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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뉴스] 그놈에게 알고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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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진짜별라게도 돈 벌어 처먹는 놈 들이네..다잡아서 죽여야해..처벌이 약하니깐 계속 나오는거지..
난 당하고 싶어도 못 당하겠다...가진게 없어 ㅠㅠ
이걸 왜 당해? 바보아냐?ᆢ참 나ᆢ ㅡ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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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스케일링에 대한 10가지 진실들
1. 스케일링이 뭐에요? - 스케일링이란 초음파 진동으로 치석을 제거하는 것! 2. 스케일링을 받고 나서 이가 깎인 것 같아요. - 치아가 깎인 것 같다고 컴플레인 거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최대 파워로 해도 치아에 금도 가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치아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치석이 쌓였던 부분이 없어져 그렇게 느끼는 것. 완전한 착각이다. 3. 스케일링 하고 나서 피가 나는데 해주신 분이 못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 스케일링은 잇몸 안 쪽에 있는 치석들까지 제거하는 잇몸치료이기 때문에 그 동안 쌓인 치석들로 인해 생긴 염증들이 자극 받으면서 출혈을 일으킨다. 하루 이틀 정도는 이 자극들로 인해 출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4. 스케일링 하고 나서 너무 시려요. - 그 동안 덮여져있던 치석이 떨어지면서 시리게 되는데 우리가 추운 겨울에 외투를 입고 있다가 벗으면 추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 옷이 벗겨졌으니 시릴 수 밖에 없다. 이것또한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진다. 5. 스케일링 하면 이 사이에 틈이 생겨서 하기 싫어요. - 이런 환자들의 케이스는 보통 그 전에 치석이 많이 쌓여있었을 확률이 높다. 치석은 잇몸뼈를 녹이기때문에 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잇몸 높이가 내려가게 되지만 환자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때 스케일링을 받게 되면 이 사이에 치석이 제거되면서 틈이 생긴 것 처럼 보이게 된다. 6. 스케일링 안해도 되나요? - 답은 절대 NO!!!!! 치석은 잇몸 뼈를 녹이는 가장 주된 원인이다. 스케일링을 하지 않게 되면 치석이 쌓여서 잇몸뼈를 서서히 녹이게 되고 잇몸 높이가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치아 뿌리를 노출시키고 치아를 흔들리게 만든다. 7. 스케일링의 정확한 가격은? - 6월 30일 기준으로 1년동안 보험이 되기 때문에 약 14000원 정도! 보험이 되지 않는다면 50000원 정도. 8. 양치를 열심히 하는데도 아래 앞니에 치석이 너무 자주 생겨요. 제가 더러운건가요? - 정상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치석은 침으로 형성되는데 혀 밑에는 설하선이라는 큰 침샘이 존재해서 아래 앞니에는 양치를 잘 해도 치석이 잘 생길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가 고르지 않다면 더 잘 생길 수 있다. 9. 스케일링하면 이가 하얘지나요? - 답은 X. 스케일링은 치석과 이에 담배나 카페인으로 인해 착색된 것들을 제거할 수 있지만 미백효과는 없다. 미백효과를 원하면 치아 미백을 하는 것이 답이다. 10. 스케일링은 얼마나 자주 받아야하나요? - 보통 사람들은 1년에 1번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가 고르지 않거나, 담배를 많이 피는 흡연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잇몸이 안좋기때문에 6개월에 1번씩을 권장한다. 내려간 잇몸뼈는 다시 재생되지 않습니다. 스케일링 꼭 받으세요 여러분! 출처: 쭉빵 스케일링 받으러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원래 수명이 어느정도였을지 궁금해지는 루이 14세의 몸 상태.txt
17세기에는 목욕하는 습관이 없었으므로 고약한 체취는 일반적이었으나 루이 14세의 악취에는 의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루이 14세는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루이 14세의 궁중의 다칸은 인간의 몸 가운데 치아처럼 위험한 질병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왕폐하의 이를 건강할 때 모두 빼버려야 한다고 확신했다. 물론 루이 14세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폐하의 건강은 곧 폐하의 영광'이라는 다칸의 말에 승낙했다. 루이 14세는 멀쩡한 이빨을 다 뽑고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의사는 제 딴엔 훌륭한 조치를 취한다고 왕의 아랫니를 빼다가 턱에 금이 가게 했고, 윗니와 함께 입천장의 대부분을 날려보냈다. 이러한 조치는 마취도 없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아랫턱은 금방 아물었지만 뚫린 입천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의사 다칸의 일기를 보면, "살균할 목적으로 폐하의 입천장에 뚫린 구멍을 뜨겁게 달군 쇠막대로 열네번에 걸쳐 지졌다." 고 되어있다. 그 이후로 왕이 포도주를 마시면 반잔 정도가 곧바로 콧구멍으로 흘러내렸다고 한다. 또한 왕의 입에서 코를 향해 뚫려 있는 구멍에 끊임없이 음식물 건더기가 들러붙어 며칠이 지난뒤에야 콧구멍을 통해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는 이도 없는 입으로 씹지도 않고 많은 음식을 삼켰고, 덕분에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으므로 장내에는 가스가 가득했다. 당시 의사들은 장이 비어있어야 건강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루이 14세에게는 많은 양의 설사약(관장약)이 처방되었다. 루이 14세 시대에 화장실은 그의 가장 주된 정무 공간이었다. 위장병이 심한 나머지 속이 좋지 않아 의자에 앉은 채로 똥을 쌌다고 한다. 왕의 배변 순간에 함께한 사람들 중 일부는 닦아주는 뒤처리를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다만 남에게 항문을 맡긴다는 것은 굉장히 큰 빈틈을 보이는 것인 만큼, 암살위험 등이 없다고 확신하는 굉장한 신뢰관계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왕의 뒤를 닦아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바다 건너 영국의 헨리 8세도 시종 중에 자신의 뒤를 닦아주는 걸 전담하는 청결관이라는 직책을 뒀었는데, 후작급의 고관대작들이 담당했다. 또한 그는 평생 목욕을 단 3번밖에 하지 않았다. 이는 중세시대에 더러운 물로 인한 감염과 전염병에 트라우마를 가진 유럽인들이 물을 멀리하면서 몸을 씻지 않게 된 시대적 특성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안씻던 루이 14세의 엉덩이에는 주먹만한 종양이 생겼다. 관리들은 비슷한 종양을 갖고 있는 시민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된다. 이들은 루이 14세에게 행해질 수술을 미리 당해볼 인간들이었다. 따라서 이 수많은 시민들은 묘지로 보내졌다. 마취도 없이 엉덩이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한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 루이 14세는 전유럽에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아물지도 않은 엉덩이로 직무를 봐야했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대중들에게 드러내기를 매우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일요일의 만찬은 누구나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루이 14세가 삶은 달걀을 까먹는 모습이 우아하다고 소문이 나서 구경꾼들이 매우 좋아했다. 왕은 그런 백성들의 기대에 답하기 위해 한 번에 5개씩 까먹기도 했다. 천성이 연예인이었던 그는 배우에게 향하는 박수조차 질투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무대에 서는 쪽을 택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죽음의 순간에 몸의 반신이 썩어들어가는 와중에도 귀족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할 정도였다. 근데 이러고도 76세까지 살았음 (1600~1700년대에) ++ 71덬이 치아 다 뽑게 된 이유 & 자세한 치료(?) 상황 알려줘서 추가함 단것을 입에 달고 산 까닭에 치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루이14세는 10대부터 잇몸에 염증이 생겼고, 30대에는 턱 치아 전체가 썩었습니다. 결국 1685년에는 위턱의 치아 하나만 남긴 채 이를 전부 뽑아냈고, 치아가 없어진 상태에서 왕의 음식은 모두 유동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1685년 받은 수술이 잘못되면서 루이14세의 입천장에 구멍이 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액체를 마시면 분수처럼 그 일부가 코로 흘러들어 갔고, 잇몸에 염증이 생겨 혈농이 흘렀고 왕 주변에 가면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결국 루이 14세는 1685년 1월10일 이 구멍을 막기 위해 잇몸을 14번이나 뜨거운 쇠로 지지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이 수술은 세 차례나 계속됐다고 합니다. 왕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위쪽 문제가 해결되나 싶으니 아래쪽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잇몸수술 1년여 후인 1686년 왕은 항문 근처에 종기가 발견됐고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결국 1월20일부터 왕은 수차례 종기를 짜내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더쿠펌 워우 ㄹㅇ 유병장수했네.. ㄷㄷ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 10
10위 데카음원사는 비틀즈와 계약하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앨범이 잘 안 팔릴것 같아서 9위 나사는 화성궤도 탐사선을 잃어 버렸는데 팀의 반(외국인)은 미터단위를 사용하고 다른 반(미국인)은 인치를 사용해서. 8위 조지벨 exite ceo 는 1999년에 구글이 750,000$ 우리돈으로 약 7억5천만원 제의 했을 때 인수 하지 않았다. (현재 구글 약 190조 8142억원) 7위 나폴레옹은 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6위 히틀러는 자기가 나폴레옹처럼 할 수있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러시아 침공) 5위 독일은 영국보다 100년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는데 쓸모없는 사막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다. 4위 소련이 미국에게 알레스카를 1 에이커당 (1224평) 23원에 판 것, 총 720 만 달러 (한화 약 72억원) 3위 12개 출판사가 해리포터 출판 거부 2위 일본의 진주만 공습 1위 2300년 전 그리스, 이집트관련 역사상 최대규모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누가 태웠는지 모르지만 보존했다면 지금 문명의 지식수준이 더 높았을것으로 추정, 또한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의 관한 문제도 풀수있었을거라 생각됨. 약 70만개 문서 , 10만게 넘는 책 그 증거로 아리스타르코스- 기원전3세기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것을 발견함 에라토스테네스 - 기원전2세기 지구가 둥글다는걸 콜로버스보다 1700년 빠르게 알아냄 히파르쿠스 - 기원전1세기 신성과 혜성을 관측하였고, 1,080개의 항성에 대하여 그 밝기를 6등급으로 분류하여 항성목록 작성을 시도하였고 그리고 성표(성도)를 만들어 1080개의 별의 위치와 밝기를 표현했다. 또한 세차운동의 발견하여 태양년과 항성년을 더욱 정확하게 구할 수 있게 하였다. 칼리마코스-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의 학자이자 시인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정주하면서 도서관의 사서로 활약하였다. 그리스의 문학사 라고도 할 수 있는 《피나케스》를 저술하였고 《아이티아》를 비롯한 많은 시작품을 남겼다. 유클리드 - 기원전 3세기 기하학자 그의 연구자료가 지금도 전세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음. 히로피러스 - 기원전 3세기 뇌가 장이나 신체를 조종하다는것을 밝혀내고 약을 만들기 시작함. 그 밖에 학문에 관한 자료가 엄청남 출처 인류는 정말 단 한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