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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롭게 바뀐 서울권 포켓몬 둥지 정리


'피카츄'가 보라매 공원을 떠났습니다.

2월 9일을 기준으로 전국의 <포켓몬 GO> 둥지(특정 포켓몬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가 변경됐습니다. 여의도는 '셀러' 어장이, 구로 디지털단지는 '폴리곤' 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포켓몬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우리 함께 찾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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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인지 완전무반응 되요 왜그런거죠? 어떻게 풀어요?
소프트벤 푸는법이라고 검색하시면되고 방법은 포켓스탑을 열심히 재시도 하면서 돌리면된다고 알고있습니다 한 50번?
@twimostick 그방법을 해봤는데도 안되네요 그리고 저는 아예 안들어가지기도하구요 지인은 들어가지기는하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요ㅠㅠ
@twimostick 답변감사드려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1. 예를들어 피카츄를 10마리 잡았다고 하면 사탕이 30개가 모이고, 9마리를 박사에게 보내면 보유한 사탕이 39개가 되죠? 그리고 나머지 한마리도 박사에게 보내면 사탕이 40개가 되나요? 아님 있던 사탕도 다 날아가나요?(그 포켓몬의 진화형, 혹은 초기형 포켓몬이 없을 때의 상황에서요) 2. 잡는 족족 진화시키면서 렙 20까지 왔는데, 이 레벨부턴 진화시키거나 부화시키는 포켓몬도 20레벨 수준까지밖에 안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트레이너 레벨 20부터는 어떻게 진화시키고 트레이닝하고, 렙업하는게 유리한가요? 3. 트레이너 렙 20이후부터는 잡거나 부화시키는 포켓몬 수준이 고정적이라면, 트레이너 렙업을 중요시 할 필요가 있나요?? 오늘 한창 기세 좋게 잡다가 여기부터 막혀서 그냥 집에 들어갑니다ㅠㅠ
2번 질문을 잘못드린것 같습니다. 트레이너 레벨 20을 말씀드린 것이고, 그 동안 포켓몬은 진화만 시켰습니다. (호기심에 강화도 몇번 하긴 했습니다만) 그럼 트레이너 레벨 20이후로는 IV값이 SS, S, A 정도이고 초기 CP가 높고, 베스트 스킬이 뜨는 정도의 포켓몬을 끝까지 진화시킨 후 강화하는게 좋은가요?
포켓몬강화=포켓몬렙업
@LordVoldemort 마지막 질문은 상관없는거에요 진화시키던 안시키고 강화하던 강화하고 진화시키던 상관없습니다 그전 강화시킨것고ㅏ 비례하게 진화시킬때 올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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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이사업체 여직원이 알려주는 엄청난꿀팁
"1~2달 전" 1.세탁기는 이사 전 물 빼고, 세제가 자동 투입되는 모델이라면 미리 세제통 비워두세요 물은 비우는데 세제는 은근 통안에 남겨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2.컴퓨터만큼은 직접 따로 챙겨서 미리 따로 챙겨둘 것을 권장합니다 3.안입는 옷 잡화 등은 아름다운가게나 헌옷 수거 하는 곳 많으니 신청하세요 보통 사설에서는 30키로 넘으면 키로당 몇백원씩 쳐줍니다(코로나 수출규제로 단가가 반토막이상 떨어졌다고 하네요ㅠ) 그 이하의 경우에는 무료 수거만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차피 버릴거였으니 이때 짐 왕창 줄이세요 고민 3초 이상 하는거 다 버릴겁니다.. 그리고 기부를 하더라도 영수증발급하면 소득공제도 가능하니까 그냥 수거함에 버리지 마세요 아름다운가게 http://www.beautifulstore.org "포장이사 선정" 01.추가요금 발생여부 = 사다리차 같은 필수 요소 빼고 식대비,수고비등 보너스?비용이 추가로 발생 되는지 확인하기 이름 없이 사설 냄새가 강한 경우..따로 요구하기도 하니 처음부터 잘 알아보시는게 중요합니다 02.기호에 맞는 포장자재 사용 = 침구와 가전 집기류를 구분하여 포장하는게 전문 업체에요 무조건 뽁뽁이만 싸는 곳은 거릅니다 뽁뽁이 조차 잘 없는 곳도 생각 보다 많아요 다 거름..비싼 돈 주고 산 가구들을 아끼신다면 꼭 체크하세요 03.A/S 가능여부 = 이사 때 이삿짐 분실 및 파손 보험이 들어있는 곳으로 고르세요 04.믿을만한 곳의 포장이사 무료 견적신청 = 사실 추천해줘서 믿을 만한 곳 따윈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운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소개 해주거나 받아도 조금이라도 시원찮으면 소개 해준 사람과의 사이만 멀어지니 그냥 다 직접 알아보고 잘되면 내탓 안되도 내탓 하는게 제일 속편하고 이웃과 친구와 정답게 지내는 방법입니다 괜히 잘해주네 마네 저울질 하면 스트레스만 솟아 올라요 그렇다고 카페 같은 곳 올려봤자 전부 광고일거구요 다 경험 해보고 얻은 주절주절이에요..그래도 이것 또한 참고만 해주시면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아무튼.. 그래서 일단 견적 많이 뽑아보는게 최고입니다ㅎ 제가 금액 알아볼때 우선순위로 거치는 곳의 간략한 특징만 써둡니다 05.유일하게 여기만 사람과 연결되지 않고 웹상으로 금액 확인이 바로 가능합니다 이 메리트만으로 여기부터 찍습니다 www.24story.co.kr/service 06.기본 3곳 알려줘서 평균 비용 계산할때 편함 특히 동네서에서 동네로 갈때 피드백이 가장 빠름 www.day24.com/korean/wemtch 07.입주청소는 사실 정보가 많이 없네요 저도 최근3년간 두번 정도 해봐서 대략적 평균 비용은 평당 1만원인 것 같고 그 외 옵션을 끼냐마냐 인데 저는 기본만 거의 하는거 같아요 둘째 애기도 있어서 화학제품 쓰는지 유무와 첨단장비?를 쓰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해요 가사도우미 어플 사용해서도 맡겨 봤는데..전문 장비 있는 곳이 100만배는 깨끗해요ㅎ그렇다고 비용이 많이 나냐 그렇지도 않았어요 물론 케바케이긴 하지만 장비빨? 이란게 있어서 그런지 차이가 많이 났었어요 그리고 가사도움 어플은 시간대비+인건비라 한번 열어서 보시면 금액 차이가 없겠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한..3~4분 고용해야 할걸 한곳에서 더 깨끗이 끝내는 느낌+@장비빨..찾기 어려운 분들 위해 참고용만 남겨요 www.cleanmania.kr 08.요즘 새집으로 갈때 리모델링을 같이하는 추세더라구요. 요즘 인테리어도 중개 플랫폼이 있다보니 검증된 인테리어 업체들을 선별하여 연결 시켜주는데 시세파악,트랜트,하자 발생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거같아서 참고용으로 남겨요 www.tasared.com/zipdoc "3~7일 전" 01.도시가스 가스관 막기와 설치하기 = 이사 후 일주일인가? 한달 안에 설치하면 무상으로 가능해요 전입신고 제시 후 무료로 가스관 개통 가능해요 이후엔 2~3만원 받는다고 했었어요 가스관 막을때 이제 남의 집이라 들어가려면 힘드니 이사 당일 막을 수 있게 미리 도시가스 전화해서 요청하시면 친절히 안내 받으실거에요 저는 당일도 오셔서 해주셨는데 하루 전에 신청 하면 된다고 안내 받았었어요 제일 좋은건 최소 3일 전엔 예약하고 이사 하루 전에 미리 봉인 하는게 가장 좋을거에요 봉인하면서 가스렌지를 챙겨야 하니까 신경 써주세요ㅎ "2~1일 전" 01.쓰레기 정리 =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건데..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짐을 버리세요 버리는게 가장 힘들지만 버리고 나면 막상 쓸 일이 없어요 잘버리는 방법이 있다면 "언젠가 쓸 일 있을텐데?" 싶으면 그게 전부 버릴겁니다 과감하게 휴지통 비우기를 해보세요 요샌 미니멀리즘이 대세에요ㅎ 02.보석 돈 중요 서류 따로 챙기기 = 신분증,통장,고가품,금고,명품등은 잠금장치 있는 캐리어에 따로 보관해서 본인 차에 따로 보관하세요 금품 잊어버린 적이 있어서 내잘못이려니 하고 그 후부터는 이렇게 합니다 "이삿날" 01.이사가는 집 가구배치 이게 꿀팁입니다 이사시간 1~3시간 가량 단축됩니다 뭐냐하면 팀내에 대빵이 계실텐데 그분께 미리 집의 단면도를 a4용지로 뽑아서 각 가구의 위치를 펜으로 표시 또는 그려서 초반에 드리세요 작은 건 그렇다쳐도 커다란 부피 있는 메인 가구들만이라도 표기해 두세요 안그럼 분명히 갖다 대보고 아니면 위치 바꾸고 그러게 될거에요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지라 고객 진상되는거 순식간이에요 아무리 손발 잘맞는 팀이라도 가구 이리저리 들고 옮기고 바꾸고 왔다 갔다하면...아시죠? 우리도 센스와 매너를 발휘해야해요 02.아파트라면 = 이사가는 집 관리 사무소에서 차량스티커 , 현관 출입,음식 쓰레기 카드와 비번 받기 03.이사가 끝났다면 첫번째로 짜장면....아니고ㅎ 도어락 비번변경 이거 중요하죠 실제로 안바꿨다가 전주인?이 들락날락했던 사례가 있었죠 범죄예방 첫걸음입니다 꼭 하시길! 04.이제 이삿짐들 확인 하셔서 파손,분실 확인하면 끝입니다~ "이사 후" 1.해당 거주지 가스 점검일, 분리수거일 확인은 필수이니 미리 확인해두세요 2.아이가 있다면 전학 순서 밟기 STEP 1.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한다 STEP 2. 전입신고시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취학 통지서를 한장 준다 STEP 3. 배정받은 학교 통지서를 들고 학교 교무실로 간다 한달~2주전에 선생님께 상황 전달하면 경험이 있으시고 센스 있으시면 이것저것 다 알려주세요 경험상 어설프거나 잘 모르는 선생님도 계신데 그땐 그냥 인터넷 뒤져서 다 알아보고 준비해야돼요..첨에 그랬었네요; 날짜 때문에 변수가 많으니 미리미리 날짜 맞춰 발빠르게 움직이시는게 좋습니다 3.이삿날 가는 집의 아랫집이나 옆집에는 시끄러웠으니 작은 정성(케잌,과일,드링크제 음료 등등) 포스팃 메모와 함께 인사드리면 마음이 조금 덜 무겁습니다 이웃과 정답게 지내는 초석이 될 수도 있고 사람 사는 냄새나고 좋으니 해보는게 어떨까 싶네요 저는 과일 음료 많이 챙겨봤습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어쨌는 피해를 주고 있으니 참아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전합니다 "주소이동.폐가전.전입신고.가구배치" 1.우체국 주소이전하기(주거이전서비스) https://service.epost.go.kr/front.RetrieveAddressMoveInfo.postal 예전엔 우체국가서 하나하나 다 변경을 해야했지만요즘은 온라인으로 모든 주소를 한번에 옮길 수 있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이사 후 1~2일 이내에 해당홈페이지 들어가서 옮기시면 되는데 아주 쉽습니다. 2.금융주소 옮기기 https://www.ktmoving.com/ 금융감독원 한국신용정보에서 금융주소를 쉽게 옮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나 8월에 종료됨으로 새로 생긴 금융주소 옮기는 곳으로 대체합니다 위 사이트 들어가서 한번에 은행사, 보험사, 카드사등등 한번에 일괄 변경 신청하시면 됩니다 (각 은행별로 금융주소 옮기는 서비스가 있으니 주거래 은행에도 확인해보시면 되겠습니다) 3.폐가전 무상방문수거 서비스 http://www.edtd.co.kr/ 큰 물건들은 미리 버려놓는게 편한데요 아시다시피 대형폐기물들은 관할 구청에서 스티커를 받아 해당 크기에따라 돈을 내고 배출해요 근데 여기신청하면 돈도 안들뿐더러 직접와서 박스에 포장까지 해서 갖고가주니 아주 편리합니다.쓸만한 물건은 빈곤층 서민들께 전달되고 고철은 재활용된다고 하네요. 4.가구위치 잡기 https://www.floorplanner.com 가상으로 쉽게 집도면을 그려 배치를 해볼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이사 전 가구위치를 어디에 둘지 동선을 미리 짜두세요 당일날 위치 못잡고 어리벙벙하면 이사 완료 후 더 번거로워 지는 상황이 발생 될 수 있어요. 5.이사갈지역에 가까운업체(한국품질재단인증ok) www.24system.co.kr/start 위에는 아무래도 신뢰성이 보장된 업체를 선정해주고 아래는 이사가는지역에 가까운 업체들을 소개해줍니다. 위는 지역별로 우수업체들 평균비용 알기쉽고, 지역마다 가능,불가능한 업체있다보니 아래에서는 이사갈지역에 평균비용을 알수있어서 참고하기 좋습니다. 6.전입신고 받아두기 http://www.minwon.go.kr 이사 후 14일 이내에 동 주민센터나 인터넷 민원24에 들어가셔서 반드시 신고해야합니다. 안할시 과태료부가이며 18일 이내에도 안하면 전주소지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꼭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7.도어락 비밀번호 변경하기 이사가기 전에 디지털 도어락 비번은 변경해놓으셔야 해요.(다시 연락오는 일이 생길 수도있어요::) 무엇보다 안전이 최고니 조심하시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출처:디*매니아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여행 끝! 여행사진과 동영상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줄 꿀어플 모음
이번 름에 여행 다니면서 사진/동영상 엄청 많이 찍어 두셨나요? ^^ ● ‘Google 포토’가 답이다~ 구글포토(Google photo)는 무제한 용량에 평생 무료인 사진&동영상 백업 서비스입니다. 거기에 이미지를 AI분석해두기 때문에 기가막힌 검색능력을 갖추고 있고 알아서 편집까지 해주는 자동편집/추천기능은 덤~ 특히 아이폰의 고속연사사진, 슬로모션영상, 라이브포토 기능까지 그대로 구현해주니 안쓰면 손해인 최고의 서비스입니다. ______ * 구글포토 리뷰 및 사용방법 보기 ☞ 애플 앱스토어 / 구글 플레이 ● '알파카(Alpaca)'로 베스트샷만 남기기 우리는 보통 같은 장면을 여러장 찍지 않나요? 한 장은 인생샷 나오겠지 싶어 다작한 사진들 중 베스트 컷만 골라 남기는데 가장 적합한 앱이 알파카입니다. 비슷한 사진을 따로 모아서 그루핑해 보여주기 때문에 여행사진처럼 다량의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잘 나온 것만 골라내고 삭제해 버리기 좋아요. _____ * Alpaca 리뷰 및 사용법 ☞ 애플 앱스토어 ※ 아이폰전용앱으로 안드로이드폰은 'Duplicate photo finder'를 대신 추천합니다 ● ‘구글포토’가 공유의 신이다~ 구글포토에서 앨범을 만들어 공유하기 구글포토에 백업해 놓은 사진/영상 중에 공유할 것을 골라 앨범으로 만드세요. 그리고 그 앨범의 링크를 공유링크로 만들어 링크만 전달하면 모든 사진 공유 끝! 링크를 클릭하면 포토앨범 게시물처럼 보여줘서 댓글이나 하트도 남길 수 있어요. ● ‘Gopro ‘Quik’을 아는 순간 이미 크리에이터 Gopro Quik은 자동 동영상 제작 앱 입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다 불러들여 놓고 영상패턴 버튼을 하나씩 눌러보면 이미 여러 버전으로 여행스케치 영상들이 완성되어 있답니다. 그저그런 영상이 아니고 프로 제작자가 몇 날을 꼬박 만들어야 할 만큼의 퀄리티라니, 와우~ 그저 고르기만 하세요. ______ * Gopro Quik 리뷰/사용법 ☞ 애플 앱스토어 / 구글 플레이 ● ‘maptales’면 여행경로를 한 방에! 맛집, 까페, 공원 어디든 사진의 GPS정보를 읽어 지도에 여정을 매칭시켜 줍니다. _____ * maptales 리뷰/사용법 ☞ 애플 앱스토어 ※ 코스별로 기록하는 여행정리 어플 더 추천해요 * '여행노트 (아이폰 / 안드로이드폰 )
밸브 스팀덱, 한국 판매 개시…오늘부터 구매 가능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지역으로 사업확장 밸브의 휴대용 PC 스팀덱이 일본 개발사 겸 유통사 코모도와 손을 잡고 아시아에 진출한다. 8월 4일 밸브와 코모도는 스팀덱의 아시아 지역 판매 개시를 알렸다. 첫 판매 대상지는 한국, 일본, 홍콩, 대만이다. 밸브는 스팀덱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휴대용 PC’로 소개하고 있다. 가격대비 뛰어난 성능과 인체공학 디자인, 정교한 컨트롤러, 그리고 기존 스팀 라이브러리의 게임 대부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호환성, 소프트웨어적 커스터마이징에 제약이 없는 개방성 등으로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바 있다. 아시아 지역 판매는 코모도가 담당한다. 전용 페이지를 방문하면 바로 오늘부터 구매할 수 있다. 기존 지역과 유사하게, 아시아지역 구매자들은 단일한 대기열에 등록되며, 올해 안에 순차적으로 제품을 받아보게 된다. 배송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국가는 일본이며, 이후 한국, 홍콩, 대만에서도 이어진다.  게이브 뉴웰 밸브 CEO는 “스팀덱은 우리가 잘 알고 사랑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퍼포먼스와 디자인을 지닌 기기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에 한국, 일본, 홍콩, 대만의 게이머들이 동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구매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부터 시작된다. 모델은 용량과 기타 부수적 옵션이 서로 다른 3개 버전이 존재하며, 가격은 각각 589,000원, 789,000원, 989,000원으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