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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채권

‘부실채권’이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줬지만 원리금과 이자를 제 날짜에 갚지 못해 묶여 있는 돈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빌려준 돈 가운데 떼일 확률이 높은 돈을 부실채권이라 부른다.
※ 채권이란 '받을 돈'을 어렵게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부실채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금융사의 대출은 이자와 원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는가를 기준으로 △정상(normal) △요주의(precautionary) △고정(substandard) △회수의문(doubtful) △추정손실(estimated loss)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하여 돈을 관리한다.
정상은 이자 납입과 원금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를 말하며, 요주의는 주의가 필요한 대출금으로 짧은 기간(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연체되는 경우다. 고정이란 3개월 이상 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돈을, 회수의문이란 사실상 떼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돈을 의미한다. 추정손실은 확실하게 떼인 돈, 즉 담보가 턱없이 부족해 회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돈을 의미한다. 여기서 부실채권은 정상
(normal)을 제외한 나머지 4개를 포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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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시체더미, 니벨 공세
저는 서부 전선에서의 주요 공세 중 굵직한 사건들인 베르됭, 솜, 니벨 정도의 전투만 다루긴 했지만 당연히 이 전투들이 끝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에 걸쳐서, 수십번의 공세와 수백번의 전투들이 있었고 전투 하나하나마다 수천에서 수만명의 목숨이 하루만에 날아갔죠 이 시기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무려 전 유럽에서 한 세대가 전부 증발해버렸을 정도였으니까요 뭐 운이 나빠서 총 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전쟁 나가서 다 죽어버린 겁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옆집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 옆옆집 아들도 죽고 옆 마을에선 살아돌아온 젊은 애들이 없대요 아는 친척네는 아들만 5명인 아들부자 가족이었는데 그 아들 5명이 하루만에 다 죽고 부모님은 울다가 자살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비록 초기에는 히틀러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해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전개를 알고 있는 현대인들의 생각이고, 당시 사람들이었다면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깟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넘겨주는 대신 그 지옥 같은 전쟁이 내 아들 세대에서 한번 더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00번이라도 더 넘겨줬을겁니다 니벨을 그래도 기어코 변호하자면, 애초에 정치인들과 파벌싸움이 작전에 영향을 준 것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정치가 군사에 끼어들어서 잘된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2차대전 때 히틀러의 예시를 보시면 잘 아시겠죠 그리고 의외로 전과를 보면 니벨 공세는 독일군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 전투였습니다 협상국이 독일에 비해 2배 가까이 학살당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안 그래도 무너지기 직전의 독일군의 소모를 강요한 전투는 맞았습니다 (출처)
[TED] 6개월 안에 외국어 익히기 테드영상 내용정리 캡처
강의자 : Chris Lonsdale 교수 이 교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엄청나게 흥미와 관심을 가졌다고 함 11살에 소련의 학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수면학습기를 도입해 볼 정도로요. 그러다가 1980년대에 중국에 갈 일이 생기고, 당시 모든 외국인들이 극악의 언어이자 10년을 배워도 못 배울 언어로 여기던 중국어를 2년 내에 하겠다고 결심 결국 중국어를 익혀서 6개월 정도에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고, 모국어 수준으로 하기엔 1년 정도가 걸렸음 그러나 자기 말고 다른 외국인들은 여전히 중국어를 익히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고,  이걸 지켜보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을까?'의 의문은 '어떻게 하면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을까?'로 바뀜 그 의문에 답하는 과정은 성공적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들의 사례를 모형화하는 작업을 15~20년을 거치면서 나왔고, 아래에 나오는 원리들을 제대로 적용한 사람은 재능이나 사는 나라가 언어 관련국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그동안 실패하던 언어들을 정복하게 됨. 그럼 이제 외국어를 6개월 내에 익히기 위한 5가지 원리와 7가지 행동요령을 알아보자 첫 번째 원리는 주목, 의미, 연관성, 기억인데, 이걸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존'에 관련된 것은 주목하게 되고 의미를 띠며 연관성을 급속히 가지게 되고 기억도 잘 됨 그 사례로 곰이 주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을 무시했다가 곰을 마주쳐 살아난 사람은 앞으로는 그 표식을 절대 잊지 못한다는 것과, 9개월간 일주일에 두번씩 학원까지 다니며 중국타자를 배웠지만 못 치던 동료가 업무적으로 중국어교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닥치자 48시간 내에 중국타자를 치게 된 일을 말함 즉, 자기가 연관된, 자기가 흥미를 가질 만한 언어를 익혀야 하고 이게 안 된다면 자기와 연관되게 만들고, 자기가 흥미를 가질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 두번째 원리는 내가 배우는 언어를 도구화하여 그날부터 바로 사용하라는 거. 그 예로 교수는 중국에 갔을 때 횡단기차 안에서 밤새 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중국어 듣기능력이 바로 향상된 사례를 말해줌. 세 번째 원리는 이해해야 습득하게 된다는 거. 이게 무슨 상황에 쓰이는 낱말인지 이해를 한 후에 사용하라는 이야기인 것 같음 아래 표는 보라색: 문법과 교육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 초록색: 이해 가능한 접근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의 언어 습득 정도를 나타낸 표. 아래 행동요령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옴. #3이라고 돼 있는데 아무래도 네 번째 원리의 오타 같음.. 언어는 학습이 아니라 운동과 같은 생리적 훈련에 가깝긔 때문에 몸으로 익혀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얼굴이 아파야 잘하는 거라고(?) 원리 중 다섯 번째는 바로 '상태가 중요하다'=기분 좋은 상태에서 배우라는 거. 여기서는 특히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기를 쓰지 말고 애매모호한 것도 관용적으로 넘기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배우라는 것을 강조. 그렇다면 이 원리를 가지고 실행에 옮겨야 할 7개의 행동은? 첫째, 많이 듣기 자막에도 있는 것처럼 두뇌를 그 언어에 담그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언어를 계속 듣게 되는 환경을 만들라고 둘째는 위에 있는 원리랑 비슷하게 의미 중심으로 익히라는 이야기 단어암기보다 그 낱말이 쓰이게 되는 상황 자체를 생각하라는 말 같음. 아기들이 하듯이 아는 단어들을 섞어서 말을 만들어보래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익히는 거라면서요. 주어 10개, 동사 10개, 형용사 10개를 익히기만 해도 1000개의 문장을 만들 수 있으니 무작정 섞어보라고 함. 언어는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3000개만 알면 그 언어의 98프로를 할 수 있다고 함. 그러려면 주별로는 아래의 순서대로 익히면 좋음. 첫째 주에는 언어를 익힐 때 물어보기 이해 필요한 단어들을 익힘. "이해가 안 가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건 어떻게 말해요?" 등등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걸쳐서는 간단한 대명사, 부사, 동사, 형용사를 익힘. 셋째주와 넷째주에 걸쳐서는 논리적으로 이어주는 말들, 예를 들어 '그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래서' 같은 말들을 익힘.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됨. 다섯 번째는 언어의 부모를 찾아서 곁에 두는 거 모든 어린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거치는 과정처럼요. 외국어 부모는 4가지의 자질을 갖추면 좋음. - 당신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 - 당신의 실수를 고쳐주지 않는 사람 -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했는지 올바른 언어로 말해주는 사람 - 내 수준에 맞는 낱말을 사용해서 말해주는 사람 여섯 번째는 언어는 얼굴근육을 사용하는 운동과 같은 신체훈련성 활동(학습활동이 아님)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잘 보고 얼굴모양을 흉내내야 함. 마지막 7번째 행동은 낱말을 익힐 때 모국어로 한 번 중간에 의미해독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바로 이미지화해서 즉각적으로 접근해야 함. 즉 fire=불이 아니라 fire= 이런 식으로요. 출처 새해엔 영어공부를 !!
고대, 중세 동아시아 건축물 대다수가 남아있지 않는이유
중국은 이미 한나라 시대(기원전3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고층 건물이 지어졌어. 근데 왜 남아나지 않았을까? 고중세 건축이 남아나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재료야. 동아시아에선 유난히 건물에 목재를 자주 사용했는데, 목재는 불에 잘 붙기 때문에 고대 건축 대부분이 불에 불타 사라졌고,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은 후대에 재건한거야.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은 7세기에 지어진 일본의 호류지라고 해. 1049년에 재건된 우국사의 "철탑".56미터의 높이를 자랑해. 원래 자리는 목탑이 있었는데 번개에 맞아 전소되었기 때문에(...) 불에 붙지 말라고 벽돌로 지었어. 비슷한 예시론 한국의 황룡사가 있어. 1012년에 재건되었고,60미터를 넘는 높이로 추정되는데, 원나라때 몽골군이 불붙여서 태워버림 사진은 황룡사 유적에서 발견된 2미터짜리 치미. 이는 중국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냐. 동아시아중 고건축이 제일 잘 보존되어있는 일본도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 16세기 즈음에 재건된거야 대표적인 예시가 토다이지.너비 57, 길이 50, 높이 49미터크기의 현재 남아있는 대불전보다, 12세기 재건된 대불전은 50%가량 더 컸었다고해. 70미터를 넘는 목탑도 2개나 있었는데, 지진때문에 박살남 그렇다면 고대와 중세, 가장 높았던 탑은 어디일까? 정답은534년에 지어진 영녕사야. 240미터를 넘는 높이라는 기록도 있긴한데... 당연히 짱개식 구라고 사학자들은100미터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동로마제국과 이집트를 포함해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중 하나였던거지. 근세에 들어서도, 화재는 지속적으로 동북아 건물들을 괴롭혔어. 대표적으로,59미터높이의 천수각을 자랑하던 에도성은 1657년, 1873년에 대화재가 일어나 재로 변해버렸어. 지진과 화재는 일본 건축가들은 괴롭히던 문제였는데, 일본 중세/고대 건물의 내진설계가 발달한 이유도 지진에 유실된 문화재가 워낙 많으니까야. 잠깐, 중세에 내진설계가 무슨말이냐고? 맞아. 일본은 고대부터 내진설계가 고도로 발달되어왔어. 콘크리트 건물도 파괴된 한신 대지진때, 400년전에 지어진 효고현의 이치죠지가 살아남은 사례만 봐도 알수 있지. 자연재해 외에 다른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야. 중국은 청나라를 제외하고는, 왕조가 교체될때마다 기존의 궁궐가 문화재, 기록들을 태워버리는 악습이 있었는데 수나라때 황제의 명 아래 초토화되는 등 우여곡절을겪은 난징이 대표적인 예시야. 그뿐만인가? 아편전쟁, 위화단운동, 중일전쟁, 문화대혁명등 온갖 개지랄이 일어나던 중국 근현대사에 명나라 청나라 유적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18세기에 서양건축을 모방해서 지은, 청나라 황제의 원명원도 2차아편전쟁때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털어먹고 불을 질러서 파괴돼. 3번째 이유도 중요해. "왜 동양건축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작아졌는가" 를 설명할수 있거든. 목재의 공급이 힘들어져서야. 왜냐? 사람이 많을수록 난방도 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농사지으려고 땅도 개간해야 하니 나무를 베게되거든. 특히 이씨조선의 경우, 온돌 뗀다고 사람들이 사방팔방 나무캐러 다녀서 산이 전부 요따구로 변해버려(북한은 아직도 이럼) 강철제조법을 습득한 유럽 근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지만 (독일은 원래 로마시절, 중세까지는 숲으로 덮여있었음), 얘네들은 나무만으로 건물을 짓는게 아니여서 건물이 작아지지 않았던거야. 그러므로 앞으론 "우리 조상님은 2층건물도 못지었구나"...가 아니라 아, "나무가 없어서 복층건물을 못지었구나!" 라 생각하는게 어떨까? 도시갤러리 ヨゾラ님 펌
우울하고 무기력한 당신이 읽어볼만한 테일러 스위프트 앨범 소개글들.jpg
테일러가 가사 잘 쓰는것도 유명하지만 머릿말들이 너무 좋아서,,, 각 앨범의 머릿말마다 앨범에서 뭘 보여주려는지 느껴지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해서 읽어보길 추천! 갓구팔구 1989  (Blank Space, Shake it off 외) 2014 이 노래들은 한때 거의 제 인생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당신의 것이죠.  I was born in Reading, Pennsylvania on December 13, 1989. 저는1989년 12월 13일 펜실베니아 레딩에서 태어났어요.  In the world we live in, much is said about when we are born and when we die.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말해요.  Our birthday is celebrated every year to commemorate the very instant we came into the world. 우리의 생일날은 매년 우리가 세상에 온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축하받아요.  And a funeral is held to mark the day we leave it. But lately I've been wondering... 그리고 장례식은 우리가 떠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열리죠. 그렇지만 최근에 제가 궁금해했던 것은.... what can be said of all the moments in between our birth and our death? The moments when we are reborn... 우리의 삶과 죽음 사이의 모든 순간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태어났던 순간들은.... The debate over whether people change is an interesting one for me to observe because it seems like all I ever do is change. 사람이(테일러가) 변했냐는 것에 대한 토론은 제가 보기에는 흥미로운 주제에요,  왜냐면 제가 변하기 밖에 안한 걸로 보이거든요.  All I ever do is learn from my mistakes so I don't make the same ones again. 제가 배운것이라곤 제 실수들로부터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게끔 한 것 뿐이에요.  Then I make new ones. I know people can change because it happens to me little by little every day.  그리고 전 새로운 것들을 만들죠. 전 사람들이 바뀔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저도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까요.  Every day I wake up as someone slightly new. Isn't it wild and intriguing and beautiful to think that every day we are new? 매일 전 일어나서 조금씩 새로운 사람처럼 변해요. 매일 우리가 새로워진다는 생각을 하는건, 정말 와일드하고 흥미롭고 아름답지 않나요?  For the last few years, I've woken up every day not wanting, but needing to write a new style of music. 지난 몇년 동안, 저는 매일 일어나서,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필요'로 인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들을 썼어요.  I needed to change the way I told my stories and the way they sounded. 저는 제 이야기를 하고 그것들이 들리게 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했어요.   I listened to a lot of music from the decade in which I was born and I listened to my intuition that it was a good thing to follow this gut feeling. I was also writing a different storyline than I'd ever told you before. 저는 제가 태어난 년대의 음악을 아주 많이 들었고 그 풍의 음악을 따라가는게 좋을거라는  이 직감에 대한 저의 통찰에 귀를 기울였어요. 또, 저는 여태 말한적 없었던 방식으로 스토리라인을 썼었어요.  I wrote about moving to the loudest and brightest city in the world, the city I had always been overwhelmed by... until now. 저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고 밝은 도시로 이사간것에 대해 썼어요, 그 도시(뉴욕)는 항상 저를 압도했었던 곳이죠...지금까지도요.   I think you have to know who you are and what you want in order to take on New York and all its blaring truth. 저는 여러분이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뉴욕에서 뭔갈 얻고 모든 사실을 울리기 위해서요.  I wrote about the thrill I got when I finally learned that love, to some extent, is just a game of cat and mouse. I wrote about looking back on a lost love and understanding that nothing good comes without loss and hardship and constant struggle.  저는 사랑에 대해 마침내 제가 깨달았던 스릴에 대해 썼어요, 어떤 사랑이던간에, 그건 고양이와 쥐의 게임이라는 걸요.  저는 잃었던 사랑을 되돌아보는 것에 대해 썼고,  거듭되는 고군분투와 고통과 잃는 것 없이는 어떤 좋은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There is no "riding off into the sunset," like I used to imagine. We are never out of the woods, because we are always going to be fighting for something.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건 없어요, 제가 상상했듯이. 우리는 절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거에요,  왜냐하면 우린 항상 뭔가를 위해 싸울테니까요.  I wrote about love that comes back to you just when you thought it was lost forever, and how some feelings never go out of style.  저는 영원히 떠날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때 돌아온 사랑에 대해 썼어요, 그리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형태의 감정들에 대해서도요.  I wrote about an important lesson I learned recently... that people can say whatever they want about me, but they can't make me lose my mind. I've learned how to shake things off. 저는 제가 최근에 배운 중요한 교훈에 대해 썼어요...  사람들은 제게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절 미쳐버리게 할 순 없는걸요.  저는 어떻게 떨쳐내는지에 대해 썼어요.  I've told you my stories for years now. Some have been about coming of age. Some have been about coming un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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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Taylor 사랑을 담아, 테일러가  테일러의 앨범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 Reputation (Look What You Made Me Do , End game 외) 2017 Here's something I've learned about people. 사람들에 대해 깨달은 것들을 여기에 적어봤어요.  We think we know someone, but the truth is that we only know the version of them they have chosen to show us. We know our friend in a certain light, but we don't know them the way their lover does. Just the way their lover will never know them the same way that you do as their friend. Their mother knows them differently than their roommate, who knows them differently than their colleague.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버전'의 모습만을 알 뿐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이 어떤식으로 비쳐보이는지를 알지만, 그들의 연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지 못하죠.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연인은 우리가 그들을 친구로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하죠.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의 룸메이트가 바라보는 것과 다르게 그들을 알고,  그들의 룸메이트는 그들의 직장동료와는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죠.  Their secret admirer looks at them and sees an elaborate sunset of brilliant color and dimension and spirit and pricelessness. And yet, a stranger will pass that person and see a faceless member of the crowd, nothing more. We may hear rumors about a person and believe those things to be true. We may one day meet that person and feel foolish for believing baseless gossip. 그들을 비밀스럽게 짝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면 빛나는 색깔들의 색으로 이뤄진 노을과 차원  그리고 영혼,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보일거에요.  그러나, 낯선이들은 그저 그 사람을 지나쳐가고 무표정한 관중 속의 얼굴만 보겠죠, 그 이상은 없어요.  우리는 아마 살면서 어떤이에 대한 루머들을 듣고 그런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었을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나면 그런 근본도 없는 가십을 믿은 게 바보같았다고 느껴질거에요.  This is the first generation that will be able to look back on their entire life story documented in pictures on the internet, and together we will all discover the after-effects of that. Ultimately, we post photos online to curate what strangers think of us. But then we wake up, look in the mirror at our faces and see the cracks and scars and blemishes, and cringe. We hope someday we'll meet someone who will see that same morning face and instead see their future, their partner, their forever. Someone who will still choose us even when they see all of the sides of the story, all the angles of the kaleidoscope that is you. 우리는 인터넷에 기록된 우리 삶 전체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첫번째 세대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후유증도 함께 알게되겠죠.  궁극적으로, 우리는 낯선이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보여줄 사진들을 온라인에 올리죠.   그렇지만 그러고 난 뒤 우리는 일어나서,   거울 속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고 얼굴의 갈라짐과 흉터, 흠집과  움츠린 모습을 봐요.  우리는 언젠가 이런 아침 맨얼굴을 바라봐줄 사람을 만나길 기대해요,  전망이나, 파트너나, 아주 오랜 시간 뒤를 바라보는 것 대신에요.  우리 이야기의 모든 면을 보고난 뒤에도 여전히 우릴 선택해줄 그런 사람이요,  당신이라는 만화경의 모든각도를 바라본 뒤에도요. The point being, despite our need to simplify and generalize absolutely everyone and everything in this life, humans are intrinsically impossible to simplify. We are never just good or just bad. We are mosaics of our worst selves and our best selves, our deepest secrets and our favorite stories to tell at a dinner party, existing somewhere between our well-lit profile photo and our drivers license shot. We are all a mixture of our selfishness and generosity, loyalty and self-preservation, pragmatism and impulsiveness. 모든걸 간단하게 정리하고 일반화시키고자하는 우리의 욕구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간단화시키는게 불가능해요,  거의 우리 삶 속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절대 완전히 착하거나 완전히 나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최악과 최고의 모습들의 모자이크에요,  우리의 가장 두려운 비밀들과 우리가 디너 파티때 말하고자 하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리의 인생짤 프로필 샷과 운전면허증 사진(보통 못나옴)  그 사이의 어딘가에요. 우리는 모두 이기적임과 관대함, 의리와 자기보호, 실용성과 충동성의 혼합체에요.  I've been in the public eye since I was 15 years old. On the beautiful, lovely side of that, I've been so lucky to make music for living and look out into crowds of loving, vibrant people. On the other side of the coin, my mistakes have been used against me, my heartbreaks have been used as entertainment, and my songwriting has been trivialized as 'oversharing'. 저는 15살 때부터 공인으로서 살아왔어요. 그것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면으로 바라봤을 때, 저는 엄청나게 행운이었어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살아갈 수 있었고,  활기차고, 저를 사랑해주는 관중들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전의 다른 면에서는, 제 실수들은 저를 향해 돌아왔고, 제 고통과 슬픔은 오락거리로 여겨졌으며,  제 작곡은 '너무 과하게 공유하는'것으로 치부되어왔어요.  When this album comes out, gossip blogs will scour the lyrics for the men they can attribute to each song, as if the inspiration for music is as simple and basic as a paternity test. There will be slideshows of photos backing up each incorrect theory, because it's 2017 and if you didn't see a picture of it, it couldn't have happened right? 이 앨범이 나오면, 가십 블로그들은 가사들을 샅샅이 뒤져서 곡에 해당하는 남자를 찾아낼거에요, 마치 이 음악의 영감이 무슨 친자테스트마냥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앨범 매거진에는 틀린 이론들에 대해 말해주는 슬라이드 쇼가 있을거에요, 왜냐면 2017년이잖아요 만약 사진이 없다면, 일어난 일이 아닌게 되잖아요?  Let me say it again, louder for those in the back... 다시 한번만 더 말할게요, 더 크게,  안쪽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 We think we know someone, but the truth is that we only know the version of them that they have chosen to show us.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모습만 알고 있는거에요. There will be no further explanation. 더 이상의 설명은 없어요. There will be just reputation. 오직 평판만 있을 뿐.  가장 최근 앨범 Lover (Lover , Daylight 외) 2019 When I found old diaries from my childhood and my teens, they were covered in dust. I'm not just saying that for poetic effect, they were truly dusty with pictures drawn of first day of school outfits and inspirational quotes I used to retrace over and over to get me through doubtful moments.  제가 제 어린시절과 십대시절의 오래된 일기장들을 발견했을 때 그것들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어요.  제가 무슨 시적 효과를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제 일기장들은 정말로 학교에 처음 가던 날 교복을 입은 모습이 그려진 사진들,  제가 몇번이고 되짚었던, 제 불안했던 순간들을 견디게 해줬던 인상깊은 명언들과 함께 먼지투성이였어요. I'd practice my autograph and tape my guitar picks to the pages. In the entries, I daydreamed on paper and mused about who might ask who to the dance or how nervous I was saying the national anthem at the local baseball game. 전 사인하는 걸 연습했고 제 기타 피크를 일기장에 붙여뒀었어요.  앞부분에서, 저는 몽상에 빠져 글을 적었고 누가 누구에게 춤추러갈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거나  지역 농구대회에서 국가를 부르는게 얼마나 긴장되었는지도 적어놨어요.  I frequently and drastically changed my opinions on love, friends, confidence and trust. I vented, described memories in detail, jotted down new song ideas and questioned why I would ever try to shoot for a career I had such a small chance of ever attaining. 저는 자주, 그리고 과감하게 사랑, 우정, 자신감과 신뢰에 대한 제 생각들을 바꿔왔어요.  저는 울분을 토해놓거나, 기억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해놓았고, 새로운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대강 적어놓기도 했고,  적은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데 왜 이렇게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달려야하는지 의구심을 품기도 했었어요. But what shocked me the most was how often I wrote down the things I loved. Writing a new song, riding in the car with my mom, the purple-pink skies of the soccer field on the walk home, the one night in middle school when none of my friends were fighting, the dazzle of opal necklaces I couldn’t afford gleaming from a department store jewelry case. 그렇지만 절 가장 놀라게 한 건,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써놓았었다는거에요. 새로운 노래를 쓰기, 엄마와 함께 차타고 달리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축구장에서 본 보랏빛ㅡ핑크 하늘, 친구들이 아무도 싸우지 않았던 중학교때의 어느 날,  백화점 쥬얼리 샵 케이스 속의 감당할 수 없이 빛나던 오팔 목걸이의 반짝임.  I wrote about tiny details in my life in these diaries from a bygone age with such...  wonderment. Intrigue. Romance. I noticed things and decided they were romantic, and so they were. 전 이 다이어리 안에 들어있는 제 삶의 세세한 디테일을 썼어요,  지나간 세월과... 그에 대한 경이심, 흥미, 로맨스들과 함께요.  제가 뭔가를 인지했었고 그것들이 로맨틱하다고 마음먹었었으면, 그건 그랬던거에요. In life, we grow up and we encounter the nuanced complexities of trying to figure out who to be, how to act, or how to be happy. Like invisible smoke in the room, we wonder what kind of anxiety pushes you forward and what kind ruins your ability to find joy in your life. We constantly question our choices, our surroundings, and we beat ourselves up for our mistakes. All the while, we crave romance. We long for those rare, enchanting moments when things just fall into place. Above all else, we really, really want our lives to be filled with love. 삶 속에서, 우리는 자라고 어떤 사람이 될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혹은 어떻게 행복해지는지의  미묘한 복잡성과 맞닥뜨려요.  마치 방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자욱한 것처럼,  우리는 어떤 류의 불안이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어떤 것이 당신의 삶의 즐거움을 찾게해주는 능력을 망치는지 궁금해해요.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선택, 우리 주변의 것들에 의문을 품을거고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로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도해요.   그러는 내내, 우리는 로맨스를 강렬히 원하죠.  우리는 로맨스가 찾아올때의 소중한, 마법 같은순간을 열망해요.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우린 정말 정말 우리의 삶이 사랑으로 채워지길 원하죠. I've decided that in this life, I want to be defined by the things I love- not the things I hate, the things I'm afraid of, or the things that haunt me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ose things may be struggles, but they're not my identity.  전 이 삶속에서 이렇게 결론지었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로 정의되고 싶어요  -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혹은 한밤중에 날 시달리게 하는 유령같은 것들 말고요.  이런 것들은 힘든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제 정체성은 아니에요. I wish the same for you. May your struggles become inaudible background noise behind the loud, clergies voices of those who love and appreciate you. Turn those voices up in the mix in your head. May you take notice of the things in your life that are nice and make you feel safe and maybe even find wonderment in them. May you write down your feelings and reflect on the years later, only to learn all the trials and the tribulations you thought might kill you... didn't. 저는 당신도 그러길 바라요. 당신의 힘든 일들은 큰 배경음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고마워하는 기도의 목소리에 가려져서 들리지않게 될수도 있어요.  그 목소리들의 소리를 키워서 당신의 머릿속에 섞어두세요.  당신은 아마 당신의 삶 속에서 좋고 당신을 안심시켜주게 만들고  심지어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것들을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어요.  당신은 아마 당신의 감정들과 몇 년후의 미래를 투영시켜 쓸수도 있어요,  오로지 이걸 배우기 위해서요.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든 시험들과 시련들.. 그것들은 그러지 못해요.  I hope that someday you forget the pain ever existed. I hope that if there is a lover in your life, it's someone who deserves you. If that's the case, I hope you treat them with care. 언젠가 당신이 그 고통이 존재했다는 것 조차 잊길 바랄게요.  만약 당신의 삶에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당신이라는 사람과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길 바래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그들을 신경써서 대우해주길 바랄게요. This album is a love letter to love itself- all the captivating, spellbinding, maddening devastating red, blue, gray, golden aspects of it (that's why there are so many songs) 이 앨범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러브레터에요 - 모든 매혹적인,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친듯하고 파괴적인  빨간색, 푸른색, 회색, 황금색 측면의 사랑이요 (수많은 사랑노래가 있는 이유랍니다.) In honor of fever dreams, bad boys, confessions of love on a drunken night out, Christmas lights still hanging in January, guitar string scars on my hands, false gods and blind faith, memories of dumping into an icy outdoor pool, creaks in floorboards and ultraviolet morning light, finally finding a friend, and opening the curtains to see the clearest, brightest daylight after the darkest night. 강렬한 꿈들과, 나쁜 남자들, 술에 취한 날 밤 밖에서 한 사랑의 고백들,  1월까지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조명들, 손 위의 기타줄 흉터들,  가짜 신과 맹목적인 믿음, 패기있게 얼어붙은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던 기억들,  마룻바닥의 삐걱임, 아침의 강렬한 햇살, 마침내 발견해낸 한 친구,  어두운 밤을 지나 찾아오는 가장 밝고도 선명한 햇빛을 보려고 젖혀둔 커튼.  그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며.... We are what we love.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요. This is Lover. 이게 Lover에요. 출처
한국사 역대 왕들의 힙한 본명들.txt
《 고구려 》 제1대  고 주몽 ( 동명성왕 ) 제2대 고 유리 ( 유리명왕 ) 제3대 고 무휼 ( 대무신왕 ) 제4대 고 색주 ( 민중왕 ) 제5대 고 해무 ( 모본왕 ) 제6대 고 궁 ( 태조대왕 ) 제7대 고 수성 ( 차대왕 ) 제8대 고 백고 ( 신대왕 ) 제9대 고 남무 ( 고국천왕 ) 제10대 고 연우 ( 산상왕 ) 제11대 고 우위거 ( 동천왕 ) 제12대 고 연불 ( 중천왕 ) 제13대 고 약로 ( 사천왕 ) 제14대 고 상부 ( 봉상왕 ) 제15대 고 을불 ( 미천왕 ) 제16대 고 사유 ( 고국원왕 ) 제17대 고 구부 ( 소수림왕 ) 제18대 고 이력 ( 고국양왕 ) 제19대 고 담덕 ( 광개토대왕 ) 제20대 고 거련 ( 장수왕 ) 제21대 고 나운 ( 문자명왕 ) 제22대 고 흥안 ( 안장왕 ) 제23대 고 보연 ( 안원왕 ) 제24대 고 평성 ( 양원왕 ) 제25대 고 양성 ( 평원왕 ) 제26대 고 대원 ( 영양왕 ) 제27대 고 건무 ( 영류왕 ) 제28대 고 보장 ( 보장왕 ) 《 백제 》 제1대 부여 온조 ( 온조왕 ) 제2대 부여 다루 ( 다루왕 ) 제3대 부여 기루 ( 기루왕 ) 제4대 부여 개루 ( 개루왕 ) 제5대 부여 초고 ( 초고왕 ) 제6대 부여 구수 ( 구수왕 ) 제7대 부여 사반 ( 사반왕 ) 제8대 부여 고이 ( 고이왕 ) 제9대 부여 책계 ( 책계왕 ) 제10대 부여 분서 ( 분서왕 ) 제11대 부여 비류 ( 비류왕 ) 제12대 부여 계 ( 계왕 ) 제13대 부여 구 ( 근초고왕 ) 제14대 부여 수 ( 근수구왕 ) 제15대 부여 침류 ( 침류왕 ) 제16대 부여 휘 ( 진사왕 ) 제17대 부여 아방 ( 아신왕 ) 제18대 부여 영 ( 전지왕 ) 제19대 부여 구신 ( 구이신왕 ) 제20대 부여 비 ( 비유왕 ) 제21대 부여 경 ( 개로왕 ) 제22대 부여 도 ( 문주왕 ) 제23대 부여 삼걸 ( 삼근왕 ) 제24대 부여 모대 ( 동성왕 ) 제25대 부여 사마 ( 무령왕 ) 제26대 부여 명농 ( 성왕 ) 제27대 부여 창 ( 위덕왕 ) 제28대 부여 계 ( 혜왕 ) 제29대 부여 선 ( 법왕 ) 제30대 부여 장 ( 무왕 ) 제31대 부여 의자 ( 의자왕 ) 《 신라 》 제1대 박 혁거세 ( 박 혁거세 ) 제2대 박 유 ( 남해 차차웅 ) 제3대 박 유리 ( 유리 이사금 ) 제4대 석 탈해 ( 탈해 이사금 ) 제5대 박 파사 ( 파사 이사금 ) 제6대 박 지마 ( 지마 이사금 ) 제7대 박 일성 ( 일성 이사금 ) 제8대 박 아달라 ( 아달라 이사금 ) 제9대 석 별휴 ( 별휴 이사금 ) 제10대 석 내해 ( 내해 이사금 ) 제11대 석 조분 ( 조분 이사금 ) 제12대 석 첨해 ( 첨해 이사금 ) 제13대 김 미추 ( 미추 이사금 ) 제14대 석 유례 ( 유례 이사금 ) 제15대 석 기림 ( 기림 이사금 ) 제16대 석 흘해 ( 흘해 이사금 ) 제17대 김 내물 ( 내물 마립간 ) 제18대 김 실성 ( 실성 마립간 ) 제19대 김 눌지 ( 눌지 마립간 ) 제20대 김 자비 ( 자비 마립간 ) 제21대 김 비치 ( 소지 마립간 ) 제22대 김 지대로 ( 지증왕 ) 제23대 김 원종 ( 법흥왕 ) 제24대 김 삼맥종 ( 진흥왕 ) 제25대 김 사륜 ( 진지왕 ) 제26대 김 백정 ( 진평왕 ) 제27대 김 덕만 ( 선덕여왕 ) 제28대 김 승만 ( 진덕여왕 ) 제29대 김 춘추 ( 태종무열왕 ) 제30대 김 법민 ( 문무왕 ) 제31대 김 정명 ( 신문왕 ) 제32대 김 이흥 ( 효소왕 ) 제33대 김 흥광 ( 성덕왕 ) 제34대 김 승경 ( 효성왕 ) 제35대 김 헌영 ( 경덕왕 ) 제36대 김 건운 ( 혜공왕 ) 제37대 김 양상 ( 선덕왕 ) 제38대 김 경신 ( 원성왕 ) 제39대 김 준옹 ( 소성왕 ) 제40대 김 중희 ( 애장왕 ) 제41대 김 언승 ( 현덕왕 ) 제42대 김 경휘 ( 흥덕왕 ) 제43대 김 제륭 ( 희강왕 ) 제44대 김 명 ( 민애왕 ) 제45대 김 우징 ( 신무왕 ) 제46대 김 경응 ( 문성왕 ) 제47대 김 의정 ( 헌안왕 ) 제48대 김 응렴 ( 경문왕 ) 제49대 김 정 ( 헌강왕 ) 제50대 김 황 ( 정강왕 ) 제51대 김 만부 ( 진성여왕 ) 제52대 김 요 ( 효공왕 ) 제53대 박 경휘 ( 신덕왕 ) 제54대 박 승영 ( 경명왕 ) 제55대 박 위응 ( 경애왕 ) 제56대 김 부 ( 경순왕 ) 《 발해 》 제1대 대 조영 ( 고왕 ) 제2대 대 무예 ( 무왕 ) 제3대 대 흠무 ( 문왕 ) 제4대 대 원의 ( 폐왕 ) 제5대 대 화여 ( 성왕 ) 제6대 대 숭린 ( 강왕 ) 제7대 대 원유 ( 정왕 ) 제8대 대 언의 ( 희왕 ) 제9대 대 명충 ( 간왕 ) 제10대 대 인수 ( 선왕 ) 제11대 대 이진 ( 대이진 ) 제12대 대 건황 ( 대건황 ) 제13대 대 현석 ( 대현석 ) 제14대 대 위해 ( 대위해 ) 제15대 대 인선 ( 대인선 ) 《 고려 》 제1대 왕 건 ( 태조 ) 제2대 왕 무 ( 혜종 ) 제3대 왕 요 ( 정종 ) 제4대 왕 소 ( 광종 ) 제5대 왕 주 ( 경종 ) 제6대 왕 치 ( 성종 ) 제7대 왕 송 ( 목종 ) 제8대 왕 순 ( 현종 ) 제9대 왕 흠 ( 덕종 ) 제10대 왕 형 ( 정종 ) 제11대 왕 휘 ( 문종 ) 제12대 왕 훈 ( 순종 ) 제13대 왕 운 ( 선종 ) 제14대 왕 욱 ( 헌종 ) 제15대 왕 응 ( 숙종 ) 제16대 왕 우 ( 예종 ) 제17대 왕 구 ( 인종 ) 제18대 왕 현 ( 의종 ) 제19대 왕 호 ( 명종 ) 제20대 왕 탁 ( 신종 ) 제21대 왕 영 ( 희종 ) 제22대 왕 오 ( 강종 ) 제23대 왕 철 ( 고종 ) 제24대 왕 정 ( 원종 ) 제25대 왕 탁 ( 충렬왕 ) 제26대 왕 장 ( 충선왕 ) 제27대 왕 만 ( 충숙왕 ) 제28대 왕 정 ( 충혜왕 ) 제29대 왕 흔 ( 충목왕 ) 제30대 왕 저 ( 충정왕 ) 제31대 왕 전 ( 공민왕 ) 제32대 왕 우 ( 우왕 ) 제33대 왕 창 ( 창왕 ) 제34대 왕 요 ( 공양왕 ) 《 조선 》 제1대 이 성계 ( 태조 ) 제2대 이 방과 ( 정종 ) 제3대 이 방원 ( 태종 ) 제4대 이 도 ( 세종 ) 제5대 이 향 ( 문종 ) 제6대 이 홍위 ( 단종 ) 제7대 이 유 ( 세조 ) 제8대 이 황 ( 예종 ) 제9대 이 혈 ( 성종 ) 제10대 이 융 ( 연산군 ) 제11대 이 역 ( 중종 ) 제12대 이 호 ( 인종 ) 제13대 이 환 ( 명종 ) 제14대 이 연 ( 선조 ) 제15대 이 혼 ( 광해군 ) 제16대 이 종 ( 인조 ) 제17대 이 호 ( 효종 ) 제18대 이 연 ( 현종 ) 제19대 이 순 ( 숙종 ) 제20대 이 윤 ( 경종 ) 제21대 이 금 ( 영조 ) 제22대 이 산 ( 정조 ) 제23대 이 공 ( 순조 ) 제24대 이 환 ( 헌종 ) 제25대 이 원범 ( 철종 ) 제26대 이 희 ( 고종 ) 제27대 이 척 ( 순종 ) 출처
날 수 있는 새중 가장 큰, 공룡의 후손 '넓적부리 황새'
넓적부리 황새(Shoebill) 영어 명칭인 슈빌(Shoebill)은 부리가 구두(shoe)를 닮은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분포 지역 넓적부리 황새는 아프리카의 파피루스가 무성한 습지에 서식하고 있다. 총 10개국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개체수는 5000~8000마리 사이다. 수단,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말라위, 잠비아, 콩고, 중앙아프리카, 르완다, 에티오피아 등에 분포한다. 넓적부리 황새의 신장은 평균적으로 100 cm~140cm에 달한다. 넓적부리 황새가 주로 먹잇감 사냥에 이용하는 가운데 발가락은 18.5cm로 가장 길다. 어릴 때의 깃털은 은빛을 띠지만, 성장할 수록 푸른 계열의 짙은 회색을 띠게 된다. 또한 수명이 다해갈수록 눈동자 색이 금색에서 청색으로 변한다. 먹이 주로 폐어, 폴리프테루스 같은 물고기나 개구리, 물뱀을 잡아먹는다. 드물게는 물새의 병아리나 크기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기도 한다. 기회가 되면 오리나 작은 악어, 수달도 포식한다. 넓적부리 황새는 단독적으로 생활하며, 다른 개체가 다가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좀 처럼 울지 않으며, 대신 부리의 격렬하게 개폐하여 소리를 내는 클래터링 행위를 통해 디스플레이(구애행동, 영역주장)나 동료에게 신호를 전한다. 사냥할 때는 물고기가 잠시 수면에 떠오르는 틈을 노리다가, 재빠르게 부리로 붙잡은 후 삼켜버린다. 특히 사냥하는 동안에는 몇 시간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는게 특징인데, 이는 사냥 대상의 경계심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먹이를 소화하는데에는 몇 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여기서 하루 에너지의 30%를 소비하게 된다. 방송에서 넓적부리 황색을 본 이야기를 하는 이 준 머리만? 인사성이 밝은 넓적부리 황새 출처 실제로 만나면...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