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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제 작품 50번이나 본다고요? 49번 볼 시간에 다른 경험하세요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一聲 아이들이 6세 될 때까지 TV시청 제한 바람직, 대신 책을 읽고 사물을 느끼게 해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날것 포착하는 능력 잃게 돼 독서와 체험이 나의 힘, 읽고 상상하는 재미 놓치지 마라 3D가 대세지만 2D 고집하는 건 과잉 시대엔 오히려 빼고 또 빼야 책도 잡지도 많이 만들어져 가치 없어져 제대로 봐야될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돼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감독에게 “더 이상 당신의 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어 슬프다”고 하자, 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그런 말을 들을 때 은퇴하는 편이 좋아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마지막에 영화 만들었을 때는 다들 ‘이 영감 빨리 죽어라’ 그랬거든요(웃음)”. /이덕훈 기자 도쿄 최대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 전철을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려 대학 캠퍼스와 주택가로 둘러싸인 히가시고가네이(東小金井) 역에 닿았다. 목요일 오전 작은 역사의 한적함을 뒤로하고 북쪽 출구를 나서 골목을 돌아 10분쯤 걸었다. 주택들 사이에 숨어 있던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 창작의 산실인 지브리 스튜디오다.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 사무실에 남녀 직원 3명이 앉아 있고, 책상 밑으로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사무실 바깥벽에는 최근 개봉한 미야자키의 마지막 장편(그는 지난달 공식 은퇴했다)인 '바람이 분다'와, 지브리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78) 감독의 올 11월 개봉 예정작 '가구야 공주 이야기'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안쪽 중앙에는 직원들이 쉬거나 식사하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1층 면적은 다 합쳐봐야 한 150평이나 될까? 메인 건물 외에 제2, 제3 스튜디오가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규모가 고만고만해 인근 주택들에 비해 전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나와 도보 5분 거리인 감독의 개인 사무실에 당도했다.(그는 스튜디오 외에 별도 사무실을 갖고 있다.) '플랜더스의 개'에 나올 법한 유럽풍 아기자기한 외관이 예뻤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창문 안쪽에서 보고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그의 30년 팬으로서 그의 사적 공간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는 가슴 뛰는 일이었다. 일본에선 흔히 "지브리는 언론 홍보가 따로 필요 없다"고들 한다. 일본의 모든 담당 기자들이 미야자키 팬이기 때문이다. 1990년 전후로 중·고교를 다닌 기자는 친구들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天空)의 성(城)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를 불법 복제 비디오로 돌려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79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城)'으로 장편 데뷔한 이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내놓는 작품마다 전 세계 어린이들, 나아가 많은 어른까지 매료시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만 2350만명을 동원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야자키 감독의 표정은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을 때의 약간 짓궂은 표정을 쏙 빼닮았다. 말은 아주 빨랐고, 말 중간 중간 아주 나직하게 "정말로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감독님은 작품에서 '살아라! 세상은 잔혹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메시지에서 관객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쩌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저는 그런 격려를 원했던 것인지 몰라요. 제가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몸도 안 좋고 내향적이고 모순에 가득 찬 아이였거든요." ―감독님의 일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네게 주어진 것을 온 힘을 다해 이뤄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 경우엔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든 다른 뭐를 선택했든 정말 열심히 하라' '자신의 빵을 기뻐하며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다가 배가 아플 수도 있고, 온갖 일들이 일어날 테지만요.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특별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거나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창의성이 기업계의 화두가 된 시대에 미야자키 감독의 창의력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양한 체험과 독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다. 기자가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자 그는 뜻밖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제 작품을 50번 보는 대신 나머지 49번은 다른 경험을 해야죠. 반복해서 보는 49번의 시간에 무언가 잃고 있는 겁니다. 특히 어린이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그는 "어린이가 여섯 살이 되기 전에는 TV도 보여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실과 TV 속의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영상으로 장사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게 딜레마이긴 하죠"라고 덧붙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도 많은데요. "일러스트의 시대가 지나고, 영화의 시대, TV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영상은 개인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누구나 언제든 영상을 접한다는 의미) 그러다 보니 현실에 접근하는 능력은 점점 더 약해져 갑니다. 날 것 그대로를 포착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는 간접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독서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책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더라도 반드시 책부터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셜록 홈스의 모험'을 책으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꼭 책으로 먼저 읽어야 합니다. 문자로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영상으로 옮기면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언어로 읽는 것의 재미가 훨씬 강렬합니다. 어떤 무대인가, 어떤 풍경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동안에 무엇인가와 만날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주요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달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는 감독으로서 창작 활동을 그만둔다는 의미이지 지브리스튜디오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개인 사무실에 일요일만 빼고 매일 출근하고, 지브리 미술관의 전시 작업에 관여하며, 지브리 사내 보육원인 '곰 세 마리 집'의 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지난 8월 한국에 출간된 그의 저서 '책으로 가는 문'이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일본의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감독이 오랫동안 즐겨 읽은 소년문고 400여권 중 50권을 추천해 놓은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가 해주고 싶은 말들이 각각의 책 소개에 메모 형식으로 달려 있다. 지브리스튜디오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의 소중함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애초의 약속 때문에 질문 내용이 다소 제약을 받았지만, 거장의 내면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체험하려 하지 않는 젊은 세대 다시 체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야자키 감독은 요즘 젊은이들이 뭔가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하고, 체험하려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싫어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폐가 됩니다. 정말 폐를 끼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 서로에게 아무도 없는 편이 좋을 거예요. 폐를 끼치지 않는 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발톱을 세우지 않으면, 관계를 갖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관계를 갖지 못하고 서로 폐를 끼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착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병적인 오타쿠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건 사회가 쇠약해지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선인이나 악인을 논하기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체험이 부족한 젊은이들로 인해 애니메이션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는 뒤를 휙 돌아볼 때 눈의 초점이 먼저 돌아가고 나중에 고개가 돌아가는 표현 방법을 '미래 소년 코난'(1978년)에서 처음 시도했습니다(그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직접 시연해 보였다. 그때 모습은 일흔 넘은 노인이 아닌, 30년 전 TV에서 봤던 '미래 소년 코난'의 주인공들 얼굴 표정 그대로였다. 표정, 눈매, 입 모양, 고개를 돌릴 때의 경쾌한 움직임 등은 '빙의'라 할 만했다). 이렇게 말이에요. 아시겠죠? 우선 눈부터 시선이 '사악' 벗어납니다. 순간적이지만 고개보다 눈이 먼저인 거죠. 그런데 30년도 더 전에 했던 것을 이번 '바람이 분다'에서도 똑같이 하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매너리즘 덩어리인 겁니다. 좀 슬펐습니다(웃음). '내가 30년 전에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지금까지 하고 있단 말이야? 적당히 좀 해, 스스로 좀 생각하라고'라는 거죠. 예전 애니메이션에서는 인물의 눈동자가 가끔 깜박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눈 깜빡임을 일부러 다 지웠습니다. 실사 영화를 보면 실제로 배우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아요. 눈을 깜박일 때를 보면, 피곤해서가 아니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사악 뜨면서 연기를 할 때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동안 저희는 그냥 관성적으로 눈 깜박임을 넣어 온 것이었어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옛날에 가르쳤던 것을 그냥 스스로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눈 깜박임은 넣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여겨 온 것뿐입니다. 제 아들(미야자키 고로 감독)도 애니메이션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네가 정말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면 좀 더 스스로 다른 것을 배워라.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해라.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그림을 시작하지 마라. 실제의 것을 보고 스케치 데생으로부터 시작해라'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이 있다면? "기술은 이 세계에 들어오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핵을 확실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향력과 표현력을 넓히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아도 좋아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이렇게 미숙한 실패를 하다니'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요. 잎을 피우는 필연의 힘을 가진 줄기만 있다면, 그 후 잎을 피우고 꾸미는 것은 서로 지혜를 짜내면 어떻게든 됩니다. 물론 최고의 이야기는 그러면서도 이파리와 그곳을 기어다니는 벌레들까지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겠지만요. 지금의 일본 문화는 모든 게 희박하고 만화적이 되어 모두가 얄팍함밖에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일본은 생산하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생활 자체가 서브컬처로 완전히 메워져 대단히 흐리멍덩해지고 있죠. 이건 민족을 망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미야자키 감독이 문 앞으로 나와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3D 컴퓨터그래픽이 대세이지만, 지브리스튜디오는 여전히 2D를 고수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이 분다' 공개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3D를 만들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2D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요즘 영화들은 과잉"이라고 말했다. "과잉으로 세밀하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TV 영상을 보면, HD 영상이 돼서 화면도 아주 크고, 구석구석까지 다 보이죠. 하지만 그런 것까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 얼굴보다 더 큰 아나운서의 얼굴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브리 미술관에서만 상영한 단편 애니메이션 '보물찾기'에는 음성도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 빼고 빼고, 점점 더 빼다 보니 '대사도 필요 없어'라는 식이 된 거죠. 그랬더니 마음이 아주 후련해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구나'라고 생각했죠. 영화 '바람이 분다'도 그 연장선입니다. 돌비사운드로 여러 방향에 스피커를 배치해서 이런저런 입체 음향이 나오도록 하는 일을 '바람이 분다'에서는 아예 안 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20~30명이 꼭 웅성거려야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2명으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옛날 라디오 드라마를 보면 다 그런 식이지요. 일본이 안고 있는 문화적인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겁니다. 너무 많은 양은 질 그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지금은 책도 잡지도 너무 많이 만들어져 한 권 한 권의 가치가 없어질 뿐 아니라, 제대로 봐둬야 하는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 만듭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3D 애니메이션의 정상에는 미국 영화사 픽사(Pixar)가 있다. 그런데 픽사의 존 래스터 감독은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오래전부터 미야자키 감독의 엄청난 팬이었다"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 픽사의 모든 영화는 미야자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D이지만, 미야자키 영화의 묘사는 매우 생생하다. 그에게 묘사란 무엇일까. "근육을 그린다고 해보죠. 근육이라는 것은 의지입니다. 의지를 근육이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 있는 때에도 뭔가 근심에 사로잡혀 있거나,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할 때는 어딘가 몸이 굳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조금의 선의 차이로 인해 인물이 무언가 생각한다든지 걱정한다든지 하는 느낌이 나오게 되는 거죠.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근육의 일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육의 움직임이 옷에도 그대로 전해지게 됩니다. 머리카락도 그렇지요. 뭔가 기분이 좋다든지, 기분이 안 좋다든지 할 때 머리카락에도 나타납니다. 저희는 이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세계는 아주 심오한 겁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게 되면, 갑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세계의 비밀로 통하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애니메이터들에게 그런 것을 익혀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 있는데요. 생각만큼 잘되지 않네요(웃음). 세상은 아주 깊은 겁니다. 그런 것에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이 개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뭔가가 더 없을까 계속 찾게 되겠지요. 많은 것이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세 차례 은퇴 번복했던 이유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달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그는 전에 세 번이나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한 전례가 있다. 체력적 한계를 이유로 물러나려 했던 그가 번번이 복귀한 것은 지브리스튜디오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감독님의 뒤를 이을 뛰어난 젊은 인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애니메이션이 잔뜩 있는 시대에 그걸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어려운 겁니다. 모델이 너무 많은 거죠.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시대 쪽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이 강했던 겁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들은 대개 '미래 소년 코난'을 보고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다는 식이에요. '백 투 더 퓨처'인 거죠." ―지브리가 작품화하기도 했고 '책으로 가는 문'에서 감독님이 추천하기도 한 아동서 '마루 밑 아리에티'와도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작품 속의 인간 세상에서 사는 소인(小人)들이 사실 우리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엄청난 무력감입니다. 무력감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는 방사능이 지하수로 유출되는 것을 멈추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어느 시기까지 사람은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현대의 특징은 무력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하지만, 결국 소인인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 사무실 바깥으로 나와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하고 카메라 연사 버튼을 쉴 새 없이 눌러대자 '허, 참!'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포즈를 취해 줬다. 아쉬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기억에 담고 싶은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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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애니메이션의 대가!!!!지브리스튜디오에 가보고싶네요^^ 예약해야된단 얘기도있던데..
한국=무력감
지브리스튜디오전 D-1에 이벤트 당첨자로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천천히 더 많이 더 깊이있게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한 컷 한 컷에 들어가는 정성과 노력..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의 프로페셔널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정말 멋졌습니다. 우리는 결국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소인에 불가하지만, 가끔 대인의 느낌을 전해주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존재이기도하니까요 ㅎㅎ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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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 OST 세계로 푹 빠져볼까요?
1. Summer 1999년에 개봉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메인 테마곡으로, 영화 보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국내에서 꽤 유명한 곡이지요. 연주 내내 울리는 스타카토의 톡톡 튀는 매력적인 느낌 덕분에 여름날의 소나기 같은 상콤한 청량감이 전해지는 느낌이네요. 출처: http://youtu.be/_t1KvFMUNws 2. 인생의 회전목마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과 소피가 함께 하늘을 걷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공중산책'과 같은 구성의 음악이에요. 정말 동화 속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몽환적이지요. 기무라 타구야가 연기한 하울의 목소리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더더욱 심쿵했던 아련함이;;; 출처: http://youtu.be/lAfqGyG1738 3. The Bygone Days 팝콘 언니가 매우매우 애정하는 영화 <붉은 돼지>의 OST인 '지난 날'이란 곡이에요. 재즈풍의 피아노 연주와 그루브 넘치는 트럼본, 색소폰 솔로를 듣다보면 시나브로 로맨틱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어두컴컴한 bar에서 독한 술 한 잔 앞에두고 라이브로 듣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출처: http://youtu.be/IF91bwbBAtQ 4. 벼랑 위의 포뇨 노래 자체도 귀엽고, 99년생(당시 10살) 노조미의 몸짓 하나하나와 목소리도 귀엽고, 무엇보다 옆에서 인형 흔드는 아저씨도 귀엽네요;;; 웅장한 곡부터 이런 상콤한 동요까지 모두 커버 가능한 히사이시 조 오라버니는 정말... 출처: http://youtu.be/3EP8qjwfNQo 5. One Summer's Day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반, 자동차를 타고 이사할 집으로 가는 도중에 흘러나온 곡으로, 울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OST로 꼽힌다고도 하네요. 히사이시 조는 곡이 어렵지 않음에도 우아하면서도 감동적인 느낌을 주는지라 더 끌리는 듯 해요. 출처: http://youtu.be/t41DYdwur2U 6. Mononoke Princess 영화 <원령공주>의 메인 테마곡으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죠. 애잔하면서도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신비한 느낌의 선율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눈빛이 너무도 강렬했던 우리의 아시타카 도련님은 잘 살고 계실려나요. 출처: https://youtu.be/zjkJEEBH54Q 7. 바람의 전설 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주제곡입니다.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다가 팀파니가 '두둥'하며 바이올린 합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 수십번 리플레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찾아보니 이 영화가 만들어진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어머나... 출처: http://youtu.be/yAeohVqBcw4 8. A Waltz of Sleigh 히사이시 조는 스튜디오 지브리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요, 이 중 국내 영화나 드라마 OST도 참여를 했었답니다. 그 중 <웰컴 투 동막골>의 '썰매 왈츠'는 신비로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동시에 주는 명곡이지요. 물론 영화도 꿀재미 보장요ㅎㅎㅎ 출처: http://youtu.be/6q3tR5nMcWs 9. Always with me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노래 '언제나 몇 번이라도' 입니다. 참고로 이 곡은 히사이시조가 아닌 'Kimura Yui'가 작곡한 곡입니다. 곡이 너무나 좋아서 넣어 보았어요^^ 잘 들어보시면 여가수의 호흡이 짧은 느낌이 드는데요, 과거에 사고로 성대를 다쳐서 그렇다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청아하고 이쁘게 노래하며 잔잔한 여운을 건네주네요. 출처: http://youtu.be/fyp9z351TeY 10. 이웃집 토토로 중독성 있고 발랄한 멜로디로 인해 들을 때 마다 늘 기운이 넘치는 곡이지요. 이 노래를 실내공연장에서 200명의 오케스트라와 800명의 합창단이 함께하니 그 웅대함으로 인한 감동은 상상 이상일 것 같아요. 마지막에 지브리의 두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가 함께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지 못 할 장면이었어요. 출처: http://youtu.be/BdNksb9Rtic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