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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6개월 안에 외국어 익히기 테드영상 내용정리 캡처
강의자 : Chris Lonsdale 교수 이 교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엄청나게 흥미와 관심을 가졌다고 함 11살에 소련의 학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수면학습기를 도입해 볼 정도로요. 그러다가 1980년대에 중국에 갈 일이 생기고, 당시 모든 외국인들이 극악의 언어이자 10년을 배워도 못 배울 언어로 여기던 중국어를 2년 내에 하겠다고 결심 결국 중국어를 익혀서 6개월 정도에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게 되고, 모국어 수준으로 하기엔 1년 정도가 걸렸음 그러나 자기 말고 다른 외국인들은 여전히 중국어를 익히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고,  이걸 지켜보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을까?'의 의문은 '어떻게 하면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을까?'로 바뀜 그 의문에 답하는 과정은 성공적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들의 사례를 모형화하는 작업을 15~20년을 거치면서 나왔고, 아래에 나오는 원리들을 제대로 적용한 사람은 재능이나 사는 나라가 언어 관련국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그동안 실패하던 언어들을 정복하게 됨. 그럼 이제 외국어를 6개월 내에 익히기 위한 5가지 원리와 7가지 행동요령을 알아보자 첫 번째 원리는 주목, 의미, 연관성, 기억인데, 이걸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존'에 관련된 것은 주목하게 되고 의미를 띠며 연관성을 급속히 가지게 되고 기억도 잘 됨 그 사례로 곰이 주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을 무시했다가 곰을 마주쳐 살아난 사람은 앞으로는 그 표식을 절대 잊지 못한다는 것과, 9개월간 일주일에 두번씩 학원까지 다니며 중국타자를 배웠지만 못 치던 동료가 업무적으로 중국어교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닥치자 48시간 내에 중국타자를 치게 된 일을 말함 즉, 자기가 연관된, 자기가 흥미를 가질 만한 언어를 익혀야 하고 이게 안 된다면 자기와 연관되게 만들고, 자기가 흥미를 가질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 두번째 원리는 내가 배우는 언어를 도구화하여 그날부터 바로 사용하라는 거. 그 예로 교수는 중국에 갔을 때 횡단기차 안에서 밤새 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중국어 듣기능력이 바로 향상된 사례를 말해줌. 세 번째 원리는 이해해야 습득하게 된다는 거. 이게 무슨 상황에 쓰이는 낱말인지 이해를 한 후에 사용하라는 이야기인 것 같음 아래 표는 보라색: 문법과 교육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 초록색: 이해 가능한 접근으로 언어를 배운 사람의 언어 습득 정도를 나타낸 표. 아래 행동요령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옴. #3이라고 돼 있는데 아무래도 네 번째 원리의 오타 같음.. 언어는 학습이 아니라 운동과 같은 생리적 훈련에 가깝긔 때문에 몸으로 익혀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얼굴이 아파야 잘하는 거라고(?) 원리 중 다섯 번째는 바로 '상태가 중요하다'=기분 좋은 상태에서 배우라는 거. 여기서는 특히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기를 쓰지 말고 애매모호한 것도 관용적으로 넘기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배우라는 것을 강조. 그렇다면 이 원리를 가지고 실행에 옮겨야 할 7개의 행동은? 첫째, 많이 듣기 자막에도 있는 것처럼 두뇌를 그 언어에 담그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언어를 계속 듣게 되는 환경을 만들라고 둘째는 위에 있는 원리랑 비슷하게 의미 중심으로 익히라는 이야기 단어암기보다 그 낱말이 쓰이게 되는 상황 자체를 생각하라는 말 같음. 아기들이 하듯이 아는 단어들을 섞어서 말을 만들어보래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익히는 거라면서요. 주어 10개, 동사 10개, 형용사 10개를 익히기만 해도 1000개의 문장을 만들 수 있으니 무작정 섞어보라고 함. 언어는 많은 단어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3000개만 알면 그 언어의 98프로를 할 수 있다고 함. 그러려면 주별로는 아래의 순서대로 익히면 좋음. 첫째 주에는 언어를 익힐 때 물어보기 이해 필요한 단어들을 익힘. "이해가 안 가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건 어떻게 말해요?" 등등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걸쳐서는 간단한 대명사, 부사, 동사, 형용사를 익힘. 셋째주와 넷째주에 걸쳐서는 논리적으로 이어주는 말들, 예를 들어 '그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래서' 같은 말들을 익힘.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됨. 다섯 번째는 언어의 부모를 찾아서 곁에 두는 거 모든 어린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거치는 과정처럼요. 외국어 부모는 4가지의 자질을 갖추면 좋음. - 당신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 - 당신의 실수를 고쳐주지 않는 사람 -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했는지 올바른 언어로 말해주는 사람 - 내 수준에 맞는 낱말을 사용해서 말해주는 사람 여섯 번째는 언어는 얼굴근육을 사용하는 운동과 같은 신체훈련성 활동(학습활동이 아님)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잘 보고 얼굴모양을 흉내내야 함. 마지막 7번째 행동은 낱말을 익힐 때 모국어로 한 번 중간에 의미해독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바로 이미지화해서 즉각적으로 접근해야 함. 즉 fire=불이 아니라 fire= 이런 식으로요. 출처 새해엔 영어공부를 !!
바다속의 돌고래를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메라 퀄리티
아프리카 동부 모잠비크의 바다. 우리가 돌고래하면 흔히들 떠오르는 병코 돌고래 가다가 대왕 조개 발견.. 대왕 조개 안에서 뭐가 나옴... 앵무조개.... 2마리.. 흥미를 느끼는지 유심히 본다 사실 이거 둘 다 카메라임 ㅋㅋㅋㅋㅋ 돌고래를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 앵무조개 카메라가 보는 시점.jpg 이런 위장 카메라의 장점 태어난지 몇주되지 않은 엄마 뱃속에 있던 자국이 아직 몸에 그대로 남아있는 작은 아기 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 아기있는 엄마 돌고래는 인간 주변에 웬만해서는 가까이 안가니까요 그리고 바닥에는 가오리 1마리... 얘도 카메라.... 바닥에서 병코돌고래를 쫓아다니며 촬영함 그리고 물위에는 거북이 한마리.... 가 아니라 사실 얘도 카메라.. (말 안해줬음 진짜 거북이인줄) 둘 다 거북이 카메라가 보는 시점.jpg 돌고래 눈매가 ㅋㅋㅋ 누가 그린거 같음 ㅋㅋㅋㅋㅋ 한편 중앙 아메리카 부근의 어느 바다.. 돌고래 한마리가 보임... 은 얘도 사실 카메라. 시속 25km의 속도를 낼 수 있음. 지금 사진에 보이는 돌고래는 병코 돌고래가 아니라 얼룩 돌고래.. 얼룩 돌고래는 돌고래 중에서도 유일하게 회전 점프를 즐겨하는 돌고래임 물론 다른 돌고래들이 회전 점프를 안한다는건 아니지만 얘들은 회전 점프가 주된 점프 요런 점프~🐬 이젠 뭐 말 안해도 알겠죠? 얘도 카메라임. 입 안의 렌즈로 촬영함 돌고래 카메라가 수면 쪽에서 촬영을 담당한다면 이 가짜 참치 카메라는 수중+돌고래 무리 사이에서 촬영을 함 이런 식으로 무리에 끼여서 촬영 저 돌고래들 얼룩 돌고래임.. 참치 카메라의 시점.jpg 산호초 사이에 오징어 한마리 등장🦑 이제 말 안해도 알듯.. 카메라임 오징어 카메라의 시점.jpg 저 물고기는 다 크면 크기 2미터에 몸무게 100kg이 넘는다는 감자바리 문제는... 오징어가 주된 먹이ㅋㅋㅋㅋㅋㅋㅋㅋ ㅌㅌㅌ💦💦💦 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상탈출 해서 다행히 잡아먹히진 않았음. (거북이나 가오리에 비해 오징어는 먹이로 하는 해양생물들이 몇몇 있어서 이런 탈출기능 탑재가 필요 ㅋㅋㅋ) 개빠르네.. 죽다 살아남🦑 이 참치 카메라가 밝혀낸 게 뭐냐면 일반적으로는 돌고래는 소규모 무리를 이루고 산다고 알려졌는데 깊은 바다에서는 무리가 모이고 모여서 수백마리들이 뭉쳐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 쟤들은 얼룩 돌고래... 한 앵글에 다 못담음.. 이거 다큐 나레이터 말로는 약 3천마리가 뭉쳤다고 함 촬영중인 거부기 마지막은 주변에서 사랑을 나누던 거북이 커플이 있었는데 암컷 거북이가 교미 도중 거북이 카메라한테 관심을 가짐 몇분 동안 거북이 카메라 주변을 서성이다가 돌아갔다는 후문 출처
막걸리 좋아해? 전국 지역별 특색있고 특산물로 제조한 막걸리 모음.JPG
서울 한강주조 나루생막걸리 6% / 11.5% 서울 성수동에서 재배한 경복궁 쌀로 만든 서울 1호 특산주 경기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막걸리 6% 무 아스타팜, 단맛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 김포 금쌀 탁주 김포선호 생 막걸리 6% 70년 전통과 역사가 있는 명문가 막걸리, 김포에서 자란 금쌀로 제조 천연감미료 사용 포천 일동 담은막걸리 화이트 6.5% 하얀 구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90년 전통 막걸리 청계산의 맑은 물 사용,합성감미료 X 충청남도 사곡양조 공주 알밤 밤막걸리 6% 막걸리 제조에 사용하는 밤은 품질이 좋은 최상급 밤을 사용 진한 밤맛이 특징 한산모시 생막걸리 5% 한산에서 난 모시잎을 사용해 만든 막걸리 모시잎을 사용해 은은하게 퍼지는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 이상헌 탁주 14% 충남 아산에서 난 쌀로 만든 탁주 엄선한 누룩을 사용해 백여 일 간 발효해 만들어 프리미엄 막걸리라 부른다 모든 공정 수작업이라 한정된 수량만 제조 충청북도 장희도가 세종대왕 어주 13% 유기농 쌀(현미 찹쌀)로 만든 막걸리 ,초정 약수 사용 무 첨가물 용두산 강냉이 막걸리 6% 제천 100년 전통 양조장에서 제조한 막걸리 옥수수가 들어가 옥수수 향과 걸쭉한 느낌이 드는 막걸리 명세주가 가덕 순쌀막걸리 6%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친환경 충북 청원쌀을 사용 100% 우리 쌀로 만들어 깔끔한 맛이 특징 전라남도 담양죽향도 대대포 생막걸리 6% 미네랄,비타민이 풍부한 지리산 벌꿀과 댓잎을 첨가해 감칠맛이 있는 막걸리 인공 감미료 X 편백 숲 산소 막걸리 딸기 스파클링 6.8% 전남 장성군 특산물인 딸기를 사용해 제조 딸기향이 느껴지며 스파클링이라 청량한 맛이 특징 남도 탁주 정고집 나주 쌀 생 막걸리 5% 다른 막걸리와 다르게 백설기와 찐쌀을 사용해 제조 전라북도 국순당 자연담은 복분자 막걸리 6% 국순당 고창명주에서 제조 고창에서 재배한 쌀과 특산물인 복분자로 만든 막걸리 복분자 우유를 마시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함 전주 애모주 1.5% 생강,계피,대추,배 등을 넣어 제조 계피와 대추향이 강한 막걸리 내변산 쌀 바나나막걸리 4% 바나나 맛이 아닌 바나나 향에 가까운 막걸리 바나나 탄산맛을 느낄 수 있고 얼음 넣어 마시면 좋다고 한다 경상남도 금정산성 토산주 막걸리 8% 대한민국 1호 민속주 이화백주 순탁주 6% 우리 쌀에 옛날 누룩을 100% 사용하며 서로 마실수록 이롭다는 뜻을 담고 있음 햅쌀을 사용해 제조하고 막페인(막걸리+샴페인)이라고 부름 복순도가 손막걸리 6.5% 100% 우리쌀로 빚어 호불호가 적은 막걸리 경상북도 두술도가 희양산 막걸리 9 / 15% 희양산 주변에서 재배한 쌀과 우리밀 누룩을 사용 요구르트처럼 담백한 맛을 내는 게 특징 문경주조 오미자 생막걸리 6.5% 우리 쌀과 문경 동로산에서 자란 오미자로 빚은 막걸리 분홍분홍한 색감이 이쁘다 문경주조 문희 13% 재료를 세번에 담는 전통 삼양주 기법으로 빚은 막걸리 90~100일간 황토방에서 숙성해 진짜배기 막걸리만 추출함 강원도 호모루덴스 12% 유희의 인간이라는 뜻을 지닌 막걸리 강원도 홍천 한의사가 만든 막걸리로 유명하다 삼양주 기법으로 지어 맛이 풍부 전통주조예술 만강에 비친 달 10% 홍천 특산물인 단호박을 사용해 제조 백자주 막걸리 10% 백자란 잣나무 열매 잣을 가리키는 말로 홍천 명물 잣을 사용해 제조 제주 낙화곡주 우도 땅콩 생막걸리 6% 우도 명물 땅콩을 사용해 제조 땅콩을 사용해 땅콩 특유의 고소한 맛이 특징 출처
1960~70년대 아시아 제일가는 마약 제조국과 아시아 마약 카르텔
메스 암페타민이라는 마약이 있어 종주국 : 일본 증상 : 강력한 환각, 각성 특징 : 만들기 쉽다 존나 쉽다 개개개개개 쉽다 메스암페타민은 일본 의사가 1893년 감기약을 개발하다가 발견했어 성분이 감기약과 유사하다보니 아편 대마 코카인 등 원재료 중요한 다른 마약에 비해 화학지식만 있으면 쉽게 만들수 있음 울나라에서도 걍 고딩 이과생이 저거 만들었다가 걸려서 난리난적 있더라고 이 성분을 주목한 일본의 다이닛폰 제약은 메스암페타민을 첨가한 피로회복제를 만들어 대대적인 광고를 했지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건너간 히로뽕은 시험공부 중인 학생이나 장거리 주행하는 트럭운전기사들을 중심으로 남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독현상에 대한 심각한 보고가 없었고, 위험성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히로폰 익숙하지? 맞아 흔히 우리나라에서 히로뽕, 필로폰으로 불리는 그 마약이야 이 히로뽕이 대대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바로 전쟁시기야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추축국 가리지 않고 많은 군인들이 마약을 했어 왜냐? 피로를 빨리 회복시켜주고, 더 용감하게 잘 싸우게 해주거든 각성제 효과로 죄책감이나 피로감 두려움을 일시적으로 감춰주거나 원하는 환각을 보여주니까 당연히 만들기 쉬운 메스 암페타민, 히로뽕도 많이 사용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히로뽕은 연합국이던 추축국이던 거의 모든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보급됐다. 야간행군 때 졸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고, 한편으로 병사들의 겁을 없애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각 군의 지휘관들은 중요한 보급물자 중 하나로 이 메스암페타민을 수만정씩 보유하고, 병사들의 사기와 내구력 향상 등의 목적으로 정기 지급했다. https://cm.asiae.co.kr/article/2019052814320517335 종주국인 일본은 특히 말할 것도 없었지 특히 전쟁 막바지로 갈수록 심각한 난전, 악전고투를 겪던 일본 군인들의 필수품이었음 가미카제에 탔던 병사들도 히로뽕을 투여한 채 자살테러를 감행했고 그 전쟁의 결과는 우리도 다 아는 빵 그렇게 전쟁은 한순간에 끝났고 일본에세 남은건 패배와 반쯤 박살난 국토 그리고 군창고에 쌓인 수많은 히로뽕이었어 사실 메스 암페타민은 화학 실험으로 만들어지는 마약이야=제조하는 화학 기술자가 따로 군대에 고용돼 있었다는 거임 근데 일본 패망 후 갑자기 메스암페타민을 제조하던 기술자들이 한번에 실업자가 된거야 굶어 죽을수는 없잖아? 그래서 기술자들은 군인을 위해 제조하던 메스암페타민을 민간에 팔기 시작했지 이미 메스암페타민이 첨가된 피로회복제가 팔리는 판에 군대에서 쓰이던 순수 메스암페타민까지 등장한거야 그러자 일본에는 이미 메스암페타민에 중독된 군인들 뿐 아니라 민간에도 많은 중독자가 발생에 큰 문제가 생겼고 1945년 패전 후에는 구 일본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필로폰 재고가 암시장을 통해 흘러나왔다. 일본 전역에 마약 중독자가 속출했다. 일본은 1951년까지 각성제 유통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965년에는 ‘제2차 각성제 남용기’가 도래했다. 전쟁 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재건에 열을 올리는 노동자, 밤낮없이 활동하는 연예인과 그 뒤에 암약하는 야쿠자들의 손을 타고 각성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마약으로 자리 잡았다.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6&t_num=13608109 1951년 일본 정부가 금지약물로 지정해서 제조, 판매를 금지했어 어 정부가 잘했네 그..으렇긴 그런데... 2022년으로 점프해볼까?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하드드럭+일부 소프드드럭이 불법이야 강력하게 마약을 단속하고 있고 마약 단속반은 거의 특부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님 근데 미국에서..마약을 안해?? 존!!!!나 하잖아 미국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상이상으로 많음 가끔 길거리 걷는것도 무서움!!! 그것도 무시무시한 마약 갱단이 붙어서 하지 물론 미국의 마약 중독이 단순히 마약 금지때문만은 아니고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마약을 금지한다고 마약이 뚝 끊기는건 아니란거지 오히려 불법화되고 위험해지니까 폭력 조직들이 개입해 일본도 야쿠자가 메스암페타민 사업에 뛰어들었어 당연히 마약산업은 각종 불법+검은돈이 몰리는 산업이 됐음 일본 정부도 굉장히 강경해서 대대적인 체포 작전으로 5만명 넘게 체포하기도 했어 그야말로 일본판 마약과의 전쟁이었음 심지어 1960년대에는 마약 제조자에게 최대 사형까지 구형하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이렇게 마약관련 법이 강해지자 마약업자+야쿠자들은 눈을 돌리기 시작했음 잠깐 2022년으로 다시 점프해볼께 미국이 마약을 많이 한다고 했잖아 그럼 이 마약은 어디서 올까? 미국? ㄴㄴ 미국 아래있는 멕시코부터 더 아래있는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 제조되서 유통돼 그래서 그 국가들은 마약카르텔에 국가가 잠식되어 있는 수준이고 미국내 단속이 엄격하고 빡세질수록 마약 산업은 돈이 되는 산업이 됨과 동시에 근처 다른 곳에서 제조하려고 하는거야 그리고 미국이 단속 빡세질수록 그 카르텔에 마약상과 마약카르텔 갱들은 더 활개치고 시민들은 더 괴로워하지 OEM이라고 알지?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따지자면 미국의 마약은 멕시코와 중남미 국가에서 OEM 생산하여 판매되는거라고 봐야해 다시 1960년대로 가서 마약 제조업자들과 야쿠자들에게 메스암페타민 산업은 너무나 ~ 돈이 되는 산업이지만 자칫하다간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산업임 이때 얘네 선택을 고르시오 1. 회개하고 새삶을 산다? 2. 죽기를 각오하고 계속 만든다? 둘다 놉 3. 가까운 곳에 생산 기지를 만든다 돈도 되고 안전하고 개굿! 자 이제 눈치챘겠지 일본에서 제일 가까운 나라는 좆같게도 우리나라야ㅋㅋ 그것도 제일 가까운 곳은 제2의 도시 부산 일본과 가깝고 항구라 해상교통도 편리하니까 맞아 일본에 유통할 마약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조하기 시작해어 이때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마약왕인데 안봐서 뭐라 말을 못하겠다 아무튼 스토리라인이 일본에 마약 파는 내용이더라구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한 제재가 별로 없고 큰 문제를 일으킨적도 없었어 소프트드럭이라는 대마도 시골 어르신들이 종종 키워서 사용했었고 은근히 피는 사람도 흔했으니까 그런 헛점을 이용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야쿠자 세력 및 마약 상들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했고 그 아래 일하는 사람들도 점차 기술을 배우고 마약 장사에 참여하기 시작해 그리고 한국 조폭들의 큰 자금줄이 됐지 당시 한국에 뭐 4대 마약왕이니 마약 거물이니 유명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걍..아오안이라 더 안찾아봄..알빠쓰레빠 방식은 이래 대만에서 원료를 사온다->부산에서 만든다->일본에서 판다 어 따지자면..가공무역?..을 가장한 카르텔이지 뭐 저기에 개입되는건 일본의 야쿠자/한국의 조폭들이었고 폭력 조직과 각종 불법이권의 돈줄이 되어준게 바로 마약이었거든 그렇게 60년대~70년대까지 일본 히로뽕 생산량의 80%를 한국, 부산이 차지헀어 그것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의 히로뽕보다 한국 히로뽕이 유독 질이 좋아서 일본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 참...어떻게 마약도 굳이굳이 더 잘만드네..재능낭비? 그렇게 1970년대까지 부산 지하경제는 히로뽕이 장악했고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왔어 그렇지만 히로뽕 중독자는 우리나라에 거의 없었지 물량을 죄다 일본에 팔았거든 왜냐면 우리나라사람들은 가난했고 돈을 버느라 바쁘지 돈주고 비싼 마약을 살 여유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1980년대들어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해 1. 돈이 되니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 기술(???)이 발전했다 =양질의 히로뽕 생산량이 늘었다 + 2. 일본에서 코리안 마약 카르텔을 눈치채고 대대적으로 한국산 수입품을 단속했다 =대부분 일본에 수출되지 못하고 부산에 물량이 남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히로뽕 물량이 촤악 풀렸지 실제 우리나라에서 다른나라와 다르게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의 마약이 바로 히로뽕임 왜 오죽하면 SON of 정희, BROTHER of 근혜인 박지만 (=약쟁쓰)도 가장 많이 걸린게 히로뽕이겠어 헐 우리나라도 그럼 완전 약쟁이 나라 된거아냐? 놉 다행이 우리나라는 마약이 퍼지는 속도보다 정치 경제 사회 변화가 개빠른 나라였고 마약이 우리나라를 장악하기전 마약을 여러 선진적 체계가 빠르게 자리잡았어 단속반이 생기고, 마약단속법이 생기고 인식이 바뀌고 등 더불어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건비, 물류비, 물가 모든게 상승하다보니 계속 OEM을 하기엔 단가가 안맞았지 어쨌든 마약 산업(?)도 돈벌려고 하는건데 울나라에서 만들면 더이상 돈이 안되는거야 마이너스 수준임 걍 평범한 합법 공산품도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인건비 임대료 등으로 가격이 비싸지는데 하물며 마약은.. 그래서 많은 마약 제조상들이 다른나라로 떠났고 우리나라는 다행이 마약제조국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만약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지 못했다면, 사실 거대한 마약카르텔이 나타났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마약 카르텔의 가장 최악의 결과는 현재 멕시코나 남미를 보면 되고 또 아프가니스탄 같은 최빈국+분쟁국가도 부자국가의 마약 OEM으로 먹고 살며 마약카르텔에 갇힌 나라거든 물론 그 흔적은 아직 남아있지만..우리나라 아직도 가장 높은 비율의 마약이 히로뽕임 히로뽕은 투약횟수, 정도에 비해 몸에 끼치는 해가 아주 큰 마약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손도 대지 말자 막간 TMI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엔칸토는 화려한 색감과 신나는 음악이 특징인데 그 밝은 연출 뒤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어 엔칸토의 시작이 바로 콜롬비아 내전이야 주인공 가족은 내전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이고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의 큰 영향을 받은 나라고 당연히 콜롬비아 내전도 그 마약과 카르텔의 영향을 받았음 마약왕으로 불리던 나르코스가 콜롬비아 출신이기도 하고 마약과 콜롬비아는 절대로 뗄 수 없지 미국에서도 콜롬비아와 마약을 많이 연관지은 미디어,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본인들도 책임 아주 크다는건 가끔 망각하는 것 같아 ㅋㅋ ㅊㅊ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가 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썼던 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가 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당대비평>에 썼던 글. 지금 - 학교는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 자퇴한지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터(서울특별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 영상 디자인 작업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자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세상을 낯설게 볼 줄 아는 힘'과 '혐오할 것을 혐오할 줄 아는 예민함', 그리고 '나의 언어'이다. 십 년이 넘는 학교생활 동안 내 몸은 온통 싫다고,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나의 교육 받은 이성은 그걸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언론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고 있는 제도교육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 죽은 말이다. 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학교의 역겨움과 남성주의와 안이함과 무지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언론과 학교에 의해 세뇌된 죽은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슴으로 느끼고 찾아낸 자신만의 언어일 때 학교는 쓸모 있는 배움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이제, 힘겹게 찾은 내 언어로 말한다 -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늙은 아버지들이 당대비평을 내던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왜 아버지를 비판할 수 없나? 나는 왜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하나? 나는 왜 아직도 아버지의 인생경험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만 하나? 아버지와 다른 꿈을 꾼다는 이유로,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빌어야만 하며, 그 모든 짐을 혼자 져야만 하나? 아버지는 세상을 잘 알아서? 아버지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서?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쌓인 권위의 무게와 전통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그 내용이야 어떠했든 나는 존경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내가 학교에 안 가려고 발버둥쳤던 건 거창한 명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학교가 너무너무 싫고 내가 더 이상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다만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로 하여금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그것은 바로 학교의 권위다. 그것도 현실을 편견 없이 볼 줄 아는 능력 따윈 잊어버린, 다양한 생각과 언어를 길러내는 힘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 무능하고 늙은 권위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 안에 있는 수많은 '나'들은 권위의 족쇄에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다. 또는 착각하고 있다. 이제, '나'들의 언어를 찾기 위해 말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몸으로 삶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나'들의 이야기를 인정해야 한다. '나'들이 숨쉴 수 없는 사회, '나'들이 깨달을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는 사회, '우리'가 아닌 '당신'이 지배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학교라면, 학교는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 전문은 여기에서 와 18살에 이런 생각을 글로 . . *_* 우영우 속 방구뽕이 자캐였다니 !
시즈오카현의 흥미로운 이야기 (feat.녹차)
전근대 일본의 고속도로, 도카이도는 1601년 마련된 에도와 간사이 지방을 잇는 약 500km의 길 이 길을 따라 53개의 역참(휴게소)가 세워졌고 수도를 향한 행렬이 통하며 역참 근처로 상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현재의 도카이도 신칸센과 1번 국도도 거의 이 길과 비슷한 경로를 따라간다 참근교대(参勤交代)를 위해 가는 다이묘 행렬이 도카이도를 따라가다보면 여러 고개들도 난관이지만 가장 큰 장애물이 가로막는데.. (참근교대 : 각 번의 다이묘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볼모로 잡아두고 다이묘가 없을 때는 아내나 자식 등 친족을 에도에 보내 견제하는 제도, 에도까지 가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서 재정적 부담도 듦) 바로 시즈오카현 시마다시의 오오이 강이다 이 강을 기준으로 당시 지명 상 도토미국과 스루가국이 나뉘었다 미나미알프스에서 발원해 스루가 만으로 빠지는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선 인부들을 이용해 도하해야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에도 방향으로는 시마다(島田)쥬쿠 쿄토 방향으로는 카나야(金谷)쥬쿠라는 역참이 있었다 이 강을 건너고 23개의 역참을 지나면 에도 니혼바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았지만 오오이 강에 다리가 생기진 않았고 천 명이 넘는 인부가 강을 건너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고 이 산업이 막부에 바치는 세금도 쏠쏠했다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는 일반 여행객들의 수요도 늘어 서민들은 가마가 아닌 인부에게 목마를 타고 가기도 했다 오오이 강은 수심이 깊진 않지만 물살이 빨라 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면 위험했다 강의 수심에 따라 도하 비용은 달라졌는데 (위험 수당) 강의 수심이 136cm가 넘으면 '가와도메'라는 도하 금지령이 떨어졌다 1년 중 50일 정도는 도하가 금지되었고 최장 28일 간 도하가 금지된 기록이 있다 오오이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카와카이쇼라는 티켓 오피스에서 티켓을 사야했다 1인 가마는 네명, 2인 가마는 여섯 명, 다이묘들이 쓰는 렌다이 가마는 스물네명의 인부가 필요했다 시마다의 인부들은 1번부터 10번까지의 쉼터에 모여 대기하며 얘기를 하곤 했다 인부들은 수요가 많아지자 힘들어져서 인부 개인이 하루 최대 3번 도하하게 제한을 두었다 오오이 강의 도하 제도는 메이지 정부 출범 후 3년 뒤인 1870년에 강에 배를 띄울 수 있게하며 인부들은 졸지에 다 실업자가 되었다 배로 강을 건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1879년엔 강에 목조 다리가 건설되는데, 이 다리가 바로 897m 길이의 '호라이바시'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긴 목재 다리이다 한편 근대 일본에 처음 해군을 만든 카츠 카이슈는 1860년 서양을 돌아보고 일본의 차가 상품 가치를 갖겠구나 생각해 1869년 시즈오카 마키노하라 일대에 1,425ha의 녹차밭을 개간하게 명령한다 도하 산업을 잃은 시마다의 인부들도 1873년부터 이 녹차 산업에 뛰어들어 30ha의 녹차밭을 개간하며 지금의 시즈오카 일대는 녹차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
현재 가장 핫한 그림책 작가 3명 (안녕달, 백희나, 이수지)
[안녕달 작가] # 따뜻함 #귀여운 상상력 #다양성을 가진 주인공들 겨울이불 (2023) 눈아이 (2021) 당근유치원 (2020) 수박수영장 (2015) 작가 사진에서도 보았듯이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 이유는  “작가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면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할 것 같아 익명으로 활동한다”고 이유를 설명했어. 작품 속에서  휠체어를 탄 아이, 부모의 이혼을 겪은 아이, 아이를 잃은 엄마 등 연약하거나 소외된 존재를 등장시키곤 해. “힘 있고 강한 것보다 힘없고 약한 것에 더 눈길이 간다”는 작가는, 아이들도 이런 존재를 보며 자라야 한다. 사람은 행복한 시간만 보낼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연약한 것에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어.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그렇지 못한 것도 알아가며 자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림책에 종종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도 그리는 이유입니다.”  [백희나 작가] # 높은 완성도 #독특한 작업기법 #부드러운 색감과 연출 연이와 버들도령 (2022) 구름빵 (2019) 알사탕 (2017) 장수탕 선녀님(2012)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달 샤베트'로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너무너무 유명한 작가이기도 해서 설명은 더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해. "제가 바라는 건 제가 만든 그림책을 0세부터 99세까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이 되는 게 꿈이에요. 하루종일 육아에 지켜서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줄 때 숙제를 마감하는 느낌이 아니라 아이와 양육자가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어른도 양육자도 즐길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았나, 저도 어른이니까 저도 만들면서 즐거워야 하니까요. 제 자신도 만족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른에게도 즐거운 책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수지 작가] # 글 없는 그림책 #자유로움 #그림책의 모든 가능성 실현 여름이 온다(2021) 강이 (2018) 선 (2017) 파도야 놀자 (2009) 이수지 작가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작가야. 그림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수지 작가는 알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야!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글이 없는 게 특징이야. 그만큼 그림에 담는 메세지의 울림이 크기도 해. - 작가님에게 그림책이란 뭔가요? "자유예요. 어떤 그림책은 읽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아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책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올 때 어린이든 어른이든 큰 행복과 자유를 느낀다고 봐요. 저는 그림책을 보면서 이야기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을 느껴요.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에요. 그림 작업은 제게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인 동시에 자유를 선사하는 일이죠."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