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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속에서 나오기 힘든 겨울 난방비 절약하는 꿀팁

추위를 많이 타는 자취생 내친구 매해 난방비 폭탄에 울상 T T

무식하게 아끼지 말자 난방비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꿀팁을 모아봤어요
올해는 난방비 아껴서 치킨 사묵자구요~@
#따뜻한겨울나기 #난방비컨트롤하기 #치느님이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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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보일러는 외출모드 하면 가스비 폭탄맞을수 있습니다.. 집에 있을때 외출모드 써보고 확인하고 쓰세요~
잘봤어요~ 좋은하루되세요
저도 몰랐던 이야기 . .ㅋㅋ 잘보고 클립해갑니당~^^
잘보고 클립해갑니당
꿀정보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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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아픈 아내 두고 몰래 논 남편
안녕하세요 결혼한지 3년차 100일 된 아기 키우는 엄마입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인데 이걸 이해하고 용서하고 한번 넘겨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서 글 남깁니다.. 두서없이 써서 글이 길어질거 같아요 제가 우울증도 너무 심하고 정상적인 사고판단이 어려워 조언 부탁드려요.. 저는 아기 낳고 전업으로 돌렸고 남편은 월~금 9~18시 근무입니다 주말엔 토요일 동호회 나가고 친구들 만납니다 일하느라 힘드니까 하루는 그냥 쉬라고 해줘요.. 대신 일요일에 애기 좀 많이 봐달라 하구요 여튼..현재 제가 육아도 처음이고 엄마도 처음이고.. 정말 다 모르겠고 매일 이유도 없이 눈물만나고   출산 우울증도 오고 몸도 원체 약했는데 애 낳고 더 안좋아 졌습니다 167에 50키로 정도 였는데 애 낳고 41키로 까지 빠져서 기아 같은 수준이에요.. 하루가 다르게 계속 빠지고 있구요 병원에서도 심각하다 했고,, 아이를 보면 모성애보단 그냥 미안한 마음 힘든 마음이 먼저 들어요 남편도 제가 심신으로 지치고 힘들어 하는걸 알구요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남편이 출근한다고 나갔고 저는 전날 밤부터 으슬으슬하고 몸살기운도 돌고 했는데 아침에 더 아프더라구요 혹여나 코로나인가? 싶어 남편이나 애기한테 옮을까봐 집에서도 마스크 착용하고 있어서 남편도 아픈걸 알았습니다 점심시간 전에 병원가서 링겔이라도 맞고 한숨 자면 좀 나을 것 같아서 시댁에 아기를 맡기고 가려고 연락 드렸어요(걸어서 10분거리에요, 평소엔 주말에 가끔 가고)  전화 안받으시길래 어머님께 문자로 병원다녀올동안 아기 몇시간만 봐달라고 넣었는데도 답이 없더라구요 한번도 맡긴적이 없는데 정말 그날은 제가 죽을거 같아서 일단 아이 데리고 갔습니다 시댁가서 벨 누르는데 어머님께서 놀라며 무슨일이냐고 하시더라구요 평소같음 그냥 바로 열어주시는데 그래서 몸이 너무 안좋다고 문좀 열어달래서 들어가니 정말 편한 차림의 남편이 있네요 둘이 갈비에 진수성찬 차리고 식사 거하게 하고 있는데 벙쪘습니다 뭐냐고 물어보니 대답을 못해요 어머님이 나서서 요새 힘들어해서 하루 쉬라고 했다고 하는데 세상에 어떤 회사가 힘들다고 하루 쉰다고 쉽니까.. 남편보고 말하라 하니 대답을 안해요 진짜 병신인줄 알았어요 나오라고 집가서 얘기하자고 하고 물어보니 그냥 하루 쉬고 싶어서 쉰거랍니다 말이 되나요? 회사에 전화하기 전에 말하라고 하니 연차랍니다 회사가 워낙 소규모라 연차 월차 이런게 없다 했었거든요 연차 없다더니 언제부터냐 세달 됐답니다 애기 낳고 나서부터네요 제가 제일 힘들어했던 그 때부터 몰래 쉰겁니다 왜 말 안했냐 나 이렇게 힘든거 알면서 어떻게 몰래 쉬냐 내가 당신 주말 하루 그냥 놓아주는데도 부족했냐 하물며 내가 이렇게 아팠는데 옆에서 봐놓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자기가 생각이 짧았답니다 그냥 자기도 하루쯤은 생각 없이 편하게 쉬고 싶었대요.. 제가 다른때 같았으면 얄미워도 한소리 하고 넘어갔을 거 같은데 마음이 닫힌건지 여유가 없는건지 정이 너무 떨어진건지 계속 갈비 먹던 모습만 떠오르고 진짜 내 편이 아니구나 내가 힘들어도 날 도와줄 사람이 아니구나 남이구나.. 이생각만 들어요 계속 미안하다고 출퇴근 전후로 잘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마음이 이상해요 그냥 용서해 주고 넘길일인가요? 그래..넘기자 넘기자 해도 그게 안되고 모르겠어요 눈물만 나고 저도 친정가서 엄마보고 푹 쉬고싶어요... 와... 산후우울증에 몸까지 아픈 와이프를 두고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여ㅠㅠ
박정희
[박정희(오까모또 미노루)] 1917년 경북 선산출생. 1925년 구미보통학교 입학. 1932년 대구사범입학. 이 해에 일본제국의 괴뢰정권 만주국수립. 1935년 5월 만주수학여행. 일본제국 지배 때 만주견문. 같은 해 김호남과 결혼. 1937년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부임. 같은 해 큰 딸인 박재옥 출생. 1939년 교직을 떠남. 1940년 만주신경군관학교 입학(혈서지원으로 특혜 입학 허용). 1942년 만주군관학교에 일제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고 일본육사 3년 편입. 1944년 일본육사 졸업 후 만주군 보병 제8단 배속, 중국항일군토벌종사. 1945년 일제패망, 만군이탈, 북경에서 조선인 광복군에 편승, 이 당시부터 친일행적 은폐. ⊙1947년 소위에서 대위로 승진 사관학교 중대장 근무. ⊙1948년 소령진급.10월 여순반란사건 발발,11월 남로당간부사실이 발각되었으나 수사협조(밀고)로 처형모면하고 석방. ⊙그 후 6.25전쟁 전까지 육군정보국에 근무하면서 보도연맹원 처리안 기획. 이 사실은 미국정보공개에 의한 문서조사에서 드러났다. 월간 ‘말’2001년 5월호에 실린 이도영의 ‘제주도민 예비검속은 이승만 피신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글을 보면 박정희와 김종필은 전쟁 후에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의 주역으로 그 육군본부정보국 작전 과장이었다. 이 사실은 피살자 유족이기도한 제주도 교사인 이도영의 미국에서 공개된 문서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1950년 박정희 소령지위 회복. 중령진급.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결혼.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준장으로 진급. ⊙1957년 제7사단장. ⊙1958년 소장진급. ⊙1960년 부산군수기지사령관. 2군 부사령관. ⊙1960년 4-19혁명으로 전쟁전후의 민간인학살과 친일파죄과에 대한 조사 성토로 불안을 느낀 박정희 등 친일파의 반혁명 음모가 싹틈. ⊙1961년 군사반란인 5-16 쿠데타를 일으킴. 박정희 가계도 가계(家系) 증조부: 박이찬 조부: 박영규(1840년~ 1914년, 호는 일부당(一斧當)) 조모: 성산 이씨(星山 李氏) 숙부: 박용빈 숙부: 박일빈 부: 박성빈(1871년 ~ 1938년) 모: 백남의(1872년 ~ 1949년) 형: 박동희(1895년 ~ 1967년) 조카: 박재홍, 박재선 형: 박무희(1898년 ~ 1960년) 조카: 박재석(1922년 ~ ), 박재호 누나: 박귀희(1902년 ~ 1974년) 의 아들, 은봉남과 은희만 조카: 은봉남(첫째1918년 ~ 1994년), 은희만(둘째,은지원의 부친)약력:단국대,연세대대학원,한국전력지점장,국무총리비서관,청와대, 보광개발(주)회장,현자영업. 형: 박상희(1906년 ~ 1946년) 조카: 박준홍, 박영옥, 박계옥, 박금자, 박설자 형: 박한생(박한희, 1910년 ~ 1928년)[287] 누나: 박재희(1913년 ~ 1996년) 첫 번째 아내: 김호남(1920년 ~ 1990년, 1950년 11월에 박정희와 이혼) 딸: 박재옥(1937년 ~ ) 본처 몰래, 박정희,이현란과(1948년) 약혼 (이현란과~ 3년간 동거)그후 본처와 이혼. 세 번째 아내: 육영수(1925년 ~ 1974년, 1950년 12월에 박정희와 결혼) 딸: 박근혜(1952년 ~ ) 딸: 박서영(1954년 ~ )근령에서 서영으로 개명. 아들: 박지만(1958년 ~ ) 손자: 박세현(2005년 ~ ) 첫 결혼 후 협의 이혼... 한국전쟁 중 육영수 만나 재혼 박정희는 대구사범 4학년 때인 1935년 여름 부친의 강권으로 억지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대구사범 교칙에 재학생은 결혼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비밀결혼을 한 셈이죠. 상대는 선산군 도개면에 사는 김호남(金浩南, 1920~1990)으로 그보다 세 살 아래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 후 여름방학이 돼 귀국해서도 처자가 있는 고향집 대신에 교사 시절에 머물렀던 문경 하숙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50년 11월 협의 이혼하였는데, 그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박재옥(朴在玉)이 그 주인공인데, 박재옥의 남편 한병기(韓丙基)씨는 3공 시절 민주공화당 국회의원과 UN대사 등을 지내며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박정희가 두 번째 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만난 것은 한국전쟁 중이었습니다. 1950년 8월 하순 피난지 부산에서 송재천(宋在千) 소위의 소개로 맞선을 보았는데, 4개월 뒤인 그해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허억 당시 대구시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정희-육영수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일화가 몇 가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육 여사 부친의 불참으로 박정희의 대구사범 스승이 대신 신부를 인도했습니다. 또 주례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이라며 신랑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으며, 또 신부의 예물반지를 갖고 있던 송재천이 이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김재춘이 급히 나가서 새로 하나 사오기도 했습니다. 박-육 두 사람 사이에서는 근혜, 근영, 지만 등 2녀1남을 두었습니다.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 여대생과 동거 한편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기 직전에 한 여대생과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산 루시여고 출신으로 당시 이화여대 1학년이던 이현란(당시 24세)이 그 주인공인데, 이현란은 이국적인 외모에다 키도 크고 성격도 쾌활해 박정희 눈에 든 모양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1948년부터 1950년 초까지 약 3년가량 사실혼 관계에 있었는데요, 1947년 12월 경리장교였던 박경원(朴璟遠, 작고)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육군 대위로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현란과 약혼한 후 곧 이현란을 용산 관사로 데리고 와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박정희가 여순사건에 연루돼 감옥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갔으며, 이후 이현란이 수차례의 가출과 방황을 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습니다. 박정희와 동거녀 이현란에 대해 그간 알려진 내용은 이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워매 황홀한 것! 마사지 건에 중독된 고양이
과거 큰 사고를 당한 브렛 씨는 종종 올라오는 근육통을 달래기 위해 70달러짜리 마사지 건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사지 건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냥아치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반려묘 제리입니다. 브렛 씨가 마사지 건을 어깨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그의 다리를 덮고 있던 이불이 뽈록- 솟아났습니다. 브렛 씨의 다리를 껴안고 자고 있던 제리가 진동을 느낀 것인데요. 조심스럽게 다가온 제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브렛 씨와 마사지 건을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브렛 씨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제리를 향해 말했습니다. "왜. 너도 마사지 받고 싶어?" 브렛 씨의 여자친구는 제리가 놀랄 거라며 그를 말렸지만, 호기심으로 가득한 제리의 표정은 모험을 원하고 있었고, 브렛 씨는 그 표정을 읽었습니다. 브렛 씨가 마사지 건을 제리의 등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생전 느껴보지 못한 황홀한 진동이 제리의 온몸을 감쌌습니다. "골골골골-" 그리곤 마사지 건이 내는 소린지, 제리가 내는 소린지 모를 골골송이 흘러나왔죠.  제리가 마사지에 중독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제리는 틈만 나면 마사지 건이 들어있는 서랍장을 긁었고, 브렛 씨가 마사지 건을 꺼내기라도 하면 발을 뻗어 그의 손을 톡톡 쳤습니다. "나 좀 하자. 넌 그동안 많이 받았잖아." 하지만 브렛 씨가 이내 제리의 성화에 못 이겨 마사지 건을 양보했습니다. 그는 마사지를 즐기는 제리의 영상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사지 건의 효과는 제리가 보장합니다. 언젠간 저도 그 효과를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