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지펀드 운용사 원네트워크 진회장(이병헌 분)은 수 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돈세탁해 잇속을 채우는 희대의 사기꾼이다. 1년여 간 진회장을 추적해 온 지능범죄수사팀 형사 재명(강동원 분)은 진회장의 배후에 정·제계 고위급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침내 원네트워크를 일망타진해 비리의 실체를 파헤칠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진회장의 측근인 장군(김우빈 분)을 회유해 로비 장부를 빼내려던 재명은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치고, '윗선'의 압박으로 인해 수사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탐욕으로 가득한 악당과 정의감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있고, 자본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부당한 현실과 닮았다. '선한 약자'를 위해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은 쾌감을 넘어 판타지마저 자아낸다. 이른바 '사이다' 영화의 공식이다. 그리고 영화 <마스터>는 이러한 '사이다'란 수식어에 철저히 복무하는 작품이다. <베테랑>의 서도철 형사 같은 영웅과 조태오를 연상시키는 악당이 등장하고, <내부자들>이나 <검사외전>에서처럼 적진에서 주인공을 돕는 지원군도 있다.

"썩은 머리를 다 잘라내겠다"는 극중 재명의 포부는 영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미션으로서 현실 속 관객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 하다. 영화 초반부, 진회장이 저축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금융위원장에게 뒷돈을 건넨다거나 해외 차명계좌를 활용해 돈을 굴린다는 등의 설정은 특히 그렇다.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대변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달콤한 꼬임에 빠져 전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개인투자자들과 대비되며 폐부를 찌른다. 여기에 시종일관 재명이 찾는 장부에 전회장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인물들의 명단이 담겨 있다는 설정은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로 불거진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진회장과 재명, 그리고 장군 세 인물을 중심으로 한 <마스터>의 서사가 캐릭터 각각의 매력을 제대로 엮어내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영화는 극 중 진회장과 재명의 전사를 완전히 생략해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극단적인 악당으로, 또 정의의 사도로 '완성'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들 가운데에 선 채 내내 '머리를 굴리는' 장군의 급격한 태도 변화는 다분히 작위적이어서 좀처럼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가 만들어 내는 영화 후반부의 반전 또한 쉽사리 예측 가능해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앞서 개봉한 <아수라>의 경우와 다르지 않게, 여성 캐릭터들을 남성의 조력자 혹은 희생양으로만 그리는 설정은 <마스터>가 지닌 또다른 한계다. 재명의 동료 형사 젬마(엄지원 분)는 내내 후방에서 재명을 지원하는 인물로만 비춰지고, 그나마 그가 독립적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함정수사를 위한 미인계 정도다. 진회장의 제1측근인 김엄마(진경)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진회장 못지 않은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까지나 '주인' 진회장에게 귀속된 채 그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나름의 지분을 갖고 선전하는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진회장과 원네트워크에 대한 경찰 당국의 '공식적인' 수사, 그리고 해외로 도피한 진회장을 쫓는 재명의 사투. 크게 두 덩이로 분리된 영화의 에피소드 사이의 간극은 한국과 필리핀이라는 두 로케이션의 차이만큼이나 비약적이다. 뿌리채 썩어버린 국가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적'이 되어 정의 실현을 가로막고, 개개인이 모여 비밀리에 꾸려진 자경 세력이 위험을 무릅쓰고서야 비로소 악은 처단된다. 현실은 더할나위 없이 잔인하고 영웅의 이야기는 그 현실과 유리된 채 혼자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마스터>는 안전한 동어 반복을 통해 '사이다' 영화 특유의 청량감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선택이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2016년 12월 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