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 개인에게 어떤 아우라를 응축한 패션을 이르는 말. 이것을 흔히 룩이라고 칭함.
스트릿 룩을 보다보면, 넋을 놓고 사진의 룩을 보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얼마나 스타일이 멋있는지 보고 또 보게 되지요. 이런 스타일 사진이 담긴 룩북에 이 룩들이 멋진 이유가 단평으로 부가돼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찾아 보았는데, 아쉽게도 스트릿 룩을 평한 스타일 비평에 관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더라구요. 미술에 관련한 비평은 아주 많고 건축에 관련된 비평집도 간혹 발견이 됩니다만, 이상하게도 패션 스타일에 대한 비평은 한 권도 없는 게 조금 신기합니다. 특히 제가 바라는 아우라를 가진 스트릿 사진에 대한 단평은 아예 전무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렵지만 연재 형식으로 카드를 발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진 지식이 일천하여 룩의 이미지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말입니다.
이 컬렉션의 두 카드는 그냥 연습 삼아 써 본 거라 많이 부족하고, 미학적인 분석이 전혀 되지 않아 비평으로써의 가치가 없는 글들입니다. 앞으로 발행하는 카드들도 비슷하겠지만, 가능한 룩이 왜 멋진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한 흔적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패션은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긴하지만 기능적인 면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미학적인 고찰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은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영역이지요. 앞으로 카드 하나하나가 제겐 매우 도전적인 일이 될 듯싶습니다. 일천한 내용이지만 읽어주시고 조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으로 경탄을 금할 수 없는 룩이다. 보울러 햇이라니! 사진에서나 봤던 19세기 영국 신사가 바로 튀어나온 듯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팡이 대신 저 그린 빛이 도는 장갑이겠지. 어쨌거나 이 사람은 19세기 낭만주의 룩(빅토리아 풍의 영국 신사룩)을 재현했다. 브라운 보울러 햇(Bowler Hat)-블랙 보스톤 안경-그레이 머플러-블랙(네이비?) 체스터필드 싱글 코트-그레이 울팬츠-그레이 양말-브라운 스트레이트 팁 레이스업 슈즈로 이어지는 아이템의 조화는 입은 이의 스타일 내공을 짐작케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사람만의 아우라가 룩에 담겨있다.
아우라? 그렇다. 범접할 수 없이 매혹적인 룩이다. 거창하게 미학적 개념을 끌어들여 말하자면, 주조(dominant)와 점이(gradation)의 원리를 환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랄까. 안경과 잘 다듬은 회색 빛 수염 그리고 페르시안 매듭의 그레이 머플러로 이어지는 V존은 보울러 햇을 완벽히 떠받치고 있다. 쉽게 말해 모자 아래에 안경과 수염 그리고 머플러가 자연스럽게 종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코트와 팬츠 그리고 슈즈가 이 V 존에 대해 다시 중첩적으로 종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발밑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장갑의 파조(discord)까지 배합되고 있으니, 기가 차고도 남을 룩이 되시겠다.
아마도 저 보울러가 없었다면, 저 사람은 깔끔하고 감각적으로(그린 장갑!) 차려입은 중년 남성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울러로 인해 이 룩은 낭만주의 룩의 방점을 찍었다. 왠 낭만주의 냐고? 저 탑 햇에 가까운 보울러가 현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모자라고 보는가?! 빅토리아 풍의 이국적 정조를 드러내는 룩, 이것이 바로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풍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그냥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사 룩을 그대로 모방한 게 아니라는 사실. 보울러 보자를 벗으면 그냥 멋쟁이 도시 중년 남자에 가깝다. 잘 재단된 체스터 코트와 발목 아래에서 커팅된(턴업까지 했다!) 바지의 조합은 매우 현대적이고 도시적이다. 헌데 탑 햇에 가까운 보울러 모자는 그의 이미지를 낭만주의 룩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킨다. 아이템 하나로 말이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창조적 모방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룩은 이렇게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여 재창조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상상력을 고무시킨다. 이것이 '영감을 주는 스트릿 룩' 감상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보면 볼수록 경탄을 금할 수 없는 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