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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1

우리글 근원의 서 2장 균형 1
욕심과 화 많은 자들이 왜 더 잘 먹고 잘 사나요?
실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닙니다.
저주를 받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일단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원자에는 원자핵이 있고 이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뉩니다.
그리고 원자 주위로는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전자는 마이너스 성질입니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공간 99.9999999프로는 빈 공간입니다
실은 거의 모든 공간이 허당이라는 것입니다.
양성자는 영의 역할을 합니다.
중성자는 자유의지의 역할을 합니다.
전자는 혼의 역할을 합니다.
전자가 형성되지 않으면 순수한 빛인 영과 자유의지만 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현상계(물질세계)는 사라지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전자(음에너지)가 작동하기에 눈으로 인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음에너지란 안 보이는 것을 보일 수 있게 드러내려는 성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유의지 즉 중성자가 양성자(영)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 혹은 전자(혼)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 스토리(운명)가 정해지게 됩니다.
자유의지가 전자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즉 자기 성질을 죽일수록 순수한 빛(영)이
살아나게 됩니다.
물론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이러한 상태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상태를 종교에서는 보통 성령이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성자(자유의지))가 전자(혼)에 힘을 실어줄수록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게 되느냐...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만큼 업의 작용이 왕성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업이 곧 전자의 활동입니다.
학습되어 반복되게 되는 습관, 버릇,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경우를 하나님(빛, 영)과 멀어졌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영(빛)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또한 혼에 대해서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전자도 두 개로 나뉩니다.
아직 과학계에서 밝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자 또한 음과 양의 대립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을 하자면 긍정적인 혼과 부정적인 혼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적된 버릇이나 습관 그리고 고정관념이 바로 업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눈에 안 보이는 의식의 상태가 바로 현실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시절입니다.
인간들이 물질(돈)을 균형 있게 사용하고 균형 있게 분배를 하게 되면 실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용 혹은 부의 집중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원자의 세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가진 자들은 더욱 욕심이 커지게 되면서 음에너지(전자)가 부정적으로 작동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삶이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게 최고의 삶이라는 보편적인 정서가 형성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물질(돈)에 치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드러내려고 하는 성질이 음에너지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지나치게 치우치게 되는 현상을 우주 입장에서는 가만히 지켜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치우치거나 지나치게 될수록 자동적으로 균형을 잡으려는 게 바로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즉 허용해줄 수 있는 마지노선(임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러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부의 집중 현상이 계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부의 집중현상이 심화되므로 인해 여전히 기득권들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가능해지는 이유란 게 실은 억지로 버티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치우친 세상에서도 기득권들이 저리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은 실은 다른 음 에너지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이기에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들이 버틸 수 있는 비법이란 게 다른 게 아니고 많은 인간들을 자기들과 같은 성질의
한패거리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모든 인간들을 짐승의 우상 즉 돈을 섬기게 세뇌를 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로서로를 격려하며 최선을 다해 물질적인 성공을 향해 살아보라고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전자의 힘을 점점 키우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전자의 거품으로 가득 차게 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이 세상을 전자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순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인류 대다수를 물질(돈)을 숭배하게 만든 것입니다.
해서 이러한 세상을 잘 유지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바로 매트릭스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이 살아가는 비법이란 게 특별한 게 아니었고 단지 전 인류를 돈과 물질에 관심을 갖게
즉 집착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풍선을 너무 크게 불면 언젠가는 그만큼 크게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우주의 법칙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합니다.
즉 멸망을 할 것이냐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냐...
물론 결론은 멸망이자 곧 새로운 시작입니다.
전자(물질, 돈)를 추구하던 자들에게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양성자(의식)를 추구하던 자들에겐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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