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j9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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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사이비야??ㅋ재명이형 짱이지만 희정이형도 좋아..
안희정 신도 간증회 많은 은혜 받고 갑니다ㅋㅋㅋㅋ
ㅋㅋ코믹하심.. 지금이나라엔많은분들이필요하죠 이분도 잘하시잖아요~~
우리들의 보물 문재인 박원수 안희정
처음에 사이다로 시작한 민주당의 가벼운 실랑이에 지금 심각한 나라의 사태를 볼때에 다음정권에 고구마 문재인 사이다 이재명 김치 박원순 우유 안희정(제생각) 이면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생각해봅니다 ㅎㅎ
민주당엔 멋진사람들이 많군
대선주자는 아니지만 거지갑이라 부르는 박주민 탄핵반대의원 공개한 표창원 발로뛰는 안민석 의원도 있죠 원래 이렇게 일해야 되지만 새누리당이 워낙 저질이라 이분들이 빛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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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야 할 인간관계(feat. 인연정리)
정리해야 할 인간관계(feat. 인연정리) 인연은 소중하다. 그 인연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한다. 내가 물에 빠질때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기도하고 누군가가 배고파할때 나의 빵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홀로 살아갈수가 없다. 그래서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람을 존중할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이런 생각들이 들곤 한다. 인연이 소중한 것은 맞겠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악연이 지속된다면 한번정도는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의 고민을 듣다보면 어느순간 이런 말을 한다. "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인연이 다 했으면 멈춰야 합니다." " 더이상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마세요." " 복수는 자신마저 망치게 됩니다." " 이제 할만큼 했으니 멈추세요." " 그건 집착입니다 " " 더이상 호구가 되지 마세요." 인간관계는 참 어렵습니다. 특히 부모 자식관계 고부,연인,친구,부부관계 내 맘대로 끊을수도 없을 겁니다. 해로운 관계는 거리를 두거나 단호하게 끊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연을 정리해야 할 8가지 신호 1. 욕설 폭력 이 사람이 제 아무리 학식이 풍부하고 나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소통조차 모르는 바보입니다. 자신조차 막 대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들과의 인연은 유익함이 없습니다. 한번 욱하는 마음에 욕을 했다고해서 그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되겠구요. 상대를 헤치려는 분노의 마음을 갖고 습관적으로 입으로 쓰레기를 배출하는 이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습니다. 폭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2. 나를 물건으로 존중하는 사람 사람의 관계는 냉정하게 말하면 비지니스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나의 겉모양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돈을 좋아하거나 내 명예를 이용해서 승진하려하거나 나의 외모만을 좋아해서 내 곁에 있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외적인 것이 사라지면 그 사람은 당신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3. 나에게 끊임없이 집착하는 사람 사랑이라는 탈을 쓴 집착꾼입니다. 집착은 자신과 타인을 파괴시킵니다. 멈출수가 없습니다. 집착은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아닌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일 뿐입니다. 배고픈 돼지가 음식을 탐하듯 말입니다. 4. 도둑질 하는 사람 도둑질의 섬세한 의미는 주지 않는 것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욕심이 많은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욕망은 불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잿더미가 될때까지 활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당장 나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주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춰질수도 있지만 적법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인연을 정리해야 합니다. 당신은 처음에는 방관자가 되지만 서서히 유혹에 걸려들어 공범이 될 것입니다. 5. 사람을 깔보는 사람 요즘 갑질하는 사람들 많죠? 성질 없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다만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됩니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저 사람이 내게 함부로 대하지 않으니까 인연을 맺어도 상관없지 않겠어요? 아닙니다. 지금은 당신을 조심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친해지거나 당신이 약해졌을때 성난사자처럼 당신을 헐뜯게 될 것입니다. 약자를 대할때의 모습이 본모습입니다. 6. 당신의 호의가 독이 되는 경우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됩니다. 목마른 사람의 물은 생명수와 같습니다. 당신의 선한 마음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다만 당신의 그 노력이 상대방의 악행을 야기시키고 범죄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나태함의 원인이 된다면 당신의 존재는 그나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연은 최소한 서로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주거나 이어갈만한 이유가 있을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서로를 어둡게 하는 경우는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의 희생이 어두워진 상대방에게 밝음과 희망을 준다면 멋진 일입니다. 그럴 자신이 없거나 그럴수가 없다면 멈출 필요도 있습니다. 7.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 (+이간질 뒷담화) 때론 선의의 거짓말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습니다. 이 거짓말은 상대방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악의적인 마음씨를 말 합니다. 거짓말은 심리 도둑질입니다. 도둑놈과 함께 살수는 없잖아요? 다만 거짓말을 하게끔 사람을 쥐잡듯이 잡고 의심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둘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더이상 인연이 유지될수가 없습니다. 한번의 거짓말은 악행의 씨앗이 됩니다. 8. 정신적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요한 목표는 자아성찰입니다. 삶 속에서 행복을 경험하고 내가 왜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늙어서 병들어 죽겠지만 우리의 정신은 나이가 들수록 환한 보석처럼 빛을 발할 것입니다. 욕망이라는 쾌락바다에 빠져서 분노라는 불덩이에 빠져서 어리석음이라는 어둠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과의 인연은 나를 밝혀주기는 커녕 나를 어둠으로 끌고갈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미리서 잡고 있던 인연의 밧줄을 놓아주는게 맞습니다. 위의 내용은 결코 정답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은 없습니다. 제가 이런 8가지 유형의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면서 잠시 생각나는대로 적어봤습니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강의를 한적이 있었네요. 시간이 되면 오늘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https://youtu.be/anI1BIlUdJo 진짜마음 가짜마음 저서 안내 http://blog.naver.com/kungfu9/220496075309 글 :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최종 S의 비밀 - 살인의 추억] 박두만에게는, 응시할 자격이 있었을까
- 드러난 진실들을 쥐고서 최종 숏으로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영화는 ‘척’의 예술이다. 인물들은 카메라의 시선에 상시 붙들려 있지만, 짐짓 이를 모른 ‘척’ 촬영 현장만이 세계의 오롯한 전부인 양 꾸며댄다. 어쩌면 누가 더 시치미를 잘 떼느냐는 시합. 그렇게 ‘척’이 쌓이면,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단일 체계, 즉 처음과 끝을 간직한 유사-현실 덩어리가 된다. 이 독립성과 완결성이야말로 건드려선 안 될, 이야기의 본질이 아닐까. 이야기는 외부에서 널리 보이고 읽히되 절대 간섭받거나 변경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훔쳐보고, (현실과) 겹쳐보고, (원본의 수정 없이) 이리저리 만지작거릴 ‘거리’가 이야기인 셈. 이때 관객의 자리는 프레임 바깥에 깔려있으며, 러닝 타임 내내 안으로 건너올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문이 열릴 때가 있다.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봄으로써 인물과 관객을 대면케 하는 것이다. 대개 훔쳐보기라는 근본 규칙을 깨야 할 만큼 간곡한, 어떤 신호를 프레임 바깥으로 내보내고 싶은 경우다. 그중에서도 <살인의 추억>(2003)의 최종 숏은 효력이 너무나도 강렬해 신호 보내기의 롤모델로 불리는 게 마땅할 정도. 송강호(박두만 역)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파르르 떨며, 한쪽 눈을 살짝 찌그린 채, 카메라(관객)를 쏘아본다. ‘정의사회 구현’을 간판으로 내건 나라, 그 ‘짝퉁’으로서의 평화적 구조를 무대 삼은 범인. 거기서 비롯된 울분을 박두만의 마지막 얼굴에 응축해놓은 봉준호 감독은, “범인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리라 생각해서” 이런 엔딩을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봉준호라면, 이 펄럭거리는 숏이 스크린을 찢고 나와 진범을 휘감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 열린 문은 닫을 수 없다. 관객을 바라봄으로써 영화와 실재 사이에 심리적이되 실질적인 다리 하나를 놓은 셈. 애초에 특정 사건을 직접 끌어안은 영화의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현실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다시 현실로. 그런데 이 현실에 천지개벽할 변화가 생겼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고, 애먼 사람 하나가 20년간 잡혀있었다. ㅇ 10건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사건’, 14차에 걸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공식 명명(2019년 12월) ㅇ 윤 모 씨,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죄 없이’ 복역 후 2009년 가석방(현재 재심 진행 중) 이 정도라면 영화 역시 한 번은 ‘새로 고침’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영화로, 인식의 다리를 다시 건너보자. 물론 이 시점에서 봐도 숏들의 배치와 호흡은 경이롭다만, 떼 내기 어려운 의문점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최종 숏이 클로즈업한 얼굴, 그 신호 보내기라는 막중한 임무를, 과연 박두만이 짊어져도 되느냐는 것. 요컨대 ‘자격’에 관한 물음 말이다. - 윤 씨, △불법 체포·감금 △가혹행위 △고문 △훈련된 자백 녹음 등 강압 수사에 못 이겨 (8차 사건) 허위 자백 - 윤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데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 확인 - 경찰, 이밖에 양손이 줄넘기로 묶인 초등학생(8)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숨겨 ‘단순실종 처리’…형사계장과 형사 1명에 대해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등 혐의 적용 - 화성 8차 사건 말고도 억울한 사연 '‘수두룩’(연합뉴스. 2019년 10월) 이토록 잔혹한 폭압과 위법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을 중심으로 충실히 재현됐다.(5월 18일 재심 첫 공판에서 영화의 이 부분 일부가 상영됐다) 그는 손수 발자국을 찍어 증거를 생산했고, 이 타이밍이다 싶으면 고갯짓으로 조용구에게 (용의자를) 군홧발로 짓밟으라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무능과 조작으로 ‘잘려나간’ 상사와, 폭력의 증거로서 결국 다리가 ‘잘려나간’ 용구와 달리 영화 끝까지 살아남는다. 자연스럽게. 무능과 폭력에 한 다리씩 걸친, 한통속 혹은 중심임에도. 이는 영화가 박두만 안에 시대의 후진성과, 진범을 잡고자 하는 절절한 욕구를 동시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넉살부터 처절함까지 양 극단을 횡단할 줄 아는 송강호의 표정이 그걸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살이 불어터지도록’ 종일 목욕탕에 들어앉아 남들의 ‘그곳’이나 보고 다닐 때, 강변에서 링거를 맞으며 지치고 고단한 내·외면을 풍경으로 드러낼 때, 유력 용의자(또는 영화를 보고 있을 범인)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며 냉소할 때, 우리는, 미흡했지만, 악의는 없는, 투박한 진심을 본다. 이건 아마도 당시 형사들의 갖가지 결을 두루 섭렵해야 하는, 극의 중심에 놓이도록 설계된 인물로서의 필연적 ‘복합성’일지도 모르겠다. 용구도 서태윤도 맡을 수 없는 자리. 그렇게 박두만은 후졌지만 호감은 가는, 이런저런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허용되는 캐릭터가 됐다. 물론 이 영화적 장치는 충분히 수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숏에 이르러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깊이의 얼굴-응시마저 창조케 했다. 이후로 한참이 흐른 2019년, 31년간 은폐된 시신의 존재가 떠올랐다. 8살 아이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껌뻑거림들. 진정하고 초점을 다시 잡아보자. 이제 후진 시스템과 후진 사람들은 한결 더 도드라져 보인다. 재차 ‘투박한 진심’까지 가려면 전처럼 ‘악의는 없는’ 따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식어가 필요한데, 현실이 그걸 허락할 것 같지는 않다. 왜? 눈을 닦고 보니 그들의 목표는 진범 찾기가 아닌 자기 자리 보존이었으니까. 악의가 없기는커녕 흘러넘칠 지경이다. 이렇게나 맹렬한 보신(保身)주의라니, 이러면 한나 아렌트의 저 유명한 ‘진부한 악’ 이상 가는 지위를 부여해드려야 마땅하다. 상상력이 모자란, 그저 시대의 부속품이 아닌, 이를테면 시스템의 설계자 같은. 물론 박두만은 특정 형사 한 명이라기보다는 형사들 면면의 집합체에 가깝다. 하지만 정육각형에 가까웠던 특성 중, 적어도 ‘선의(善意)’ 항목은 새로 드러난 사실들에 찔려 움푹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최종 숏의 강렬함이 그 선의로 마감된 박두만의 캐릭터성에 크게 빚졌음을 상기해보자. 이제 나는 그에게 분노자로서의 지위가, 외화면을 쏘아볼 송신자의 자격이 더는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어울리는 곳은 프레임 바깥, 응시를 받아야 할 자리, 즉 범인의 근처 어딘가일 뿐이다. <살인의 추억>은 여전한 걸작이다. 단, 특정 사건과 동기화됐다는 영화적 특성상 현실과의 호흡을 위해 세포를 지속해서 열어두고 있을 뿐. 시대의 맥을 그토록 잘 짚었는데, 지금 보니 그 땅 위에 진범의 것 외에도 악랄함이 층층으로 쌓인 형국. 상상의 달인 봉준호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앞으로 악행의 구조는 점점 더 디테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단, 딱 보면 감이 온다던 그들은, 공소시효가 소멸돼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춘재도 마찬가지. 밥도 잘 먹고 다니겠지.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들. 하수구 안에는, 야산에는, 구겨져버린 여성들이 아직도 있다. 8살 아이를 포함한.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다.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