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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서재] 취준생 이건욱의 서재는 '틈'이다

안녕하세요. 29살 취준생 이건욱입니다. “나에게 서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서울의 좁은 방에서 지냈기에 서재라고 부를만한 사치스러운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보통 냉장고 위에 책을 쌓아두고 침대 위에서 한 권씩 꺼내 읽습니다. 책으로 집이 가득 차면 1년에 한 번씩 고향으로 보내기도 하고요.
전 기본적으로 훔쳐보는 걸 좋아해요. 학교 수업에서도 맨 뒤에 앉아서 수업은 안 듣고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어요. 지하철에서도 승객들 힐끔힐끔 거리죠. 다른 사람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시간을 때우는지 궁금하거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냥 궁금해요. 천성이죠.
책도 같은 맥락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이 모여있는 곳이 책 이잖아요. 일종의 틈 같은 거죠. 다른 사람을 훔쳐보는 틈. 그래서 저에게 있어 서재는 '틈'이에요.
제가 책과 서재가 다른 사람을 훔쳐보는 틈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전 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결혼은 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등등의 잡다한 호구조사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 왜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썼을지 상상해보죠. 일종의 놀이 같은 겁니다. 맞든 틀리든 그냥 상상해보면서 시간을 때우죠.
그래서 팟캐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빨간책방이에요. 작가들을 초대해서 왜 이 책을 썼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등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시원하게 물어보거든요.

이기호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이기호 입니다. 이기호 작가님이 구성하는 딜레마가 참 좋더라구요. 단편집 대부분의 소설이 이런 구조라서 단숨에 읽고 또 읽게 되고요. 이기호 작가님이 쓰시는 농담을 너무 좋아하는데 요. 책 읽다가 코미디 프로그램 보듯이 웃게 해준 책은 『김 박사는 누구인가?』가 처음이었죠. 이야기 구조도 맘에 쏙 들어요.
일개 독자인 제가 느낀 거라 틀린 말 일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이 작가님의 세계관을 요약해 보자면,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열심히 찾아 헤매죠. 그런데 재미있는 지점이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는 순간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딜레마 같은 게 생기는 거죠. 찾아도 문제, 찾지 않아도 문제. 이래도 저래도 어차피 이미 망해버린.. 뭐 그런 것이죠.

1. 『김박사는 누구인가?』 - 이기호

2.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3. 『오마주』 『몽타주』 - 박찬욱

이기호 작가님의 『김박사는 누구인가?』는 우울할 때마다 꺼내보는 단편집 입니다.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책에서 말했던 것과 같아요.
두 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게으른 편이라 무언가를 반복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싫어도 해야 하는게 있죠. 운동이나 건강한 식단으로 음식 먹기.. 등등
무라카미 하루키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일정한 생활패턴을 수십 년간 반복해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생활 습관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인데, 하루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겨운(?)생활을 반복했는지 이 책에 썼죠. 저도 천성을 고치기 위해, 달리는게 지겹게 느껴지거나 일찍 일어나는게 너무 귀찮아질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마음을 다시 잡습니다.
마지막은 박찬욱의 『오마주』 『몽타주』입니다. 박찬욱 감독을 너무 좋아해서 그 생각을 알고 싶었는데 여기에 아주 자세히 담겨 있어서 감격했던 적이 있네요. 이 책 덕분에 좋은 영화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답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감독이 되면서 우리나라는 최고의 영화 평론가 한 명을 잃게 되었다고요. 박찬욱 감독님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면 좋은 책인 거 같아요.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고 게으른 저에겐 일종의 만트라 같은 것입니다. 달리기 싫을 때 이 구절을 되뇌며 밖으로 나가죠.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항상 무섭게 다가 옵니다. 물론 되뇐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달리기를 안 한지 2주도 더 넘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이 구절을 떠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달릴 날이 오겠죠. 쉬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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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보내는 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몸이 허약해져 병에 걸리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우리 곁에서 함께 지켜봐 줬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우리가 늙어서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구나.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의 옛 시절의 모습을 너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늙어서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다오.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잠시 빌려다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너무 화내지 말아 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될 테니 말이다. 비록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녀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그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힘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 차례입니다. 그분들이 항상 그랬듯,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도 마땅히 모든 것을 감싸줘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부모가 사랑해 주면 기뻐하여 잊지 말고, 부모가 미워하시더라도 송구스러이 생각하여 원망하지 않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부드러이 말씀드리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 증자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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