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emin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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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다비드 - 나폴레옹의 대관식

1804년 7월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같은 해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은 이미 1799년에 제1통령의 미술 감독으로 임명된 바 있는 다비드에게 돌아갔다.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의 대관식>(1622-1625)을 참조하여 전체적인 틀을 구상한 다비드는 거의 1년여의 꼼꼼한 준비 작업과 2년의 제작 과정을 거쳐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대작을 완성했다. 그림은 손수 왕관을 쓴 나폴레옹이 부인 조제핀에게 왕관을 씌워주기 위해 양손으로 왕관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평민 출신인 나폴레옹은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황의 참석을 요구했지만,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왕권을 원했기에 전통적인 대관식에서처럼 교황이 씌워주는 왕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왕관을 쓰는 쪽을 택했다. 할 일을 빼앗긴 교황 피우스 7세는 나폴레옹을 축복하는 손짓을 하며 그의 뒤쪽에 앉아있다. 다비드는 작업실에 종이 모형과 밀랍 인형을 설치하고 대관식의 주요 참석자들과 그들이 입었던 의상을 따로 꼼꼼하게 소묘하는 등 대관식의 분위기와 참석자들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요구에 따라 실제로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의 어머니를 갤러리 중앙에 그려넣었고, 대관식 당시 마흔이 넘은 황후 조제핀을 우아한 젊은 여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한동안 베르사유 궁전에 전시되어 있던 대관식 그림은 1889년에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현재 베르사유 궁전의 프랑스 역사박물관에 있는 그림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브뤼셀로 망명한 다비드가 1822년에 완성한 두 번째 그림이다. 루브르에 있는 첫 작품과 동일한 구도이지만 일부 등장 인물이 실제로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로 바뀌었고, 등장 인물의 얼굴이 더 나이 든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의상과 머리 모양에도 새로 그림을 완성할 당시의 유행이 반영되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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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 실제로 보고 반했던 작품이예요. 베르사유 궁전의 작품도 똑같은 줄 알았는데 더 나이 들게 묘사했다니 미리 알았더라면 더 꼼꼼하게 봤을텐데^^
대관식에 참석치 않은 어머니를 그린것과 조세핀을 젊기 그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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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온다고~
처음 그림은 수채화로 시작했다. 전공도 아니었고 그저 취미삼아 해본터라 작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색감과 구도를 배우고 혼자서 색깔과 기법을 연습하곤 했다. 그때 알게된 수채화 작가 제니퍼 보먼~~ 그림이 좋아 선택해 보면 모두 보먼의 작품이었다. 그의 붓놀림과 색채 배합에 끌리고 보고 있으면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풍수 전문가가가 TV에 나와 집에 해바라기를 걸어두면 좋다고 그것도 일곱송이의 해바라기에 잎사귀도 있어야한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동안 한, 두송이 해바라기를 그리며 머리가 지끈지끈해 덮어두었던 소재~~ 엄마의 걱정과 노파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꼬옥 일곱송이의 해바라기를 그려야만 했다. 그때 제니퍼 보먼의 해바라기 수채화가 떠올랐다. 독학으로 유화를 하고 있으니 실력도 떨어지고 때론 영감도 떠오르지 않으며 내가 찍어둔 소재는 전부 한, 두송이의 꾳들 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윗층 언니 말마따나 한송이 꽃들은 외롭고 쓸쓸해보인다며 자신은 무더기 꽃들이 좋다며 그리던 것도 생각났다. 그래서 제니퍼 보먼의 해바라기를 모사해 보기로 했다. 어떤 것은 한참을 그려도 맘에 들지 않아 몇번을 수정해도 성에 차지 않았는데 의외로 모사를 하니 순조롭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일곱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졌다. 이제 내게도 우리집에도 행운이 찾아오려나 물론 엄마 집에 걸어둘 일곱송이의 해바라기를 또 그려야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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