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josal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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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극사실주의 만화

ㅋㅋ 전 미혼이지만 잼있네요. 반대로 아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에피소드도 나오면 잼있을듯 하네요ㅋ 있으면 담에 언젠가 카드로ㅎ.ㅎ
6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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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을 못하겠다ㅋ
개웃기네 이거 ㅋㅋㅋㅋㅋ
헐 찔리네요ㅋ 이래서 결혼은 현실이라꼬하자나요~~~
이래서 결혼 늦게하라는 거였군아
이런여자만 있는것 아닙니다. 피곤하시겠네요.
@tluassad03 너무 깔끔떠는 여자도 피곤해요....? 결국은 과유불급.... 중간이 좋아요...
@Yitaewon 남자고 여자고 어려서 부터 어덯게 하며 살아왔는지가 중요하지요 그게 성인이 되어서도 삶이 이루어 지기때문이지요
님이 직접 그리신 건가요?
매일 빙글에 들어오면 제일먼저 님의 글부터 봅니다
@scifi76 어이쿠 그런 과찬을^^; 항상 관심있게 봐주시고 글 남겨주시는거 저도 감사해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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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판 영조 이반 뇌제가 재평가를 받은 이유
일리야 예피노비치 레핀(1844~1930) 줄여서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최고의 사실주의 미술가로 자주 거론되는 화가이며 그가 그리는 인물화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상황을 전달할 정도로 리얼함이 묻어 흐르는 작품이 많다.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메흐메트 4세에게 보내는 자포로제 카자흐인의 회신) 그러던 어느날 러시아 전역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건이 생겼으니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혁명단체 '인민의 의지'의 폭탄테러로 인해 군중 속에서 사지가 찢겨 죽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런 X발..) 너무나 잔혹한 풍경에 모든 인민들이 할 말을 잃고 큰 상심과 분노에 빠진다. 일리야: 그래 이걸로 뭔가를... 그리고 그 충격은 일리야 레핀 또한 고스란히 받게 되어 자신의 뇌리에 스친 이 오만가지 감정을 영감삼아 러시아 역사 속의 한 일화를 상상화로 그리기로 결심한다. ----때는 3세기를 거슬러간 1581년--- (이반 뇌제) 루스 차르국의 초대 차르 이반 4세는 말년으로 접어들며 갖은 정치 공세와 첫 아내의 죽음 등으로 점점 심각하게 미쳐가고있었다. 후계자로 점찍어둔 황태자 이반도 이런 아버지의 폭정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들의 죽음을 곁에 둔 이반 뇌제) 어느날 임신한 황태자비가 옷을 얇게 입고 다니는 것에 분노해 심하게 구타해버려 유산시키고, 뒤따라와 폭언과 저주를 퍼부은 황태자 이반 의 태도에 이성을 잃고 죽을만큼 패버린 탓에 자기 손으로 아들을 혼수상태로 만들고 사흘만에 목숨을 잃게 만든 사건이다. 이 일화 인해 대부분의 러시아 인민들에게 이반 뇌제는 광기와 공포정치의 폭군, 제자식도 죽여버린 X놈새끼 정도의 평가로만 남아있었다. ----다시 1885년--- 그렇게 일리야 레핀은 자기 시대의 감정과 딱 들어맞는 이 일화를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고 얼마 가지 않아 역작, <1581년 11월 16일>을 완성한다. 일리야 레핀은 광기와 폭력을 비판하고 폭력에 무기력하게 쓸려나간 자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으나 문제는 사실주의의 대가답게 그림을 너무 잘 그렸다는 것이다. 허무하게 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황태자와 자신이 깨트려버린 그의 머리를 쥐어싸고 있는 이반 뇌제의 두 눈엔 광기와 분노,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하는 가녀림과 한이 아주 진하게 담겨있었다. 그렇게 이 작품을 본 인민들은... 인민들: 저는 이 그림을 보기 전까진 이반4세가 그냥 X놈의 새끼인줄만 알았습니다. 일리야: ??? X놈의 새끼라서 그린거 맞는데요 인민들:하지만 이제서야 뇌제가 그저 광기만이 아닌 인간다움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리야: 잠깐만 그 주둥이좀 뮤트해주실 수 있습니까 인민들: 그림 한장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만들어주신 일리야 레핀 화백!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일리야: 너무 잘 그린 탓에 뇌제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동정심을 품게 되었으며 뒤이어 이반 4세가 미친 폭군에서 선정과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던 양면적인 자라고 사학계가 조금이라도 체면을 세워준 재평가 운동의 단초가 되어주었다. 이 그림의 계기가 되어준 알렉산드르 2세를 향한 폭탄테러는 이 암살을 계기로 전제정을 무너뜨리려고 자유주의 인민들이 궐기할 것이라 예상한 '인민의 의지'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 잔혹하게 죽인 반동으로 오히려 반발심에 후계자에게 더 강력한 전제정이 확립될 빌미를 마련해버렸고, 이 폭력의 감정을 가감없이 담은 일리야 레핀의 비판 의도는 오히려 비판의 대상을 후대에 재평가받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버렸으니 둘 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다른 스케치를 찾아보면 작가의 의도가 좀더 잘 드러나 있다 그야말로 광인의 모습 대체역사갤러리 정신세상님 펌
한겨울에 코끼리 끌고 알프스 넘음
기원전 217년, 한니발은 트레비아 전투에서 로마의 대군을 박살내 이탈리아 북부의 패권을 쥐었다. 그의 원정군 중 전투에서 잃은 병력은 대부분 켈트족이었고,  한니발이 그들에게도 증오스러운 원수였던 로마를 꺾었다는 낭보가 퍼지자  일대의 켈트 부족들이 앞다투어 합류하면서 병력은 순식간에 다시 보충되었다. 끔찍한 패배 소식이 로마 시내에 전해지자, 시민들은 한니발이 봄이면 로마 성벽 앞에 나타날 거라는 두려움에 떨었고 그해의 새 집정관,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는 로마 시민과 이탈리아 동맹시들을 가리지 않고 신병을 모집하여 훈련, 새로운 군단들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했다.   원로원은 여러 신들을 로마의 편으로 돌리기 위한 9일간의 탄원 기간을 선포했고, 심지어 한니발의 수호신이라 여겨지던 헤라클레스를 '매수' 하고자, 봉헌 제물을 잔뜩 바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헀다. 마침내 이탈리아에 봄이 돌아오자 한니발은 다시 남하를 개시했다. 로마 연합의 붕괴라는 원정의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눈앞의 첫 과제는 이탈리아의 척추이자 로마 북부 에트루리아의 풍요로운 중심지로 내려가는 아펜니노 산맥을 돌파, 그 일대를 타격하는 것이었다. 늦봄의 아펜니노 산맥에 듬성듬성 남은 눈발쯤이야 겨울 알프스를 넘은 카르타고의 용사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그가 과연 이 산맥의 어느 곳을 원정군과 함께 넘을지가 한니발 본인에게도, 로마 집정관들에게도 깊은 고민거리였다.  해안에서 가까운 쉬운 길을 따라 편하게 남하하는 루트는 당연히 세르빌리우스의 로마군이 이미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결국 한니발은 에트루리아의 아르노 강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이쪽 루트 근처에도 플라미니우스의 로마군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플라미니우스는 물론 그 어떤 로마인도 한니발이 설마 아르노 계곡을 통과하려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면 아르노 계곡은 겨울에 내린 눈이 녹은 물과 봄비로 인해 완전히 범람하는 데다 주변은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늪지대로 둘러싸여 있어서, 상식적으로 이런 곳에 대군을 몰고 들어간다는 건  알프스를 겨울에 넘는 것보다도 더한 미친 짓거리라고밖에 볼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안내인들을 통해, 이 지역의 지면이 "생각보다는" 덜 물렁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늪지대를 건너면 철통같이 준비된 로마군의 방어선을 피하는 엄청난 군사적 이점이 있을 뿐더러, 더불어 로마 집정관들의 뒤통수를 완전히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내리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늪지대를 건너는 데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5월 초, 그런 끔찍한 진창을 뚫고 행군할 것이라는 썰이 카르타고군 진지에 돌자, 존경하는 사령관을 믿고 한겨울 알프스 산맥을 넘었던 용사들조차도 아예 출발 자체를 꺼렸다. 그러나 한니발은 그가 현지 조사를 세심히 마쳤으며, 헤치고 걸어나가야 할 물은 소문보다 얕고 그 바닥은 단단하다는 말로 병사들을 설득했다. 한니발이 앞장서 범람하는 아르노 계곡으로 향하자, 마침내 망설이던 장병들도 그의 뒤를 따라 습지로 들어갔다.  한니발은 싸움터에서는 분명 용맹하지만, 의외로 궁핍이나 고난 앞에서는 멘탈이 순 유리인 켈트족 전사들이 진창에 들어가는 순간 모랄빵이 나서 전원 역돌격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미리 단단히 조치를 취해 두었다. 행군 대열의 선두에는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때부터 충성해온 노련한 북아프리카인과 스페인 인 부대를 배치했고, 짐을 나르는 동물들은 평소와 달리 행군 대열 곳곳에 고르게 배치해, 장병들이 보급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한니발의 동생 마고가 지휘하는 용맹한 누미디아 기병대는 후위에 배치되어,  대열 중앙에서 행군하는 켈트족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켈트족들은 진창을 힘겹게 뚫고 허우적허우적 앞으로 나아가며, 멋모르고 한니발 원정군에 합류한 걸 뼈저리게 후회했겠지만 이미 습지에 들어선 이상, 한니발의 철저한 사전조치 앞에서 달아날 길은 없었다. 밤에 몰래 탈영해본들 진흙의 망망대해나 다름없는 습지에서 길을 잃고 늪귀신 신세가 될 것이고, 한니발에게 굳건히 충성하는 부대들에 앞뒤로 끼인 상태에선, 힘으로라도 뚫고 도망치려는 시도 따윈 부질없을 터였다. 4년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4일 밤낮 동안, 수만 명의 원정군 장병들이 낮아도 무릎, 심할 때는 목까지 차오르는 차갑고 썩은내 진동하는 물 속을 헤치며 허우적허우적 앞으로 나아갔다. 카르타고군 대열에 듬성듬성 고르게 배치했던 동물들은 번번히 짐과 함께 진창에 빠져서, 결국 대다수가 그대로 버려져 죽었다. 병사들이 입은 옷은 진흙 범벅이 되었고, 그들 주위로는 자신들의 배설물이 둥둥 떠다녔다. 따뜻한 모닥불은커녕 밤에 텐트를 칠 마른 땅조차도 지금은 꿈나라 이야기여서  밤이 되면 운 좋은 장병들은 물 속에서 죽은 동물들의 시체 무더기 위에 뻗었고,  운 나쁜 장병들은 선 채로 졸아 보려고 애썼다. 깨끗한 물조차 모자라다 보니, 너무 목말라서 습지의 물을 마시고 만 병사들은 예외없이 지독한 고열에 시달렸고 처음에는 전우들이 그들을 어떻게든 부축하며 함께 걸었지만 결국 이대로라면 비교적 건강한 이들마저도 함께 전멸하고 말 거라는 현실 앞에, 그들은 버려져 진창 속에서 죽어갔다. 한니발은 원래 원정에 끌고 온 코끼리 중 알프스와 북이탈리아의 겨울을 유일하게 버티고 살아남은 "수로스"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총사령관 전용 탈것으로 타고 다녔지만, 아르노 늪지대를 돌파할 때 그가 수로스의 등짝에 편히 앉아 발에 진흙 한 점 묻히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가 언제나 휘하 장병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지휘관이었다는 사실은  심지어 철천지원수인 로마 측의 기록으로도 교차검증될 뿐더러 아르노 계곡에서 한니발에게도 늪지의 썩은 물이 튀기는 바람에, 한쪽 눈이 고통스러운 염증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깨끗한 물로 눈을 씻고 찜질을 했더라면 시력 상실만은 면했겠지만, 둘 다 그 상황에선 불가능한 치료였다. 결국 한니발은 후세의 역덕들에게 익숙한 애꾸눈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같은 전설적인 외눈 장군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애꾸눈이 빛나는 무공 훈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늪지옥에서의 3박 4일이 지난 후, 마침내 한니발의 병사들은 현대의 피렌체 근처 어딘가의 마른 땅에 뻗을 수 있었다. 당시는 물론, 무려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수한 이들이 한니발의 아르노 늪지대 돌파에 대해 한니발도 사람인데, 이건 그냥 잠시 제정신이 나가서 저지른 미친짓이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님?;;;이란 의문을 제기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만약 한니발이 습지에서 빠져나온 바로 그 순간에 소수의 로마군이라도 만났었다간 원정군은 무조건 전멸 확정이었고, 2차 포에니 전쟁은 그날로 시마이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대 역사학자들의 정설은, 물론 아르노 늪지 돌파가 알프스 산맥 돌파보다도  더 위험했으면 위험했지 덜할 게 없었던 엄청난 도박성 작전이긴 했지만 한니발이 단순한 오판으로 저지른 짓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니발은 그 어떤 로마인이 예측할 수 있었던 곳보다도 한참 먼, 완전히 무방비인 로마 영토 내부에 수만 명 규모의 핵폭탄드랍을 성공시킨 것이다. 한니발이 휘하 장병들에게 준 며칠간의 휴식 시간 동안, 가장 뛰어난 로마 정찰병들조차도 그들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을 뿐더라 이제 한니발은 앞으로 치러질 여러 전투에서, 로마의 홈그라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가 주도권을 쥐고 카르타고군을 유리한 위치에 배치할 수 있는 엄청난 전술적 이점을 얻었다. 늪에서 끔찍하게 고통받으며 사기가 땅에 떨어졌던 켙트족들도, 이제 부유한 로마 땅에서 인근 농장과 마을들을 마음껏 약탈하며 오랜 세월 자신들을 괴롭혀온 로마인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더없이 기뻐했고 습지에서 짐을 실은 동물과 군량 대부분을 잃었던 것도, 한니발이 미리 계산한 대로 현지조달을 통해 순식간에 보충할 수 있었다. 위대한 전술의 천재는 (비록 후세에는 훨씬 덜 알려졌지만) 알프스 돌파에 이어 또다시 위대한 도박을 성공시켰고 그해 6월의 트라시메노 호수에서, 칸나이 전투 다음가는 위대한 승리를 또다시 거두게 된다. - 필립 프리먼 저 "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마크 힐리 저 "칸나이 bc216"에서  "진짜 광기" ㄷㄷㄷㄷㄷ 군사갤러리 김치랜드에영광을님 펌
나치 공군인 루프트바페가 공격기에 포를 달게된 이유
독일이 어쩌다 전투기에다 대전차포 달아서 쓰게 됐는지 알아보자 2차세계대전 초반에 독일이 압도적인 진격 속도 뒤에는 루프트바페의 즉각적인 항공 지원이 있었는데 독일 육군 앞을 막는 방해물이 나오면 바로 연락 때려서 Ju-87이 폭탄 떨궈서 조지는 식으로 독일군은 아무런 방해 없이 쭉쭉 진격할 수 있었음 이런 대활약을 본 괴링은 포병 새끼들은 게을러 터져가지고 육군을 제대로 지원 못는데 비해 Ju-87 급강하 폭격으로 즉각적인 지원을 하잔아? 이거 잘하면 우리가 포병 업무를 차지해서 밥그릇 늘릴 수 있지 않을까?! 괴링이 나중에도 육군, 해군이 할 일 공군이 하겠다고 깝치다 말아먹은 전적이 많지만 지상 지원을 위한 시각 만큼은 드물게 옳았음 육군 또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매우 흡족해 했는데 특히 전격적으로 빠르게 적을 쳐들어가서 뿌셔뿌셔 해야하는 전략으로 재미 보는 독일 육군 입장에서는 제 시간에 때릴지도 모르는 포병보다 즉각적으로 정확히 떨구는 공군 지원이 더 좋아 보였고 이러한 의견을 반대하는 쪽은 밥 그릇 뺏기게 될 육군 포병 말고는 없었음 독일 공군은 Ju-87, Ju-88로 독일군은 공중 지원을 폴란드 부터 프랑스까지 적 요새, 벙커, 탱크, 보급선에다 폭탄 던지면서 전공을 쏠쏠하게 빨아먹으면서 만능 지상 지원기로 굴리다가 동부전선에서 소련이 T-34 웨이브를 선보이면서 꼬이게 되는데 폭탄 정확히 떨궈서 적이 일궈낸 요새를 부수는것보다 당장 기어들어오는 소련 전차를 제압해야 했던 것 폭탄 한방은 기껏해야 탱크 한 두대 뿐이라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만능 지상 지원 보다는 대전차전에 특화된 공격기가 필요했음 아 씨발 저 X같은 빨갱이 새끼들 전차 뚜따해야 하는데 어떡하냐 미갈 애들 처럼 로켓으로 조지면 어떨까요? 판처파우스트라고 좋은게 있는데 그거 아직 시제품이라 힘들고 로켓으로 탱크 뚜따하기는 명중률이 너무 후달려 ??? 공격기에다 포를 달면 어떨까요? 뭔 미친 소리야 알베르트 케셀링: 제가 포병 출신이라 지상 지원 대해서 잘 아는데 탱크는 원래 포로 까부셔야함 포병 출신 답게 지상지원에 대한 이해는 탁월해서 지상 지원 공격기, 폭격기는 잘 만들었지만 포병 출신이라 전략 공군에 대한 이해는 후달렸는지 나중에 4발 전략 폭격기 만드는건 말아먹음 암튼 이런 생각은 꽤나 설득력 있게 들어갔는지 42년도 Hs-129 에다 30mm 기관포인 MK101달아서 쏴댐 참고로 저 HS는 헨쉘이 약자로 티거 만든 회사로 유명한 HS-129에다 30mm 기관포로는 T-26, BT 시리즈 정도는 무난하게 격파해 나갔지만 T-34 부터는 확실히 격파하기 힘들어서 1943년에 개발된 카노넨포겔 일명 대포새라고 37mm 기관포 2정을 슈투카에다 달아놓은 형태라 HS129보다 구경, 투발 화력이 더 강했고 HS129 B-1, B-2 자리를 교체해 나감 한스 울리히 루델이 이거 가지고 소련 전차 작살 낸걸로도 유명함 물론 독일 특성상 신호 정리 개판 패시브 특성상 HS-129도 완전히 퇴역 못하고 저 37mm 기관포 달고 다기도 함 37mm로는 전차 잡기에는 부족했는지 나중에는 4호 전차와 같은 포를 달아서 자동화 시켜 HS-129에다 달고 HS-129 B3라는 파생형을 만듬 그것도 모잘랐는지 Ju-88에다 88mm 포를 달아놓는 프로토타입도 나왔지만 88mm는 도저히 못 견딘다고 판단 했는지 양산은 안됨 그것도 모잘랐는지 Do-217에다 356mm 무반동포를 다는 프로토타입을 만듬 ㄷㄷㄷ 나치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것 일까 ㄷㄷ 군사갤러리 밀리터리맨님 펌
우러전쟁 최신 근황 (남부 전선)
헤르손-자포리자 남부 전선은  북부, 동부 전선에 비하면 상당히 잠잠함.  포격 강도가 낮고 이렇다 할 전선 변화가 없음.   하지만 이 남부 전선에도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어서 글을 쓰려고 함.  헤르손 시를 탈환한 우크라이나군이  곧바로 킨부른 반도에 상륙해서 일을 내나 싶었음.  그렇지만 도하 작전은 어려운 일.  역시나 별 소득 없이 끝난듯함.  우크라이나군이 머뭇거리는 사이  러시아군은 미친 듯이 참호를 파서 방어 태세를 갖췄음.  동원병들을 갈아 만든 러시아군의 참호선.  단순한 일직선이라도 수가 많으면 버거움.  러시아군이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해놔서  남부 전선을 쉽게 탈환할 수 없는 상황.  우크라이나군은 다른 방법을 찾았음.  남부 전선 대부분이 하이마스 로켓 사거리 안이라는 점을 노려 다시 한번 보급 차단 전술에 나선 것임.  자포리자 주요 거점에 하이마스 폭격을 가하고 헤르손 전선에도 무시무시한 정밀 폭격을 가해 러시아군을 괴롭혔음.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폭격은   남부 전선 철도선을 집중 공략했다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음.  하이마스 유도 로켓의 정확도가 얼마나 높은지 철도선 정중앙에 클린 히트로 들어감. 이렇게 철도선을 끊어놓으면 러시아군 보급을 방해할 수 있음. 더 나아가 드론 정찰 + 하이마스 폭격으로  열차 자체를 부숴버릴 수 있어서 위협적임. 드론 정찰, 정찰 위성, 사진 촬영 등으로  꼼꼼한 결과 확인은 덤.  미국이 주는 빵빵한 공여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하이마스 로켓을 많이 쏠 수 있음.  저 한발 한발의 하이마스 유도 로켓이 러시아군 탄약고, 기지, 보급로를 파괴하는 것임. 크림 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 대교는  대폭발 사건으로 크게 파손되었음.   이 공격은 남부 전선 보급 루트 하나를  파괴하는 엄청난 공작이었음. 아직도 수리하지 못했는지 12월 중순인 지금도  무지막지한 차량 정체를 보인다고 함. 다리 상태가 이렇게 엉망이면  이쪽 보급로는 여전히 사용 불가. 다른 쪽 보급로인 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루트는  철도선이 우크라이나군 포격 사거리 안.  남부 전선 러시아군은 저번처럼  보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음.  고속도로를 통한 보급이 가능은 하지만 여의치 않음. 도네츠크-헤르손의 거리가 500km로 지나치게 길고  우크라이나군이 도로도 파괴한다는 점. 동영상은 마리우폴-멜리토폴 고속도로인데  보다시피 꽉 막혔음.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 폭격. 우크라이나 파르티잔의 사보타주 때문에 도로망도 망가지고 있기 때문.  우크라이나군의 보급 차단, 탄약고 파괴, 기지 폭격으로 남부 전선 러시아군은 몸살을 앓고 있음. 남부 전선이 조용해 보여도  우크라이나군은 착실히 작업 중임. 하이마스 폭격으로 약해진 남부 전선 러시아군은  제 발로 철수하거나, 우크라이나군과 싸우다 밀려날 것임.  (제 발로 철수하는 게 상책.) 러시아군의 보급을 철저하게 말려버리면 언젠가 좋은 소식이 또 날아올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남부 전선의 보급 차단 전술은  하이마스 유도 로켓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임. 하이마스야말로 진정한 우러전쟁 게임체인저임.  3줄 요약  1. 남부 전선은 소강 상태로 보이나 조금씩 균열이 발생 중임. 2. 하이마스 폭격으로 러시아군을 꾸준히 괴롭히고 있음.  3. 보급 차단 전술로 러시아군을 말려 죽이고 있음.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공부하고 싶은 자들은 빈자, 고아 가릴 거 없이 모두 내게로! (feat. 이슬람 아바스왕조)
이슬람이 경제적 학문적으로 번성을 누린 시기였던 아바스왕조에 대해서 알려줄게(750~1258) 우린 현재 너 뉘기야?! 하면 코리안 이라 하지 하지만 이 시기엔 너 뉘기야?! 하면 무슬림이라고 할 정도로 종교가 국적을 대신하던 시기였어 (이슬람은 종교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야) (아바스왕조 전성기 시절) 아바스왕조가 이렇게 부흥했던 이유가 뭐냐면 정말 똑똑했었어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망하는지 본거야 그래서 백성 한사람한사람한테 정말 잘해줬음.. 아바스왕조의 통치자는 ‘칼리파’라고 하는데 술탄이랑 다른 점은 칼리파는 정치 종교 모두 다 수장이었어. 즉 정치만 하는 술탄보다 더 입김이 센 통치자였음. 아바스조는 무함마드(이슬람을 처음으로 알린 사람)시절부터 이어져 온 강제개종 금지 원칙에 따라서 무슬림 뿐만 아니라 비무슬림, 아랍인 뿐만 아니라 비아랍인들을 같이 살게 해줬고 각자 종교를 존중해주고 다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줬어. 그 시대 다른 유럽국가는 그리스도교인 아니면 존나 줘패서 내쫓음.. 그런 면에서 이슬람은 당시에 되게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어. 아바스조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는 전쟁으로 부를 쌓지 말고 상업활동으로 부를 쌓아서 사람들을 다 잘 살게 하자!” 이게 기본 모토여서 전쟁을 멈추고 국가 자체가 되게 상업활동 열심히였거든. 근데 상업 기반을 닦는 거 자체만으로도 전쟁만큼의 돈이 소요돼. 그치만 아바스왕조의 칼리파들은 통치 안정을 위해 전쟁을 끝내고 상업에 필요한거를 전폭 지원해줌 뭐? 상업하는데 동쪽으로 나가야 된다고? 뭐? 도로가 필요해? ㅇㅋ 내가 도로 닦아줄게! 뭐 도시가 필요해? ㅇㅋ 내가 만들어줄게! 아바스왕조는 상업에 필요한 거라면 다 지원해준거야. 한국사에도 보면 아라비아상인이 무역하러 왔다는 기록 엄청 보이잖아. 아랍상인들은 정말 전세계로 뻗어가서 무역을 했는데 안 가는 데가 없었어ㅋㅋㅋ 어딜 가도 아랍상인이 보여ㅋㅋ 이게 그냥 말로만 들어서는 아 그렇구나.. 하면서 굉장히 쉬워보이잖아. 근데 생각해보면 전근대 사회는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어. 근데도 아랍인들이 한반도까지 왔다? 그렇게까지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던 건 국가의 지원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어(대항해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서 가능했던 것처럼) 이렇게 칼리파도 국민들 모두가 상업활동에 적극적이었어. 그래서 아바스조 수도였던 바그다드가 한때는 세계 무역 중심지였고 국제사회에서 두드러지게 엄청 부유했어. 사람들이 다 잘살았음. 바그다드로 실크로드 통해서 중국이나 서유럽 쪽 물건들이 다 쏟아져오는거야. 당나라 종이로 유명하잖아 아님. 바그다드 종이가 제일 질좋았고 유명했어. 종이가 발달됐네? 그럼 따라 오는 건 뭐다? 학문의 발달이야! 그래서 이 시기에 필사도 많이 하고 아랍문학도 엄청 발전했고 사람들이 공부를 되게 열심히 했었음. 경제적으로 다 잘살기도 잘살아서 공부도 할 수 있었던거야 영화 알라딘인데 한번 상상해봐. 다들 상업적으로 윤택하게 살고 분주하고 활기찬 바그다드 도시를ㅎㅎ 이렇게 상업적으로 부를 축적해서 번 돈으로 정치가들끼리만 꿀꺽했을까? 그랬더라면 이슬람은 그 길로 바로 망했겠지. 아바스왕조는 부의 선순환을 알았어.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인재를 키워서 또 그 인재로 돈을 벌게 하자’ 그렇게 번 돈으로 이슬람 사회에서는 학교를 굉장히 많이 지어. 이건 비단 아바스왕조 뿐만 아니라 이슬람 역사 내내 이어져 온 특징이야. 이슬람을 만든 무함마드는 비록 문맹이었지만 공부하는 걸 엄청 중요하게 여겼거든. 그래서 코란(이슬람 경전)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 ‘지식을 구하는 일은 고귀한 일이다’ 코란에 나오면 이슬람 통치자들은 누구나 할 거 없이 불문율적으로 다 따라야해. 그래서 학교를 엄청 짓고 교육에 돈을 퍼부어. 이슬람 역사의 독특한 특징임. 비단 이슬람이란 종교에 후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 철학, 의학, 천문학, 문학 가릴 거 없이 다 후원을 해줘서 이 시기에 아랍학문 작품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와. 대표적인 예가 ‘지혜의 집’ 을 들 수 있는데 아랍학문의 황금기었어. 여담이지만 알코올 알고리즘 이런 단어가 다 아랍어 발이거든 (al이 아랍어로 정관사 the를 뜻 해. 그래서 알라신 뜻이 the god이야ㅋㅋㅋ 핵단순) 또 이슬람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않았어. 비록 상업으로 부를 축적하지만 딱 먹고 살 정도로만, 무슬림 형제 등쳐먹으면서까지 너무 과한 이윤은 축적하지 않는 게 이슬람이 추구하는 상업의 형태였어. 무슬림들은 그렇게 축적한 부를 나보다 못사는 무슬림 형제를 위해 기부를 했었음. 같이 으쌰으쌰하자는 공동의식이 이슬람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야. 이제 또 그 기부받은 돈을 순환시키기 위해서 나라에서는 학교에 후원을 더 팍팍 하는 거야. 이 덕분에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그게 설령 돈없는 거지, 고아라 할 지라도 다 배울 수 있었어. 재워주고 먹여주고 공부도 시켜줬었음. 우즈베키스탄 레기스탄 광장 이 건물은 학교야. ‘엥? 이게 어딜봐서 학교야..? 방이 없는데…?’ 의아하겠지?ㅋㅋㅋ 저기 큰 문에 뚫려 있는 부분에서 수업을 들어. 햇빛을 따라서 해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동수업함ㅋㅋㅋㅋㅋ 야외수업이자 이동수업인 거지. (참고로 스승과 제자는 거의 24시간 내내 붙어지냄…^^ㅎ)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렇게 돈없어도 배움의 의지가 있는 사람은 모조리 가르쳐주도록 하고 지식을 추구하자는 전통이 역사 내내 이어졌었어. (학생들 또한 배움에 대한 열의도 어마어마해서 스승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많이 해) 이같은 전통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와. 심지어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자까지도 교육시켰었어. 지금 이슬람 사회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외지? 동시대 유럽 사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야. 당시에 유럽권에선 여자는 직업조차도 못 가졌는데 감히 교육이라니요…? 이슬람의 이런 장점 덕분에 당시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엄청 많이 했어. 모태무슬림아니고 개종한 무슬림이 상당히 많았거든. 이건 강제개종아니고 스스로 개종한 거. (앞에서 말했듯이 무함마드 시절부터 강제개종금지 원칙이 있어서 다른 종교라 할지라도 이슬람을 강요 못했어.) 개종 무슬림덕분에 무슬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됨.. 처음엔 이슬람이란 종교가 너무 소수라서 없어지냬 마냬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적은 수였는데 현재에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종교가 됐어. 이렇게 이슬람 사회는 개방성, 다양성존중, 칼리파의 후원, 공동체의식 덕분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여태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거야. 음.. 끝이야!ㅎㅎ 재밌고 유익했길 바라며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