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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아닌 '달'을 보며 시간을 가늠해야 하는 이유

매일 밤 차오르고 기울음을 반복하는 '달'
최근 달을 본 적이 언제인가? 달의 모양은 기억하는가?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을 먹고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이상 달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길가의 가로등과 도시를 뒤덮은 네온사인으로 달은 더이상 빛을 내는 존재로서 기능을 하지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달린 장식품 정도가 돼버린 달. 원래 달의 기능에 무엇이었을까.
1. 달이 알려주는 시간
과거 우리 선조들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날짜를 가늠했다. 보름달이 뜬 날은 그달의 중간날(15일)을 의미했고, 초승달은 그달의 초순, 그믐달은 그달의 하순임을 알려 주었다. 이로써 달력을 보지 않아도 날짜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달의 움직임에 맞춰 약 30일을 한 달로 여겼다. 무엇보다 한 달을 7일 주기로 나누는 지금과 달리, 한 달을 10일을 주기로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눠 불렀는데, 시간을 열흘 단위로 넉넉하게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목요일 (양력 2017년 1월 12일)은 음력으로 2016년의 마지막 보름이었다. 밤하늘에는 꽉 찬 마지막 보름달이 반짝였다. 보름 후면 이번 달이 지고, 새달이 차오를 것이었다. 다음 달은 2017년 1월 28일에 뜨는데, 이는 2017년 정유년의 첫 달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첫 달이 뜨는 날을 새해로 기념해 왔다. 그 날이 바로 설날이다. 즉, 전통적 시간으로 계산하면, 우리에겐 아직 병신년, 12일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 혹시, 작심삼일이 돼버린 새해 계획이 있는가? 2017년 정유년의 첫 달이 뜨는 날,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2.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시간
2017년 우리의 표준 시간은 태양력이다. 태양력은 해의 움직임에 따른 시간 개념으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365일을 기준으로 일 년을 센다. 일 년은 12달로 나뉘고 한 달은 7일 주기인 일주일로 나뉜다. 그리고 하루는 24시간, 60분, 60초로 나뉜다. 이렇게 잘게 나뉜 시간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리되곤 한다. 하루는 아침 알람으로 시작되고, 1시간 단위로 나뉜 스케줄은 우리의 하루 일정을 관리해준다. 대부분 7일을 주기로 일상이 반복되는데, 월요일이면 한 주를 시작하고, 다음 월요일에 또 다른 한 주를 시작하는 패턴이다. 달의 변화를 볼 새도 없이 매주의 일상이 돌아간다.
오늘은 양력으로 1월 16일 월요일, 음력으로는 섣달 열아흐레 되는 날이다. 꽉찬 보름달에서 달이 기울기 시작한 지 나흘 정도 되는 날이다. 퇴근길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 한 번 쳐다보며, 자연의 시간을 느껴보면 어떨까.
+
'상현달이 하현으로 이울 때까지 그는 하늘에 달이 걸린 밤이면 언제나 강가에 나와 있게 되었다.'
≪김동리, 달≫
달이 기우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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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진정한 국모였던 마지막 황후 - 순정효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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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한본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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