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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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처럼 맑은 마음으로

소중한 것은,
행복이라는 것은
꽃 한 송이, 물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우리는 오직 눈으로만
감각을 통해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정작 찾지 못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소중한 것을 찾을 줄 알아서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상큼한 행복을 들추어 내고
물 한 모금에서 감동의 눈물을
찾을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을
간직함으로써
작은 일에도 감동할 줄 알고
사소한 물건에서도 감사를 느끼는
맑은 마음을 단 하루라도 간직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1분이라도 내게 머물러서
마음으로 조용히 웃을 수있는
그런 순수한 미소를 잠시라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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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 번째 카드 (+ 글씨 잘쓰는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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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내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것 뿐인 뿐 일까요? 그때는 뼈를 녹일것 같은 아픔이나 슬픔 이였을 지라도 지나고 보면 그것마저도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견디고 살았던가 싶을 만치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지금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를 추억하다 보면 더욱 생생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시간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고통스러운 삶의 길목에 서있다 할지라도 결코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가진 것의 조금을 잃었을 뿐인데 자신의 전부를 잃었다고 절망하 는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것을 보지 못함이요 남이 가진 것을 조금 덜 가짐에서 오는 욕심이며 비워야할 것을 비우지 못한 허욕 때문이며 포기와 버림에 익숙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참으로 소박합니다. 비록 평생 일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살아 숨쉬고 있음 그 하나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되고.... 남의 가슴에 틀어 박혀 있는 큰 아픔 보다 내 손끝에 작은 가시의 찔림이 더 아픈 것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더이상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넣는 일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한 시간이였을지라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날의 새로운 소망이 있기에 더 이상은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려하지 마십시요. 아픔없이 살아온 삶이 없듯이 시간속에 무디어지지 않는 아픔도 없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듯한 아픔과 슬픔마저도 진정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병실에서 아스라히 꺼져가는 핏줄의 생명선이 안타까워 차라리 이순간을 내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기억마저도.... 그런 모습이라도 잠시 내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좋은글 받아보기 : http://pf.kakao.com/_xnxcdYT
금속공예 명장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홍병기 선생님.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창신동까지 홍 부자 집 땅을 밟지 않고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모두 사용한 분입니다. 이런 위대한 분의 손자인 홍재만 씨는 어린 시절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3살 어린 시절부터 금속공예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야 했습니다. 일을 배우면서 거친 선배들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항상 배가 고팠으며 피곤해서 화장실에 숨어 잠을 자다 들켜 엄청난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힘이 붙고 기술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 심부름을 하던 꼬마가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홍재만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금속공예 명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한 장의 은판에서 부리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은주전자는 그 예술적 가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홍재만 명장은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에, 독립운동으로 사라진 재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홍재만 명장이 바라보는 것은 가족과 동료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성장기, 격동의 현대사를 맨손으로 헤쳐 나오신 분은 비단 홍재만 명장 한 분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한 곳에서, 어린 나이부터 뜨겁고 격렬하게 살아오신 수많은 다른 명장들이 계십니다. 바로 이러한 분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고난이야말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다. – 듀크 엘링턴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고난 #시련 #역경
내가 아는 어떤 사람(에세이 쓰기 4 편)
내가 아는 어떤 사람 이 주제를 보자마자 떠오른 한 인물 엄마! 나의 그녀 남연우 여사님! 그녀는 1947년 여름 양수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꼬마신랑에게 시집온 까막눈의 김 말순 외할머니의 첫딸로... 어린 부부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걷고 뛰기 시작할때에 6.25전쟁 피난을 가야만했고 외할아버지는 전쟁에 착출되었다.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할아버지는 귀향하셨고 그렇게 세 식구는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사셨다 그녀는 국민학생때 남달리 영특했다고 한다. 매일 십리길이 넘는 길을 그 작고 여린 몸으로 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울엔 살을 애일듯한 추위속에 손을 불어가며 발을 동동 굴러가며 그렇게 배움의 즐거움을 사랑했다 한다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야하지만..... 그녀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기에.. 살림밑천이던 맏딸은 담임선생님이 할머니를 찾아와 "어머니 제발 이아이 중학교 보내주세요 학업을 중단하기엔 너무 똑똑한 학생입니다 첫 등록금 제가 댈게요 제발 중학교 보내주세요..." 라는 그 눈물어린 호소에도 단호히 거절하고 이아이는 일도와야 한다 했던 나의 그녀... 그당시 얼마나 죽숨여 울었을까? 작고 여린 13살의 그녀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는걸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렇게 그녀는 십대시절 동생들을 보살피는 엄마와도 같은 시절을 보냈고 23젊디 젊고 꽃다운 나이에 지금 나의 아버지와 선을 보았고 한달만에 팔려가듯 시집을 왔다... 그리고는 생활고와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죽어라 일만했다... 젊은시절 꽃그림카드 놀이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덕에 그렇게 힘들여 장만한 집도 날려드시고... 지금은 엄청 고린자비가 된 아버지가 집을 날려먹은것도 놀랍지만... 그 날린 집을 몇년 후 고대로 다시 찾아오신 나의 그녀가 난 너무너무 대단했다... 그렇게 되찾아온 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늦둥이인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내가 늦둥이 막내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나에겐 모든것이 관대했고 그덕에 이런저런 야기를 나누는 친구처럼 지냈다. 그녀와의 특별한 일화를 말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나의 지금까지의 일생 중 10년대를 주기로 하나씩만 풀어보고자 한다 고등학교시절 잠시 삐딱선을 탈때도 그녀는 내게 관대했다. "엄마 나 오늘 나이트 갔다올게, 물 좋으면 나 안들어온다." 그러고는 한 새벽 2시쯤 기어 들어오면 그녀는 "오늘 물이 별로였구나~~ 피곤하겠다 어여자 낼 학교가야지 "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과 시원한 콩나물국이 식탁위에 차려져 있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저런 그녀였기엔 난 더이상 엇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정말 슬퍼할만한 일을 하고싶진 않았기에... 그녀가 날 너무나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날 믿고 있었기에... 이십대 중반때 일을 시작하면서 카드맛을 알아버린 나는 미친듯이 카드를 긁어댔고 돌려막다막다 막혀버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그녀에게 털어 놓았다 우선 한대 맞고 잔소리 폭격 시작할줄 알았는데.. 그때 그녀는.... "아... 이건 전적으로 엄마 잘못이다 엄마가 진즉에 너에게 경제 교육을 시켰어야 했는데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못했다 카드라는건 정말 위험한거다....." 하면서 나를 타이르셨고 앞으로 니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한동안은 관여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 침대맡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그 최후의 금액이 올려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난 돈의 무서움을 알게되었고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새기며 돈을 잘 쓰려 노력중이다. 서른 중반 결혼까지 생각했던 애인에게 버림받고 식음을 전폐하고 삼일 밤낮을 방에 쳐박혀 울고만 있을때... 그녀가 조용히 내게 다가와 일으켜 안으면서... "내 딸... 그렇게 아파? 엄마는 한달만에 팔려오듯 시집와서 사랑을 잘 몰라... 그래서 지금 너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어서 그게 너무 슬프다..." 그때 난 정말 엄마를 껴안고 엄마와 함께 오열하며 그렇게 사랑의 열병이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그리고 내가 40이 되던 어느날... 그녀는 "너 노후준비는 하고있니? 더이상 결혼하란 말은 안할게 대신 후에 너 혼자서 살 수 있는 준비는 꼭 해라...음... 근데 내가 부모로서 너를 출가시키지 못한 죄도 있으니..."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전 재산중 일부를 떼어 집장만에 보태주셨다...혼자서라도 잘 살으라고 그렇다 그녀는 나의 그녀 남연우 여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물은적이 있다 "엄마... 이모랑 삼촌은 많이 배웠는데 엄마 못배운거 속상하거나 억울하지 않아?" 그때 그녀는 "처음엔 많이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랬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가 배움이 길었다면.... 정말 교만해졌을거 같아 엄마가 배운게 없어서 그나마 겸손할 수 있었고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었던거 같아...그러니까 이렇게 예쁜 막내딸을 만났지... 엄마가 배움이 길었으면.... 너 태어나기 애저녁에 이집 나갔어...." 난 이말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등도 많이 굽고 기력도 많이 약해져서 함께 걸어갈때 내가 일부러 천천히 걸어야 하고 ... 그녀의 그 맛나던 음식도 이젠 맛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나의 베프이고 나의 그녀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가요?" 라고 묻는 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연우요!" 라고 말할거다! 쓰다보니 옛날옛날 빙글에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것이 기억나서 링크 걸어보아요^^ https://vin.gl/p/1498449?isrc=copy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