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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그리기 좋아하는 내 아이에게

먼저 처음에 땅을 그린다 다음에는 하늘을 그린다 그다음에 해와 별과 달을 그린다 커다랗고 커다란 코끼리를 그린다 고래를 그린다 이미 사라진 공룡도 그린다 똬리를 튼 비단뱀을 그린다 하는 김에 하마도 그린다 머리칼도 그다음에 몸 팔과 다리 어깨와 배 등과 엉덩이 배꼽과 목과 손가락 알몸이라 조금 창피하다면 팬티를 그린다 밀짚모자도 그리면 좋다 그리고 이 아이가 서 있는 길을 그린다 길가에 자그만 오두막 한 채를 그린다 안으로 들어가 냄비를 그린다 타고 있는 불을 그린다 감자와 파를 그린다 엄마를 그린다 불쑥 이 얼굴을 그린다 동그란 여자 얼굴을 그린다 주름투성이 할머니를 그린다 하나하나 주름을 그린다 그다음에 그림 어딘가에 자기 이름을 쓴다 그리고 또 한 장 하얀 종이를 눈앞에 놓는다 먼저 처음에 땅을 그린다 >>아들셋맘은 오늘 에너지 충전 중<< 저에게 있어 아이들이 하자고 하는 놀이 중 쉽지않은 것 중 하나는 바로, <미술놀이>입니다. 이 녀석은 같이 그리자고 난리, 저 녀석은 자기 봐달라고 난리, 요 녀석은 어서 색칠하라고 난리... 왜 하필이면 꼭 똑같은 색연필을 쓰겠다고 하는지, 왜 하나같이 꼭 옆에꺼 보고 따라하려고 하는지. 엄마는 단 두 개 뿐인 팔이 원망스러울 뿐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둘째녀석이 주일학교에서 선물받아온 일명 '불어펜'이라고 하는 물건인데 셋이서 올망졸망 사이좋게 하는 게 아니겠어요? 간만에 A4용지를 마음껏 쓰라고 해놓고 저는 잠시 몸살기있는 몸을 뉘였습니다. 잠시 후, 밖에 나와보니 거실 바닥 이곳저곳이 펜 자국으로 가득하네요. 짜증은 커녕 웃었습니다. 비록 집안은 엉망이 되었지만 엄마는 단 30분 쉼표로 육아에너지 만땅충전되었거든요! 오늘 소개하는 그림책은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시 그림책'입니다. 시 한 편을 음미하듯~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음미해보세요! >>Baby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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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종이 동물원>, 꽤 두꺼운 켄 리우의 단편집이다. 총 열네 편의 소설이 들어있으며 열네 편 전부 SF 혹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들이다. 작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켄 리우는 중국인이다.(물론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소설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 중, 일을 서로 떼 놓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한국,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나 원리 같은 것도 그다지 없어서 한국 독자가 처음 SF 소설을 읽을 때 추천할 만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국)의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몰입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두껍긴 하지만 단편집이라서 시간 날 때 한편씩 읽기 딱 좋다) 켄 리우의 소설은 지난번에 리뷰했던 테드 창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이 소설을 빙자한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면 켄 리우의 소설은 Science "Fiction"이다. 켄 리우의 소설 속에서 과학은 Fiction의 설정이자 배경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배경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라고 할 수 있다. 켄 리우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Science가 아니라 Fiction이므로 <종이 동물원>에 실린 소설들에는 SF가 아닌 소설도 많다. 심지어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부터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다른 수록작들도 마찬가지다. <상태 변화>는 현대 판타지이고 <파자점술사>는 중국의 전통적 주술 문화, 파자점이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며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중국의 요괴와 SF적 요소가 뒤섞여 매력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게 켄 리우라는 작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SF 작가도 아니고 판타지 작가도 아니며 장르문학 작가라고 한정 짓기도 꺼림칙하다. 그는 장르의 경계나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SF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SF를, 판타지적인 배경이 필요하다면 판타지를, 역사나 신화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거리낌 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정통 SF 소설만을 애정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에 오히려 실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의 소설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개인적으로 켄 리우라는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그의 삶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많은 혼란과 의문이 그의 청소년기를 뒤덮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미국인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렇듯 수많은 의문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내가 어디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집단의 일원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작가가 된 켄 리우는 마찬가지 생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소설이 SF인지, 판타지인지, 역사나 신화 소설인지가 아니라 내가 쓰는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들을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저 문장이 켄 리우의 소설들에 새로움과 놀라움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구분이 사라질 때,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쳐질 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모노노아와레>를, 환상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사냥을 하길>과 <송사와 원숭이 왕>, <파자점술사>를, 소설 속 드라마를 느끼고픈 이들에게는 <종이 동물원>과 <레귤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권하고 싶다. 만약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소설집 전체를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나가길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