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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서유기 선리기연 엔딩 ( 서유기 선리기연 )
주인 진짜 이뻤다.
서유기 선리기연 매드무비 (MV) - 늦은 후회 (Bobo)
진짜 잘만들었다.
5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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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웃긴 영화가 아니라 긴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말그대로 웃음과 감동이 남는 영화죠...
서유기영화중 단연최고이며 지금봐도 웃기고 감동인영화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서유기로는 최강인 영화 같습니다.
졸라 웃기고 졸라 슬프고 졸라 재밌는 영화
졸라 완벽한 영화네욬ㅋㅋㅋ
이거 월광보합편은 코믹인줄 알았는데 선리기연 에선진짜 멋지고 감동넘치는 대작임 특히 마지막에 좋아하는 여자 나두고 다시못올 긴 여행을 떠나는게 애잔합니다 ㅎㅎ
월광보합은.. 선리기연을 위한 그냥 프롤로그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고 ㅋㅋㅋ
수십번은 본 영화 ㅜㅜ 반갑네요 ^^
저도 재밌어서 엄청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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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피셜 공장] "우리집은 뼈대있는 집안이다!"라던 우리집 족보, 사실 위조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
여산 송씨 동지공파로 알려진 내 성씨가 사실 짜집기된 족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거 친가에서 추석 때마다 드린 제사가 실은 엉뚱한 조상에게 바치는 허례허식이었던 것이다. 내 동명이인, 전국에 60명 밖에 없다 시작은 쓰잘데기 없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나는 오늘 새벽에 문득 "내 이름은 현재 몇명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은 생각보다 희귀한 편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검색 통계 사이트가 존재한다. 통계 사이트 [한국인의 이름 통계]에 따르면, 내 이름은 2008년 이후 출생자 기준으로 807명 있으며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방에 약 300여명정도가 있다. 아래는 전체 출생자의 명명 추이다. 2008년 이후 출생자를 기준으로 러프하게 중간값을 1년에 62명 정도라고 가정했을 때 인간 평균 수명인 80세를 기준으로 전국에는 내 동명이인이 5000명 정도가 있는 셈이다. 이후 나는 송씨인 사람의 비율 역시 궁금해졌다. 내 성씨는 여산 송(宋)씨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국내 여산 송씨 비중은 683,494명이다. 그럼 대략 나와 동성동명은 5162만 여명인 국내 인구에서 성 씨가 차지하는 비중인 1.3%에 5000명을 곱한 값인 65명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족보 위조의 실마리 해당 조사를 진행하다가 나는 석연찮은 점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고 그 근방에 집안 뿌리를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1985년 통계부터 훑어도 천명 남짓한 사람들만 충남 논산에 거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전라남도 고흥군과 본관이 있는 전라북도 익산군 인근에 각각 1만명 정도가 분포했다는 점을 미뤄보면 현저히 적은 수치고 계파가 산다고 보기에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https://sgis.kostat.go.kr/statbd/family_02.vw?topBottom_onoff=OFFsgis.kostat.go.kr 그러자 근본적인 의문부터 들기 시작했다. 과연 여산 송씨의 본관이 서산과 논산에 있는게 맞는 건가? 나는 지금껏 내 계파가 여산 송씨 동지(同知)공파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해당 사실이 맞는지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여산 송씨에 동지공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상치도 못한 정체 ㄴoㄱ)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산 송씨에 동지공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지공파는 조선시대의 권문세족인 함안 조씨와 안동 권씨만 중종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여산 송씨 동지공파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성씨 였던 것이다. 여산 송(宋) 씨는 세계일보의 한 기사에 따르면 5개의 정파가 존재한다. 그 중 동지공파는 방계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산송씨의 시조 송유익은 고려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다. 그의 4세손인 송송례가 권신 임연 일파를 제거하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나, 송송례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송송례의 아들과 손자 대에서 5개 파로 갈라지는데, 송휘(宋煇)계가 원윤공파, 송방영계가 밀직공파, 송원미계가 소윤공파, 송린계가 지신공파, 송서계가 정가공파가 되었다.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70〉 송씨(宋, 松氏)·여산송씨(礪山宋氏)/세계일보) 아버지의 고향인 충청도 논산에 본관을 두고 있는 성 씨는 오히려 은진 송씨였다. 은진 송씨는 충남 논산 은진면이 본관이다. (출처:www.ejsong.co.kr) 또한 충남 지역을 본진으로 3만명 이상의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은진 송씨가 여산 송씨에 비해 총 인구 수가 훨씬 적다는 것을 감안하면 은진 송씨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한다고 볼 수 있다. 위조 족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렇다면 여산 송씨 동지공파는 도대체 어떤 연유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 부분부터는 약간의 사실을 기반한 추론이 진행됐다. 실마리는 함안 조씨 동지공파 중종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함안 조씨 동지공파의 조상 동지공 조경중에 대한 설명/함안조씨 동지공파 중종 홈페이지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함안 조씨 동지공파의 조상 격인 조경중은 휘(생전 어릴 적 이름)가 면도이고, 자(성년이 된 이후의 이름)는 경중이었다. 그리고 송재가 호(널리 쓰이는 별명/현재의 닉네임과 같은 것)였다. 즉, 송재공(松齋公) 조경중이 가선대부동지충주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냈기 때문에 동지공(同知公)이 된 것이다. 헌데, 조경중의 호인 송은 은진 송씨의 송(松)과 같은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위조 족보를 만든 이는 권문세족 조씨 계파의 시조인 조경중의 호인 송재공(松齋公)을 이름으로 착각해 가상의 계파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굳이 성씨를 송나무 송(松)을 사용하지 않고 송나라 송(宋)씨로 성을 지은 이유 역시 유추할 수 있다. 해당 성 씨를 만든다고 해도 은진 송씨 대종 족보에 없는 계파를 쓸 경우 족보가 위조된 것임이 쉽게 탄로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위조 족보를 만든 이는 그 해결책으로 몰락한 여산 송씨 방계를 사용했다. 여산 송씨 방계로는 서산 송(宋)씨가 있다. 송씨 족보에 따르면 송유익의 동생인 송문익이 서산 송씨의 시조이며 경기, 충남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서산 송씨는 2번의 전란을 겪은 1600년대 이후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토문화전자사전에 따르면 서산에서 송 씨는 절연되어 송 씨 가문을 찾기는 힘들다고 한다. 집성촌 역시 서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산송 씨 동지공파 족보를 작성한 이는 몰락한 가문의 이름을 차용해 집안의 근원을 여산 송씨와 은진 송씨 대종에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자신들의 위세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출처: 향토문화전자사전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598866&cid=51929&categoryId=54141) 다만 족보 위조자의 신분이 노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해방 다음 세대인 할아버지가 건대 법대를 입학했던 것을 보아 집안은 꽤 부유한 편이었다. 따라서 노비 집안이라 갑오개혁 당시에 성 씨가 붙여졌을 확률은 적다.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던 노비 집안이 갑오개혁에서 해방 사이에 그 정도의 부를 쌓기는 힘들테니 말이다. 또한 할아버지 당신이 생전에 뼈대있는 집안과 족보에 대해 가지고 계시던 프라이드를 미루어보면, 지역 유지 정도의 중산층 평민 집안이 계층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방법으로 족보를 만든 것일 가능성이 높다. 축적한 재산으로 몰락한 가문의 사당과 족보를 사들여서 새로운 족보를 만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비일 가능성은 적으며 중국 성씨에서 유래한 여산 송씨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 집안은 한반도에서 대대적으로 살아온 어떤 의미에서는 뼈대있는(?) 민초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따라서 앞으로 친가 쪽 어른들이 우리 집안 장남, 장손 뭐 이런 이야기 하면서 항렬따지고 우리집 차별하면 팩트로 한껏 응수해드릴 예정이다. 또한 제사 역시 조상도 아닌 집안에 드릴 이유가 없으니 마땅히 감사해야 할 분들에게만 성의껏 드리고 허례허식은 없엘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집 며느리로 오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쓸데없는 제사 안 지내서 개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너무 김칫국인가)
범죄도시 3
마석도는 첫출근하는 날 만나줘야죠 ㅎ. 와, 아침부터 많이들 오셨더라구요. 2주만에 또 영화의 전당. 이번엔 살짝 늦을뻔 했지 말입니다. 중극장까지 뛰어갔습니다 ㅋ 이번엔 빌런이 둘씩이나… 근데 주성철은 장첸이나 강해상에 비해 솔직히 좀 소프트해 보이는데요. 야쿠자 리키가 있긴 하지만 둘이 합쳐도 장첸이나 강해상에 비해선 좀 끕이 떨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이젠 광수대로 출근합니다. 이번에 일본 야쿠자 살수 리키로 등장한 빌런, 바람의 검심에 나왔던 아오키 무네타카. 근데 저는 리키가 넷플릭스 카지노에 나왔던 빅보스의 행동대장이자 차무식의 친구인 존 같더라구요. 분위기가 많이 닮았더라구요. 하긴 카지노 보는 내내 존이 진짜 필리피노인줄 알았으니… 알고보니 동두천 출신에 의정부 공고를 졸업한 순수 한국인이어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넷플릭스 택배기사에도 출연했더라구요 ㅎ 뭐 하지만 마석도 전매특허 범죄자들 두들겨 패는건 여전히 통쾌하고 스트레스 푸는덴 최고인듯요. 제가 요즘 복싱만화 카츠를 보고 있는데 우리 마형사도 복싱수업 좀 받은듯요. 아, 그리고 고배우! 초롱이 연기 아주 괜찮았어. 은근 잘 어울려 ㅋ. 마지막 쿠키영상에 반가운분 등장하니까 놓치지마세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짠한 캐릭터들의 우주적 난장판에서 어른거리는 예수의 얼굴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의 대성공 이후 쉼 없이 극장문을 두드리고 있는 마블 영화들의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 2019년 개봉해 국내 약 1,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 흥행 성적 약 28억 달러(!)를 기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정점이었다. 마블을 인수한 디즈니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디즈니플러스에서 챙겨 봐야 할 마블 시리즈가 늘어날수록 MCU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을 되살렸다. 그렇다면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이란 무엇인가? 탄탄한 세계관, 눈이 즐거운 액션과 비주얼, 과하지 않은 유머, 감동과 페이소스, 영화관을 나오며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토리... 사실 이것은 '마블 영화의 고유한 매력'이라기보다는 성공한 액션 블록버스터들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마블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와 관계성' 덕분일 것이다. 마블의 캐릭터들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결핍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은 마블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짠하다. 그중에서도 '로켓(브래들리 쿠퍼)'은 가장 큰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이런 로켓의 과거사와 현재를 오가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을 위기에 처한 로켓을 살리기 위해 친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다. 친구들은 로켓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로켓이 옛날에 얼마나 불행한 일을 겪었는지 모두 알게 되고 진심으로 공감한다. 결점투성이인 친구들이 종족의 벽까지 허물고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제임스 건 감독의 개성이 묻어나는 난장판 액션 시퀀스도 백미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썼어야 할 제작비 중 일부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에 추가 투입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투와 공중전의 비주얼이 훌륭하다. 크리쳐물의 느낌이 나는 장면도 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결말부에서는 성경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예수의 얼굴이 어른거릴지도 모르겠다. '마블다운 영화'에 안주하지 않고 동물권, 아동권, 대안가족의 메시지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골계미, 비장미, 그리고 숭고미가 느껴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본부 이름은 "Knowhere"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마블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깨달은 것 같아 반갑다. 로켓의 명대사 "I'm done running(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끝) #가디언즈오브갤럭시 #제임스건 #마블 #GUARDIANSOFTHEGALAXY #JamesGunn #Marvel
영화"위플래쉬"에서 종종 오해받는 인물
위플래쉬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플래쳐교수와는 반대로 주인공에게 광기를 요구하는  음악을 걱정하는 인물로 해석되곤 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인물도 플래쳐와 막상막하의 막장인물임.  앤드류는 종종 홀아버지와 영화를 보곤한다. 하지만 관람영화는 아버지 취향의 고전영화.  앤드류는 영화에 대한 관심이 없지만 주기적으로 반강제 영화를 관람한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면모와 아직 주인공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표적인 씬.  영화를 관람하며 먹을 팝콘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잔뜩주문하고선 먹어보라고 권한다.  여기까지는 거진 감독이 순한맛으로 넣어놓은 장면들이지만 아버지의 이런 성격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임. 당장에 테이블 좌석의 배치에 주목해보자.  화면을 마주하는 상석엔 삼촌이 앉아있고 집의 주인이자 식사의 호스트인 아버지는 화면 구석에 쳐박혀있다. 앤드류는 조명도 제대로 못받고 있으며 남성들무리 정 반대에 홀로 배치되어있는 인상을 준다.  대화의 내용도 가관인데 삼촌은 시종일관 앤드류의 음악을 무시하며 아버지는 그런 삼촌의 조롱을 오히려 맞장구치는 비굴함을 보인다.  (나중에 앤드류가 플래쳐에서 인정받기 시작하고 부성애의 대상을 플래쳐로 결정하고 나서는  동일한  장면에서 삼촌과 사촌들을 신랄하게 깐다.) 작중 내내 아버지의 역할은 주인공의 음악적인 자질과 능력,성공을 의심하고 과소평가하는데 치중되어있다.  본인의 실패한 소설가 인생을 아들에 투영해서 계속 잡아두려는 가스라이팅과 정서적인 학대를 가하는 인물이 바로 이 아버지인데 대체로 관객들은 예술계의 학대에 가까운 교육에 집중하느라 플래쳐의 반대에 있는것 "같은"아버지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듯. 플레쳐가 하도 강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아빠가 가려졌는데 지금 보니 아빠도 애 망치는데 한 몫 했던 것 같아서 가져와봄.. 가족 식사장면에서 친척들이 앤드류 깔보는데 뭐라고 하진 못할망정 가만히 입 닫고 있다가 앤드류가 반격하니까 친척들 편들고 앉았음ㅋㅋ 출처 : 루리웹 저도 영화 보는동안 아버지 캐릭터가 의아했습니다. 앤드류가 음악을 포기하길 바라는 눈치라.. 그것도 아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실패하길 바라는 느낌? 감독이 말하길 주인공은 결국 약물중독으로 자살할 것이라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