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k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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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박근혜 정권 타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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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손수호] "삼청교육대, 성고문, 수지 김.. 그때가 좋았다고?"
마구 잡아다 가혹행위 했던 삼청교육대 성고문 하고도 피해자에 실형, 부천서 사건 살해 피해자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수지김 사건 가족이 이런 일 당하고도 '그때가 좋았다' 할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시히 들여다보는 시간 탐정 손수호. 오늘도 손수호 변호사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요즘 법정을 둘러싼 뉴스가 참 많죠? ◆ 손수호> 최근에 법조계 기자들이 바빠요. 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 결정 후 첫 재판, 고 장자연씨 보도 관련해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MBC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 첫 변론기일, 드루킹 김동원 항소심 첫 공판, 여기에 사법농단 재판개입 관련 수사와 재판도 많아요. 게다가 전두환 재판도 있었죠. 이번 광주 재판은 5.18 민주화 운동 관련된 거잖아요. 그런데 그 외에도 전두환 집권 기간에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정말 너무 많지만 그중에 몇 개를 좀 골라봤어요. ◇ 김현정> 내란죄, 반란수괴죄 이런거 말고 집권 기간에 발생한 일들 말씀이죠? 이쯤에서 한번 떠올려보죠. 그때 그 시절 그 사건. 어떤 것부터 볼까요? ◆ 손수호> 먼저 삼청교육대. ◇ 김현정> 삼청교육대. 사회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 가두고 때리고 막 이랬던 거 아닙니까? ◆ 손수호> 그렇습니다. 전두환씨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줄여서 국보위 위원장일 때 ‘삼청계획 5호’에 따라 만든 보호감호시설이 삼청교육대였는데요. 국보위 사무실이 서울 삼청동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범죄자, 불량배 모아서 훈련 통해 교화시킨다고 설립했는데, 그런데 문제는 기준이 이게 애매모호했어요. ◇ 김현정> 기준이 모호해요? ◆ 손수호> 네, 그러다 보니까 원래는 현행범, 재범 우려자, 깡패, 도둑, 강도, 매춘업자. 이런 사람들이 주요 교화 대상이었죠.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둘째로 치고. 그런데 한번 들어보시죠. 불건전 생활 영위자,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사람, 사회 풍토 문란 사범. 이렇게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저도 잡혀갈 수 있을 것 같다를 이런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에요. ◆ 손수호> 사실상 누구든 잡아 가둘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건데요. 결국 중고등학생 중에서도 약간 문제아 취급 받는 사람들, 은둔형 외톨이, 우울증 환자, 지적장애인 또는 연고 없는 사람까지 다 잡아갔어요. 게다가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종교인, 야당 인사, 지지자, 노동운동가, 전두환 비방하거나 집권 민정당에 반대하는 학생도 잡혀갔고요. 할당량 정해놓고 인원 채우다 보니까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을 교도소 정문 앞에서 바로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그 안에서 가혹 행위도 있지 않았습니까? ◆ 손수호> 그렇습니다. 폭행은 물론이고 성폭력까지 빈곤했고 또 심지어 배가 너무 고파서 땅에 떨어진 밥알 주워 먹었는데 그 이후로 조교들한테 맞아 죽은 사건도 있었고요. ◇ 김현정> 총 통계, 정확한 통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통계 같은 게 나온 게 있어요? ◆ 손수호> 사망자가 총 54명. 그리고 후유증으로 인해서 나중에 사망한 사람은 397명. 정신 장애를 입거나 또는 기타 상해를 입은 사람이 무려 2678명이 공식적인 통계고요. 이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참다 못해 항의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때 항의한다고 기관총, 소총 난사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김현정> 도대체 이런 곳을, 삼청교육대 같은 걸 왜 만든 거예요? ◆ 손수호> 일단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조성하려는 목적도 있었고요. ◇ 김현정> 공포 정치. ◆ 손수호> 그리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활용. 특히 좀 정적 등을 수용하는 그런 수단으로 활용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겠죠. ◇ 김현정> 이른다 데모하다 잡혀간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죽고 이런 사람들 많잖아요. ◆ 손수호> 그렇죠. ◇ 김현정> 삼청교육대가 떠오르고. 또 전두환 집권 당시 어떤 거 기억나세요? ◆ 손수호> 사실 이 사건만 해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중요한 사건인데 바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입니다. ◇ 김현정> 권인숙 씨 사건. ◆ 손수호> 86년 부천서 경찰관 문귀동이 학생 운동가 권인숙을 성폭행한 사건인데요. 2년 동안 재판 끝에 처벌은 받았어요. 하지만 극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참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떠올리면서 치를 떨고 있습니다. ◇ 김현정> 순탄치 않았다는 건 뭐였습니까? ◆ 손수호> 처음에 문귀동을 조사한 검찰은 실제로 성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사건 당시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고 발표했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요. 그리고 “성적모욕의 허위사실 유포는 운동권이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쓴다는 증거”라면서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려서 ‘부천서 성폭행 사건’이라고 하지 말고 ‘부천서 사건’이라고 쓰도록 강요합니다.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그 유명한 장세동의 지시에 따른 거죠. ◇ 김현정> 사건을 덮기 위해서 안기부장, 지금의 국정원장까지 나선 거예요. ◆ 손수호> 그렇기 때문에 문기동은 오히려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자 권인숙에게 오히려 징역 1년 6개월형이 선고됐었죠. 하지만 그 후에 민주화 과정에서 재정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이루어졌고요. 이렇게 재판을 한 끝에 결국 가해자 문귀동에게 징역 5년형이 선고됐습니다. ◇ 김현정> 전두환 집권 시절의 사건들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세 번째는 뭔가요? ◆ 손수호> 수지김 사건. ◇ 김현정> 수지김 사건. ◆ 손수호> 간첩 조작 사건입니다. 87년 홍콩에서 사업하던 윤태식이 아내 김옥분과 말다툼하다가 살해했어요, 아내를. 그런데 처벌을 피하려고요. 싱가포르에 가서 북한 대사관에 망명 신청합니다, 월북하겠다고. 그런데 북한 대사관에서 안 받아줬어요. 그러자 미국 대사관으로 갔어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도 쫓겨놨습니다. 오히려 미국 대사관에서는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습니다. "이상한 사람 왔다." 결국 한국 대사관에 끌려갔거든요. 거기서 살인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아내가 간첩이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한 거예요. ◇ 김현정> 그런데 아내가 간첩이었다고 하면 살인 혐의를 피할 수 있는 거예요? ◆ 손수호> 국가보안법. 87년 당시 국가보안법 21조 3항에 이런 규정이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를 범한 사람을 체포할 때 반항하거나 또는 교전 상태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살해하거나 자살하게 한 경우에는 체포한 경우에 준해서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간첩을 살해하면 처벌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금 받는 거예요. ◇ 김현정> 간첩이면 사살해도 괜찮다. 죽여도 된다. ◆ 손수호> 이 규정은 지금도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그걸 입증해야 될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간첩, 아내가 간첩이었다는 걸. ◆ 손수호> 윤태식이 첩보영화 마니아였다고 하는데요. 일단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 김현정> 어떻게요? ◆ 손수호> "아내가 수지김이라는 북한 간첩이었고 빚쟁이들한테 잡혀 있다면서 싱가포르로 나를 불러냈다. 그래서 북한 대사관으로 끌고 와서 납치하려고 했고 내가 어렵게 탈출했다." 이런 걸 만들어낸 거예요. 사실 지금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하겠지만. ◇ 김현정> 이거 어떻게 속아요, 여기에? ◆ 손수호> 당시 87년도였거든요.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기 위해서 정말 윤태식의 시나리오를 이용해서 '납북 사건'으로 조작을 한 거죠. ◇ 김현정> 우리 사회에 간첩이 있다라는 걸 그 당시는 이용하고 싶은 정권이었으니까. ◆ 손수호> 이거 역시 안기부장 장세동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 김현정> 반공을 강조하던 정권에서 진짜 월북하려던 사람은 봐주고 억울하게 살해된 사람은 간첩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랬던 것들인데. ◆ 손수호> 사실 안기부가 윤태식을 고문까지 했거든요. 그래서 사건 전모를 이미 확인을 했어요. 안기부가 속아넘어간 게 아니에요. ◇ 김현정> 다 알면서? ◆ 손수호> 다 알면서도 이렇게 활용을 하고 악용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거죠. 그것 때문에 가족들은 계속 간첩 가족으로 결국 손가락질받고 누명 쓰고. 형제, 자매 5명도 다 고초를 겪었는데요. 언니는 연좌제로 해고된 다음에 정신이상을 일으켜서 타지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고 오빠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고 여동생 3명 다 이혼당하고 심지어 중학생인 조카도요, 간첩 식구라면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끝에 자퇴했습니다. ◇ 김현정> 중학생도요? ◆ 손수호>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거죠. ◇ 김현정> 그러면 살해자는, 살해자 윤태식은 아무 처벌 안 받았어요? ◆ 손수호> 살인죄로는 당시에 처벌 안 받았어요. 다른 사기로 2년 6개월형을 받기는 했는데 그 후에 출소해서 지문 인식 기술 벤처사업을 합니다. 승승장구했어요. 정치권과 연줄도 있었고. 그런데 그 후에 주변에서 볼 때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언론이 붙고 피해자 가족들이 나서고 해서 수사가 이루어집니다. 나중에 공소시효 완성 50일 남겨놓고 결국 구속됐고요, 결국 징역 15년 6개월형이 선고됐습니다. ◇ 김현정>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도 처벌 받았나요? ◆ 손수호> 그 사람들은 이미 공소시효 완성돼서 처벌을 면했어요. 하지만 법원은 한 집안 사람들의 인생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음을 인정해서, 국가가 유족들에게 총 4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요. 배상 후에 국가가 당시 안기부 간부들과 윤태식에게 구상권 행사해서 법원이 장세동 9억 원, 윤태식 4억5천만 원을 국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해서 무너진 인생이 보상이 되겠냐마는 어쨌든 일부라도 과거의 잘못이 바로잡혔다는데 의미가 있겠네요. 오늘 손 탐정이 5공 시절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뭡니까? ◆ 손수호> 오늘 얘기한 사건들, 전두환 정권 때는 덮여 있다가 나중에 민주화가 되면서 결국 드러나고 관련자들을 단죄할 수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전통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있거든요. "살기 편했다, 경제 호황이었다, 나라에 기강이 있었다, 전교조 민노총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요. 그런데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오늘 얘기한 사건을 당했다면 어떨까. 내 아이가 학교에서 싸웠다는 이유로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하고 항의하다가 기관총 맞아 죽었다면? 또 내 딸이 경찰서에 끌려가서 고문 성폭행 당했는데 가해자는 처벌 안받고 오히려 내 딸이 감옥가면? 또 내 누나가 억울하게 살해당했는데 이상하게 간첩으로 몰리고 온 가족이 손가락질을 받고 인생 망치게 된다면? ‘그래도 경제는 호황이니까 괜찮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되니까 참을만한 세상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 김현정> 전두환 씨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이런 망언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당시 저질러졌던 만행들. 세 가지 굵직한 것들 가지고,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가 짚어주셨습니다. 손 변호사님 고맙습니다. (사진=한국스마트속기협회)
[펌][역사툰]백정의 사위가 된 이장곤 이야기.jpg
조선 시대에는 천인은 아니었지만 천인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있었다.  조례(皂隷)⋅나장(羅將)⋅일수(日守)⋅조졸(漕卒)⋅봉수군⋅역졸(驛卒) 등 이른바 ‘신량역천(身良役賤)’층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하는 일이 천하다고 하여 천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천하게 여겨진 부류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백정(白丁)이다. 백정은 본래 고려 시대의 여진족 출신 재인(才人)과 화척(禾尺)을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에 하나로 합쳐서 부른 이름이다. 고려 시대의 재인과 화척은 유목 생활을 하던 여진족의 후예로 천인 취급을 받았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하기 위해 천하게 불리던 재인이나 화척 대신에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을 뜻하는 백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울러 백정들에게 호적을 만들어 주고 평민과 섞여 살게 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정은 호적을 갖게 되었고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조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들을 ‘신백정(新白丁)’이라 부르며 계속 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반이나 관료들은 노비처럼 멋대로 부리기까지 하였다. 한편 화척의 후예인 백정들은 재인들과는 달리 마을에 거주하며 도살이나 유기(柳器) 제조 등에 종사하였다. 유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유기의 우리말인 ‘고리’를 붙여 ‘고리백정(古里白丁)’이라고도 불렀다.  이들 백정은 다른 마을 사람들로부터 심한 멸시를 받았다.  1809년(순조 9) 개성부의 한 백정이 혼인을 하면서 관복(冠服)을 입고 일산(日傘)을 받쳤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관복을 빌려 준 사람을 난타하고 백정의 집을 부순 후 개성부에 호소한 사건은 백정들의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잘 보여 준다.  마을 사람들은 심지어 관청에서 그 죄를 엄히 다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성부 건물에 돌을 던지며 소란을 피우기까지 하였다. 성대중의 아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에 따르면 백정 가운데 고리백정이 소를 잡는 백정보다 더 천시받았고 그 때문에 주현에서 사형시킬 죄수가 있으면 그들에게 형 집행을 맡기기도 하였다고 한다.(『연경재집』 권59, 「楊禾尺」) 자료에 나오는 백정이 고리백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당한 처사에 맞섰던 데서 백정들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백정들의 그러한 모습은 다음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는 백정이다. 그렇지만 가장 두려워할 만한 자도 백정이니, 그들이 가장 천하기 때문이다. 문경의 공고(工庫)에 소속된 종이 백정을 구타하였는데, 백정이 죽자 재판을 하여 그를 사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관아에서 종의 편을 들까 염려한 나머지 온 군내의 백정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날을 세우고 몰려와서는 마치 자신들의 원수를 갚듯이 하여, 기어이 직접 그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고 관문에서 시끄럽게 굴었다. 이에 관아에서 간곡히 타이르니 그제야 돌아갔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지방 관아에 소속된 종이 백정이 구타를 당해 죽이는 일이 발생하자 백정들이 억울하게 죽은 동료를 위해 집단행동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관노비에게 맞아 죽을 만큼 백정의 처지는 열악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백정들의 의식이 변화했다고 해서 당장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결국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자유의 신분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여 나가야 했다. 조선 시대에 백정은 가장 긴 고난의 길을 걸었던 부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전체 출처]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 [역사툰] 백정의 사위가 된 이장곤 이야기.jpg
'버닝썬 게이트' 이슈 물타기 안돼
"그래서 장자연은?" 온 나라가 가수 승리와 정준영, 그리고 그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흘러나온 추잡한 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버닝썬으로 불거진 마약, 성매매 알선, 성폭력, 경찰과의 유착, 정준영의 몰카 성범죄 등의 뉴스가 다른 주요 이슈들을 집어삼켰다.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실검) 또한 이들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파렴치한 행각은 대중들의 관심을 너무나 쉽게 독차지했다. 유명 연예인과 성(性), 마약 등 흥행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큰 이슈가 흘러 넘치는데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등에 엎고 '버닝썬 게이트 화(化)'에 총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정작 10여일 남은 이달 안에 꼭 진상을 밝혀야 하는 중요한 사건은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 바로 '장자연 사건'이다. 사실 국내에서 정치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일부 언론권력의 일가가 관계된 장자연 사건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버닝썬과 그 경중을 비교한다고 하면, 본 기자는 장자연 사건이 더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장자연 사건은 오는 3월 말이면 미궁에 빠진 채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이 이달 말 종료되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 외에도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도 같이 묻히게 된다. 장자연 사건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버닝썬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면서 저 뒤켠으로 묻혔다. 전형적인 '이슈 물타기'다. 본 기자가 신참기자였던 20여년 전, 기라성 같은 국장급 선배 기자에게 들어 왔던 놀라운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듯 하다. 당시 선배기자에게 들었던 '카더라' 정보에 따르면, 정권에서 여론의 비판을 받는 일이 생기면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에서 미리 파악하거나 준비하고 있던 연예계 비화를 언론매체를 통해 터뜨려 물타기 한다는 것이었다. 주로 여성 연예인과 성상납, 그리고 마약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받았던 정서적 충격이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이는 어찌보면 일종의 음모론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동안 우리사회의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자극적인 이슈로 인해 덮여버렸다. 2016년 조인성과 정우성 주연의 영화 '더 킹'을 보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지만, 관객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시나리오를 전달해 준다. 장자연 사건이 포털과 뉴스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그래서 다스는 누구 것?'이라는 온라인 캠페인(?)이 떠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까지 끌고 간 이 운동은 다스라는 회사의 실소유주를 밝히기 위해, 자극적인 물타기 뉴스에도 굴하지 않고, 네티즌들이 SNS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했던 자발적인 것이었다. 약자라는 이유로 권력자들의 노리개가 돼야 했던, 슬픈 장자연 사건이 버닝썬 이슈에 물타기 돼 사라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장자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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