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 있어 가장 무의미 하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만약에"(Maybe)라는
가정이 아닐까 한다.
특히 역사 속 인물들에 있어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만약에'는 'OO가 더 오래 살았다면...'이 아닐런지.
오늘의 주인공은 삼국지를 읽어본 이들에게서 바로
저 '만약에...'를 가장 많이 되내이게 했을 인물 "주유".

삼국지에서 주유는 위에서 언급한 '만약에...'에 제일
많이 언급됨과 동시에 저승에서 나관중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나관중의 거듭된 항소에 3심까지 가더라도
무조건 다 승소할 만큼..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나 다름 없는 너프를 먹은
비운의 인물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가장 빼어난 용모 +
명문가의 귀족 + 최상류 부유층 금수저 +
너그럽고 대범한 성격 + 천부적음악재능 +
천재적 전략가 기질 + 미녀 아내 등등....
엄친아를 넘어 먼치킨이던 이 남자는 촉빠에
제갈량빠인 나관중에 의해 "제갈량과 맞다이를
벌인 죄"로 앞뒤 안가리고 덤비는 다혈질에,
상황파악 못 하는 넌씨눈, 속 좁아서 제 성격도
못 이기는 쫌생이로 격하되었다.

어린 초딩시절, 당시 원술 휘하의 장수던 손견의
장남인 손책을 조우하고 그에게 반해 그때부터 마음
깊이 손책의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 주유는 당시
대대로 명문가에 양주지역의 큰 호족의 자제였음에도
고작 일개 장수의 아들에 불과한 손책에게 다방면의
호의를 베풀며 둘의 우정은 깊어간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생일은 손책이 빨랐고,
손책의 모친 오국태부인도 주유를 매우 예뻐 했으며
손견 또한 주유를 아들같이 대했고
주유는 자기네 집안이 보유한 가장 큰 저택을
손책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잘 생긴데다
머리 좋고 돈 많은 신진그룹의 조태오가 아버지가
9사단에서 대대장 하시는 내 친구 창석이랑 친구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창석이네 아버지 예편 하시고 베스킨라빈스 하심)
삼국지연의에서 어쨌건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출발점인 손견에 대한 미화가 커서 그렇지,
사실 죽는 순간까지도 손견은 원술 휘하의 장수였고
더구나 손책과 주유가 알게 될 당시의 손견은 진짜
크게 대단할 게 없던 장수였다.

손책이 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주유는 양주 일대의
여러 호족들에게 손책을 소개하고 친분을 쌓게 하고
안면을 트게 하는 등 손책을 키우기(?) 시작했고
물심양면으로 손책을 조건없이 도울만큼 손책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후 손책의 바로 아랫동생인 손권과도 친분이
깊어졌고 손권 역시 하나님같이 여기던 형의 베프인
주유를 형님의 예로 모셨는데, 놀라운건 그래봤자
친구 동생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꼬맹이던
손권을 "깍듯이" 대했고 늘 존칭과 경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결과론적으로 주유가 손권 아랫 사람이 된
역사를 아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한거 아님??'
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손책이 그렇게 크게될 지,
손권이 그보다도 더 크게될 지는 알 수 없던 상황....
심지어 손책은 부친 손견이 전사한 후,
원술에 의해 잉여쩌리 취급 받다 소수병력만 이끌고
독립했는데, 이 때만 해도 손책의 성공을 점치는건
고영욱이 뽀뽀뽀 진행자를 맡을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도 주유는 손책의 대단한 포텐셜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손책을 크게 성장시킬 마음을
먹고서 그랬던게 아니였나 하는 짐작을 해본다.

이전 제갈량편에서 짧게 언급했지만, "전략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은 제갈량 이상이였고, 실제 역사에서
조조를 사실상 유일하게 처참히 발라버린 판의
총지휘자였다.
적벽대전 당시 고작 3만 여에 불과한 겁에 질린
오군을 이끌고 2만이 좀 안되던 유비군과 연합하여
당시 약 20만 ~ 24만 여 명으로 추산되던 조조군을
지워버린 가장 큰 주역은 각 군의 배치와 전술기획,
총 지휘를 한 주유였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24만 VS 5만은 넘사벽 차이까진
아니라 보여질 수도 있지만, 무슨 첨단무기나 장비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쪽수가 깡패고 전술이던 당시
상황에서 저 차이면 대개 GG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
더구나 저 때의 조조군은 중국 특유의 빅뻥을 가미,
"100만 대군"을 자칭하며 장강(양쯔강) 상류에 진을
쳤고, 당시 분위기는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이나 엇비슷한 분위기, 상황이였는데
오히려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서
여유있던 주유였다.
오의 대부분 고관대작들이 항복을 주창했으나,
항전론을 외친 최초 발언자는 "노숙"이였지만
노숙은 "우리가 이김!"이라기보다는
"아마 질거임...그래도 붙어보자능!!!" 이던데 반해
주유는 항전을 넘어, 승전을 자신했다.

그는 여느 전략가들처럼 혼자 이것저것 짜내기보다
여러 책사들과 장수들과 회의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들 중 "될 만한" 기획안을 채택하는데
능한 '수석' 스타일이였다.
사실 저것도 대단한 게, 정말 뛰어난 대국안이 없으면
당연히 여러 아이디어 중 뭐가 옥석인지 알 수 없다.
적벽대전의 신의 한 수였던 "화공"도 주유나 제갈량의
아이디어가 아닌 무장이던 "황개"의 의견이였던걸
주유가 채택한 것...
게다가 유비를 대단히 경계했던 사람이였다.
당시 오 내부에서 대체로 유비를 그리 높게 보는 이가
없었고, 유이하게 노숙, 주유만이 유비를 높게 봤으나
둘의 대처는 달랐다.
노숙은 유비와의 화친을, 주유는 유비 및 유비세력의
조기견제를 주창....
만약, 손권이 주유의 의견을 따랐다면 이후 황제까지
오른 유비는 없었을 것이나, 손권도 유비를 잠재적
위협요소라 인지는 했으나, 주유만큼은 아니였고
당시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노숙의 의견을 따른다.

장로가 유장이 통치하던 익주를 공격하자,
그 소식을 듣고 손권에게 서촉정벌을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였다.
일단 천하패권보다 형과 자신이 일군 강동의 지배력
강화가 우선이던 손권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던
시각의 오 문무대신들에게, 성공할 시에는 천하의
남쪽 절반을 먹는 서촉 정벌은 실로 스펙터클 했다.
그러나 홈에서는 막강했어도 원정능력이 그닥이던
오군 이끌고 장거리 원정에 심지어 험준한 산지에다
오군 최대 장기인 수전을 벌일 수 없던 터라,
주유의 "서촉정벌"은 '하이리턴 & 하이리스크'로
받아들여졌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데 맞손뼉 없어 흐지부지
되었으나 이를 통해 주유의 야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무리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량의 마등&한수와 연합하고 요동의
공손일파와도 협력한 후 조조의 등 뒤를 흔든 틈을 타
형주와 서촉을 온전히 손에 넣어, 양쯔 이남 점령 후
북진하여 위를 쳐부술 플랜을 갖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심지어 조조조차 천하통일을 염두 못한
시점에서 삼국지 등장인물 최초로 천하통일 플랜을
품었던 인물이였다.
제갈량과는 앙숙처럼 나오며 못 죽여 안달처럼
이미지가 각인 되었지만, 적벽대전 당시는 제갈량을
존중했고, 이후로도 비즈니스적으로만 적대했을 뿐,
그를 상당히 대우했다고 한다.
"하늘은 어찌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나!"
(旣生瑜, 何生亮)
주유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주유가 화살 맞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제갈량 탓의 빡침에 상처가 터져 끝내 죽었다는 것은
픽션으로, 병사했고 학자들은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적벽대전 당시 위의 스파이 역의 장간이 연의에서는
주유와 동문으로 나오지만 이는 허구...
둘은 이 때 처음 본 사이였다.
손책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와 소교가 유명한데,
대교와 소교를 얻을 당시 손책은 이미 정실이 있어서
대교를 첩으로 들였으나, 미혼이던 주유는 소교를
정실로 맞았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는지, 굉장히 자상히 아내를
잘 챙겼던 듯 한 기록이 있다.
상당히 젠틀했고 사실상 오의 군권을 잡은 손권 다음
2인자였음에도 누구에게도 위압적이거나 하대 하는
법이 없이 예의바르고 겸손히 대했다고 한다.
손견부터 손가를 섬긴 노장 정보가 초반 그를 몹시
무시했으나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자신을 공경하는
그에게 감화되어 끝내 잘못을 빌었다.
이건 왠만한 이들 잘 모르는데...
신은 공평했는지, 키는 좀 작았다고 한다.ㅋ
노숙에게 장신이던 제갈량과 마주하며 목이 아프단
말을 한 적 있다.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여 아무리 정신없거나 술 취한
와중에도 곡의 연주가 틀리면 지적했다고 하고,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잘 했다고 한다.
굉장한 말술을 마셨다고 하며 오에서 손권 다음가는
주당이였으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고 술도
주위에 강권하진 않았다.
장남은 이것도 유전인지 요절,
차남은 개망나니,
막내딸은 남편이 요절....
자식농사는 흉작이였던 듯..;;;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 적벽에서 원래 주유 역은 주윤발이
먼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검술에 제법 조예가 있었다고 하며, 감녕과의
대련에서 호각지세를 이뤘다고 한다!
허나 그렇다고 감녕과 무력이 동급이라 할 수 없는게,
감녕은 전장에서 다수를 상대하는 마상창술
(말 타고 창질)에 능한 야전장수였기 때문.
(또 실전이 아닌 '대련'이였고...)
이건... 진짜 깨는 정보인데...
주유가 오의 군권을 쥐고 있었고 오는 지리적 특성상
양쯔강의 수군이 주력이라, 오는 수군의 총사령관인
"도독"이 지상군과 수군을 총괄한다.
아무튼 주유는 그런 수군 사령관임에도 함선에
탄 적이 "거의" 없었다.(아예 없진 않음)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바로 "배멀미"....
수군 도독인데도 배멀미를 해서 함선을 왠만하면
안탔고 본인도 이게 되게 창피했는지 이를 숨기려고
꽤 애를 쓴 모양이다.
(멀미약이 있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아무래도 주유의 리즈가 적벽대전 당시이다보니
적벽대전 관련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적벽대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단독으로
다룰 예정이라 일부러 너무 자세히 풀진 않았음!
또 주유가 워낙 손책과 베프인지라, 손책 이야기도
좀 나왔는데, 역시 손책도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