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os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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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 제주

유배는 오형가운데 죄인을 귀양 보내던 것으로서 중죄인들을 멀리 보내 쉽게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을 말합니다. 세계7대 경관으로 아름다움을 떨치고 있는 제주도이지만, 이러한 제주도가 예전에는 유배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나라의 유배문화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배 중 제주도는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하여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붕당정치로 인해 많은 지식인들이 유배를 당했는데 약 60명에 사람들이 제주도로 유배를 오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추사체와 세한도로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 또한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는 조선 명문 경주 김 씨 가문에서 태어나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실학의 학문적 기초를 다지고 청나라의 학문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학문의 방법론을 인식하였습니다. 그 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였습니다. 평탄한 벼슬생활을 하다가 세도 정치 초기에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 일족 간에 권력 대립으로 인하여 정적이었던 안동 김 씨의 탄핵으로 제주도로 유배를 오게 됩니다.


유배생활

조선시대에는 큰 죄를 지을수록 수도인 한양에서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는데, 추사 김정희는 9년간 서귀포 대정읍에서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김정희에 경우는 당파싸움으로 큰 죄를 뒤집어쓴 경우로 가장 먼 대정현에 마지막으로 유배된 인물입니다.
유배생활 대부분을 강도순에 집에 머물러 그 곳에는 추사에 흔적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4·3때 불타 없어지고 이후 1984년에 강도순의 손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습니다.
또한 김정희는 위리안치형(가시 울타리로 죄인을 가둠)에 처해져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두르고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에 따라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 관리자의 배려로, 대정현 내에서는 크게 제한 없이 활동을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에 추사 김정희는 제주의 대정향교 현판을 쓴다거나, 글을 배우러 찾아온 이들을 가르치고, 녹차나무를 심어 키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배생활에서 추사에 이름을 널리 알린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하게 됩니다.

제주 추사관

제주 추사관에는 위에서 설명했던 추사의 대한 삶과 업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일생의 역작인 “세한도”의 사본을 비롯해 대정항교 의문당 현판, 그리고 관련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두고 있습니다. 또한 2001년부터 매년 대정읍에서는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추사예술제를 개최해 추사서예대전, 추사선생유배행렬 재현 등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6년 11월에도 추사예술제를 개최했습니다.
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한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과 추사 현판글씨, 추사 편지글씨, 추사 지인의 편지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관광지인 제주 하지만 자연 경관을 구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주 추사관에 잠시 들려 그 속에 담겨있는 역사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관람시간
오전 09:00 ~ 18:00 (입장마감 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craos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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