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여기는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의 이목을 끄는 당시의 영웅호걸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영웅들 또한
후한 말의 난세가 만든 영웅들이며 난세와 영웅탄생의
시작은 바로 "황건적의 난"(黄巾之乱)이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접하는 삼국지 관련 매체들에서는
황건적의 난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난은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열광하는
영웅들의 일대기들과 비교 안될만큼 중요한 사안이며
어쨌건 후한이 결국 삼분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에,
오늘의 삼.이.높 세번째 주제로는 삼국지의 서막을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던 황건적의 난에 대해 다룬다.



1. 왜 "황"건적인거지??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저 문장은 황건적의 난의 일종의 슬로건같은건데,
중국 고대의 자연철학인 "오행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첨부된 사진을 보면 오행설에서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근원으로 '화, 수, 목, 금, 토' 라고 주장했다.
(저기에 태양과 달을 넣어 일주일의 명칭이 된거다.)
마치 캡틴 플래닛을 소환하는 땅,불,바람,물,마음같은데
살짝 다르다.
아무튼 저 오행들은 서로 상생하기도, 또 서로
상극이기도 하는데... 황건적의 난의 슬로건은 저 중
상생설을 차용한 글귀이다.
잘 보면 가위바위보처럼 절대적인게 없고 서로서로
맞물려 먹고 먹히는 구조다.
(첨부사진 2가 상생, 3이 상극)
오행에 의하면 중국의 한(漢)은 불(火)의 기운을 받아
이룩되고 흥한 왕조여서 그 다음의 세력은 응당
흙(土)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나 세력이라 생각했고,
바로 그 흙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
덧붙여, 불의 기운을 지닌 한나라의 상징컬러는 당근
빨간색이다.(그래서 장기에서도 한 쪽은 글씨가 레드!)
참고로 왜 한이 그럼 불의 기운이냐면....
한이 건국 전, 진의 시황제의 꿈 속에서 커다란 태양이
자신을 들이받아 자신이 죽는 악몽을 꿨다는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저 꿈이 태양의 기운을 가진 이가
자신(진)을 제끼고 다음 황제(유방의 한)가 된다는
예지몽으로 받아들여 그렇다고.. (물론 본인에게는 흉몽)
이건 나도 정확한 학계 주장이 맞는지가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태양은 오행설에서 당근 '불'의 기운을 지닌 것으로 본다!
하여튼 저 오행설 중의 상생설 탓인지, 후한 이후
삼국시대가 열리고 삼국의 군주들이 저마다 제위에 오르며
썼던 연호에도 이게 반영되어, 후한을 멸망시킨 위의
첫 연호도 '황초(黃初)', 오의 경우도 손권이 왕을 칭하며
사용한 첫 연호가 '황무(黃武)', 다시 황제를 칭하며 쓴
첫 연호가 '황룡(黃龍)'이다.
반대로 한의 계승을 주장한 촉한의 마지막 연호는
'염흥(炎興)'이었다.
후한이라는 불(火)이 꺼져가며 작아진 불꽃(炎)이
다시 흥(興)하여 크게 불타오르리라는 거창한 뜻이였으나
결과는.........
쉽게 말해, 위와 오는 자기들이 후한의 다음 세력이란,
촉은 자기들이 말 그대로 후한을 잇는 세력이란 주장.

2. Who Is 장각?
황건적의 난에 있어 그 시발점이 된 "장각"의 존재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 허베이 성 싱타이 시 쥐루 현 출신의
종교가이자 도사였던 그는 역시 도사였던 "우길"이
그 개념과 교리를 정립한 "태평도"라는 종교를 사실상
창시하고 전파한 인물이다.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민심을 틈타, 주술이나 부적 등으로
병을 고치는 일종의 사이비 야매 수법으로 민심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일컫는 "플래시보 효과" 였을 듯.
보통 사이비교에서 저런 주술이니 부적 따위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대개 다 그렇듯, 플래시보가 겹쳐 나으면 내 덕,
못 고치면 니새끼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불경한 탓이 된다.
아무튼 그짓거리 하고 다니다, 그래도 또 난세는 난세라
그런게 꽤나 먹혔는지 일정 세력이 따르기 시작하자 결국
184년, 장보와 장량 두 동생들과 함께 대장노릇 하며 난을
일으킨다.
거의 중국의 양쯔강 이북 8주(유주, 병주, 기주, 연주,
서주, 청주, 사주, 예주)에 걸쳐 수만 여 명이 봉기했고
사실... 이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후한은 멸망이나 진배없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때부터 후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준했고
한황실도 통제력을 상실했다.
참고로 종교집단에 의한 황실타도의 난리가 일어난 것은
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이 때가 처음.
그리고 저런 거국적 정권타도 목표가 아닐지라도 어쨌건
"종교집단에 의한" 난도 황건적의 난이 최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장각 본인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그 해에 병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기세가 거셌고 장각의 두 동생의 리드도
있었으며 방대한 지역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한
난이여서 그 세가 장각이 죽었다하여 바로 사그라들진
않았다.
일단 당시는 대중매체도, 통신도 전무하다보니
장각의 사망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였고
이미 당시 난의 파워가 있다보니 관성에 의해 기세는
계속 유지되었다.

3. What Is 태평도?
자, 그럼 "태평도"는 또 뭐냐?
위에서 말했듯 일종의 종교였는데, 이 종교라는게...
카톨릭이나 불교, 이슬람과 개신교, 유대교 등등등등 처럼
뭔가 반드시 절대적인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멘탈적 근간이 되는 "유교" 역시 무슨 유교의 신이
존재해서 엑스멘 시리즈의 뮤턴트들처럼 초능력을 흩뿌리고
그래서 생긴 종교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만들고
정리한 여러 사상과 제약 등을 일컫는 "교리"가 생기고
이 교리를 따르고 받드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형성되는 것.
어찌 보면 사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회사동료였고 퇴사 후 거제도에
빙수집 차렸다가 거제 조선경기 망하며 같이 망한 정호형이
내세우는 이론들 중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피우는 것이다."
"여자의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남자의 피임은 임신시킨 여자를 피하는 것"
"일부다처제란 말처럼 처제도 내 여자다"
뭐 이딴 개소리들이 있는데, 이것도 누군가
'오.. 시발 진리다 +_+' 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고
저기에 맞춰 생각하고 생활하며...(....)
심지어 그런 찐따들이 늘어나고 지들끼리 저걸
전파하며 그러다보면 저 말같잖은 소리들을 교리 삼아
정호형을 교주로 여기는 종교가 탄생하는 것.
그런데 정호형 뭐 하고 사나? 번호도 바뀌었던데...
결국 깜빵 간건가..
어쨌건 삼천포로 빠졌는데, 태평도 역시 종교고
그 기원은 이미 여러분도 한 두 번은 들었을 "도교"에서
비롯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우길이란 도사가 도교를
베이스로 자기가 음양과 오행관련 이론 등을 믹스해서
교리를 정립한 종교다.
황건적의 난이 중국을 씹창내고 각지의 호걸들과
제후들이 다시 그 황건적들을 씹창냈지만..
하도 호된 엿을 잡수신 후한의 지도층들은
"태평도 = 황건적"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 후,
황건적과 무관한 태평교도들에게도 홀로코스트를 자행,
태평도가 탄압을 받기에 이르른다.
결국 태평도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게 되었지만
이 도교라는 종교가 갖는 파급력이 당시에는 꽤나
먹어줬던 모양이다.
당장 우리가 흔히 쓰는 도 닦는 "도사"라는 표현도
본래 도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또 거기 맞춰 생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였다.
결국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 구수히 들려주시던
배추도사와 무도사도.. 탈모인들을 좌절에 빠뜨린
머털도사도... 전우주 최강의 전사인 카카로트를
키워낸 명스승 무천도사도... 도교를 연마하시는
분들이였다!!!......는건 뻘소리고 아무튼 그렇게
우리네 일상 속 단어의 유래를 꿰찰만큼 영향력이
있던 종교라는 거다.
하여간 도교는 태평도처럼 여러 아류들이
생겨났는데 또 그 중 하나가 삼국지 속 유명인사 중
한 명인 한중의 "장로"가 이끌던 "오두미도"였는데
이는 추후 따로 설명!

4. 황건이 배출한 스타들.
중국 전역에서 수 만 여 명으로 스타트하여 전성기 때
대략 추산 20여 만 명에 이르던 황건적들답게 삼국지연의
속에는 어느 정도 난이 제압된 이후 그 출신 스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모두 다 나열할 수는 없으나 네임드들만
대충 거론해 보자면....
관우의 사이드킥이던 주창,
역시 관우의 사이드킥 출신으로 훗날 촉의 주력 장군까지
올라갔던 요화,
관우의 사이드킥 합류 일보 직전, 조운의 한 창감으로
전락한 비운의 소시민 배원소,
관우의 오관육참 스테이지의 보스 중 하나던 변희,
(뭐 이리 관우랑 엮이는 것들이 많나)
유비가 떠돌던 시절, 힘을 합쳐 조조세력과 잠시
맞다이 뜨던 여남의 유벽과 공도 콤비,
도겸의 지시를 받고 조조의 부친인 조숭을 호위하던 중
재물을 노려 조숭일행을 올킬하고 먹튀한 장개,
뭐 당연한 소리지만 장각, 장보, 장량의 삼형제 등등..
그럼 그렇지, 이 중 반 가까이는 허구의 존재들이다.
주창, 배원소, 변희는 나관중이 지어낸 인물들이고
요화는 황건적 출신은 커녕 오히려 나름 명문가의
귀한 아드님을 나관중이 뭔 억한 심정인지 도적출신
떠돌이로 전락시킨 연의의 피해자 1...
장개도 사료에는 그냥 도겸군의 도위라는 계급의
하급 장교였다고만 나오지, 황건출신이란 언급 없다.
나머지 인물들 및 소설 속 등장하는 다른 황건출신들
역시 실존은 했으나 하지도 않은걸 했다 하거나,
반대로 한걸 안했다거나 스킵하는 등의 각색들을
당한 경우가 많다.
뭐 대개는 삼국지속 영웅들의 초창기에 경험치를
올려주는 잡몹 수준의 비중들이긴 하지만...ㅎ

5. 무엇을 원했나?
황건적의 난 이전에 저런 전국구급 대규모 난으로 진나라
말기에 있었던 "진승 & 오광의 난"이 있다.
이 또한 중국사 최초의 농민(서민)의 난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난이며 이 난의 모토는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법한
"왕후장상 따로있나, 못살겠다 갈아엎자" (박력있다ㅋㅋㅋ)
아무튼 저 난의 주동자나 모토나, 여러모로 신분 및 계급에
의한 차별과 부조리를 타파 위한 평등지향적 쿠데타였지만,
황건적의 난은 엇비슷해 보이긴 해도 근본이 다르다.
장각한테 누가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아니고,
장각도 어디에 딱 꼬집어서
'아, 저희 황건은 XX를 위한 서민집회입니다! 박ㄹ혜 하야!!'
했던건 아니다보니 역시 여러 정황근거들 통한
훗날 사학자들의 추측이긴 하지만, 여러 근거들과
장씨 3형제의 행태를 볼 때....
결국 그들의 파이널은 유씨의 한 황실을 엘리시킨 후,
장씨들의 새 황실을 만들려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들고 일어난 백성들 역시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무능한 한 황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분노하여
'장각이나 태평도가 어떤진 잘 몰라도 일단 한은 뻑큐!'라며
분기한 것이 대부분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단 황실의 몰락과 그로 인한 권신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그런 황실의 레인지에서 벗어난 지방 제후들의
마구잡이식 백성 프레스,
설상가상의 갖은 대규모 자연재해...
이런 이유들로 전염병과 기아의 확산,
그에 따른 엄청난 인구감소...
위의 이유들에서 비롯된 1차 산업 붕괴로 인한 경제파탄,
높아지는 범죄율과 반비례하는 치안..
이건 뭐 그야말로 헬, 그 자체.
막장궁지에 다다른 백성(농민)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마침 가려운 곳 긁어주는 태평도와
인간 사이다 장각의 쇼에 넘어가게 되었던 것.
당시 백성들은 당연히 지적수준들도 낮고 정치에 관한
성숙한 의식과 식견들도 없다보니 냉철한 판단도 없었고...

6. gg........
기세 좋게 번져 오른 황건적의 난.
그러나 여러 한계들로 인해 결국은 실패하여,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들은 황건혁명, 황건운동 등으로 들었겠지만
승자의 편인 역사 탓에 끝내 "난"으로 명명되고 말았다.
패인 1. 장각의 부재.
일단 장각은 이 모든 사태의 주동핵심이였다.
그런 장각이 난의 시작해에 병사함으로 인한
컨트롤타워와 구심점의 부재는 실로 치명적이였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없이 대회를
치렀어도 과연 그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해본다면 뻔하다.
황건적은 정규군대 아닌, 그냥 농사짓고 생선잡고
장사하던 평백성들... 그것도 대개 굶주림에 지쳐있던,
무기 한 번 안잡아보고 전투 한 번 못치뤄본 평민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지휘자의 리딩이 중요했는데,
역시 군지휘관도 아니라 지휘통솔력이 검증안된 장각이
살아 이끌었어도 어떨지 모를 와중에 어쨌건 황건적들의
정신적 지주인 장각의 부재는 매우 컸다.
패인 2. 전투력.
위의 언급대로 황건적의 9할 이상이 그냥 백성들...
아무리 후한이 괴멸직전의 상태였다한들,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의 지방을 이끄는 제후들은
제법 상당한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로마군과 게르만족들의 전투,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에스파냐 콩키스타도르들과의 전투, 동학군v일본군,
광주민주화항쟁 등등 아무리 숫자 많고 기세 등등해도
체계적 군율로 통제되며 훈련된 정규군을 이기긴
매우 버겁고 벅차다.
일반 백성들이 그저 숫자 많고 기세만 높다하여
제대로 통솔도 안되는 와중에 싸움이 될 리 없고,
개개인의 전투력과 무장수준도 형편 없었으며,
또 저런 급조된 오합지졸들은 약간만 전세가 불리해지면
나 살자고 도망치다 자기들끼리 밟히고 치여 죽기 바쁘다.
패인 3. 명분.
황건적들도 쪽수가 불고 세가 오르자 결국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긴 매한가지였다.
일단 기강이 없어 제대로 된 컨트롤도 안되고
정규훈련이나 교육도 부재하니 무슨 최소한의 기본적
윤리나 규율도 없었고...
당장 배는 고픈데, 병참체계가 있길 한가, 지원시스템이
있길 하나.. 결국은 도적질이 답.
그러다보니 황건에 가담 않은 다수의 백성들의 인심도
잃고,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삥 뜯는 세력이 늘었을 뿐.
그렇게 명분을 잃다보니 백성들의 지원과 후원도 줄고,
가담자들 역시 실망과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여 이탈하고..
저런 쿠데타나 혁명 등의 봉기는 구성원들의
집결과 응집을 위해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을 잃은 봉기는 그냥 끈 떨어진 연이 될 뿐.
정말 확실분명한 대의명분이 있고 또 그게 유지 되었다면...
유비, 조조, 손견, 원소, 동탁, 마등, 공손찬 등의 숱한
히어로들은 아마,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둘러멨을지 모른다.

이번 삼.이.높.3의 주제인 황건적의 난은 삼국지에 대한
칼럼을 다루려면 결코 생략해선 안될, 오히려 반드시
거론하고 가야할 주제라 생각해서 쓰게 되었는데...
오우, 막상 쓰려다보니 지금까지 써온 주제들에 비해
제가 아는 부분, 기억 나는 부분이 적더라구요...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자료들 다 찾고 뒤적이며 저도
공부해서 쓰느라 좀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었어요 T-T
다들 쉽게 이해가 갈지, 지루하고 두서 없어 노잼은
아닐런지 가장 걱정되는 카드가 될 듯 합니다.
쓰기는 제일 고생해서 썼는데...ㅎㅎ
아무튼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팔로우, 좋아요, 클립과 댓글들이
이런 힘듦과 시간할애를 아깝지 않게끔 해줍니다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