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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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 배 고프면 손주 몫의 젖까지도 뺏을 수 있는게 인간인데 무슨 낯으로 존엄을 붙이는지 입을 채우려고 천사를 저당잡고 그 이자로 쌓이는 죄, 죄, 죄 그러나 치욕이란 전혀 없다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어찌 이리 사특한 입으로 한입의 분별을 씹어삼켰는지 선악을 알게 된 그 자체가 형벌임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 다 죽은 가운데 시체의 주머니 되작거리는 모습 제 눈으로 보게된 순간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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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서 [랑종]까지 - 신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 세상이 이 모양인 것과 비대칭 오컬트에 관해 ※ 영화 <곡성>과 <랑종>의 내용이 일부 드러납니다. :) ------- 1. “가까운 가족이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인데 죽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과거 나홍진 감독은 영화 <곡성>(2016)을 만든 동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요컨대 ‘왜 착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추론 또는 상상. 2. 흔히들 한탄한다. 신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선한 사람들의 억울함이 반복되냐고. <곡성>은 이 불가해를 이해하고자 비이성의 경로를 택한 영화다. 방법은 소거법. 첫 번째 세부 질문 ‘신은 있는가? 없는가’에서는 부재(不在)를 지우고 존재(存在)를 남긴다. 그렇게 이 영화에는 초월자가 ‘있’게 된다. 아무렴. 3.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신은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혹은 놀았는가’ 정도 되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홍진은 지금 한 손엔 카메라, 다른 한 손엔 부적 비슷한 걸 쥐고 있다. 비이성이라는 어질어질 외길. 그렇게 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소거되고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했다’가 남는다. 4. 이제 신이 ①존재하고 ②액션도 취했는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왜 착한 종구 가족이 몰살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이다. 이 지점에서, 선택 가능한 답지는 하나밖에 없지 않나요, 라며 나홍진이 고개를 홱 180도 돌려 관객을 본다.(물론 실제가 아니고 영화의 태도에 관한 은유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신은, 그 신이 아니었습니다. 낄낄낄, 와타시와 와타시다, 나는 나다. <곡성>에서 넘버원 초월자의 정체는 ③재앙을 빚는 악(惡)이었던 것. ‘귀신’ 신(神)은 결코 직무를 유기한 적이 없다. 애석하게도. 5. 1선발 초월자라면 당연히 거룩하고 선하리라는 믿음은 <곡성>에서 구겨졌다. 그리고 5년, <랑종>(2021)이 그 세계관을 장착한 채 또 다른 극한으로 내달린다. 이번에도 초월적인 무언가는 모두가 멸망할 때까지 폭주한다.(나홍진의 날인) 게다가 한두 놈이 아닌 듯하다. 6. 이 귀‘신’들을 <엑소시스트>나 <컨저링> 같은 정통 오컬트 속 대립 구도, 이를테면 적그리스도로서의 대항마 계보 안에 넣기는 어렵다. 그들처럼 선(善)이 구축한 팽팽한 질서를 따고 들어와 균열을 내는 등의 목적성을 띠지 않으니까. 왜? 안 그래도 되므로. 미안하지만 <랑종>에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 법한 절대 선, 시스템의 창조자, 친인류적 초월자 등 그게 무엇이든 비슷한 것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무당인 님도 끝내 털어놓지 않았나. 신내림을 받았지만 진짜로 신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7. <곡성>과 달리 <랑종>은 현혹되지 말기를 바라는 선한 성질의 기운마저 제거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무당 몸을 빌린 수호신이든, 공포에 벌벌 떠는 인간들에게 가호를 내려줄 이는 없다. 좋은 초월자는 꼭꼭 숨었거나 모든 초월자는 나쁘거나. <곡성>이 신의 가면을 벗겨 그 악의(惡意)로 가득한 얼굴을 봤다면, <랑종>은 악의의 운동능력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괜히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게 아니다. 8. 악의 증폭과 선이라 믿어진 것들의 부재. 억울함과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짓뭉개졌을 인간의 비극사, 까지 안 가도 포털 뉴스 사회면을 하루만 들여다보자. 현실 세계를 오컬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랑종>의 이 궤멸적 신화보다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겠나 싶다. 9. 악마한테 이기든 지든, 선악 대칭 구조를 가진 주류 오컬트는 창조자나 창조자가 빛은 질서의 선의와 안전성을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면 <더 위치>, <곡성>, <유전>, <랑종> 등 특정 힘에 압도되는 비대칭 호러들이 있다. 현혹되지 말자. 이 계보의 영화들은 지금 악에 들뜬 상태가 아니라, ‘악’밖에 남지 않은 실재를 도식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구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 이 모든 영화적 상상은 불우하고 불공평한 세계를 납득하기 위한, 차라리 가장 합리적인 접근일지도 모르겠다. 비이성의 중심에서 외치는 이성. 그렇게 원형으로서의 신은 죽었다. 다만 그럴수록 더욱 절통한 어떤 현실들. 다시, 신이시여.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NBA에서 가장 큰 농구 선수
1980년대 중반, NBA에 새로운 역사를 쓸 아프리카 전사가 등장했습니다. 그의 키는 무려 232cm였고 그의 팔 길이는 리그 역대 1위를 달성할 정도로 ‘거인’의 모습을 한 선수였습니다. 이 선수의 이름은 마누트 볼. 아프리카 남수단에 위치한 딩카족 출신이었고 소를 재산으로 여기는 부족의 문화로 인해 마누트 볼은 학교를 나가는 대신 어린 시절부터 소 떼를 지켜야 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리그 농구선수였던 사촌의 권유로 농구를 접하게 되었고 큰 키를 가진 마누트 볼에게는 적합한 운동이었기에 그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 그렇게 농구 선수로 활동을 하던 중 NBA 행을 제안받아 19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마누트 볼은 NBA 드래프트에 참가 자격을 받기 위해 영어도 몰랐지만 1년간 공부에 전념했고 그 결과 한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 그렇게 본격적인 NBA 생활이 시작되며 큰 키에 완벽한 수비가 가능했던 그는 프로리그에서 큰 활약을 보였고 그를 보기 위해 전석 매진이 되는 등 인기가 뜨거웠습니다. ​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점점 경기력이 떨어졌고, 류머티즘성 관절염까지 겪으면서 결국 ‘방출’이라는 힘든 시기도 찾아왔습니다. ​ 결국 1998년 은퇴를 하게 됐는데 더욱 충격적인 건 바로 6년 뒤 그의 근황이었습니다. 6년 뒤 그의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였고 하키, 복싱 등 다양한 이벤트를 전전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 사람들은 그에게 ‘NBA 선수가 광대로 전락했다’라는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 그런데 사실 그의 이런 행보는 모두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누트 볼은 그동안 선수 생활로 번 수백만 달러의 거금은 남수단의 피난민과 기아, 그리고 교육이 필요한 곳에 모두 기부했던 것이었습니다. ​ 그렇게 몇 년을 고군분투한 결과, 남수단에도 평화가 찾아왔고 그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병이 있었던 마누트 볼은 2010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남수단의 아이들은 그의 희생으로 교육의 기회와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겨난 ‘행복’입니다. ​ 그러니 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항상 감사하십시오.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이 될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준다. 물에 녹지 않는 비누는 결코 좋은 비누가 아니다. 사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없고 몸만 사리는 사람은 녹지 않는 비누와 마찬가지로 나쁘다. – 존 워너메이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희생#헌신#봉사#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