 반면, 문재인 정부가 더 잘했다는 53%로 과반이 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욕먹는 이유도 다 ‘문재인’ 탓 아니겠어? 비교가 안 되니까~ 2.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당론으로 추진할지 논의했습니다. 2시간 넘게 비공개 자유토론이 이어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당론 추진 여부는 더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이게 다시 논의할 사항인가? 주저주저하다가 되치기당하는 거라고~ 3.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후보 등록을 마치고 "총선 승리를 위해 후보 등록을 했다"며 "경선 승리를 위한 후보 등록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안 의원은 "법조인 대통령에 과학기술인 당대표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윤석열은 눈길 한번 안 주는데 눈이라도 한번 맞춰 보려는 게 애처로워 보인긴 하다~ 4. 윤석열 대통령이 안철수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직에서 해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의 위원이 특정 캠프의 선대위원장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입니다. 덩치는 산만 해서 어쩌면 이리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부적절 대마왕은 너라고~ 5. 장제원 의원이 “일부 후보가 장제원 사무총장 설을 퍼뜨리고 있다“며 “차기 지도부에서는 어떠한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김기현 의원이 당선되면 자신이 사무총장이 돼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혹에 반박한 것입니다. 걸리면 발뺌하고 안 걸리면 조작하는 전형적인 양아치 근성을 보여주는 건희? 6. ‘윤핵관’들과 김기현 의원이 일제히 안철수 의원을 ‘반윤’으로 몰아세우며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내에서조차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러면 오히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된다”는 걱정과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철수가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송혜교처럼 보복하면 재미는 있을 것도 같은데… 7.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대통령 선거 직후 대통령 새 관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역술인 ‘천공’이 한남동 공관을 다녀갔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통령실에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대체 윤석열은 서열 몇 위인 거냐… 윤핵관도 천핵관으로 바꿔야 되는 건가? 8. 대장동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이재명 대표 측이 사실관계는 답하지 않으면서 정치 수사한다고 매도한다며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검찰은 2차 소환 조사를 끝낸 후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합쳐 구속영장을 청구할 전망입니다. 이미 기소하기로 작정했으면 그렇게 하든지~ 구차하기가 이를 데 없다~ 9. 2월 한 달간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20초짜리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성과·정책 결실 10가지’ 영상이 송출됩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표적인 정책 성과와 결실 10가지라고 밝혔습니다. 여러분 혹시 밥맛 떨어질지 모르니 한 달 간은 고개 들고 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10. 수사관들의 성추행과 직장 내 불륜 등 성 비위가 잇따르면서 검찰의 공직 기강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해당 비위 사실을 보고받고 대검찰청에 엄정한 감찰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폭 보스 밑에 그 똘만이들이라고 별반 다르겠어? 다 거기서 거기 아냐? 11. 난방비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작년 말에 인상된 전기요금까지 반영되면서 이달 관리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공공요금 줄인상으로 가뜩이나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는 소비자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보입니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는 윤석열 찍고 혈압만 오른다는 얘기 아니겠어~ 12. 대구 이슬람사원 반대 주민들이 중재안을 거부한 채 바비큐 파티에 이어 돼지고기 수육 파티를 벌여 논란입니다. 이들은 마을 잔치를 빙자해 돼지고기 수육과 돼지국밥 등 100인분을 준비해 참가자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혐오도 자유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건 자유가 아니라 증오범죄라고~ 장예찬 "윤석열 성공 가로막는 모든 것 박살 낼 것". 경찰, “황운하는 음모론자” 발언한 한동훈 장관 불송치. 대통령 경호처 "천공이 관저 물색에 개입? 사실 아냐". 천공 ‘대통령 관저 물색’ 의혹에 민주당 “CCTV 보자” '윤심 경쟁' 속 대통령실 "중립적으로 보고 있다" 원칙론. 원희룡 "문 정부 임대차 3법, 전세 사기 먹잇감으로". 복지부, 신현영 의원 닥터카 탑승 논란 명지병원 조사. 민주당 "김건희 특검·이상민 파면 관철될 때까지 농성". 한국 민주주의 지수 24위 8계단 하락 "결국 정치가 문제". 과거의 탓,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인생은 호전한다. - 웨인 다이어 - 윤석열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도 탈원전 탓, 가스요금 인상도 탈원전 탓을 한 데 이어 전세 사기 사건도 결국 문재인 정부의 ‘임대차 3법’ 탓을 하고 나섰습니다. 아마도 임기 내내 문재인 정부만 탓할 이놈의 정부는 장담하건대 그 무엇도 호전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겁니다. 10.29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이번 주말 추모제가 열립니다. 고인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도록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류효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