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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 예술을 대하는 이 시대를 향한 일침

현대미술에서 예술은 아티스트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손끝에서 시작된 영감은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예술작품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진가를 발견해주는 이가 없다면 관객과 만날 수 없고, 그의 작품 또한 작업실 한구석에 처박혀 잊히기 십상이다. 이런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아트 컬렉터다. 그들은 진흙 속에 숨겨져 있는 진주 같은 작품들을 발굴하고, 공인되지 않은 작가의 가능성만 보고 기꺼이 작품을 사들인다. 그렇게 작가는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을 걸고, 작업을 이어갈 기회를 얻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는 20세기에 큰 족적을 남긴 아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이야기다. '예술 중독자'(Art addict)란 부제대로 평생에 걸쳐 미술 작품들을 모으는 데 전념했던 페기의 생애를 폭넓게 다룬다. 페기의 자서전 <자유분방한 페기 구겐하임>를 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이 영화화했고, 여기에 집필 당시 페기의 육성 인터뷰가 더해졌다.

아트 컬렉션이 부자들의 재테크나 재벌가의 돈세탁 수단 정도로 여겨지는 이 나라의 세태에서 영화 속 페기의 면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구겐하임 집안의 부를 상속받은 페기가 억압적인 집안 분위기를 벗어나 자유분방한 현대미술 작가들과 교류하고, 진정으로 예술과 예술가들을 사랑하게 된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잭슨 폴록,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등 유수의 작가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그에게서는 유능한 컬렉터이기에 앞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미술 애호가이자 팬으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예술을 향한 페기의 애정과 교차하며 드러나는 페기의 불행한 삶은 면면히 뼈아프다. 열세 살에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 아버지를 잃고, 절친했던 언니와 5년간 동거한 연인 존 홈스에 이어 딸의 죽음까지 맞닥뜨린 페기의 일생은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는 이런 그가 마음 둘 곳이라곤 오직 예술뿐이었다는 점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페기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예술가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한편 그들과 염문을 뿌린 사실은 사랑과 예술을 갈구했던 그의 고독 어린 심연을 짐작게 한다.

크게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영화 속 페기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드라마틱하다. 그가 런던에서 자신의 첫 화랑 '구겐하임 죄느'(Guggenheim Jeune)를 열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유럽 작가들의 미국 망명을 도운 지점에서는 뭇 남성들을 능가하는 추진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내 뉴욕에서 개관한 화랑 '금세기 미술'로 미국과 유럽 미술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데 이어 베네치아에 정착해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운영하며 생을 마감하기까지, 평생 페기가 모은 작가 100여 명의 작품 326점은 그 자체로 그의 인생 여정이자 취향 그 자체일 것이다. 아트 컬렉션이란 게 원래 그렇듯 말이다. 2017년 2월 9일 개봉.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랐다. 미술 전체가 거대한 투기사업이 되어 있었다. 진정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속물적인 의도로, 혹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그림을 구입해 미술관에 맡겨둔다. … 몇몇 화가들은 이제 호된 세금이 매겨지는 존재가 된 탓에 1년에 한두 점만이 매매되고 가격은 비밀에 부쳐진다. 사람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가장 비싼 것만 구입한다. 투자 목적으로 그림을 사니 감상은커녕 창고에 넣어두고 최종가를 알기 위해 매일 화랑에 전화를 걸어대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주식을 가장 유리한 시점에 팔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600달러에도 팔기 어려웠던 화가들의 작품이 이제는 1만 20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 18년 전 미국 미술계에는 순수한 개척정신이 있었다. 나는 그 운동을 지원했고 후회하지 않는다.
- 페기 구겐하임,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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