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ghl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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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갔다오세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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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끝
형 내일 결혼한다
악의 구렁텅이로 또한명이
어디~~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어 흐어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학 졸업자가 보면 부럽겠네 국방부 계약직이 어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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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누나가 시어머니와 함께 가출했습니다
---  1 편 --- - 시집간 친누나가 딸을 낳음 - 사돈 어르신(시아버지)께서 딸아이 이름을 유명한 절에 있는 큰스님께가서 받아옴 - 정옥순, 정옥분... 이 두이름이 아니면 사주팔자상 큰 화를 당할수 있다고 했으니 이 두이름 중에 결정하라고 하심 - 사돈 어르신(시어머니)을 비롯 매형과 누나, 저희 어머니 모두 결사 반대 - 사돈 어르신(시아버지)께서는 저 이름 중에 아니면 재산 한푼 안물려주겠다. - 누나와 사돈어르신(시어머니), 어머니(친정어머니) 몸져 누움... - 이 와중에 저희 아부지는 옥분이가 좋겠다고 하심...ㄷㄷㄷ 2014년생 여자아이 이름이 정옥순, 정옥분은 너무한거 아닌가싶은데.. 차마 사돈어르신께 제 입장에서 감놔라 배놔라하기도 뭐하고 속상하네요. ---  2 편 --- 이 일 이후로 별말 없길래 잘 해결되는줄 알았는데 시어머니랑 누나랑 같이 아이 데리고 가출을 했다네요... 매형이 전화와서 연락이 안된다고.... 전화해보니 폰 꺼져있는데 그냥 기다리면 되겠죠? 그와중에 고부갈등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하시는 울 아부지....ㄷㄷ ---  3 편 --- 시어머니랑 아이데리고 그 절에 가서 주지스님이랑 담판 짓고 정소율이란 이름으로 새로 받아왔다고 하시네요. 애초에 주지스님이 내려주신 이름은 정소율이었는데 시아버지가 맘에 안드신다고  다시 받아오신 이름이 정옥분, 정옥순이었다네요.. 시어머니께서 시아버지께 이혼도장 찍든지 정소율로 짓든지 결정해라 하시고  시아버지는 깨갱하셔서 아마 이름이 정소율이 될 듯 합니다. 거기다 매형은 시어머니께 등짝스매싱도 맞았다네요. 울아버지께서는 소식 들으시고 원래 남자는 60넘으면 마누라 없으면 못사는 법이라고 하십니다..ㅋ ---  4 편 --- 사돈어르신(시아버지)께서 도저히 양보 못하셔서 또 절에 찾아가 새로운 이름을 받아오셨는데  정시은(베풀 시施 은혜 은恩) 이름을 받아오셨습니다. 시은이라는게 불교에서도 흔히 쓰는 단어라면서 꼭 이름을 시은이라고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는데  자게이의견을 받아들여 소율이라는 이름이 너무 흔하니 차라리 시은이가 좋겠다고 누나한테 조언했습니다. 자게이분들 의견은 어떠신가요? 정옥분,정옥순 → 정소율 → 정시은 울 아부지는 정옥분 고집하시다가 어머니한테 욕한바가지 드시고 오늘 아침 굶으셨다네요...ㄷㄷ (출처) 이쯤되면 시아버지 첫사랑 이름이 옥분이 아니었을까 합리적 의심이...ㅎㅎ
조선의 더러운 화약무기
케리비언의 해적 때문에 배 위에 대포를 올려놓고 적 함선를 뻥뻥 부수는 장면을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배랑 대포가 친해진건 18세기부터 가능했다 대포가 워낙 무거운데다 반동도 땅을 울릴만큼 크고, 한번 쏠때마다 사라지는 화약도 상당해서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운 무기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명나라에서는 대포 반동으로 복원력을 상실하고 배가 뒤집히는 사고까지 터졌을까 자연스럽게 해전용 대포는 소구경을 쓰게 되었고 관통력 부족으로 함선을 부순다기보다는 전투원과 선원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해전은 근접전 중심이되었고 승함전투는 일상적인 해전전투였는데 조선이 재밌는 발상을 한다 '화포가 작아서 관통력이 부족하다고? 그럼 발사체 관통력을 높히면 되지' 그래서 장군전 시리즈(대, 중, 소)가 만들어졌다 위의 실물은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발사된 유물로 일본군이 주워간건데 머리부분의 둥근 촉 부분은 소실되었지만 몸체와 날개 등 나머지는 잘 살아있다 독특하게 장군전에는 만든 장인의 이름과 지역, 소속 등이 세겨져있는데 점검 중 불량이 나오면 그 장인에게 죄를 묻겠다는 소리였다 조선은 무기 제작에 엄청 깐깐하게 굴었는데 실록에 보면 이번 분기에 올라온 활이 다 상태가 메롱하니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바치라는 극한의 공밀레도 나온다 보급이 잘 되어있고 배에도 올릴 수 있는 중형 대포에 특별한 개조없이 사용가능하며 관통력도 탁월한 미사일을 얻은 덕분에 조선군은 승함전투가 일상적이었던 임진왜란 때부터 남의 비싼 배에 구멍 쾅쾅 뚫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선이 해상 화력에 자신감이 넘쳤기에 가능한 또 다른 기괴한 병기가 있는데 백병전에 면역이지만 자신도 백병전을 못거는 돌격선인 거북선을 투입한 것이다 즉, "우리는 화포만으로 니들을 확실하게 조져버릴 수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여담으로 거북선이 뚜껑에 철갑을 덮었는지 아닌지 아직도 싸우는데 일단 그 이전부터 성문에 철갑을 씌운걸 보면 기술은 있었고 나름 탱커 포지션인데 화공의 위험 때문에라도 철갑을 씌우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원래 짚이나 천 등을 깔아두고 계속 물을 뿌리는 방법으로 화공을 막았는데 거북선은 그게 안되니까... 또 다른 유명한 화약 무기는 화차가 있다 사실 화차는 아직 한국이 어딨는지도 잘 몰랐던 2000년대부터 서양에 나름대로 알려졌던 재밌는 무기다 위 짤도 미국의 미스버스터라는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제작해서 실험한 장면이다 원래 세종 시기에 만들어진 신기전은 발사대에 올려놓고 1발씩 쏘는 무기였는데 문종 때 저런 다연장 장비가 나왔다 가장 위력이 약하다는 소신기전도 화약에서 얻은 추진력으로 사람을 관통하는 것이 가능했고 활의 사정거리 이상부터 살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중신기전부터는 폭탄을 설치해 2차 폭발에 의한 추가피해를 주었다 방패로 막아도 터져버리니 그야말로 방관무기였다 보통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을 함께 사용했으며 이것만으로도 적군의 사기를 꺾는데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북방의 여진은 물론, 일본군조차 소신기전과 중신기전을 번갈아 쏘니 결국 진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큰 대신기전은 그 귀한 화약을 5kg이나 잡아먹는 돈먹는 하마였는데 2차 폭발범위가 매우 컸다 유효범위가 15m로, 저 당시는 방진짜고 싸우던 시기인지라 제대로만 박힌다면 오늘날 수류탄보다 효과가 컸다 워낙 가성비가 안 좋아서 일종의 결전병기처럼 드문드문 쓰였는데 싸움이 시작되기 전 멀리 떨어져 안심하는 적에게 몇방 쏘아 심리적으로 위축시켰고 아껴놨다 위급한 곳에 발사해 역전을 노렸다 신기전은 위력도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적의 사기를 꺾는데 탁월한 무기였다 흔히 말하는 모랄빵 무기였던 것이다 여진족 같이 훈련정도가 덜한 군대는 물론 일본군 같이 훈련과 경험이 풍부한 상대로도 재미를 많이 봤다 세조 때는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때와 국경을 넘어 여진을 대대적으로 공격할때도 큰 효과를 보았고 성종실록에는 여진과 근접전으로 승패가 나지않자 화차를 가져와 쏘았더니 적이 진을 버리고 도망쳐서 추적해 크게 승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병조판서(국방부장관) 이극균은 이렇게 좋은 화차가 400개 밖에 없으니 더 만들어서 조선팔도 모든 진에 100개씩 두자는 포방부스러운 주장도 했다 하지만 신기전은 매우매우 비싼 무기였다 화약 자체가 귀한 전략물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화약의 원료 중 초석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는데 명나라는 조선의 포방부화를 견제했고 수시로 초석 수출에 제동을 걸며 방해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년에 소모되는 초석이 4천근인데 자체 생산되는게 1천근(640kg) 남짓했다고... 조선은 중국 기술자가 찔끔 알려준 정보와 무수한 실험을 통해 초석을 알음알음 생산했지만 중국산보다 생산량도, 품질도 떨어졌고 중국의 군사기밀이었던 품질 좋은 초석제조법을 원했다 세종 때는 창피를 견디며 황제에게 초석제조법을 알려달라고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결국 인조 때 평안도의 하급무사 '성근'이 국경을 넘나들며 명나라에 사는 조선인과 명나라 피난민, 기술자에게 정보를 파편적으로 얻어냈고 이 정보들을 집대성해 마침내 명나라의 발전된 초석 생산법을 알아내 기술서를 편찬했다 아무튼 그 귀한 화약을 한번에 5kg 씩 산화시키는 신기전은 매우 강하지만 유지비 비싼 결전병기였고 결국 비슷한 위력의 화포가 개발될때마다 하나하나 빠지게 되었다 위의 화약문제로 조선의 화포개발은 가능한 적은 화약으로 가능한 큰 피해를 입히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래서 중소형 대포인 현자총통이 인기가 높았다 이순신 장군님도 '쏴보니까 내구도 낮은 일본 배한테 대형포 쏘는건 화약이 아깝드라'라는 평가를 내리고 천자총통 생산을 크게 줄이고 현자총통을 찍어냈다 현자총통은 비슷한 위력의 이전 화포보다 1/4의 화약을 소비하며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으며 포 하나로 대형화살과 철탄, 산탄 등 다양한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공성 공격이 드물고 화약 문제 때문에 소형화포를 선호했던 조선은 병자호란 때 홍이포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슬프고 아픈 경험을 했고 적의 공성군과 맞포격을 할 대형화포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미 인조때 명나라에서 홍이포의 설계도를 받아왔지만 참고할 실물이 없고, 구조가 조선의 것과 많이 틀린 서양식 화포인지라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박연으로 분장한 주한 네덜란드 대사 '요스트 불프스빙컬') 박연과 하멜 등 서양인들의 기술적 조언과 계속된 연구 끝에 영조 때 홍이포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로 조금씩 생산되어 조선에 실전 배치되었는데 정조가 홍이포를 일찍 배웠으면 남한산성에서 그렇게까지 털리지는 않았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원숭환(袁崇煥)이 영원(寧遠)에서 시험한 홍이포(紅夷砲)의 유제(遺制)이다. 병자년에 이 방법을 배우지 않아서 쓰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하매, 서명응이 말하기를, "그때 이 방법을 썼다면, 적병이 어찌 감히 성 아래에 접근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전에는 산성의 별파진(別破陣)이 다 이 기법(技法)을 익혔는데 요즈음은 두 사람이 익숙할 뿐이라 하니, 이것도 권장하지 못한 탓이다." 하였다. (출처) 포방부 DNA는 못참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