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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의 조던이라 불린 남자 ㄷㄷㄷ

스포츠 선수에게도 외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력과 별개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선수는 스타성이 높을 수밖에 없죠.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다면, 해당 종목의 대표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뛰어난 실력이 외모를 더 빛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NBA에는 '침대 위의 조던'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워낙 외모가 훌륭해서 여성 팬이 많다는 의미에서 나온 짖궃은 별명이죠.

그 주인공은 바로 LA 클리퍼스의 J.J. 레딕입니다.

영화 배우 뺨치는 레딕의 외모는 대학 시절부터 워낙 유명했습니다. 레딕을 보려고 많은 여학생들이 경기장을 찾곤 했죠.

실제로 레딕은 대학교 때 정말 많은 여성들과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 정도 잘생김이면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ㄷㄷ

심지어 레딕은 농구까지 정말 잘했습니다. 대학 최고의 3점 슈터로 엄청나게 유명했고,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NBA에까지 진출했죠.

레딕의 지명 순서는 1라운드 전체 11번이었습니다.

NBA에서는 드래프트 전체 14순위 이내 유망주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준수한 유망주로 분류합니다. 레딕도 그 중 한 명이었던 셈이죠.

아, 정말 신은 불공평합니다 ㅜㅜ

직업이 농구선수이다 보니, 키까지 큽니다.

무려 195cm.수트를 입고 경기장에 출근하는 레딕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 모델 아닙니까??

이상하게 나오기로 유명한 NBA 공식 프로필 사진에서도 혼자 모델 포스 뽐내는 레딕...

같은 남자이지만 반하겠네요...

레딕은 어느덧 NBA 데뷔 11년 차의 베테랑이 됐는데요,

데뷔 직후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했지만, 지금은 NBA 최고급 슈터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경기당 3점슛 성공 리그 전체 6위에 이름을 올렸고, 올시즌도 15위에 올라 있습니다. 많은 백인 슈터들의 약점으로 꼽히는 수비마저 레딕은 안정적입니다.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3점슛 능력은 레딕의 최대 강점이죠.

요렇게 광고에 출연하기도.

화면에 잘생김이 덕지덕지 묻었네요 ㄷㄷ

언제 한 번 영화나 드라마 출연해도 될 것 같습니다. ㄷㄷ

하지만 레딕은 카사노바나, 방탕한 생활과는 거리가 멉니다.

별명은 '침대 위의 조던'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한 어엿한 유부남이죠.

또한 레딕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자기 관리에 철저하기로도 유명한 선수입니다.

NBA에서 오랫동안 수준급 선수로 살아남으려면 당연한 일이겠죠?

LA 클리퍼스의 경기가 TV에 나온도고요?

그렇다면 J.J. 레딕의 플레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시면 어떨까요?

LA 클리퍼스에는 크리스 폴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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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존잘러 행님이시네요 농구선수는 잘몰랏는데 잘보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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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박지성
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떄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어렸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러 오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라치셨겠죠. 박지성 어머니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中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 친구하고 부딫혀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버지 자서전 中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대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 "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 하느냐, 다른 선수들은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면서 때리더라고요" 그후 박지성은 원래 가려던 중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로감 아버지 자서전 中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1학년 축구부 동기들도 지성이를 싫어했으니, 지성이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원공고에 다닐 당시 선배의 구타에 못이겨 몇몇 선수들끼리 팀에서 도망을 치기로 계획을 짰다. 당연히 박지성도 그 멤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훈련 후 선배의 구타에 박지성의 팔이 부러졌다. 어쩔 수 없이 박지성은 합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 숙소 이탈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나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 별일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을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 "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글..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오유 유소년 대회도 열고 자선경기도 열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애들한테 다 기부하던데 자기가 맞으면서 축구를 했던 시절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처럼 축구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엄청 큰거 같습니다.. 예체능계의 똥군기는 진짜 언제쯤 없어질까요
선수 시절 유럽 사람들의 편견과 의구심을 다 깨고 다닌 박지성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가 있는 네덜란드의 psv팀으로 이적하게 된 박지성  그러나 입단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겪고 복귀 후 부진을 겪음 부진을 겪는 동안 네덜란드 홈팬들에게 각종 야유와 비난을 받은 박지성 공을 잡기 무서웠을 정도였고 심지어 상대팀보다 야유를 더 보냄 그래서 히딩크 감독이 홈경기에서는 안 내보내고 원정경기에만 내보냈을 정도..  일본 팀의 이적 제의도 받았지만 박지성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야유하던 팬들이 응원가를 만들어서 응원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음 (이때 응원가가 바로 그 유명한 위송빠레) 자기 응원가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야유와 비난이 심했지만;; 히딩크가 박지성한테 보내는 편지 中 결국에는 psv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음 그래서 박지성이 선수 생활 막바지에 psv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도 팬들이 엄청 환영해 줌 네덜란드 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엄청나게 활약한 박지성은 결국 맨유에 입단하게 됨 박지성은 2~3년 내로 맨유맨이 될 것이다. 그를 믿기에 데리고 왔고 또 그만큼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생각에 의아해했지만 2~3년 내로 분명히 사람들은 나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다.  - 알렉스 퍼거슨  지금은 아시아 선수들이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많지만 당시만 해도 성공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박지성이 빅클럽에서 통하겠냐는 의구심이 많았음 박지성의 맨유 이적 소식은 국내에서도 찌라시 취급하거나  박지성이 맨유에서 경쟁력이 있겠냐고 벤치에나 있을 거라고 비아냥거릴 정도 박지성은 챔스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한 선수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반응도 물론 있었지만 티셔츠 팔이다, 마케팅용이다, 아시아 시장을 노린 상업적 영입이다 등의 의견도 많았음 당시 챔스 4강 ac밀란 전에서 카푸-말디니-네스타-스탐이라는 엄청난 수비라인을 뚫고 골을 넣고 05년 챔스 포워드 베스트 5에 들었는데도 이런 소리 들음 (다른 유럽 선수들이 박지성이 psv에서 활약한 만큼 활약하고 이적했으면 마케팅용이다 이런 소리 1도 안 나왔을 텐데ㅋ...) 다른 나라 선수들이 입단하면 같은 언어를 쓰는 선수들이나 스탭들이 도와주거나 하지만  박지성은 그런거 1도 없었음. 그래서 영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함 초반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무려 7년간 맨유 선수로 뛰었고, 맨유 말년에는 루니와 퍼디난드에 이어 맨유 주급 순위 3위에 들 정도로 인정 받음 티셔츠 팔이를 위해 영입했다는 소리는 당연히 쏙 들어감 선수 생활을 건 일생일대의 무릎 수술을 겪은 후에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귀함 (빨리 복귀한 게 9개월.. 당시에는 1년 정도의 재활 기간을 예상했었음) 박지성 정도의 큰 수술 이후에는 폼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많은데 수술 후에도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며 맨유에서 롱런함 그리고 박지성이 맨유를 떠난 지금도 여전히 맨유 팬들한테 언급되고  (Herrera는 현재 맨유에서 뛰고 있는 스페인 선수) 언론이나 전 맨유 선수들한테도 꾸준히 언급됨 은퇴 후에는 비유럽 선수 최초로 맨유 앰버서더에 임명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맨유 홍보 중임 앰버서더로서 중국 투어 중 다른 맨유 레전드들과 맨유 선수들 훈련하는거 지켜보는 중 아시아 축구에 대한 편견을 깨고 세계에 아시아 축구의 저력을 알린 선수라 베트남 등 축구 좋아하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박지성 인기가 대단했음 박지성은 우리나라 축구를 위해서 힘쓰는 것 외에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아시안 드림컵을 열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발전에도 힘씀 (수익금을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 기부) 아시안 드림컵에는 우리나라, 일본 등의 유명한 아시아 선수들 말고도  에브라, 퍼디난드, 잠브로타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초청해 같이 뜀 이게 바로 박지성이 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미국 대표팀 선수들이 알려주는 돌파 방법
안녕하세요. 지난 번에는 클러치샷으로 만났다면, 이번에는 다시 강의로 만나보고자 합니다. 오늘 강의는 바로 돌파입니다. 볼을 잡고 림을 어택하는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오늘 강의를 이끄실 분은 존 칼리파리 켄터키 감독입니다. 칼리파리는 존 월, 드마커스 커즌스, 앤써니 데이비스, 칼-앤써니 타운스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대학교 은사이기도 합니다. 2014년에 미국 대표팀 코치를 잠깐 하셨죠. 그러면 오늘의 도우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미국 대표팀이다보니 면면이 화려합니다. 포틀랜드의 에이스 데미언 릴라드, 워싱턴의 에이스 존 월, 샬럿의 에이스 캠바 워커, 그리고 한 때 어시스트 top 5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은 포인트가드 타이 로슨이 도우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4명은 모두 미국 대표팀 최종명단으로 선택받지 못했다는...ㅠ) 첫 번째는 퍼스트 스탭 이야기입니다. 퍼스트 스탭을 치면서 돌파를 하는 것인데요. 상대 수비의 앞발쪽을 공략하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상대가 따라가기가 조금 더 불편하다고 합니다. 움짤처럼 상대 수비의 앞발쪽으로 돌파하는 것이죠. 손쪽으로 돌파할 때는 발이 먼저 가고 드라이브를 해야 합니다. 움짤에서 발을 잘 보세요. 볼이 먼저 떨어지는게 아니라 발이 먼저 가고 그 다음 몸이 갑니다. 한 번 스탭을 치고 가는 거죠. 이렇게 해야 드리블이 강하게 갈 수 있습니다. 만약 방향을 바꿔서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하면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벗 풋, 즉 대각선 가는쪽 발이 고정이 되어야 되고 두 번째는 볼이 무릎 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볼이 무릎 밑으로 가는 이유는 수비가 저 무릎 밑까지 굽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움짤에서 캠바 워커의 플레이가 딱 설명대로입니다. 만약 크로스 오버를 했는데도 상대가 따라온다면, 월이 시범을 보인 것처럼 살짝 뒤로 스탭백해서 상대와 벌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탭백이 먹히는 이유가 앞발을 공략했기 때문에 상대가 따라가기가 어렵고, 본인 마저도 뒤로 빠지기 때문에 공간이 나올 확률이 높죠. 스탭백에 성공했으면 바로 점프슛으로 이으면 되겠습니다. 자. 복습해봅시다. 드라이브 할 때 상대 앞발을 공략할 수 있으면 공략하고, 발이 먼저 가서 드리블을 할 것. 방향을 바꾸려면 가려는 쪽 발은 고정시킨 채 무릎 밑으로 공을 보내서 돌파 만약 방향 바꿔서 돌파하는데 상대가 따라붙으면 스탭백. 이상 존 칼리파리 코치와 미국 대표팀 선수들의 간단한 드라이브인 강의였습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마이클 조던을 레전드로 만들어준 공격 기술
마이클 조던은 NBA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힙니다. 조던이 코트를 떠난지 15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죠. 그런 조던을 상대했던 선수들이 하나 같이 혀를 내둘렀던 공격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조던의 '페이드 어웨이(Fade Away) 점프슛'입니다. '페이드 어웨이(Fade Away)'를 직역하면 '멀리 사라지다'라는 의미인데요, 농구에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은 '수비수의 방해를 피해 뒤로 사라지듯 물러나면서 던지는 점프슛'을 의미합니다. 마이클 조던도 인간인지라, 30대가 된 이후에는 체력과 운동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던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무기를 갈고 닦았고, 그게 바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는 해도, 역대급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던 조던인지라, 조던이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던지면 수비수로서는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수비수들 : "아 조던 또 저거 던지네, 리바운드나 노리자" 매우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ㅋㅋㅋ 자, 그럼 조던의 실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 장면을 살펴볼까요? 조던의 다큐멘터리 비디오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카메라 구도가 조던의 동작을 너무 아름답게 잡아낸지라 아직도 조던의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하면 이 장면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번엔 다른 각도에서 볼까요? 수비수가 반응조차 못하게 완전히 뒤로 물러나면서 던집니다. 무엇보다 턴(Turn) 동작을 하기 전에 어깨를 흔들면서 수비수를 교란하는 페이크가 예술입니다. 이번엔 왼손으로 돌파를 하는 척하다가, 빠르게 오른쪽으로 턴하면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걸 따라하다가 스스로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넘어질 겁니다. 조던의 탁월한 균형 감각과 민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다시 봐도 대단한 운동능력과 기술입니다. 앞선 장면에서도 나왔지만 오른손잡이였던 조던은 골대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볼을 잡고 바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던지는 걸 선호했습니다. 이번엔 볼을 잡자마자 기습적으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던지니 수비수가 어찌할 방도가 없네요 ㄷㄷ 조던의 마지막 올스타전 득점 장면. 이 경기에서 조던은 막판에 극적인 클러치 슛을 터트렸는데, 그 슛이 바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이었습니다. 전세계에 있던 조던 팬들을 감동과 향수에 빠트렸던 아주 드라마틱한 슛이기도 했죠. 이번엔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 척 스텝으로 제대로 페이크를 주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와 페이드어웨이 점프슛 ㄷㄷㄷ 수비수가 반응도 하기 전에 공은 이미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ㅋㅋ 완전 사기입니다 조던의 공중 동작이 워낙 우아했기 때문에, 조던의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은 그 자체로도 멋진 화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뒤로 점프하면서 누운 저 각도를 보세요 ㄷㄷㄷ NBA 파이널의 한 장면.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던지는 조던의 체공력과, 그런 조던을 바라보는 다른 선수들과 관중들의 모습이 뭔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그냥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명장면입니다. 골밑에서 바라보니 조던이 저 멀리 사라져가는 느낌 ㄷㄷㄷ 이것도 정말 멋진 장면이군요 상체와 하체가 묘하게 균형을 잃었지만, 조던의 슛 동작만큼은 아주 안정적입니다. 부조화 속의 안정감이랄까요? 조던만이 만들 수 있는 우아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네요. 지금까지 마이클 조던의 최고의 무기였던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살펴보았습니다. 조던이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지 비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닌가 싶네요 ㅎㅎ 다음에도 재밌는 게시물로 찾아뵐게요! ^^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