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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목) 행복한큐티 마태복음 4:12-25

1.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말하기 전에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 초점이 필요합니다. 목표도 없이 무엇을 하며, 목적지도 없는 상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떠한 사명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주저할 시간도 없이 오직 한 길을 향하여 가야 하는데, 장애물로 인하여 고민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죽어가는 영혼을 향한 생명의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4: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3.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어떻게 복음의 빛을 전하여 한 사람이라도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초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들에게 큰 빛을 보게 하셨고,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혹독한 압제와 재난을 당했으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적, 사회적인 속박에서 자유와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전과 만난 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복음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인가요? 앞을 볼 수 없는 자에게 주시는 다시 보게 됨과 매임에서 풀어짐과 자유함과 은혜는 무엇인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을 건물 안에 모셔두고 출석부 도장을 잘 찍으러 형식에 따라 몸만 왔다 갔다 오고, 졸다 오고, 다른 생각만 하다고 온다면 그것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형식과 다른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는 껍데기 크리스천처럼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4: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5.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내가 속한 곳에서 어둠을 거둬내고, 먼지는 털어내고, 구정물은 닦아내고, 불필요한 물건이 쌓인 곳은 정리함과 같이 복음의 능력이 임한사람은 내가 있는 처소가 마음의 성전이 되어 기뻐함으로 예배하고, 복된 소식과 빛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며, 방황하고 있는 영혼에게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6. 주님의 몸 된 공동체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생명의 빵과 음료를 함께 먹고, 마시고, 사랑의 교제와 돌봄과 나눔이 있는 곳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하기 위해 단지 건물이 필요한 것이지, 건물이 없다고 예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에 이루어 지는 일을 이루어 가기 위해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거하는 모든 곳이 예배처소로 삼을 수 있으며, 성전이 될 수 있으며, 골방으로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예배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 동생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7. 이제 주님은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뜻을 같이 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을 부르시고, 그들의 직업과 관련하여 새롭게 부여된 사명이 주어집니다.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에게 큰 빛을 보여주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으로 인도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의 재능과 특기와 적성과 직업을 통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용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 24 예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으로 앓는 모든 환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을 예수께로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리하여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으로부터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8. 로마서 1장 17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9. 예수님의 사역은 티칭, 프리칭, 힐링입니다. 티칭은 예수님의 사역이 교훈을 말하며, 프리칭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의 오심과 동시에 천국이 도래가 가까왔다는 복음을 말하며, 힐링은 천국이 축복이 구체적 증거와 열매를 보이심으로 어두움은 떠나가고 천국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오늘 나에게 주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어둠에 앉아 있는 나에게 큰 빛을 보여주시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나에게 빛이 되어주심으로 자유와 회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나님 앞에 이제는 진정한 감사로 예배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자리가 좋사오니 지금 이 자리에만 영원히 있게 하시고, 다른 자리는 주셔서 싫사오니 거둬 가시면 안 될까요? 이러한 고백을 드리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것은 빛을 본 사람이 아니라, 빛이 되어주신 주님의 자유와 회복을 맛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각자에게 주신 메시지를 마음에 세기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기 위해 예배자로 세워지고, 말씀 앞에 엎드려 져서 진리와 교훈을 사모하며,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 가시는 축복의 구체적 증거와 열매를 맛보여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예배자로서의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행복한큐티 이준영목사 www.happyq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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