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myhun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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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옆모습 나이별 변화

2006년 애기애기함
2007년 3월 애기애기
2007년 4월 워 이뻐
2008년
2009년
2011년
2012년 변하질 않네
2015년
현재
나이가 들어도 모습이 변하지가 않음.
김연아 짱짱
2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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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된 미모... 연느~♥
와 이정도엿나
연느 이뻐 얼굴도 마음도 예쁨♥
김연아는 별에서 온 그대일수도..
06년 너무 귀엽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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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정액으로 실험" 드들강 사건 푼 노교수의 열정
'드들강 여고생 강간살인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이정빈(71) 단국대 석좌교수가 이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풀기위한 실험을 하면서 아들에게 정액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 노 교수의 투철한 직업 정신에 대한 칭송이 이어지고 있다. 13일 중앙일보는 이정빈 교수가 16년 전 발생한 '드들강 여고생 강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피를 채혈한 것은 물론 아들에게 정액까지 부탁한 뒷얘기를 공개했다. 이정빈 교수는 직접증거가 없어 난항을 겪던 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정빈 교수는 '성폭행은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는 40대 범인의 주장을 뒤집었다. 박양의 체내에서 채취한 용의자의 정액과 박양의 생리혈이 섞이지 않은 상태였다는 경찰 과학수사팀 기록을 토대로 직접 실험을 한 것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정빈 교수는 실험에 필요한 혈액을 '자가 공급'했고 38세인 아들에게 부탁해 정액을 받았다. 중앙일보는 "의사(재활의학 전공)인 아들은 평생을 법의학에 헌신한 아버지의 열정과 취지에 공감하며 흔쾌히 실험에 쓸 정액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정빈 교수가 자신의 피와 아들의 정액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실험한 내용이다. "이 교수는 정액을 투명한 위생봉투에 담은 뒤 여기에 천천히 혈액을 넣었다. 7시간이 지나도 정액과 혈액은 섞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봉투를 살살 움직여보니 정액과 혈액이 금세 섞였다. 박양이 성폭행당한 직후 몸을 심하게 움직이거나 이동하지 않고 현장에서 살해됐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 실험 결과였다. 재판부도 이 교수의 소견 등을 토대로 ‘성폭행범이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중앙일보 2017년 1월 13일 '71세 법의학자, 자기 피 뽑아 밝혔다…드들강 살인의 진실' 기사 中) 중앙일보에 따르면 대검찰청 법의학자문위원회 위원장 이정빈 교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연세대생 이한열씨 사망 사건 등을 부검했다.
여러 트레이너가 포기했던 송중기 몸
몇번 운동해서 몸 만드려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에서 유시진 대위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으로 만든 몸이라고 해요 본인입으로 자기는 근육질하고 어울리는 얼굴도 아니고, 근육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체질이라고 말했을 정도예요 그렇게 힘들게 만든 몸을 영화 <군함도> 촬영 때문에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송중기ㅠㅠ 군대 제대후 바로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으니.. 거의 1년동안 군인으로 살고 있는 송중기 그렇게 힘들게 만든 몸으로 <태양의 후예>가 초대박을 쳤으니 영화 <군함도>도 꼭꼭 초대박 치길 바랄게요♥ 정말 입혀놓으면 몸에 근육은 커녕 말랑말랑한 뱃살밖에 없을것 같은 얼굴ㅠㅠ 이런 송중기를 초이스해서 과감하게 군인으로 변신시켜준 태양의 후예 김은숙 작가님 감사합니다ㅠㅠ 두겹이나 껴입었지만 가슴이 펌핑된게 보이네요+_+ 뽀얀 피부와 말랑한 얼굴에, 넓고 탄탄한 가슴근육이 반전!!! 청순글래머란 이런것인가요?!♥ 뒤에서 봐도 어깨가 딱 벌어지고... 좋네요bb 사복도 훈남의 정석처럼 잘입는 송중기! 뒤모습에서부터 훈내가 폴폴 어깨가 넓어지니 안그래도 작은 얼굴이 더 작아지네요! 우리 얼른 군함도로 다시 만나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1차 세계대전의 크리스마스 정전
1차 세계대전 초 1914년, 참전국들은 이 전쟁이 길어야 몇달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강력한 신무기들이 난무하여 참호전으로 전투 방식을 이었고 전쟁은 처참하고 지루하게 이어져 장병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전쟁이 지속되던 중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되었고 영국과 독일, 두 나라의 장병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참호 안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조그만한 행사를 가지고 있었다. 캐럴 소리는 무인지대를 넘어 상대측 참호에까지 흘러들어갔고 참호 안의 장병들은 상대측 장병들도 자신들처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자 독일군들은 참호 위에 촛불과 전등으로 장신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올려놓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한 독일 병사가 용기를 내어 뭔가를 들고 참호 밖으로 나왔다. 그 독일 병사가 들고 나온 것은 총도 아니고 수류탄도 아닌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놀란 영국군들은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그를 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를 본 두 나라의 장병들은 참호 밖으로 나와 무장지대에서 서로 악수하고 담배나 술, 음식 등 기호품을 서로 교환하며 서로의 우정을 나눴다. 이때 무인지대에 버려진 양측 병사들의 시체들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었다. 어느 부대는 시체가 널부러졌던 평야를 정리하고 병사들끼리 축구도 하고 그랬다. 결과는 3-2로 독일 승 허나 크리스마스 정전의 뒤끝은 좋지 않았다. 양측 군 수뇌부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주동자를 잡아다 처벌하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였다. 그러나 이미 휴전의 맛을 본 양측 군인들은 자신들의 시찰단이 나타나면 상대측 병사들에게 공포탄을 쏘거나 탄을 빗나가게 쐈고 그 병사는 맞은 척하며 사라지는 방식으로 페이크작을 하였다. 이 방식은 의외로 잘먹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정전은 1914년 딱 한해에만 일어났다. 이후에 그럴 기미를 보이면 포탄이 날아왔으니 몰래몰래 총질을 멈추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교전 행위를 접는 것으로 그쳤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