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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박(郭璞)

곽박(郭璞, 276년 ~ 324년) 동진(東晉) 하동(河東, 산서성) 문희(聞喜) 사람. 자는 경순(景純)이다. 박학하여 천문과 고문기자(古文奇字), 역산(曆算), 복서술(卜筮術)에 밝았고, 특히 시부(詩賦)에 뛰어났다. 서진(西晉) 말에 장강(長江)을 지나다가 선성태수(宣城太守) 은우(殷祐)의 참군(參軍)이 되어 왕도(王導)의 존중을 받았다. 진원제(晉元帝) 때 저작좌랑(著作佐郞)이 되어 왕은(王隱)과 함께 『진사(晉史)』를 편찬하고 상서랑(尙書郞)으로 옮겼다. 나중에 왕돈(王敦)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이 되었다. 점을 쳐서 불길하다며 왕돈의 모반 계획을 만류했다가 왕돈에게 피살당했다. 홍농태수(弘農太守)에 추존되었다. 저서에 『이아주(爾雅注)』와 『삼창주(三蒼注)』, 『방언주(方言注)』, 『산해경주(山海經注)』, 『도찬(圖贊)』, 『목천자전주(穆天子傳注)』, 『수경주(水經注)』, 『주역동림(周易洞林)』, 『초사주(楚辭注)』 등이 있다. 그밖에도 『주역체(周易體)』와 『주역림(周易林)』, 『역신림(易新林)』, 『모시습유(毛詩拾遺)』 등이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문집에 『곽홍농집(郭弘農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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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남극 탐험
목요일은 역시 역사지. 모두들 나치 잔당이 남미로 도망갔다거나 남극에 비밀리에 기지를 세워서 UFO를 만들었다더라 하는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극은 무슨 남극, 달나라 쯤 되어야 음모론이지, 해서 나온 영화가 Iron Sky(참조 1)였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nazis-in-antarctica 나치의 남극 탐험은 사실입니다. 물론 UFO를 만들기 위한 비밀 기지는 아니었다. 당시 히틀러가 남극에 사람들을 보냈던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마가린 얘기부터 해 보자. 마가린은 맛은 좋지만 고가에 보관도 신경써야 하는 버터의 대용품을 위해, 프랑스 정부에서 콘테스트를 개최했을 때 나타났다. 즉, 저소득층이나 군대(특히 해군)를 위한 버터 대용품이었는데, 이 콘테스트 덕분에 식품 치고는 기록이 비교적 명확하다. 19세기 중후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는 버터 부족 사태 때문에 대체품 콘테스트를 했고, 여기에 메즈-무리에스(Hippolyte Mège-Mouriès, 1817-1880, 참조 2)가 발명한 마가린이 우승을 거둔다(원래 그는 황제의 개인 농장에서 연구하는 학자였다). 원래 이름은 oleomargarine. 여기서 뒷글자만 빠져나와 마가린이 된다. 물론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할 일, 이것까지 연구했지만 마가린을 제 때 공급 못 한 이유로(?!) 프랑스는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프랑스 시장에서 재미를 못 보고 오히려 특허가 네덜란드로 넘어간 건 안 자랑, 본고장인 프랑스보다는 독일과 네덜란드가 마가린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된다. 처음에 마가린을 만드는 재료는 쇠기름이었다. 이것을 식물성 기름과 동물 지방으로 바꾸는 시도가 있었고, 때마침 권좌에 올랐던 히틀러는 경제개발 4개년 계획(Vierjahresplan, 참조 3)을 발동하는데 이 계획의 주된 목표는 전쟁 준비 및 그에 따른 전략 물자의 국산화였다. 그렇다. 마가린이 전략 물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가린을 만들기 위해 제일 저렴한 동물 기름은 바로 고래였다! 게다가 고래 지방은 기계용 윤활유로 쓰이고 폭팔물을 만드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 때에도 유용했다. 물론 독일만 아는 사실은 아니다. 가령 영국은 1938년 고래 기름을 전략물자로 선포했다고 한다. 군비경쟁이 극심하던 당시 영국과 독일은 전세계 포경된 고래의 83%를 사들인다. 이 고래를 제일 많이 잡을 수 있는 곳은? 남극이었고 주로 노르웨이 포경선들이 맹활약했다. 그래서 남극의 노르웨이 거점, Queen Maud Land를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한 것이 바로 나치 남극 탐험대의 목표였다. 그래서 1938년 5월, 나치는 드디어 남극 탐험대를 보낸다. Alfred Ritsche 선장을 필두로 학자와 순인, 포경업자들 82명으로 구성된 독일 탐험대는 Schwabenland라 이름 붙인 배(비행기도 탑재!)를 타고 남극으로 향했고, 다다른 Queen Maud Land를 Neu-Schwabenland(참조 4)라 이름 붙인다. 이를 알아차린 노르웨이는 왕령을 통해 1939년 Queen Maud Land가 노르웨이령임을 선포하지만 곧 일어나는 전쟁에서 노르웨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실 것이다(나치가 굳이 노르웨이를 쳐들어간 이유 중 하나가 남극이었다). 이 독일 탐험대는 독일인답게(…) 성실하게 남극을 탐험했고, 알려진 지도의 영역도 더 넓힌다. 정찰 및 촬영을 위해 날린 비행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동 지역에 철제 슈바스티카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 있을까?) 그들의 임무는 일단 히틀러의 성탄절 연설 청취(… 참조 5)였는데 남극 대기의 방해가 심해서 라디오는 껐다고 한다. 1939년 이들은 고국으로 복귀했고, 곧 전쟁이 격화되면서 아무도 이를 기억 못 하게 된다. 1958년에 일부 알려지기는 했으며, 2007년에는 논문도 하나 나온다(참조 5). 그렇다면 그동안 숱하게 나온 나치의 달기지며 UFO는 뭐일까? 신화다(참조 6). 인터뷰나 당시 기록들을 오해하거나, 일부러 오독해서 나온 도시 전설이라는 의미다. 독일은 노이-슈바벤란트에 기지를 세우지 않았으며(기지를 세울만한 물자를 싣고 가지 않았었다), 전후 미국이 남극에서 군작전을 펼친 이유는 혹한기 훈련(…, 참조 6)일 따름이었다. 역시 음모론을 만드려면 적어도 우주진출 정도는 해줘야 할 일이며, 나치보다는 소련 UFO가 더 적절하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작에는 마가린이 있었다. -------------- 참조 1. 사실 후속편은 전편에 비해 별로였다. 율리아 디체(2014년 12월 21일): https://www.vingle.net/posts/640113 2.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빵에 색상을 입히는 방법이었다. 빵을 즐기는 분들은 모두 메즈-무리에스를 기려야 마땅할 일이다. 3. 1936년부터 1940년까지이며, 이때 재무장은 물론 아우토반 건설도 추진됐다. 4. New Swabia: https://en.wikipedia.org/wiki/New_Swabia 5. Hitler Sent a Secret Expedition to Antarctica in a Hunt for Margarine Fat(2018년 8월 31일): https://www.history.com/news/hitler-nazi-secret-expedition-antarctica-whale-oil 6. Hitler’s Antarctic base: the myth and the reality(2006년 5월: http://www.histarmar.com.ar/Antartida/Base-Hitler/LaBaseAntarticadeHitler.pdf
파리의 밤하늘에 슈퍼문이 떴다
며칠 전이 우리의 5주년 기념일이었다. 괜스레 시계를 자주 보았을 뿐, 언제나처럼 작은 성냥갑 같은 우리의 안전한 보트 위에서 바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 가까이 모여 앉아 있었다. 기술도 지식도 없는 집안에는 부적이 가득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머리에 손을 대어 서로의 머리 열을 비교하는 것, 체한 이의 엄지 검지 사이를 비명을 낼만큼 눌러 주는 것, 울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괜찮다 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늘 나란히 모여 앉는 것. 나란히 앉으면 서로가 서로의 모니터에 그리고 있는 것들이 다 보인다. 모니터에 반사되는 근심도, 열처럼 피는 열정도, 접히는 모니터가 환영처럼 남기고 간 절망의 얼굴도 다 보인다. 어쩌면 서로의 실패를 바라봐주는 일이 가족이 되어가는 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니었잖아. 늘 함께 생활을 하는 스튜디오 안에서 상대 모르게 편지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척 진땀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인 요즘이라서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몇 달째 써야지 말만 하던 시나리오를 드디어 쓰는구나 흐뭇해하며 엠마는 나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 엠마는 몰래 화장실에서 편지를 적었던 거 같다.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우리의 창은 우리의 유일한 스크린이자 우리의 유일한 알림판이 되어 버렸다. 상장처럼 자랑하려고 늘 서로가 써 준 편지를 창에다 붙여 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기념일까지 창은 낯선 이국의 풍경보다 안전한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투사해주게 되었다. https://youtu.be/JvaNZWq9zmc 어제는 선물처럼 가장 큰 달이 우리의 편지 옆에 떴다. 선명한 흉터로 자기임 드러내는 노란 구멍. 그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들이마시고 후후 내뱉는 입구멍, 우리를 잡아다가 그 뒤의 무엇에다 고발하는 섬뜩한 눈동자였다. 막 설거지를 끝낸 싱크대의 가득 찬 물들이 어느새 찌이익 소리를 내며 빨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처럼 그 구멍 또한 이곳의 지나치게 가득 찬 모든 것들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곤 호흡처럼 저곳에서 오는 것들이 있었다. 호흡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만 같은 다른 향의 공기. 안개처럼 다른 감각으로 걸어야 할 것 같은 밤. 그 몽롱함에 취해 다 큰 이의 손을 잡자 하고 함께 소원을 빌었다. 속삭이는 입술. 사그락 거리는 호흡. 엠마의 쪽이 더 길어 나는 그녀의 기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며칠 째 아침이 올 때까지 잠을 못 이뤘다. 아침의 강한 햇살이 우리의 덧창에 탄흔을 내어 우리의 침대에는 노란 무덤들이 꽃피었다.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잠에 들면 일어나서 멍한 얼굴을 한참 동안 더듬어야 한다. 지난밤의 흔적을. 그 마지막 표정들을.  어제도 그제도 7시까지 버티다가 못 견뎌 잠에 들었다.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은 8시 반, 한 시간만 더 깨어 있다가 마트를 다녀와서 편한 마음으로 자야지 했는데 마지막 코너를 못 넘기고 그만 리타이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오늘도 7시쯤, 깜박 잠에 들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깨어 버린 시간은 8시 반. 깬 김에 다녀와야지 하며, 무거운 옷들을 들어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이동 사유에 관한 증명서를 디지털로 쓸 수 있게 되어 나서는 일이 조금 간편해졌다.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등줄기에 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두꺼운 코트는 이제 가장 큰 캐리어의 깊숙한 곳에 넣어둬야 하는 날씨가 된 것이다. 10여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저번 주보다 더 긴 줄이 마트를 둘러치고 있었다. 마트를 쭉 돌아 물품이 입고되는 창고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여름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만 아직 갈비가 서리던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마트를 들어서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잠을 거의 못 잔 눈썹 위로 내리쬐는 햇살에 몽롱한 기분마저 들었다. 읽고 있던 죄와 벌을 닫아 주머니에 넣고 마트의 지하층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가 물품을 골라 들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트 안은 지난주에 비해 모든 물건들이 더 풍족히 진열되어 있었다. 계란도 과일이나 채소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들만 아니라면 지난가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익숙해진 손길로 물건들을 골라 담고 실수도 없이 계산을 끝마치고 마트를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한 달째 굳게 닫혀 있었다. 이들의 하루를 사라진 수입을 그의 대한 보상을 괜히 염려하다가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중간쯤 강아지와 함께 있는 한 여성 분의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가 볼일을 본 건지 검은 비닐로 뒤처리를 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주에는 못 본 별 거 아닌 모습들.  꽃들이 지고 나뭇잎들이 어느새 골목에 그늘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여름을 닮은 붉은 꽃들이 다른 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계절과 시간의 무심함이 씁쓸한 웃음을 밀어 올렸다. 왜 그토록 많은 책들이 그림들이 발명과 실험들이 미완으로 끝이 났는지.. 우리는 달을 향해 던져진 돌이라 얼굴은 늘 달을 향해 있는데 몸은 점점 땅을 향해 다가간다.  그 불가능함을 들어 나의 발사를 미리 취소해 준다고 내가 더 기쁠까? “아니. 그럼 뭐 하자고.”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집으로 이어진 3개의 현관을 차례로 열었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4.08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