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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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 The Conjuring 2013

무서운 장면 없이도 무서운 영화 라는 카피를 달고 나와서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장면들이 가득한(그렇지만 볼만한) 영화. ㅋㅋㅋㅋㅋㅋ 실은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이 영화관 상영 전 예고를 통해서였는데... 촛불을 켠 여주인공 옆으로 나타나는 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왜 안 무서워요? 네? 이거 수입 및 배급 어딘가요? ㅋㅋㅋㅋㅋ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서워서 덜덜 그런데 기존의 귀신들이 나오는 영화들에 비해서 실제로 일어난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데다가 또 종교적으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엑소시즘'이 다뤄진 영화라서 개인적으로는 무섭다기 보단 재미 있더라구요 ㅋㅋ 이건 스포가 될 수 있는데... 뭔가 마지막에 전형적인 어메리칸 패밀리 무비 느낌이 났다는....... -_-... 이게 무슨 말인지는 보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실 수도 있을거에요. 호러무비인데 패밀리 무비 느낌이 나는 느낌..? 아 말로 설명 불가네요 ㅋㅋ 그렇지만 주변인들은 정말 무서웠다고 하네요.. 저도 조금은 무서웠던걸로_☆ 무서움★★★★☆ 볼만함★★★☆ 귀신의더러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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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mu 음................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느낌이 맞는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ㅋㅋ 보시면 알 것 같아요 ㅋㅋㅋ 솔직히 저는 많이 무섭진 않았어요 ㅋㅋㅋ
패밀리무비라면. 나중에 그래도 마무린 가족이 우선이다 가족은 하나다 뭐 그런거 말씀하시는건가요? ㅎㅎ 얼마나무서운지 문득 귱금해져요 ㅋ
@HyunminChoi 오묘한 그냄새말씀하는거군요ㅋㄷㅋㄷ
ㅋㅋㅋㅋㅋㅋㅋㅋ악령 앜ㅋㅋㅋ
@HyunminChoi ㅋㅋㅋㅋㅋㅋㄱㅋㄱㄱ아..ㅋㅋㅋ 댓글 빵터지네요ㅋㅋㅋㅋㅋㅋ방구냄새가 썩은 수준이면 그 방구 뀐 사람이 악령일지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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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노력했지만 치유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는 우리의 인생이 실패한 증거일까요?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현재는 무의미하기만 한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를 닮은 상처 입은 영웅들에게 이토록 끌리는 건가요? 아이언맨 일대기의 결말이자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독특하고 멋진 답변입니다. 아이언맨을 비롯한 영웅들은 죽은 동료들과 시민들을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과거의 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영웅들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쓴들 우리가 상처를 받은 사실은 바꿀 수 없고 우리가 저지른 실수도 결코 없어지지 않죠. 하지만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에서 과거의 외상적 사건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통째로 잊어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여전히 잊지는 않되 그것이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새로운 대처방법을 실행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과거의 공포와 무력감을 과거의 나에게 돌려보내주고 지금, 현재에 찾아오는 과거를 닮은 일들에 대하여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할지라도 반복되는 공포와 불안에 맞서서 내가 행한 새로운 저항과 반항들은 조각난 감정의 덩어리에 불과했던 우리의 상처를, 단순한 이미지에 불과했던 우리의 과거를 하나로 이어 붙여줍니다. 그리고 이어 붙여진 우리의 실패의 과정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서사와 시간과 장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우리의 실패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이상(ideal)을 선명하게 만들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합니다. 토니의 끔찍한 실패의 상징인 가슴의 아크 리액터가 영웅 아이언맨의 심장이 된 것처럼요. 토니의 PTSD의 상징인 티타늄 슈트가 토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날개가 되었던 것처럼요. 과거는 끔찍한 추적자에서 내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간 영웅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옛날의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행동하게 됩니다. 온화해진 헐크는 분노에 찬 과거의 자신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허세에 가득 차 있던 번개의 신 토르는 어머니를 만나 자신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합니다. 고지식했던 캡틴은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치로 싸움을 해결하고, 어른스러워진 토니는 자신의 결핍과 죄책감의 근원이기도 한 아버지를 만나 어른과 어른으로써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가 된다는 무게를 공유합니다. 튼튼한 갑옷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의 강함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고, 내일을 통제하려다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은 우리가 미지에 대한 불안함을 가슴 한편에 넣어두고 오늘을 살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었죠. 이 모든 실패가 모여 1400만 가지의 가능성 중 지금(now) 이곳(here)에 변화의 순간을 만듭니다. 그리고 ‘어벤져스’는 과거의 실패에 대한 진정한 ‘복수자’가 되어 그들의 악몽인 타노스에게 두 번째 도전을 합니다. “캡틴 내 말 들려? 캡틴, 나야 샘. 잘 들려? 왼쪽을 보라고.” - 어벤져스 : 엔드게임 中 그 순간, 캡틴의 뒤로 먼지로 사라졌던 그 모든 영웅들이 부활하여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들이 무슨 상처를 입었고, 어떻게 실패했고, 어떻게 되돌아오게 되었는지를요. 우리의 상처를 담아 창조된 가상의 인물들이기에 이들은 실패의 이야기 또한 우리를 닮아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닮은 이 상처 받은 영웅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들의 이야기에 조각으로만 남아있던 내 인생의 이미지를, 순간 스쳐갔던 감정들을, 나와 닮은 모난 부분들을 이입해 담아둘 수 있었습니다. 영웅들은 상처를 받고, 끊임없이 반항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해내지요.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속에 동일시의 형태로 담겨있는 우리의 기억의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경험을 한 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남들에게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남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부를 담아 태어난 영웅들의 이야기는 이제 역으로 우리의 삶을 편집합니다. 우리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재경험하고, 그 경험의 이면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뼈대 삼아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과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고, 우리가 당면한 현재에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통제하지 못한 불안은 우리가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그토록 노력하였지만 결국 치유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처는 우리가 이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이의 상처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과거를 지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극복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좌절 또한 무언가를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배웠죠. 의미 없는 실패는 단 한순간도 없었고, 우리는 상처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됩니다. 어벤져스와 타노스의 마지막 대결은 결국, 과거의 실패를 간직하려고 하는 자와 지우려고 하는 자의 전쟁이 됩니다.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이번 작의 타노스와는 달리지금의 어벤져스는 질릴 만큼 실패를 거듭하고 이를 통해 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습니다. 피할 수 없는 존재(inevitable)인 줄 알았던 타노스 앞에 선 아이언맨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세상의 이치인 인피니티 스톤들이 빛나고 있었고, 마침내 아이언맨은 자신의 악몽을 진정 뛰어넘습니다. 11년을 넘어 토니는 다시 한번 자신을 재정의합니다. “나는 아이언맨이다.(And I am Iron Man.)” - 어벤져스 : 엔드게임 中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한 히어로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은퇴합니다. 그동안 그는 우리의 우상이자, 친구이자, 거울이 되어주었죠. 고치에서 벗어나 나비가 된 애벌레처럼 그는 슈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집니다. 그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가족을 이루고, 히어로로서의 토니보다는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토니에 더 공감하게 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은 어쩌면 보기에 따라서는 그냥 아이들이 보는 유치한 판타지 영화로 치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 환상과 상징에 어떠한 의미를 담고 무엇을 읽어내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일부가 되어 우리 삶의 중요한 기둥이 되기도 하죠. 수없이 많은 상처를 극복해내야 하는 인간에게는 고통과 한계에 대한 우화만큼이나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실패와 상처를 이겨나가는 극복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이야기에 우리의 경험과 기억들을 담아 우리만의 영웅담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말이죠. 칭얼거리는 아들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간 아버지는 진열장 한 구석의 갑옷 입은 영웅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생생한 자신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봅니다. 우리에게 지금도 히어로가 필요한 이유이죠. 사람들은 토니를 기리며 그의 가슴에 자리 잡았던 아이언맨의 상징을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한때 토니의 트라우마의 상징이었던 가슴의 아크 리액터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새겨집니다. “토니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 상처, 어쩌면 그건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릅니다. written by 권순재 메디플렉스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아 왜 나 울컥하고 그러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
[리뷰]'벼랑위의 포뇨', 대재앙을 겪는 인간의 희망 교향악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구의 해'인 2008년 연말에 인면어와 인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벼랑 위의 포뇨>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영화팬들은 유아용 혹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라고 폄하하거나 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대한 실망감을 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소리를 내놓기 일쑤였다.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왔던 신화적 판타지를 재탕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감독 특유의 작품 스타일이 문제시되는 한편, 내러티브(줄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온라인에서 공개된 티저 예고편 동영상은 '예고편 만으로도 영화는 다 봤다'는 편견 아닌 편견도 가질만했다. 하지만, 영화 리뷰 사이트 IMDB에서 개봉 당시 영화 <벼랑 위의 포뇨>에 그의 전작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와 함께 10점 만점에 8.2를 주고 있어, 국내 팬들의 시각과 괴리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제작자로도 나섰던 그가 200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여 만에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소녀'와 '환경'에 집착? 대자연을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 갈등 그리고 화해를 은유적으로 작품 속에 녹여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단순한 다섯 살짜리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내러티브에 '자연이 주는 치유력'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아우르는 서사와 영상을 채택했고 끔찍하게 다가올 미래의 대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심해에 사는 인면어 '포뇨'는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며 어느 날 해파리에 올라탄 채 인간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다. 인간 마을에 해일이 몰려와 포뇨 아버지가 포뇨를 찾는 법석을 떠는 동안 후지모토에 이끌려 바닷속 세계로 돌아오지만 다섯 살 소년 소스케와 만남을 기억하면서 사람이 되고 싶다며 탈출을 시도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물고기 니모와 비슷하지만, <니모를 찾아서>가 니모를 찾아 나선 부성애 가득한 아빠 물고기 마린의 모험담을 그렸다면 포뇨는 자신의 자유의지 선택에 따라 성장담을 그려낸 것이 다른 점이다. 포뇨는 팔과 다리가 솟아나 크기가 커지면서 인간 여자아이의 모습을 띠면서 친구를 사귀는 등 스스로 성장을 준비하면서 거친 파도나 해일에도 두려움 없이 소스케를 찾아 나서게 된다. 포뇨의 아버지가 딸을 찾아 난리법석을 피우며 소스케가 사는 마을 대부분을 섬으로 만들어버린 후에도 소스케의 모성 깊은 엄마 '리사'는 마을 할머니를 걱정해 길을 떠나고 포뇨와 소스케는 자연의 재앙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트로 엄마와 마을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이때에 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보여왔던 거장 감독의 영화 철학을 함축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전작까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그 명맥을 잇는다.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통을 겪는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성장해 엄마가 된 리사는 감독의 '페르소나'(영화감독의 분신)가 되어 아들 소스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생면부지의 여자아이를 해일로부터 구해내고 아들이 포뇨를 좋아하자 소스케의 여자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 부분은 포뇨의 엄마인 그랑 마메르(바다의 여신) 또한 마찬가지이다. 딸의 일탈을 노심초사 걱정하며 통제하려는 아버지와 달리, 그랑 마메르는 직관적으로 포뇨의 엄마와 양로원 노인들을 바닷속에 데려와 포뇨와 소스케의 진심을 묻기로 결심한다. 결국, 포뇨가 마법을 잃으면서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소스케 또한 포뇨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을 알고 친구 관계를 허락하게 된다. 영화는 흔히 그 사람이 처한 환경,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극 중 캐릭터인 포뇨와 소스케의 다짐은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나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위안 같아 보인다. 이러한 까닭에 <벼랑 위의 포뇨>는 성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포뇨 : 포뇨, 소스케 좋아해!! 소스케 : 물고기 포뇨도, 인어 포뇨도, 인간포뇨도 모두 좋아요!!!    게다가 심해에 사는 물고기가 마을을 둘러싼 청정한 바다 주변을 헤엄치고 있고 포뇨가 서슴없이 소스케에게 고생대인 '대본기' 심해어들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영화는 원시사회로 되돌아 간 일본을 환기시킨다. 즉, 최근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인해 쓰나미(해일) 등 기상이변이 잦고 북극의 빙하가 점차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현상을 목도하는 우리에게 묵시론적인 경고처럼 다가온다.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 생명존중의 휴머니티와 긍정의 기다림이 해답 또한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에 어류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심해 한류 서식 어종이 육지 부근에 출현하는 것 또한 그렇다. 이 같은 경고는 TV 공중파 환경 다큐멘터리 '그린콘서트'에서 평화로운 지구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존재를 '인간'이라고 조명했듯이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 육지의 일부가 물에 잠겨 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의 오늘과 궤를 같이 한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 속에서 그려낸 것처럼 한 차례의 대재앙으로 깨끗해진 바다와 재앙 후 마을 주민들이 배를 타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구호하면서 주고받는 미소는 감독 특유의 낭만성과 소년적 감수성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 19 감염 확산으로 유례없는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속에서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해내려는 사람들과 의료진 등 선의의 인간을 바라보는 구원적인 휴머니티를 성찰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 <벼랑 위의 포뇨>는 대재앙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 주민들이나 포뇨, 소스케 등 캐릭터들이 걱정하는 기색 없이 배 아래에서 무섭게 생긴 고생대 어류들이 즐비한 가운데, 마치 페스티벌의 일원처럼 어떻게 인면어와 인간의 성장 로맨스라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구심에 해답을 주는 것은 포뇨와 소스케의 에피소드를 통해서가 아녔을까. 어쩌면 감독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부딪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시간'과 '기다림'을 통해 화해할 수 있다고 전하는 듯하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와 코로나 19 팬데믹 등으로 인해 우리 주변에 놓인 여건 탓을 하며 시름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해답을 찾고 난관을 견디며 지혜를 모아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라는 노 감독의 전언으로 느껴도 될까. 더욱이 이 영화의 주제곡인 '포뇨 송'을 비롯해 영화 OST를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다섯 살 동심을 넘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성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영화 <벼랑 위의 포뇨>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마치, 한 차례 대재앙으로 홍역을 겪고 난 인간이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교향악처럼 말이다. /시크푸치
[1인분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 (2020.03.25.)
(...)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의 영문 타이틀 중 의회를 뜻하는 ‘The House’는 뒤집어진 채로 나온다. 거기 ‘Knock Down’이 앞에 붙으니 말 그대로 이 작품은 일단 ‘의회를 뒤집어놓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소수의 신인들이 ‘기성 질서를 무너뜨린’ 일이 바로 그 ‘소수의 신인들’에게는 세상을 이제야 바로잡는 일이다. 여러 글을 읽고 영화를 보며 자료를 찾다 다시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아마도 평생 당사자가 될 일 없을 어떤 것들에 대해 온전히 통감하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견문에는 미약함과 한계가 있다. 그러니 쉽사리 ‘외면하지 않겠다’라거나 적극 나서서 의견을 표명하는 일에는 얼마간의 조심스러움이 있기도 하다. 다만 보지 못한 면들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이미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달리 볼 줄 알기 위한 견문을 조금이나마 넓혀나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2020.03.25.) 이메일 영화리뷰&에세이 연재 [1인분 영화] 3월호의 열한 번째 글은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2019)에 관해 썼다. https://www.instagram.com/p/B-CMTduFKQV/?igshid=1c8q1a6fomq4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