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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올해의 편견

깨달음은 항상 늦다. ‘그때 그러지 말았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말 걸’... 올해도 역시 후회로 가득찼다.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나의 편견으로 누군가, 무엇에 대해 섣불리 판단했던 일들이다. 나의 쉬운 말과 행동으로 소중한 친구, 가족, 동료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가 되었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 편견은 나를 갉아 먹었고, 타인에겐 상처를 줬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편견을 이겨낸 홍석천은 편견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실된 모습을 알려고 노력하면 상대방의 새로운 걸 볼 수 있다”고. 그렇다.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편견을 마주해야 한다. 2016년, 한 해 동안 만났던 '내 안의 편견'을 소개한다.
1. 일에 대한 편견
아파트 상가 아래 어둑한 지하, 제대로 된 출입문조차 없었다. 높게 경사진 계단으로 내려가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대형 선풍기였다. 바로 이곳이 ‘퀸즈’의 사업장이었다. 넓은 공간에서 ‘우-웅’하고 대형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직원을 크게 불러봐도 각자의 일에만 충실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포장업체라고 생각했다. ‘공장에서 생산된 영유아복 제품을 받아 박스로 포장한다’는 퀸즈의 비즈니스는 마땅히 직업이 없는 여성들이 할만한 일자리로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저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내 그 짧은 생각을 고쳐야 했다. 그들에게 퀸즈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족, 자신의 꿈, 자신의 소중한 어떤 것을 위해 진정으로 정성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운 것은 내 쪽이었다.
직업은 귀천일 수 없다. 일의 가치는 행하는 사람으로 비롯되는 것이지, 절대 하는 일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단순한 일’이라는 말은 노동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은 쓸 수 없다. 허드렛일의 수치를 겪어 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들의 삶 켜켜이 쌓여있는 서러움을 알고 있었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 ‘퀸즈’와 그 안의 직원분들은 나를 반성케 했다. ‘웃어요’ 외치는 사진가 앞에서 그들은 수줍게 웃고 있었고, 그 안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나 사회적기업 퀸즈를 응원하겠다.
2. 생리대에 대한 편견
비닐에 넣을까? 계산하고 바로 가방에 넣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더 이상하게 보이려나? 역시 검은색 비닐에 넣어야겠지? 그래도 모양 보면 뭔지 다 알텐데… 다른 과자를 같이 넣어 아닌 척 할까?
생리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진열대 앞에 섰을 때, 친구에게 생리대 사 오라고 부탁받았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만 찍으면 되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찍으면 된다. 하지만 이내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필 그때 여고생 두 명이 옆 테이블에 앉았고,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생리대 사진 찍는 남자와 여고생이라니.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훔치듯 사진 찍고 편의점을 도망쳐 나왔다. 찍힌 사진은 초점도 맞지 않고 구도도 맞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찰칵’하는 폰카메라의 촬영 소리는 그날따라 더 크게 들렸다.
왜 그렇게 나는 망설였던 것일까? 아마 내가 은연중에 거리를 두려 했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는 오직 여성의 물건이기에 남자인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어떤 편견이었다. 아무리 저소득층 여성들의 생리대 문제를 전하고 그 대안으로 반값 생리대 등을 알려준다 해도, 나는 그저 전달자일 뿐이었다. 마치 해결되면 좋겠지만, 안되면 말고 식이었다. 여성들에게 생리대는 직접적인 고통이고, 인격의 연장선이며, 삶 그 자체임에도 말이다.
뇌공학자 정재승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공감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라고 한다. 즉, 공감할 수 없다면 아직도 모르는 것이고, ‘이렇게 힘들구나’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생리대에 대한 편견의 발견으로 ‘여전히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준 생리대 사진은, 내 안의 편견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3. 새터민에 대한 편견
편견은 대개 경험에서 비롯된다. 경험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전부로 자리 잡는다. 그것이 편견의 무서운 점이다. 부분의 경험으로 전체를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편견'을 자신만의 ‘관점’이라고 꾸며 부르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고백건대 그동안 몇 번의 경험은 새터민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만들었다.
처음에 새터민 사장이 운영한다는 한백원도 그랬다. 가죽으로 지갑이나 가방을 만든다고 하지만 제품 수준은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새터민 관련 기업 정도로만 판단했다. 그러나 편견은 경험으로 깨어진다. 새터민에 대한 나의 편견은 한백원의 원정옥 대표가 없애주었다.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닌, 한 명의 사회적기업가였다. 가죽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이끄는 사장님이었다. 백화점에서 입점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로 가죽제품의 질은 좋았다. 또 직원들과는 신의 있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듬직한 아들의 엄마였다. 마을의 가난한 이웃집 아줌마, 외면받는 새터민 모아 같이 일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된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편견은 쉽게 뽑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구석이라면 원정옥 대표다. 그녀는 온몸을 던져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고 있다. 그녀가 곧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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