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one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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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디바를 꿈꾸는 록시(르네 젤위거 분)는 자신을 배신한 내연남을 우발적으로 살해해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교도소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 재소자들을 만나고, 평소 동경해 온 시카고 최고의 디바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 분)와도 가까워진다. 벨마를 통해 재판에서 한 번도 패소한 적 없다는 변호사 빌리(리차드 기어 분)를 알게 된 록시.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빠진 록시는 그를 변호사로 선임해 항소를 준비하고, 한편으로는 간수 마마에게 접근해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 나간다.
영화 <시카고>는 1920년대 미국 여성이 처한 현실과 판타지의 앙상블을 재즈 뮤지컬로 녹여낸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환호받는 스타이면서도 남성에게 있어 성적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여성의 위치를 조명하고, 그러면서도 거기에 순응하는 대신 "나는 누구의 아내도 아니다"라며 맞서는 여성들을 그린다. 그렇게 '죽어도 싼' 남자를 죽인 수많은 '록시'들은 남성들의 세계 속 '퇴폐적' 여성에서 어느새 페니미즘 전사로까지 발전한다.
뮤지컬 <시카고>를 스크린에 옮겨낸 영화의 연출은 실로 완벽에 가깝다. 비극적인 영화 속 현실과 나란히 이어지는 인물들의 뮤지컬 신은 그 중에서도 백미다. 스윙, 왈츠, 탱고, 탭댄스를 아우르며 빅밴드 연주와 함께 내달리는 주인공들의 무대는 여성들의 한풀이이자 한바탕 놀음으로 흥을 돋운다. 특히 에피소드 별로 담긴 뮤지컬 시퀀스마다 각각 가상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퍼포먼스와 현실 속 행동을 교차시킨 연출과 편집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안무 하나하나가 그대로 인물의 손짓과 몸짓이 되고, 멜로디에 얹혀진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대사로 넘어가는 전환은 마치 연주자들이 서로 솔로 애드리브를 주고받는 재즈 특유의 트레이드 앙상블과도 닮았다.
덕분에 영화는 그 자체로 눈을 뗄 수 없는 '쇼'로써 기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쇼 비즈니스가 지닌 맹점 또한 제대로 풍자한다. 살인을 저지른 록시가 빌리의 도움을 받아 언론을 이용하는 전개는 특히 그렇다. 스타를 꿈꾸던 록시는 정작 살인범으로 추락하고 나서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이를 역이용해 치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동정 여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자유는 록시의 인기와 맞바꿔지고, 이후 그는 단물 빠진 껌처럼 다시 버려진다. 이는 재빠르게 불붙고 사그라드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 진실 따위 외면한 채 이슈에 치중하는 이 시대 미디어의 생리와도 다르지 않다.
감옥에서 나가기 위해 뭐든지 이용하는 록시와 벨마는 한편으론 멋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젖가슴 사이에 꽂아둔 달러 지폐를 건네거나 치마를 살짝 올려 가터벨트를 내보이고, "같이 즐겨보자"고 대놓고 남성을 유혹하는 두 여성은 거리낌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남자를 한번 더 죽이고 싶다"는 록시의 말처럼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시카고>는 퇴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여성을 그리면서, 한바탕 쇼를 통해 그 억압된 욕망과 자존감을 마음껏 분출한다.
영화 말미, 결국 함께 무대에 선 두 여자가 총을 멘 채 남성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록시와 벨마의 '쿠데타'는 절반의 승리로 귀결되고, 남은 싸움은 오롯이 관객의 숙제가 된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가는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가 유의미한 건 그래서다. 2016년 12월 15일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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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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