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ct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놈은 처음 봤습니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이재명 시장과 일했던 친구 심정운(54)씨는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낮엔 공장에 다니고, 밤에 공부해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같이 치러 합격했다. ▲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입시에 매달린 두 사람은 1982년 같은 대학(중앙대)에 나란히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 시장은 3년 등록금 면제+월 생활비 20만원을 학교로부터 받았다. ▲그는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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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 시장의 초등학교 때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다소 엉뚱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한테 하도 맞아서 나도 선생님 하면서 한 번 때려 봐야지 생각했다. 때려 볼 방법이 선생님 되는 것이었다. 그런 꿈이 있었는데, 중학교도 못 갔으니 그 꿈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정책공약집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가난 탓에 중학교조차 못간 그는 훗날 선생님 대신 변호사가 됐다. 이재명 시장이 신분 상승을 꿈꾸게 된 동기는 ‘너무 맞아서’였다.
‘맞지 않으려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봐
“1976년부터 공장을 갔는데,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때다. 공장 관리인들이 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다 우리 또래 애들이 일했는데, 줄을 세워 놓고 속칭 ‘빠따’를 쳤다. 하도 많이 맞아서 안맞는 방법을 찾아 봤는데, 때리는 사람이 되면 안 맞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관리자가 되어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 때리는 사람이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저렇게 될 수 있나 보다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악물고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운이 좋아서 대학을 가게 됐다.”
소년 이재명이 고입 검정고시(중졸 과정) 학원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건, 만 열다섯 살이던 1978년 4월이다. 낮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야간반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그는 3년 경력의 소년공으로, 야구 글러브와 스키 장갑을 만드는 대양실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왼쪽 손목이 프레스 기계에 끼어 골절, 6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무척 말을 빨리 했던 장발 소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어린 이재명이 어떻게 실천했을까. 이재명 시장은 블로그에서 “그때(공장 시절) 함께 공부한 친구 중 심정운이라는 친구와 공장에 다니면서 같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쓴 적이 있다.
팩트올은 이 시장이 언급한 심정운(54)씨를 찾아보기로 했다. 공장 시절 이재명이 가졌던 생각과 인생관 등 ‘대선 주자’로서 그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탐문 결과 심씨가 현재 한국전력에서 성동전력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정운씨는 6일 “그런 얘기를 내가 할 입장인지 모르겠다”면서 망설이다가 만남에 응했다. 6일 오후 2시 성동전력 지사장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수수한 인상의 심 지사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39년 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1978년 ‘성남 제일학원’이라는 고입검정고시 학원에서 소년 이재명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이재명의 첫인상은 이랬다.
“당시엔 다 그랬는데, 머리가 장발이었다. 하지만 더벅머리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이한 점은 말이 무척이나 빨랐다. 지금의 직설적인 말투가 그때 생긴 것 아닌가 싶다. 이 시장은 당시 팔에 장애를 입은 상태였다. 그것 때문인지, 반팔 옷을 입은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무척 가난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찡그린 얼굴을 하지 않았다. 늘 표정이 밝았다. 나도 당시엔 강원도 횡성에서 성남으로 이사 와서, 이 시장만큼이나 힘들게 살았다.”
가난한 소년 이재명이 세상에 대한 울분은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 심 지사장은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공부해서 꼭 성공하겠다는 일념은 강했다”면서 “그때부터 뭔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람들하고는 좀 달랐다”고 말했다.
“석달 만에 고입 검정고시 합격”
이재명이 학원 야간반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1개월 가까이 진도가 나간 후였다. 이 반에 등록한 학생들은 8월 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심 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알파벳도 모르고 학원에 등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놈은 처음 봤어요. 특히 외우는 재주가 아주 비상했어요. 이 시장은 자기 주장이 강했어요. 그래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중학교 과정 공부할 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는데, 그렇게 해서 그랬는지 이 시장은 공부 시작 3개월 만에, 나는 4개월 만에 합격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랬는지, 나도 신기합니다.”

“자기 주장이 강해서 가끔씩 의견 충돌”
고입검정에 합격한 두 사람의 인연은 시계를 만드는 오리엔트 회사로까지 이어졌다. 이곳에서 이재명 시장은 후각을 상당부분 잃게 된다. 심 지사장의 말은 계속됐다.
“나는 이 공장에서 시계 무늬 뜨는 공정을 맡았고, 이 시장은 시계 문자판의 도금 공정을 했습니다. 이 시장은 밀폐된 공간에서 스프레이를 뿌리며 일했는데, 아세톤이나 신나같은 화공약품 냄새가 무척 심했어요. 그 공정이 우리 공장에서 제일 힘든 과정이었는데. 거기서 남몰래 공부한답시고 작업하다가 코(후각)가 망가졌어요. 나도 거기서 몇 번, 전기에 감전이 됐는데. 이 시장은 이런 저런 사고를 많이 당했어요.”
“볼펜 심과 압침으로 독서실에서 졸음 쫓아”
두 사람은 대입자격(고졸) 검정고시 학원도 함께 다녔다. 야간학원이다 보니, 저녁을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다. 이재명 시장은 잠을 쫓기 위해 ‘볼펜’과 ‘압침’을 사용했다고 한다. 심 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볼펜 심을 내밀어서는 이렇게 곧추 세워서 두 손에 잡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졸다가도 그 심에 찔릴까봐 깜짝 놀라서 다시 자세를 바로잡게 되잖아요. 독서실 책상에는 압침을 거꾸로 붙여놨습니다. 책을 보다가 꾸벅 졸면, 가슴팍과 팔에 압침이 찔리는 거죠. 이 시장은 정말 독했어요.”
두 사람은 1980년 대입자격 검정고시에도 나란히 합격했다. 이듬해인 1981년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입 준비에 매달렸는데, 이때도 두 사람은 공부를 같이 했다. 4개월 뒤인 그해 7월, 두 사람은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오리엔트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신답동 근처에 있는 대입학원을 끊었다. 둘은 독서실에서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애 팔 때문에 체력장에서 최하 점수
이재명은 다친 팔 때문에 입시에서 손해를 봤다고 한다. 당시 입시에는 체력장이 있었다. 만점이 20점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16점 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16점은 원서만 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취하점수였다. 이 시장은 턱걸이를 한 개도 하지 못했고, 윗몸 일으키기는 30번을 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운도 따랐다. 1980년 대학 본고사가 폐지된 것. 사립대학들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돈 보따리를 풀었다. 이재명은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생활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중앙대학교는 그에게 3학년까지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이 외에 월 2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해줬다. 그는 법학과에 들어갔다. 1982년 3월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정책공약집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산재사고를 당해서 팔이 비틀어진 장애인이 됐으니까 탈출구가 없었다. 한 달에 20만원씩 받고 대학을 다녔는데, 공장에서 월급 8만원을 받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신분상승을 한 것이다.”
1982년 법학과-전기공학과에 나란히 입학
심정운 지사장도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기쁨을 맛봤다. 두 사람은 1982년 중앙대 법학과와 전기공학과에 나란히 들어가, 같은 대학 배지를 함께 달았다. 둘은 대학 1학년 때 강원도로 도보 여행을 같이 갔다 한다. 심 지사장은 “당시 이 시장 큰형이 태백에서 광부로 일했다”면서 “큰형 집에서 함께 묵었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신분 상승’을 한 이재명과 심정운, 두 사람에게 1982년은 더없이 특별한 한 해였다. 두 사람은 35년이 지난 요즘도 1년에 한두번씩 만나 우정을 나눈다고 한다.
⁜팩트올 기획 ‘이재명 해부’ 1월 16일부터 ‘대학시절’로 이어집니다. ⑩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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