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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올해의 워커홀릭

누군가 한 사회적기업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이 많은데 대체 퇴근은 언제 하세요?” 질문을 받은 사회적기업가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고, 이내 사업하는 사람에게 출근과 퇴근이 따로 어딨냐는 답을 돌려주었다. 사업과 개인 삶이 도저히 분리될 틈이 없는 것. 이는 절대 비단 몇몇 대표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일 중독’ 아니냐 말하기엔 그들의 삶은 다분히 매력적이다. 올 한해도 수고한 그들의 삶을 돌아보며 작은 응원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1. 매일 밤 10시, 아이들이 잠든 후 그녀가 움직인다
"매일 밤 10시, 아이들이 잠든 후 40대 주부가 향하는 그곳은?" ‘충격, 경악, 헉’ 같은 낚시성 감탄사가 뒤따를 것 같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애석하게도 광고성 인터넷 기사가 좋아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우리 나이로 10살, 12살 남매를 둔 임신화 이사장은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두 자녀가 모두 잠든 뒤에야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그 시간은 보통 밤 10시. 몇몇 서류작업과 수업 준비를 마무리 하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다고 그녀의 낮 시간대가 개인적인 업무로 채워져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낮에는 종일 외부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치료실을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업무는 자연스레 모두가 잠든 저녁 시간으로 밀리기 마련. 출근이 밤 10시라면 퇴근이 따로 없는 삶인 셈이다.
임신화 이사장을 보면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직장 동료들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을 한없이 불태우고 있다. 그녀가 이토록 쉼 없이 달리는 이유는 단 하나. 더는 '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장애아동 부모의 꿈’이 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장애아동 양육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부모의 몫으로 돌아오는 대한민국에서 그녀는 최초의 한국형 공동체 캠프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부모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두고 맘 편히 여행도 다니고 눈도 먼저 감을 수 있는 세상. 이를 위해 오늘도 세상의 모든 장애 아동 부모를 대신해 달려나가는 그녀를 응원한다.
2. 인생은 스겜스겜
1년 과정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창업팀이 알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적지 않은 창업팀이 육성사업이 끝날 무렵에야 법인 등록을 마치거나 간신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열린 게임 공간을 운영하는 ‘모두다’는 그런 면에서 도저히 갓 창업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팀이었다.
게임이 너무 좋아 게임 회사에 들어갔지만, 발달 장애인은 대부분 살면서 한 번도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직접 게임 공간을 차린 여자. 모두다의 박비 대표는 인생도 마치 게임처럼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터뷰 당시 꽤 다양한 퀘스트를 동시에 깨나가고 있었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받으며 서너 개의 지원사업을 추가로 진행 중이었으며 KAIST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여기에 하나 더, ’게임 골라주는 여자’, 일명 게골녀라는 이름으로 기고하는 정기 칼럼까지. 넥슨 판교 사옥의 유리 한 장은 자기가 해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던 그녀가 요즘에는 게임을 할 시간도 없다는 말이 전혀 농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박비 대표는 모두다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꼭 게임을 하고 가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나를 돌려세웠다. 그녀의 선택은 보드게임, 스플렌더. 예상대로 그녀는 고수였고 세 명의 플레이어 중 나는 꼴찌였다. 패배를 직감한 그 순간 한 판 더를 외치고 싶었지만, 중간중간 ‘스겜스겜’을 외치던 그녀를 떠올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비록 나는 인터뷰 이후 두 계절이 지나도록 모두다를 다시 방문하지 못했지만, 벌써 3호점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모두다의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그 비결이 어디 있는지 너무 쉽게 알 것만 같다. 빠르고 승부에 강하지만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 박비. 앞으로도 그녀의 행보를 기대한다.
3. 이 바쁜 남자가 사는 법
2014년 가을, 2015년 여름, 2016년 가을. 일을 시작한 후로 1년에 꼭 한 번씩은 카페형 심리상담소 토닥토닥 협동조합의 이영희 대표를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가장 스케줄을 잡기 어려운 인터뷰이였고 나 역시 매년 또 연락한다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는 정말 잘 나가는 걸,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그를 사랑하는걸.
이영희 대표는 한 달에 보통 30회 가까운 러브콜을 받는다고 말했다. 연말이면 그 수는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10월 말 간신히 그를 만났을 때 듣기로 11월에는 이미 17개의 강의가 잡혀있다고 했다. 그나마 거르고 거른 것이 그 정도라니 그의 스케줄이 분초 단위로 쪼개져 있으리란 건 보나마나였다. 그 많은 강의와 상담과 회사 운영을 소화해 내는 그를 보면 나도 모르게 늘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 그런데 3번째 그를 만나고서야 그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3번째 그를 만난 인터뷰는 10명을 훌쩍 넘기는 전 직원이 함께하진 못했지만, 7명의 토닥토닥 사람들과 이영희 대표를 함께 만난 자리였다. 각자 맡은 업무도 나이도 다양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토닥토닥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행복한 곳이라고. 출근하지 않을 때도 신경 쓰이고 언제나 어디서나 잘 되길 바라는 곳이라고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그들은 정말 마음을 다해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이런 직원들이 있으니 어찌 대표가 멈출 수 있을까. 반대로 그가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이유 역시 믿음직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직원들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3번째 이영희 대표를 만나고 돌아서는 길. 그에 대한 내 바람 역시 한결같다.
“대표님, 빨리 서울에도 토닥토닥협동조합 만들어주세요!”
에디터 이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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