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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올해의 핫플레이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만나는 길이다. 나의 방식이다. 글을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공간으로 들어가고, 주제 넘게 그 안에 담긴 삶을 엿본다. 그렇게 살다 보니 뭔가에 무심해 지는 게 참 어렵다. 숨겨진 이야기가 듣고싶다. 해방촌, 명동, 광화문, 안산, 전주. 그 '핫'한 공간에서, 단 한사람의 삶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이들을 관찰했다.
@해방촌
추운 겨울,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달달한 핫초코를 마시는 상상을 한다. 해방촌은 그럴 때 생각나는 곳이다. 적당히 붐비고, 잔잔한 노래가 나오는 조용한 카페. 가끔 여기가 외국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가파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벌써 몇십년 째 터를 잡고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 있다. 카페가 아니라 평상에서, 핫초코가 아니라 막걸리를 마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일상이 펼쳐지는 곳. 70년대 니트를 팔며 번성했던 해방촌은 주변 도시재개발에 밀려 서서히 쇠퇴했다. 반갑게도 서울시는 '니트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아트마켓'으로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 중심에 있는 해방촌 오거리 밑 신흥시장으로 젊은 예술인과 지역 니트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신흥시장 내 아트스페이스원에서 열린 니들앤코의 ‘니트, 스타일의 해방을 말하다' 전시는 바로 그 시작이었다. 새롭고 낡은 것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
@명동
전국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기로 소문난 명동. 외국인 관광객과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곳이, 외국인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인상을 결정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 10월 명동CGV에서 열렸던 '프라이드영화제'는 더 반가웠다. 눈에 띄지 않게 쉬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지역에서 누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했다는 점은 의미있었다. 영화제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 12월 6일 법원은 또 한번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법적혼인인정 요구를 또 한번 좌절시켰다. 영화제는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 될 것이다. 동성애 논란은 언제나 뜨겁지만, 당신이 <캐롤>이나 <데니쉬걸>같은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면 2017년 개최될 프라이드영화제 역시 기대해 볼만 하다.
@광화문
지나가는 사람에게 올 한해 어디가 제일 핫플레이스였냐 물으면 열명 중 아홉명은 광화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퇴진. 시간이 지나면, 날씨가 추워지면, 비가 오면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은 촛불은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졌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화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시민들은, 한 단계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줬을뿐만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들게 했다. 우리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광장의 모습은 2016년 겨울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
@안산
우리는 자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지 잊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회사나 학교를 가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혹은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에 인생을 터는 그 일상이 주는 반복은 가끔 지루함을 준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매일같이 안간힘을 쓴다.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지역 주민들의 쉼터 '꼬두물 정류장'이 그렇다. 꼬두물 정류장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소금버스는 세월호 참사 이후 끝도 없이 소란했을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2년 동안 다양한 치유활동을 벌여왔다. 정류장은 목적지로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는 공간이자, 저 마다 다른 사연을 안고 같은 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꼬두물 정류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작은 응원을 보낸다.
@전주
음식하면 역시 전라도, 그 중에서 전주를 빼놓을 수 없다. 각종 SNS를 도배하는 한옥마을의 길거리 음식,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보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전주행 기차표를 끊고 있다. 남부시장 2층에 자리잡은 청년몰은 그렇게 계획한 전주 여행에서 발견한 보석같은 곳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와 공방, 이색적인 식당과 카페로 이미 젊은층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곳은 사실 청년들이 힘을 모아 전통시장을 살리고 지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나가기 위해 꾸린 공간이다. 이들이 내세운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슬로건은, 사회적 통념을 버리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 나가기 위한 목표의식이다. 우리는 아프니까 청춘도 아니고,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삶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올 한해 고생많았을 청춘들, 수고했어 오늘도.
에디터 성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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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뉴스 #더] 물보다 연한 피…재벌가의 ‘의상한’ 형제들
‘태정태세문단세…’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태’는 태종, 우리가 잘 아는 이방원이다. 그는 두 차례 ‘왕자의 난(亂)’을 일으켜 이복형제와 정적을 축출,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됐다. 눈앞의 권좌에 앉고자 피를 나눈 가족마저 짓밟는 이 같은 사건을 우리는 국사나 세계사 책에서 적잖이 봤다. 물론 흘러간 일만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하나의 권력을 두고 가족끼리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양 치고받는 사건들은 익숙하다. 다행히도, 중세시대마냥 목숨을 직접 빼앗지는 않고 있지만. 가장 가까운 사례는 한진그룹의 일명 ‘남매의 난’이다. 지난해 4월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후 그룹을 이끌고 있는 건 조원태 회장. 집안 막내인 조현민 전무도 ‘물컵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지 14개월 만에 만에 한진칼 전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만은 예상과 달리 지난 11월 정기인사에서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다 조 회장이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이 애착을 보인 호텔 쪽을 정리하려 들자 억지 봉합이 터진 것. 조 전 부사장 측은 연말 성명을 내고 “조 회장이 공동 경영 유훈과 달리 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작심 지적했다. 이후 조 회장이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가 큰 언쟁을 벌이는 등 남매의 전선이 집안 전체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물론 모자(母子)는 곧장 사과문을 발표했고 남매 간 만남도 성사될 전망. 그러나 핵심 권력은 하나, 유훈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다른 만큼 한 번 뒤틀린 이들 두 사람이 레고마냥 쉽게 끼워 맞춰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이렇듯 재벌가 다툼은 대개 총수의 유산, 즉 경영권을 나누는 과정에서 발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 경영 유훈을 남긴 조양호 전 회장도 선친인 조중훈 창업회장의 별세 후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형제인 차남과 4남이 유언장 조작설을 제기하며 소송을 거는 등 ‘형제의 난’ 한가운데 서있었던 것. 그렇다고 한진가 혼자 유별난 건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들 상당수는 각종 ‘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 범현대가에서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건강이 심상찮던 2000년부터 경영권 분쟁이 시작,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갈등을 겪었고, 정몽헌 회장 사후에는 부인인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간에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일명 ‘시숙의 난’이 터졌다.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던 현대중공업그룹이 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시동생의 난’이라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롯데가 형제도 유명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그룹 주도권을 놓고 긴 싸움을 이어온 것. 다만 지난해 일본의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개최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신 회장과 롯데홀딩스 이사진의 재선임안이 원안대로 통과, 신 전 부회장의 이사직 복귀가 물건너가면서 신동빈 회장 원톱 체제는 굳어지게 됐다. 두산그룹 역시 고 박용오 전 회장이 2005년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 대해 경영상 편법 활용으로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 형제의 난 역사 중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이후 1년 7개월간 계속된 법정 다툼은 박용성·용만 형제의 특사 후 경영 복귀, 박용오 전 회장의 퇴출로 막을 내렸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을 떠나보낸 금호그룹도 마찬가지. 고 박인천 창업회장의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 박찬구 회장의 형제 분쟁은 금호그룹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놨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한테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고 이병철 창업회장과 장남인 고 이맹희 회장이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밖에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인 조현준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한 효성그룹판 형제 반란도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모태인 동아제약 시절 강신호 명예회장과 차남 강문석 전 대표의 갈등, 즉 ‘부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대한전선그룹 또한 고 설원량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자 이복형제들이 반발, 부자의 난을 겪은 바 있다. 대림그룹의 경우 이복 삼촌-조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숙질 전쟁’을 펼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난’을 거치지 않은 재벌가가 단 하나라도 존재할까 싶을 정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그룹사의 구조적 특성상 노른자위는 1인자가 독차지하기 쉽다”며, “창업 세대에서 2-3대로 넘어갈수록 파이를 나눠먹을 인원이 늘어나 가족 상잔 비극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물론 눈살 찌푸려지는 사례만 있었던 건 아니다. SK, LG, GS, 신세계 등 도드라지는 분쟁을 삼가온 곳들도 있다. 심지어 앞서 소개한 금호그룹의 경우, 3남과 4남이 싸우기 전에는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이 본인이 65세가 된 해에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그대로 물려주며 ‘아름다운 우애’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나아가 삼천리그룹을 세운 고 유성연·이장균 회장 콤비의 사연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절절하다. 한국전쟁 전후 목숨 부지조차 힘들었던 시절, 서로 의지하며 버틴 두 사람은 그 인연을 바탕으로 훗날 동업을 일궜다. 이후에도 합리적이고 절제된 공동 경영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고,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았음에도, 한 지붕 두 가족 인연은 여전히 끈끈하다. 맹자의 사단(四端) 중 하나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이란 게 있다. ‘인간이라면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뜻. 퇴계 이황 선생은 기세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죽기로 의리를 지키는 것에 진정한 용기가 있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국민 다수가 눈여겨보는 가문의 구성원이라면, 특히 지금의 그 자리를 본인 능력으로 쟁취한 게 아니라면, 꼭 새겨둬야 할 덕목들이 아닐까. 그래야 피는 물보다 진한 ‘척이라도’ 하지 않겠나. 그 기업에 그쪽 집안사람들의 수고 외에도 수많은 노동자의 시간들이, 나아가 국민의 공(功)이 스며있음을 안다면 말이다.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