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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농가 고기, 시중유통 추정… 100두 이상 인천 도축장에 출하
도축장 반출=시중유통 의미, 경기도 "시중 유통 가능성 높다" 경기도 파주 발생농가와 가족농가서 4차례 인천 서구, 미추홀구 도축장과 가공업체로 출하 한차례 출하시 40두가량 옮겨지는 것 감안시 130~160두 출하 추정 (사진=연합뉴스) 경기도 파주의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발생 농가의 돼지 100마리 이상이 인천지역의 도축장으로 출하된 후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도는 해당 돼지의 이동과정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전파 됐을 가능성을 두고 추적조사를 벌이고 있다. 17일 도에 따르면 24시간내 파주 발생농장의 돼지 2천400두와 이 농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2개 농장(발생농장에서 20㎞)의 돼지 2천250두 등 모두 4천700부를 살처분할 계획이다. 특히 돼지열병 바이러스 잠복기간(4~20일)에 돼지열병 발생농가과 가족 농장에서 4차례 인천시 서구와 미추홀구에 위치한 A도축장과 B가공업체로 돼지들이 출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축장 출하는 시중유통을 의미한다. 한차례 반출시 평균 40두 가량이 옮겨지는 것을 감안할 때 130~160두 가량의 돼지들이 인천의 도축장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의 관련 취재에 "파주 농장과 가족농장에서 돼지들이 인천의 도축장으로 출하된 것이 맞다. 단, 도축장 소재지가 경기지역이 아닌 인천지역이라 도축장에 대한 확인작업은 경기도에서 하기 어려운 상황" 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중유통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통 돼지가 도축되면 하루 이틀 정도 지난 후 판매되는 것을 감안할 때 시중에 유통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용 경기도 대변인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인수공통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한바 있다. 이에 대해 한돈협회 관계자는 "돼지고기는 정상적인 경로로 유통됐고, 인체 감염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파주의 돼지열병 발생농가는 주로 돼지를 번식시켜 두수를 늘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농가는 사육한 돼지를 도축장으로 유통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경기도는 이날 오전 11시30분부터 돼지열병 발생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 주재로 31개 시군 부단체장 영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추억의 주먹밥을 빚어보자
다들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 하나쯤은 있을겁니다. 어머니가 해주신 김밥, 문구점의 아폴로, 학교 앞 분식점의 싸구려 컵볶이... 그런 음식이 저에게도 있었더랫더랫더랬죠 오늘은 저의 모교를 찾아가볼까 합니다. 뻔질나게 버스를 타고 댕기던 오거리를 지나 지나치게 길었던 도로를 쭈우욱 걷고나면 이윽고 학교 앞 정문이 모습을 드러내면 서쪽의 골목길로 쏙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렇게 조그마한 분식집이 하나 나옵니다. 근데 주먹밥하우스같은 이름 아니었는데... 토마토 분식이었던거 같은데...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주먹밥 하나만으로 전교생을 평정한 주먹밥을 거으ㅡㅡㅡㅡㅡ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먹밥계의 평경장입니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심지어는 맞은 편 이삭토스트가 뜬금없이 주먹밥 장사를 겸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여튼 그렇습니다. 오늘 할 음식은 주먹밥입니다. 그것도 옛 추억 스타일로다가...허허 생각보다 간단하니 여러분도 시도해보셔도 좋습니다 맛도 좋거등요 먼저 김치를 팬에 넣고 잘게 쪼사줍니다 코팅팬이니 기스 안 나도록 집게로 들어가며 잘라줍시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굴소스, 설탕, 간장 등으로 간을 해줍니다. 볶음 김치는 그냥 김치를 볶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좀 더 간을 해줘야 맛있습니다. 그나저나 고춧가루가 다 떨어져서 태국 고춧가루를 썼더니 고추씨가 그대로 굴러다니는군요. 그런데 이번에 집에서 가져온 김치는 추석을 위해 새로 담근지 얼마 안된 김치라고 합니다. 아직 겉절이 스러운 맛이 남아있는 덜 익은 김치(속칭 미친김치)다 보니 볶았을 때 볶음 김치라기보단 그냥 짠 배추처럼 되기 쉽상인데 이럴 때는 식초 반큰술 내지 한큰술 정도 뿌려서 볶아주면 적당히 새큼한 김치처럼 볶아집니다. 식초는 센 불에 가열할 때 신 맛이 사라지니 그렇게 셔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같은 이치로 김치찌개할 때 김치 맛이 영 구리다 싶으면 식초를 좀 넣어주셔도 괜찮습니다. 다음은 참치 캔을 따서 기름을 버려줍시다. 예전엔 몸에 좋지 않다는 속설때문에 일일히 버려줬지만 실은 그냥 식용유니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근데 요번에는 주먹밥 속을 만드는 과정이다 보니 최대한 물기가 없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빌어먹을 조정석때문에 볼때마다 귀에서 노래가 들리네요 그럼에도 물이 많다 빠싹 볶아줬습니다. 이제 밥을 준비합시다. 고사이에 취사가 완료됐습니다 원래 주먹밥용 밥은 조금 질게 되는 편이 좋은데...이 날 물조절을 잘못했는지 오지게 꼬들꼬들한 밥이 되어버렸습니다. 아 이러면 잘 안뭉쳐지는데... 어찌됐든 참기름 두어바퀴 둘러주고 소금간 살짝 해줍니다. 그리고 오늘 주먹밥의 하이라이트 이 시국에 등장한 가쓰오 후리가케 하지만 이 주먹밥에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그리고 재료에 일본산은 없을뿐더러 파주 출신 한국 토박이거든요 편---안 이렇게 세팅을 해주고 주먹밥을 빚어봅시다 요로코롬 손 위에 얇게 펴준 밥에 속을 잔뜩 얹어준 뒤 주호민 작가의 머리처럼 맨들맨들하고 똥그랗게 주먹밥을 만들어줍니다. 물기를 제거한다고 꽤 오래 볶았지만 여전히 밥에 양념이 새어나오는군요... 이렇게 다정한 육빡빡이 형제들이 완성되었습니다. 릭노스부터 더락까지 피부색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이제 머리를 심어줍시다 이쁘게 모양 잡은 주먹밥을 후리가케 위에서 사정없이 굴려주면 이렇게 표면에 잔뜩 묻게 됩니다. 마치 모발이식 후 삭발한 황교안의 두피처럼 빼곡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잠깐 유튜브 생방으로 그 과정을 봤었는데 부럽더군요. 그 나이에 그렇게 빽빽한 머리숱이라니...머리숱이 적은 저로서는 여기서 또 빈부격차를 느꼈지 뭡니까... 이쁘게 포장 완료 정말 주먹만한 주먹밥이 완성됐습니다. 포장에 쓰일 호일을 아끼기 위해 하나는 완성 직후 흡입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다 먹어버리기엔 많은 양이니 냉장고에 묵혀뒀다가 요로코롬 쇽 회사에 가져와서 쓱 데펴먹으면 아주 좋습니다. 애초에 주먹밥이 어렵고 복잡한 음식은 아니지만 요 주먹밥은 여타 주먹밥들보다 간단하면서 훨씬 맛있습니다. 후리가케 존맛... 여러분도 시간나면 한번쯤 해드셔보심이 어떨까요?
베트남 음식들...
얼마전.... 친구와 함께 평소 좋아하던 "애머이" 에서 분짜와 쌀국수를 시켰드랬지.... 비주얼은 괜찮았는데...... 맛이 예전같지 않았어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 ㅠㅠ 그리하야....... 그동안 베트남에서 나를 감동시키셨던.... 영롱하고도 은혜로웠던 베트남 현지 음식들을 사진으로나마 만나고자 함 2013년 6월 27일..... 베트남에서 유치원 사업을 해볼까나 싶어서 시찰겸 난생처음 베트남 호치민 땅을 밟던날 공항 게이트 열리자마자의 그 숨막히던 습함과 더움으로 바로 '응 아니야.....' 했었더랬지 암튼 내리자 마자 원장님의 인도하에 갔던 호치민 로컬 국수집 (이름모름) 여윽시 이름모를 풀들 나와주셔야 현지 포스 좔좔~~ 캬~ 처음으로 마늘 초절임을 영접했던 날이 이날이었지 서빙되어진 첫 모습.... 참으로 가지런도 하여라 온갖 풀이랑 라임 마늘절임 때려넣고 한입 먹으니.... 옴마 이것이 쌀국수구나... 그동안 나는 쌀국수 흉내만 낸 하찮은 것들만 먹어왔던 게구나.... 했더랬지 지금까지도 이 쌀국수 이상의 쌀국수는 6년지 흐른 지금에도 만나 볼 수 없었다. 아 진짜 먹고 싶으다으다으다으 오바마가 극찬한걸로 유명해진 호치민 포 2000 해물 쌀국수를 먹어보았다. 짬뽕의 쌀국수 버전.... 아쥬 맛있었음 어머나....내가 분짜를 먹어봤었구나.... 그당시 원장님께서 그냥 비빔 쌀국수라고만 하셨엇엉 ㅋㅋㅋ 저땐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ㅋ 지금은 없어서 못드심 음식.....까진 아니지만 상당한 충격이었던 림부탄 평소 한국에선 부페같은데 가면 보이지 않았던가... 얼린거 원체 얼었다 녹은 과일은 싫어했기에 저때도 "어 나 림부탄 안먹어" 했으나.... 일단 한번 드셔봐 에 속는셈 치고 먹었다가 앉은자리에서 한봉지 다 까먹었던 추억이... 생물(?) 림부탄은 정말 맛있다요! 이게 뭐였는지가 죽어도 생각이 안남... 저 알새우칲같은 과자랑 같이 먹는거였는데 암튼 맛은 있었음 어머나 분짜를 또 먹었었구나 ㅋㅋㅋㅋㅋ 근데 호치민에선 분짜에 돼지고기가 없네.....지역적 특성인가.... 아 암튼 너무 너무 먹고싶다아~~~
아, 좀 쉬어야 되는데 ㅡ..ㅡ
추석연휴에 너~~무 잘 먹어서 천고마비의 계절엔 좀 자제하려고 했지만... 냉장고에서 눈에 띄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라구요. 특히 돼지껍데기가 걱정되서 꺼내보니 휴, 아직 생존은 하고 있더라구요. 일단 팬에 올리고 가스불부터 켰습니다. 아직 이만큼이 더 남아있어요 ㅡ..ㅡ 남원에서 먹었던 통돼지껍데기는 숯불에 구우니 돌돌 말려서 솔직히 실패했거든요. 아, 저 목살 밑에 있는 저 아이가 돼지껍데기랍니다. 넘 딱딱한데 겉은 시커멓게 되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ㅎ 그래도 꿋꿋하게 다 먹어치웠어요... 다시 오늘의 요리로... 제가 좋아하는 마늘 덤뿍 투하했습니다. 근데 저 전혀 걱정도 안했던 마늘이 상태가 메롱이더라구요. 그래서 좀 다듬어 줬습니다. 하, 마늘도 저만큼이 더 남아 있어요 ㅡ..ㅡ 헐, 표고채를 바로 투하... 물에 담궈놀 시간이 없었어요. 오늘 제대로 고기 식감 나겠는데요 ㅎ 자, 이제 굴소스 투하하고 마구마구 저어줍니다. 대파도 투하... 대파도 상태가 거시기 하던데 아직 두 뿌리 남았어요 ㅡ..ㅡ ㅎ 양파도 투하... 소금도 살짝 뿌려줬습니다. 파슬리 가루로 마무리... 제 요리는 이상하게 다 거기서 거기 같아보여요 ㅋ 와인 한잔 곁들여 줬어요... 와입은 야채만 골라먹네요...
펌) 시더빌 종합병원 : 시더빌 종합병원은 단순한 병원이 아닌것 같아.
오늘은 나의 수요 미스테리 극장 DAY 기다린 사람이 있으려나 아 근데, 이 괴담 번역해주시는 분이 아직 3편을 안 올려주셔서 이번 편까지 올리고 좀 더 기다려야 할듯? 혹시나 3편 계속 기다릴까봐 미리 말씀드림 ㅇㅇ 자 태그 갑니다 @kym0108584 @eunji0321 @thgus1475 @tomato7910 @mwlovehw728 @pep021212 @kunywj @edges2980 @fnfndia3355 @nanie1 @khm759584 @hibben @hhee82 @tnals9564 @jmljml73 @jjy3917 @blue7eun @alsgml7710 @reilyn @yeyoung1000 @du7030 @zxcvbnm0090 @ksypreety @ck3380 @eciju @youyous2 @AMYming 태그 3편 태그 원하는 분들은 또 댓글 달아주십쇼 나는 여태껏 내 자신이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 과학에 능하고, 누군가가 마법이나 음모론을 가져오면 비웃으며 눈을 흘기는 사람. 무엇인가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이제 더 이상 확신이 안서. 몇 주간 시더빌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나니까, 이 이상 괴상한 것을 볼 일이 없을거라는 확신이 섰어. 어떤 노숙자가 들쑤시고 다니기 전까지는. 최소한 우리는 그가 노숙자라고 생각했지. 그 사람은 병원 앞을 휘젓고 다니며 우쿨렐레를 연주하기 시작했어. 또 그 사람은 꽤 몸이 좋아.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몸이야. 그 몸으로 셔츠를 걸치지도 않고 다녀. 하지만 꽤 말쑥하게 입었어. 덥수룩한 금색 곱슬머리에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노숙자라기에는 좀 이상하지. 그냥 완전히 미친놈이야. 하루는 그 사람한테 뭐 필요한거라도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등등을 물어보러 나가 봤어. 그는 꼿꼿하게 서서 자기가 여기 건물주라고 하더군. 오, 그래요? 나는 당연히 회의적이였지. 그러니까 그 노숙자 미친놈이 나를 가르키고는 선글라스를 벗었어. 그리고는 "당신은 일을 잘하는군요."라고 말하며 미소지었어. 좋아. 나는 그를 냅두고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지. 할머니들이 다시 방문했어. 이번에는 그들이 간호사에게 나를 지명해서 진료를 받겠다고 했어. 특이하지. 나는 투석을 하지 않고, 그들이 내 이름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나는 진료실로 들어섰고, 가운데에 있는 할머니가 바로 나를 가리켰어. 그녀가 눈을 가지고 있었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 자네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었어." 그녀는 내 얼굴에서 손가락을 흔들면서 속삭였어. "무슨 말씀이신가요?" "뭐가 보이나?" "죄송합니다?" 오른쪽 할머니가 끼어들었어. "그녀를 보면 뭐가 보이나?" "으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어. "당신들은 일란성 세쌍둥이시죠. 그리고 유리 의안 하나를 가지고 계시고요?"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어. 그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왼쪽의 할머니가 말을 시작했어. "펜 있나?" 그녀가 물었어. "어, 네?" 내가 말하고 코트 주머니에서 병원에서 지급하는 펜을 꺼내서 보여주었어. 그녀가 그것을 보았지. "신기하군." 그녀가 중얼거렸어. "조심하게." 그녀가 나를 다시 가리켰어. 잠시 후 나는 그들의 말에 혼란스러워하며 방을 나섰지. 그게 무슨 말인거야? 그 날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날 매점이 어디있는지 좀 찾아보기 위해서 돌아다니기로 했어. 나는 관리인을 지나쳐서 좋은 아침이라고 말했지. 그러니 뭔가에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던 그의 턱이 떡 벌어지더군.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 걸레질을 했어. 그런데, 난 곧 섬뜩한 사실을 알아차렸어. 관리인의 발이 땅에 있지 않았던 거야. 발이 바닥에서 10인치 가량 떨어져 있더라고. 양동이 속에는 알 수 없는 동물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그냥 무시하기로 했어. 납득이 완전히 가는건 아니었지만, 그냥 걸레에서 나오는 물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매점에 도착했고, 나와 대부분의 업무를 함께하는 간호사인 카일라를 만났어. 난 무심코 관리인이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을 말했어. 카일라는 우리에게 관리인이 없다고 그랬어. 몇 시간 후에 나는 응급실로 불려갔어. 거기엔 다리 두 개가 부러진 10대 소년이 있었어. 왜 내가 굳이 양쪽 다리 대신 '다리 두 개'라고 했냐고? 걘 다리가 네 개였거든. 그애는 말의 몸을 가지고 있었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까 다시 사람의 다리가 되었더라고. 다리 두 개. 또 어떤 중년 남자가 잘린 팔 같아 보이는 것을 들고와서 "다시 붙여달라"고 말했어. 온전한 한 쌍의 팔이 이미 붙어있는데 말이야. 내 조수는 그 사람은 양 팔이 없었고 잘린 팔 같은것을 들고 온 적도 없다고 했어. 그 날은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 나는 7층에 있었는데 그 미친 노숙자가 세번째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을 봤어. 어디로도 가지 않는 세 번째말이야. 그리고 그가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몸을 던졌어. 모두 그가 7층 아래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어. 어떤 여자가 그의 사지가 어떻게 뒤틀렸는지에 대해 소리를 질러댔어. 난 당황해서 창 밖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그가 일어나서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어. 어떻게 된거지? 그 여자는 여전히 구급차가 도착했으나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다고 떠들어댔다고. 나는 분명히 그가 멀쩡히 일어나는것을 봤고. 5층 서관은 내가 있는동안 사라졌어. 수술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방이 그냥 사라졌고, 난 갑자기 3층에 있었어. 내가 6시에 퇴근할 때, 난 내 아파트로 돌아가서 내가 본 일들이 층별로 어떤 패턴으로 일어나는지 기록했어. 1층이 제일 이상해. 접수 담당자는 좀 정신 나간것같이 생겼지만, 그 층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더라도 그대로 1층에 있어. 응급실하고 시험실은 관의 위치만 바뀌어.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는것은 처음 마주친 후에 여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서남관 뿐이야. 2층은 내가 주로 '도플갱어'하고 마주치는 곳이야. 난 나를 흉내내는 그 존재에 도플갱어라는 이름을 붙였어. 도플갱어들은 항상 가장 긴 복도 끝에서만 나타나는데, 나는 곁눈질로만 그것들을 볼 수 있지. 다른 모든 것들은 완전히 정상이야. 병실들은 움직이지 않아. 3층 동관 전체가 없어졌어. 그냥 없어. 4층도 없어. 5층이 환자들이 사라지는 곳이야. 그리고 '비명 시간'도 5층에서 하지. 6층은 색이 변해. 다른 층은 위치만 변하지만 6층은 색깔도 변해. 어떤 때는 벽이 보라색이고, 어떤 때는 회색이야. 7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지. 노숙자 미친놈이 한 번 쓰는 걸 보긴 했지만 그 외에 움직이는건 못 봤어. 다른 층에는 엘리베이터가 3개 있는 곳이 없고. 8층은 맨 위층이고, 가장 섬뜩하지. 8층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하지만 카니발 음악이 음량의 고저 없이 공기 중에 울려퍼지지. 누구도 8층을 사용하지 않아. 사실 아침에 그 할머니들이 내게 경고하기도 했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지만 나는 다시 남서관을 찾고 싶어. 그리고 야간 근무가 어떤지도 좀 궁금해지네. 계속 글을 올릴게. 원문 :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bujq6f/im_a_doctor_i_just_moved_into_a_new_town_and/ 2차 ㅊㅊ :https://jinee8282.blog.me/ 아니 저정도로 병원이 개판이면 도망치는게 정상 아님? 저기 왜 붙어있어;; 주인공도 제 정신은 아닌듯 관리인 발이 허공에 떠있고 양동이에서 이상한 생명체가 나오는데 그걸 왜
퍼오는 귀신썰) 한국말을 하는 이유
어때, 다들 행복한 연휴 보낼 것 같아? 귀성길 심심할까봐, 또 명절이니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해 본 이야기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 “We have beef and fish ready. What would you like to have?” “불고기 주세요.” “아… 네.” 나의 대답에 한인 승무원이 놀란 표정으로 식사 쟁반을 건냈다. “저… 그럼...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내가 무엇을 마실지 생각하며 뜸을 들이자 승무원이 다시 물었다. “Would you… like to drink something?” “맥주...… 아니… 물 주세요. 물.” == 나의 이름은 Brian McNeil이다. 
캐나다 알버타 주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지금은 토론토에서 대학에 다닌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가고 있다. 참고로 나는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 7개월 전. 기말고사가 모두 끝나고 여름 방학이 시작했다. 아버지는 알버타 집으로 와서 농장일을 도와달라 했다. 하지만 나는 핑계를 대며 넉달간의 긴 방학기간 동안 한번도 알버타 집에 가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기 얼마전 친구들과 함께 토론토 교외의 작은 호수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날. 우리는 호숫가 백사장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오한과 함께 열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사온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친구 하나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11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구급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 == 나는 뇌수막염으로 일주일 가까이 혼수상태로 있었다. 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이 돌아온 첫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병문안을 왔던 친구 말로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마침 병원에 동양인 간호사 한명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어렵게 진정시켰다고. 그 간호사에 따르면 나는 한국어로 집으로 보내달라고 무척 고집을 피웠고, 간호사가 한참을 설득하고 나서야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고 한다. == 나의 기억은 그 다음날 잠에서 깨었을 때 부터 시작한다. 내가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그 중 한명이 나에게 말했다. “Hello Mr. McNeil. I am Dr. Wilson. How do you feel?” “Umm… not really good.” 나의 대답에 모두들 약간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동양인 간호사 한명이 내게 물었다.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구급차에서 대원과 이야기하다가...... Huh? What did I just say!?”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 저에게 집에 가야한다고 그랬는데, 기억 나세요?” “No…” “가능하면 한국말로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여기 의사들이 확인하고 싶어해요.” “아...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한국말인가요?” “맞아요.”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나요?”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 됐어요. 그런데 한국말 정말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어요?” “배운 적 없어요. 그런데... 제가 왜 한국말을 할 수 있는거죠?” 간호사는 주위의 의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의사들이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 위해 여기 모여있는 것 같네요.” == 그들은 왜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병원에서 몇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퇴원할 즈음 신경정신과 의사가 상담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나는 거절했다.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게다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할 텐데 그러기 싫었다. == 비행기는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의 겨울은 알버타에 비해 많이 따뜻했다. 가방에서 얇은 외투를 꺼내 입고, 여권은 외투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인천공항에서 인천종합터미널. 그리고 인천종합터미널에서 철원행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서 한인 간호사가 건낸 메모를 꺼냈다. ‘강원도 철원군 사요리 1762-8’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가야한다던 집 주소다. 인터넷 지도 상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작은 주택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 도착하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사요리 마을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20시간을 비행기와 버스에 앉아있었던 셈이다. 무척 피곤했기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아침 그 주소지로 찾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자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택시를 돌려 간호사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사기꾼이라고 경찰을 부르지는 않을까? 미.친놈이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비행기 삯만 1800불. 그래, 여행 온 셈 치면 되지. 그럼 어딜 구경하고 가야 여행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열었다. 그는 나만큼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세…어………… 후…아..유?” “저… 안녕하세요. 전 Brian McNeil이라고 합니다.” 그의 얼굴은 안도감과 당황함이 섞인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이 집을 찾아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뇌수막염으로 며칠간 의식을 잃었던 일. 의식을 찾은 후 갑자기 한국말을 하게 된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 했다. 다행히도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에게 집으로 들어오라 했다. == 그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거실로 나왔다. 노인은 말없이 나와 그녀의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자 아들이 말했다. “한국말 잘 해요.” 노인은 문 앞의 내 캐리어 가방을 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녁식사는 하셨소?” “아직.. 안먹었어요.” “그럼 밥부터 먹고 이야기 합시다.” == 노인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과 함께 커다란 상을 차려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여러가지 한국 음식들이 생각보다 입맛에 맞았다. 밥을 먹으며 나는 노인에게 지난 여름 내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노인은 밥상 맞은편에 앉아 간간히 아들이 채워주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물었다. “그래, 그 일이 언제인지 기억은 나고?” “올해 8월 18일이에요.” 노인은 그녀의 아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병원 실려간게 그쯤이냐?” “아마. 그럴꺼에요. 어머니.” “허허, 신기한 일이네.” 그리고 노인은 여름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광복절이 지난 어느날 노인은 정오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단다. 흔들어 깨워도 의식이 없자 아들은 119를 불러 노인을 병원으로 옮겼고, 노인은 병원에서 꼬박 이틀을 자고 일어났다고 했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자는 동안 신기한 꿈을 꿨어. 이집 안방에 누워있었는데 저승사자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가자는 거야. 아... 미국 학생, 저승사자가 누군지는 알아?” “네. 알아요.” “저승사자가 가자는데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따라나섰어. 한참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보니까 앞에 커다란 대문이 보이는 거야. 저게 저승 들어가는 문이구나 싶더라고. 대문 앞에서 미국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우리가 가니까 저승사자를 불러다가 둘이서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노인은 잔에 남은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저승사자가 나한테 이승에 아직 갚지 않은 빚이 있다는 거야. 시간을 좀 더 줄테니 그 빚을 갚고 오라고. 그리고는 나한테 집으로 돌아가라 했어. 나는 지금까지 온 길도 멀고 하니 그냥 저승으로 가자고 했지. 그랬더니 저승사자가 안된다며 혼자 가버리는 거야.”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길을 알아야 집으로 올꺼 아냐. 여기 저기 길을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어떤 여자를 만났지. 그 여자가 친절하게 내 주소도 물어보고 내가 알려준 주소를 종이에 적더니, 자기가 집에 꼭 보내줄테니 저기 보이는 침대에 누워있으라고 하기에 그리로 가 누웠지. 그리고는 잠이 깼어.” 노인은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입안에 털어 넣었다. == 노인은 내가 있던 병실의 모양새와 한인 간호사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인은 그날 자신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고 믿는 듯 했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갑자기 한국말을 하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노인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는 건 더 믿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불러오자 밀린 잠이 쏟아졌다. 노인이 말했다. “미국 학생, 많이 피곤하구먼.” 노인은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작은 방에 이부자리 준비해줘라.” 나는 모텔에서 자고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잘 대접해 보내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고집을 부렸다. == 다음날 노인 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나는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님, 어제 꿈 이야기에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꿈에 저승사자가 말한 빚이 뭔지 얘기해주실 수 있어요?” “글쎄… 내가 80 평생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빚지고 살지 않았는데. 아마 6.25 전쟁 때를 말하는 것 같아.” 노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전쟁통에 어머니 아버지 잃고, 10살 짜리 계집애가 할 수 있는게 없었어. 거렁뱅이 마냥 구걸하고 다니면서 겨우 목숨줄 붙들고 있었지. 한번은 며칠을 굶다가 길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눈을 뜨니까 미군들이랑 같이 있더라구. 아마도 미군들이 길에 쓰러진 나를 봤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까 데려갔을테지.”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얼마 안되서 군인들은 떠났어. 떠날 때 미군 한명이 주변에 고아원을 찾아 나를 거기에 맡기고 갔지. 아마도 저승사자 말은 그때 미군들이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 그 빚을 갚고 오라는 것 같아. 허허.”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의 목걸이를 풀러 나에게 내밀었다. 작은 십자가 목걸이었다. “그 미군이 나를 고아원에서 맡기고 떠날 때 준 목걸이야. 자기 목에서 풀러주면서 영어로 뭐라 했는데 무슨 말인이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받았어. 이제 자네가 미국으로 도로 가져가면 되겠구먼.” “네? 중요한 물건인데 제가 가져가면 안되죠. 그리고 저는 캐나다에서 왔어요. 미국에는 가본 적도 없구요.” 나는 사양했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저승 문턱에서 퇴짜를 맞은게 그 목걸이 때문이라며 제발 가져가라는 노인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일 캐나다로 출국이어서 나는 노인의 집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읍내의 모텔에서 묵는다고 말을 꺼냈다가 노인에게 혼쭐이 났다. 그리고 오후에는 홀로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알버타의 겨울 바람만큼 매서운 칼바람이 쉼없이 불어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위령비에서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4살 때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집에 큰 불이 났고, 화마는 엄마와 엄마의 물건, 그리고 엄마의 기억까지 모두 삼켜버렸다. 엄마 체취도, 엄마 얼굴도, 심지어는 엄마의 장례식까지 온전하게 기억에 남은게 없다. 그나마 몇가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얽힌 사연이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이곳 Battle of White Horse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얼마 후 엄마가 태어났고, 외할머니는 엄마의 이름을 이곳 지명을 따서 Whitehorse로 지었다고 한다. 나는 한나절 내내 찬바람을 맞으며 백마고지 전투 위령비 주변을 서성였다. 날이 저물고 나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날 늦지 않게 출발하기 위해 미리 짐을 준비했다. 짐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이 옷이라 특별히 정리할 것도 없었다. 노인은 내 옷가지를 모아 빨래를 해 널어놓았으니 내일 아침이면 마를 것이라 했다. 아차 싶었다. 건조대에 걸린 얇은 외투의 안주머니를 확인했다. 물어 젖어 눅눅해진 여권이 나왔다. 나는 여권을 펼치고 들러붙은 페이지를 한장한장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다행히 사진과 개인정보가 있는 첫페이지는 코팅이 되어있어 멀쩡해 보였다. 노인은 연신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며 노인을 안심시켰다. 노인은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무척 속상해 하였다. == 다음날 오전. 나는 출발하기 전 서울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원래는 새 여권으로 재발급 받아야 하는데, 여권 상태가 양호한 듯 하고 비행기가 오늘 출발하니 우선 인천공항으로 가라고 했다. 제 3국을 경유하지 않아서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데만 문제가 없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하지만 여권 훼손 정도에 따라 토론토 공항에서 캐나다 입국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다 했다. ==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 발권과 출국심사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서 터졌다. 여권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며 나는 별도의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3시간을 기다려 이민국 직원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권이 훼손되어서 신원확인이 필요했다. 이민국 직원은 여권,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카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분증을 가져갔다. 한참동안 컴퓨터로 확인을 하다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신원확인이 안된다 했다. 과거에 내가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여권 발급 받을 때 출생증명서 (birth certificate) 때문에 애먹은 생각이 나서 말했다. “(이름을 바꾼적은 없는데, 제 출생증명서에는 성이 McNeil이 아니고 MacNeil로 적혀있어요.)” “(성을 나중에 바꾼 건가요?)” “(바꾼 건 아니고, 아버지 말로는... 출생신고 사무소 서기가 실수로 잘못 받아 적었다고 들었어요. 출생증명서가 나온 후에는 고칠 수 없었고요.)” 이민국 직원은 컴퓨터로 다시 확인을 했고, 이내 입국심사 도장을 찍어줬다. 직원은 이민국 시스템 상에 나의 성이 MacNeil로 되어있다 했다. 그래서 McNeil로 개명신청을 먼저 한 후에 여권을 재발급 받으라고 알려줬다. 입국심사는 끝났지만 내가 직접 경찰을 만나 확인할 사항이 있다 했다. 나는 무슨일인지 물었고 이민국 직원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했다. 경찰에게 직접 들으라며 나를 공항 내 경찰 사무실로 보냈다. == 경찰 사무실에서 2시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경찰관에게 이민국 직원이 준 서류를 건넬 수 있었다. 경찰관은 나에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답했고, 나는 경찰관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미국에서 태아난 미국 시민권자란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어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나에게 미국 시민권이 있다 했다. “(하하. 아마도 이민국에서 신원확인이 잘못된 것 같네요. 저희 부모님은 알버타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어머니 이름이 Whitehorse MacNeil, 아버지 이름이 David MacNeil 아닌가요?)” “(맞긴 한데…)” “(Whitehorse MacNeil이 16년 전에 당신 실종신고를 냈어요. 올해까지 매년 실종신고 갱신을 해왔고요.)” 경찰관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이 Whitehorse MacNeil을 만날 의사가 있는지 묻는거에요.)"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매년 나의 실종신고를 해왔다는 말에 머리 속이 멍해졌다. 경찰관은 종이 한장을 내밀었고 여전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Whiltehorse MacNeil과 만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이 서류에 표시하고 서명해서 제출하면 됩니다.)” == 나는 그 간단한 서류를 벌벌 떨면서 작성했고 서명한 서류를 경찰관에게 건넸다. 나는 경찰관에게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칸에 내가 제대로 표시를 했느냐고 물었고, 그가 ‘Yes, you did.’라고 말한 것까지 나는 기억한다. 그 다음은 내가 어떻게 경찰 사무실을 나왔고 어떻게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 다음날 나는 경찰로부터 엄마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았다. 엄마는 미국 텍사스 달라스 공항에서 토론토로 오는 중이라 했다. 나는 공항으로 나갔다. 도착장 게이트 앞에 Whitehorse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기다렸다. 한사람 한사람 지나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땀이 흘러 종이를 들고 있기 힘들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혹시 엄마가 이름을 못 보고 지나친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내가 들고 있던 종이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나에게 걸어왔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Brian?”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두손으로 나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I am so sorry… so sorry… I am sorry, Brian.”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Mom’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머리도 마음도 모두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 엄마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가족의 성은 MacNeil이 맞다 했다. 엄마는 아빠와 미국 텍사스 한 도시에서 만났단다. 둘이 결혼을 할 즈음 아빠는 캐나다로 건너가 살자고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이유를 물으면 아빠는 캐나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게 꿈이라 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알버타의 작은 시골마을에 정착했다. 결혼 후 아빠는 엄마가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점점 싫어했다 한다. 엄마 역시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집에서만 지내는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친정 부모님과 가끔씩 전화하는 것 마져도 아빠가 싫어해서 많이 서운했다고.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빠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단다. 반면에 아빠는 마을 사람들 한명 한명 무척 친하게 어울렸다고 한다. 아빠가 마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알고 지내서 엄마 역시 굳이 친구를 만들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하지만 나의 첫돌이 지나고, 엄마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 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할 친구 하나 없었다고 했다. == 엄마는 나에게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맞으며 자랐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은 심하게 맞곤 했다. 나는 어릴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맞으며 자라는 줄 알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의 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학교 선생님에게 아빠의 폭력에 대해 알렸다. 마을 구성원 전부가 친척 같은 아주 작은 마을. 아빠의 가까운 친구의 아내였던 선생님은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나만 아버지 험담을 하고 다니는 질나쁜 아이 취급을 받았다. == 엄마는 아빠의 폭력 견디며 그렇게 2년을 살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걸어서 집과 마을을 탈출했다고. 일주일 후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을때 아빠는 이미 나를 데리고 마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 내가 엄마 이름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은 외할아버지가 아니고 외할아버지의 큰형, 그러니까 엄마의 큰아버지였다. 그분의 유해는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나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분의 유해가 돌아온 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임신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남자 아이면 Louis, 여자 아이면 Whiltehorse로 아기의 이름을 준비했다고 한다. == 엄마를 만나고 두달여가 지난 오늘... 나는 엄마와 함께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 국립묘지를 찾았다. 나는 그분 묘소의 작은 비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Louis Strassmann (1930-1952) Came Back Home in 1968.’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주머니에서 노인에게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나는 목걸이를 비석 아래 내려놓고 속삭였다. “Thanks for bringing my mom back.” —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한국말을 하는 이유 | 오유 _______________________ 어때.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이야기. 명절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추석날까지 품고 있었지 ㅎㅎ 요건 실화는 아니고, 그런거 있잖아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심하게 아팠다가 깨어났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그런거, 그런걸 보고 글쓴이가 만들어낸 이야기야. 참. 제일 위의 이미지에 얽힌 글도 같이 가져와 봤어. 그렇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거지. 본문의 루이스 할아버지, 이 이야기의 엘리엇 할아버지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는 명절이 되도록 하자. 가족들과도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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