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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는 이명주에게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 기회를 줘야 한다.

지난 11월 26일 토요일 저녁(현지시각 기준)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 아시아 챔피언을 결정짓는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2차전이 열리고 있었다. 1,2차전 통합 스코어 3대2로 전북이 알 아인을 꺾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2006년 이후, 10년만의 정상 탈환이다. K리그에서 심판 매수로 분위기가 흉흉했던 전북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오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 출전권까지 획득했다.
하지만 전북이 결승전에서 알 아인을 2차례나 상대하면서 상당히 고전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받는 오마르 압둘라흐만과 시종일관 전북의 측면을 파고들었던 다닐로 아스피리야도 있었지만, 전북은 2경기 모두 중원에서 이 한 명의 선수를 막아내느라 상당히 애먹었다. 전북과의 2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그는 시종일관 알 아인의 2,3선을 오가면서 전북의 벌어진 중원의 틈을 홀로 장악해 알 아인이 역습을 당하지 않게 전북의 패스를 끊어버림과 동시에 전방에 포진된 공격수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했다. 심지어 2차전에서는 전북을 상대로 발리슛으로 골망을 가르면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며 말그대로 '무쌍난무' 였다. 바로 2년 전 K리그에서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타이 기록에 이름을 올린 이명주였다. 중동으로 떠나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졌던 이명주는 이 2경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국내축구팬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K리그 중원을 휘어잡던 기린아, 혹독한 중동 사막에서 빛나기까지의 과정
이명주는 데뷔 첫 해였던 2012년부터 소속팀이었던 포항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심지어 데뷔 경기였던 4월 8일 성남과의 경기에서 1도움을 기록하면서 모두의 눈도장을 찍었고, 시즌 중반도 채 안되서 황진성-이명주-신형민이라는 막강한 중원 삼각편대를 구축하면서 상대의 중원을 압살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실상 신인상은 이명주'라는 말까지 나왔으며 시즌 종료 후, 압도적인 득표 수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명주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역할을 부여하더라도 그는 보란듯이 100% 소화한다는 점이다. 김재성이 군입대로 빠진 공백을 확실하게 메워주고 있었던 이명주는, 2012년 후반기에 신형민이 중동으로 이적하자 황지수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임무를 수행했고, 다음해인 2013년에는 황진성이 부상당하고 신진호마저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두 사람의 몫까지 해내는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포항이 2013년 울산을 꺾고 리그 우승을 했던원동력 중 하나가 이명주의 빈틈없는 꾸준함이기도 했다.
팀 우승에 탄력을 받았는지, 2014년 이명주는 마치 삼국지에서 중원을 홀로 휘젓고 다니는 여포처럼 시즌 시작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K리그를 평정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뛰었는데, 3라운드였던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의 그림같은 도움을 시작으로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로 성장했다. 특히나 2014년 시즌 팀 동료인 김승대가 터뜨리는 득점의 절반 이상이 이명주의 발 끝에서 나왔다. 잘나가던 이명주는 6월 9일, 갑작스런 이적발표를 선언했다. 이적료 50억원에 현재 뛰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게 된 셈. 당시 포항의 재정난은 심각한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고, 선수단 총 연봉이 69억원인데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포항은 돈을 마련해야하는 이유 때문에 눈물을 삼키면서 그를 해외로 보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이명주를 거액의 돈과 맞바꾼 포항은, 거짓말처럼 하락세를 타면서 미끄러졌다.
국내에서 뛰던 선수들이 중동 리그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나올 때면, 주로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해당 선수가 기량이 떨어질 것 같아서 우려된다.", "쟤는 아직 창창한데 돈 때문에 중동을 간다." 이며, 아쉬움과 비난 속에서 잊혀져간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실제로 이러한 코스를 밟았다. 이명주 또한 알 아인으로 입단하면서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갔다. 특히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두 번이나 우승한 전력이 있는 알 아인은 그 어떤 클럽에 뒤지지 않은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베스트11으로 자리잡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데뷔한 지 10경기만에 득점포를 가동한 이후, 이명주는 서서히 알 아인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그의 성장과 함께 알 아인 또한 2003년 영광을 재현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물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다. 아마 내년 여름에 K리그로 복귀할 때, 이명주를 데려가기 위해 모든 클럽들이 쩐의 전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주 : 현재 슈틸리케호에서 가장 필요한 자원이다
2013년 6월, 이명주는 당시 대표팀 수장이었던 최강희 감독의 호출을 받아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는 영광을 누렸고, 데뷔전인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선발출장하여 우즈벡의 에이스인 세르베르 제파로프를 지워버리면서 팀이 1대0 승리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공격과 수비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기량과 90분 내내 뛰어도 지치지 않는 활동량과 체력, 넓은 시야와 판단력까지 겸비했다. 하지만 홍명보로 감독이 바뀐 이후에는 점차 입지가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기성용과 역할이 겹친다는 점. 결국 그는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좋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결국 브라질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이명주의 최종 엔트리 탈락을 두고 팬들의 설왕설래는 끝이 없었으며, 한국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이명주의 기용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서부터 꼬였는지, 그 해 인천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에서 손흥민과 함께 와일드카드 차출 또한 불발되었다. 알 아인에서 그의 차출을 반대해버린 것이다. 인천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저 멀리 중동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울리 슈틸리케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이명주는 아시안컵 대표 최종 엔트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면서 이제서야 빛을 보는가 싶었다. 그러나 쿠웨이트 전에서 전반전만 뛰고 교체된 이후, 아시안컵이 끝날 때까지 피치 위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 경기에선 무난한 편이었으나, 그가 맡은 역할(공격형 미드필더)을 고려한다면 실망스러웠던 점은 분명 있었다. 아시안컵이 끝난 뒤에는 이명주는 두 번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기성용을 비롯하여 구자철, 한국영, 정우영 등에게 밀린 셈이다. 리그보다 대표팀이 더 중시하는 한국에선 대표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명주가 잊혀지기엔 매우 쉬웠다. 참 재밌는 건, 이명주가 빠지고 나서 언제나 제 몫 이상 해왔던 미드필더는 기성용 한 명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기성용을 제외한 나머지 미드필더들은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구자철은 2골을 넣었으나, 득점을 제외하고 존재감이나 역할에 있어서는 미비했고, 한국영과 정우영은 혹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한 이후, 이명주는 소속팀에서 꾸준한 출장과 리그와 국제대회를 넘나들면서 알 아인에서 공수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핵심선수가 되었다. 전북과의 2차례의 경기에서 가장 무서운 적으로 등장하여 전북을 구석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에서 자원이 부족한 이 시점에서, 그에게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달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명주 같은 재능을 영영 썩혀둔다는 건, 대표팀 차원에서도 크나큰 손실이다. 현재 한국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우즈벡과의 홈경기에서 극적인 2대1 승리를 만들어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답답한 면도 많았고, 중원에서는 기성용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다. 전술의 변화와 플랜B가 없다고 혹평을 듣고 있는 슈틸리케, 이명주의 선발이 어쩌면 그의 불안한 입지를 전환할 수 있는 반전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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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유망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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