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FIT
100+ Views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무엇으로 사는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껏해야 삼십 대 초반, 아직 '이렇게 예쁜' 케이티는 결국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치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간신히 아이들 몫의 저녁을 마련할 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풋사과를 한입 가득 베어 물며 엄마는 이거면 된다고 말하는 여자. 피부색이 다른 두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헤일리 스콰이어가 연기한 케이티는 제목부터 주인공이 누구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뚜렷하게 드러내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보다 내 시선을 더 빼앗는 인물이었다. 첫 번째 남편도 두 번째 남편도 알고 보니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말하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전기세를 낼 돈도 없는 낡은 주택. 얼마 전 본드로 붙여준 신발 밑창이 또 떨어져 친구들이 놀린다고 조심스레 고백하는 어린 딸, 2년간 단칸방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는 동안 심한 ADHD 증세를 보이게 된 그보다 더 어린 아들뿐이다.
희망이라고는 두 눈을 씻고 돌아봐도 찾기 힘든 상황.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녀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다니엘보다는 케이티에게 더 눈길이 갔듯 다니엘 역시 복지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방문한 센터에서 그녀를 처음 만날 날부터 계속해서 그녀를 돕기 시작한다.
40년 목수 경력을 살려 케이티의 딸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주고 무료 식료품 배급소를 소개해주는 일. 자신도 정부의 지원 없이는 살기 힘든 처지에도 불구하고 전기세를 내지 못해 얼음 냉골인 케이티의 집에 약간의 돈을 놓고 오는 다니엘의 행동은 원칙만을 강조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와 대조되며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문호 톨스토이는 일찍이 그의 저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답을 '사랑'이라 말했다. 벌거벗은 채로 버려진 미카엘을 집에 들여준 구두장이 시몬의 호의와 엄마를 잃은 쌍둥이를 거두어 기른 한 부인의 정성.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그 친절은 '사랑'이란 이름 아래 여전히 사람을 살게 한다.
어쩌면 허기를 참지 못하고 식료품 배급소에서 받은 통조림을 그 자리에서 뜯어 입에 넣기 바빴던 케이티를 살게 한 것도 다니엘이 보여준 '사랑'이 아니었을까. 동시에 그 사랑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주장하며 불합리한 제도에 항의하다 생을 마친 다니엘이 없는 케이티의 삶을 걱정하게 한다.
다니엘이 없는 세상, 케이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인의 선의, 선행, 사랑에 기대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는 삶. 나는 그것이 인간을 존중한 제도의 마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실제 혜택을 받는 수혜자를 존중하는 제도 말이다.
얼마 전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깔창, 신문지 등으로 이를 대신한다는 기사가 난 후 무료로 생리대를 지급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공짜 생리대를 받기 위해 청소년들은 직접 보건소를 방문해 가난을 증명하고 생리대를 받아가야만 했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제도에 대한 한 차례 비난이 쏟아진 후로 복지부는 이메일로 신청서를 받거나 여성 공무원이 별도 공간에서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으며, 대리수령이나 가정방문 등의 방식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그만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변화도 사람에서 시작된다. 감독 켄 로치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잠식하는 사회와 제도를 이야기한 이유 역시 같을지 모른다. “더 많은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 안에 함몰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자.”
Comment
Suggested
Re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