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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인터뷰⑥] 포르투갈 이민 7년, 리스본과 함께한 시간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한인민박에 대한 얘기를 많이 접했다. 대부분 사업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 중이며, 유명 관광지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유럽의 끝자락인 포르투갈에는 한인민박이 딱 하나만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직항 편이 없고 서유럽과 거리가 있는 포르투갈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곳에 정착하게 됐을까. 리스본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안소정(41세), 조규성(42세) - 가족 : 부부, 두 아들 - 거주지 : 포르투갈 리스본 - 거주 7년 차(2016년 10월 인터뷰 기준)
안소정 TimeLine 1994년 섬유무역회사 입사 2004년 대학 편입 후 휴학 2009년 5월 결혼 2010년 2월 퇴사 2010년 5월 포르투갈 출국
조규성 TimeLine 2000년 대학 졸업 2001년 ~ 2004년 옷가게 운영 2006년 ~ 2009년 헬스 트레이너로 근무 2009년 5월 결혼 2010년 5월 포르투갈 출국

함께할 시간이 없던 맞벌이 부부

2004년 안소정씨는 이전 회사의 상사가 창업한 회사로 이직했다. 오랜 회사 생활에 조금 지쳐있던 그는 상사와 조율해 오전 근무만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오후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오후엔 집안일을 하거나, 가끔은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남편 조규성씨의 일상은 정 반대였다.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한 조규성씨는 졸업 후 옷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려 사업이 어려워지자 가게를 접고 지인의 소개로 헬스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주로 야간에 일했고, 덕분에 한적한 그 시간에 헬스장을 찾던 안소정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결혼 후에도 이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1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특별히 힘든 건 없었지만, 낮에 일하는 아내와 밤에 일하는 남편이 가족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적었다.
-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정 : 결혼 전 마지막 회사에서는 오전만 일하고, 여름에는 한 달 정도 쉬었어요. 그때 영국, 프랑스로 한 달씩 여행을 다녔는데 영국 민박집 사장님이 제 나이 또래였어요. 두 분 사는 게 너무 좋아 보여서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죠.
규성 : 결혼하고 1년을 주말부부처럼 살았어요. 그래서 계속 방법을 고민했죠. 외국에 나가 사는 건 신혼여행 때부터 아내가 은근히 깔아 놓았어요.
- 결혼 전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소정 : 결혼식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때 바르셀로나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어요. ‘여기에 와서 한인민박을 하면 어떻겠냐’고요. 그래서 살짝 바르셀로나에 다녀왔어요. 사람들도 많이 오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종플루가 터진 거예요. 결국 못 가게 됐죠. 그때 바르셀로나에 한인민박이 20개쯤 있었는데 이젠 50개로 늘었다고 해요.
규성 : 전 결혼해서 가족이 됐는데 부모님과 한 번도 같이 살지 않고, 바로 해외 나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께 손자라도 안겨드리고 나가자는 입장이었어요. 가족이니까 같이 자고, 먹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소정 : 그래서 그때 (생각을) 접고 결혼하고 1년을 살았는데 불안감이 생기는 거예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과외비 많이 들고, 항상 바쁘게 이렇게 살 거야?’하고 남편한테 물었어요.
규성 : 그렇게 사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는데, 아내가 계속 압박을 주더라고요. 저는 돈이 많지 않더라도 가족이랑 같이 살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정 : 나가서 살면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죠.
-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나간다고 언제 말씀드리신 거죠? 규성: 저는 장남이라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가기로 결정했으니까.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부모님이 기대하는 게 차원이 다르잖아요. 부모님이 한 달 내내 우셨어요. 친구들도 다 반대했고요.
소정 : 저희 쪽은 부모님, 친구 모두 다 찬성했어요. 부모님께 떠나기 1~2달 전에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일랜드 화산(2010년 4월)이 터지면서 유럽의 모든 비행기가 막힌 거예요.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다”, “너 망하면 어떻게 하냐” 이런 얘기도 계속 들었어요. 사실 속으론 걱정 많이 했죠.
그때 신랑이 ‘망하면 어때, 살아보고 마흔 전에 돌아오면 되지. 그게 투자지 뭐’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저희 신랑은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서 편했던 거예요.(웃음) 근데 그렇게 말해주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시댁에 저는 죄인이에요. 마지막 나올 때 얼굴도 안 보셨어요. 그다음에 아이 낳고 가니까 지금은 ‘잘 나갔다’고 하시죠.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나라, 포르투갈

바르셀로나 계획이 무산됐지만 소정씨는 해외 이주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주말부부처럼 지냈던 1년의 시간은 그런 그의 마음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그러다 우연히 포르투갈 민박집을 발견했고, 부부는 정보를 접한 지 5개월 만에 사전 답사도 없이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안소정씨는 34세, 조규성씨는 35세였다.
- 어떻게 포르투갈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소정 : 여러 기준이 있었어요. 아등바등하면 안 되고, 경쟁이 심하면 안 되고, 날씨 나쁘면 안 된다 같은 거요.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등 여러 곳을 알아봤어요. 일부러 신혼여행도 유럽으로 갔고요. 사실 남편은 민박집에 회의적이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여행 중에 민박집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거기서 하루 자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살짝 보여 준 거예요. 결혼 후에도 제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계속 얘기했더니, 신랑이 ‘그러면 알아보자’고 한 거죠. 어느 나라로 갈지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인터넷으로 알아봤지만 한계가 있어요.
규성 : 저는 그냥 (가족이) 같이 있으려고 나온 거예요. 좋은 나라는 많잖아요. 저는 신혼여행 말고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아내가 ‘베니스 어때?’ 물어보면 ‘물 많아 안돼. 모기 많아’ 그러고, ‘바르셀로나, 파리는?’ 물으면 ‘사람 많아서 싫고’. 그러면 ‘체코?’ ‘체코 좋아’. 이렇게 여기저기 하다가 아내가 갑자기 포르투갈을 얘기하더라고요.
소정 : 진짜 인연인 거예요. 온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고, 어디 붙어있는지만 알았는데.
규성 : 전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소정 : 저희가 맨날 하는 게 지도 펴놓고 ‘어디로 갈까, 여기가 좋을까’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아는 동생이 포르투갈이 너무 좋다고, 날씨도 되게 좋고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검색해보니 민박집이 딱 하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넘기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진짜 그런 글이 나오는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제가 몇 번 읽었던 블로거였어요.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사기는 아니구나’ 생각했죠. 인터넷으로 글 주고받고 바로 옷가지만 챙겨서 넘어왔어요. 그때 임신 중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올까 고민했는데, 뱃속에 넣고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 대부분 한인민박이 무허가인데, 사업 등록을 하는 건 어렵지 않으셨어요? 소정 : (사업자 등록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죠. 허가받기도 굉장히 까다로워요. 근데 저희는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신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네’, ‘영국에선 한밤중에 경찰이 들어왔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처음부터 사업자 등록을 생각했어요. 저희는 아이도 있는데 불안하게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규성 : 포르투갈 사람들은 한인민박이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냈어요. 이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한 거예요. 한국 사람도 없는데 민박을 한다니까요. ‘그래 그럼, 너네가 거짓말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이런 생각으로 내 준 것 같아요.
- 관공서 업무는 직접 하셨어요? 규성 : 이전 사장님과 한 달 정도 함께 지내면서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 나가고 비자 연장받을 때는 저희가 언어가 안 되니까 포르투갈 변호사랑 같이 했어요. 리스본에 살면 영어만 해도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관공서 업무는 한계가 있죠.
소정 : 법이 계속 바뀌어서 변호사와 함께 해야 명확해요. 처음 거주증을 발급받으러 이민국에 갔더니 국세청에 가서 세금번호를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국세청 갔더니 다시 이민국 가서 거주증을 받아 와라 하고. 이민국에선 세금번호가 있어야 거주증을 만들 수 있다고 하고. 저희가 사업자 등록을 하니까, 저희 도와주신 분이 기적이라고 했어요.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

리스본은 언덕이 많은 도시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도착한 여행자들에게 언덕이 그리 반가울 리 없다. 민박집 길 안내 게시물에 ‘캐리어가 무거운 분들은 택시를 타거나 예약을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가 있는 걸 보고 7년 동안 그들이 겪은 일들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 7년 동안 한인민박을 하면서 알게 된 한국 손님만의 특성이 있을까요? 소정 : 한국 손님이 좀 까다롭긴 하죠. 저희 집이 관광지 한가운데 있다 보니 집도 오래되고 낡은 편이에요. 구시가에 엘리베이터 있는 집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데 예전에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집은 인간적으로 민박집 같은 거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 밑에도 집 많은데 왜 이런 언덕에 집을 구했냐”고 따지시는 분도 계셨죠.
규성 : 예전에 어떤 손님이 ‘언제 천사가 찾아올지 모르니 항상 기다리고 있으라’라고 써준 글이 있는데 그게 인상에 남아요. 사실 천사 같은 분도 계시고, 안 그런 분도 계신데 그 한 분 때문에 버티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까다로워요. 예를 들어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으면 외국 사람들은 같이 춤추고 박수치고 놀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소정 : 그런(천사 같은) 분이 가실 땐 아쉬워요. 불과 며칠 사이에 정이 많이 들어요. 반면에 불평, 불만만 많아서 안 왔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고요. 식당처럼 밥만 먹고 가는 곳이 아니고 며칠씩 같이 지내는 건데 너무 관계가 불편하면 서로 힘들거든요. 그래서 환불해드리고 다른 곳에 가시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저도 스트레스받기 싫거든요. 예전엔 여행비용 아끼려는 분들이 민박을 찾았지만, 지금은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아침에 한식을 먹기 위해 오시는 분이 많아요.
- 그동안 다른 한인민박이 생기지는 않았나요? 규성 : 세 번 정도 있었어요. 새로 생겨도 다들 못 버텨요. 여긴 성수기, 비수기 격차도 심한 편이에요. 전에 있던 사장님이 저희에게 “먹고살 수는 있지만 돈 벌 생각은 없이 오세요”라고 했어요. 리스본은 워낙 호스텔이 좋기로 유명하거든요. 저희는 한인민박이 하나라 근근이 유지하고 있죠.
소정 : 여기 살고 싶지만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문의를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시도한 분들은 많은데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요.
- 이민자들에게 민박업을 추천하시나요? 규성 : 사실 민박은 사람을 지치게 해요. 사람 상대하는 건 다 그렇잖아요. 항상 좋은 얼굴로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항상 손님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새벽부터 와서 벨을 사정없이 눌러대는 사람도 있고요. 비행기가 연착돼서 새벽 두 시까지 잠을 못 자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처음에는 완전히 창살 없는 감옥이었죠. 돈이라도 많으면 직원을 쓸 텐데 저희는 그럴 여유도 없었고요. 바르셀로나 갈 걸, 파리로 갈 걸 이런 생각하면서 버티다가 이젠 적응이 된 거죠. 요즘은 다들 카카오톡을 쓰니 조금 나아졌죠. 그리고 미리 도착시간 꼭 알려달라고 말씀드려요.
소정 : 아무래도 (민박이) 처음 시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한국 식당이나 민박 빼고는 딱히 할 게 없더라고요. 저희도 민박을 이렇게 길게 할지 몰랐어요. 장기 계획으로 온 게 아닌데 아이가 커가니 계속 있게 된 거죠.
- 민박을 하면 사람들이 떠나기만 하니까 우울증도 온다던데요? 소정 : 처음엔 그래요. 큰 애가 지금 한국 나이로 여덟 살인데요. 애들은 되게 심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저희가 집에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가족 손님들이 종종 오세요. 또래 친구가 와서 같이 놀고 친해졌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면 벌써 가고 없고. 누나들도 재밌게 같이 놀아줘서 잘 따라다니고 그랬는데 또 그다음 날엔 없고.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한동안은 저희 애가 새로운 사람이 와도 시큰둥했어요. 지금은 조금 컸다고 정을 많이 주진 않더라고요. 애들 교육으로는 안 좋은 거 같아요. 민박집은 손님 위주로 돌아가니까 샤워도 아무 때나 못하고, 밥도 손님 다 먹은 후에 먹어야 하고, 사생활이 없어요.
규성 : (아이들도) 갈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거죠. 장기적으로 본다면 거주하는 집과 민박집을 따로 하는 게 좋아요.

포르투갈에서 산다는 것

그들이 리스본에 와서 꿈꿨던 일상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유럽 각지의 테러를 피해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조용했던 리스본의 매력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리스본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의 7년을 또 자연스럽게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 포르투갈이 한국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살면서 ‘그래도 유럽이구나’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규성 : 아주 사소한 것들인데요.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항상 차가 먼저 양보해주죠. 여자, 임산부를 대우해주고요. 줄이 길게 있더라도 임산부를 보면 앞으로 먼저 오라고 해요. 문 열어주는 건 기본이고요. 걷기 어려운 백발 할머니, 할아버지도 임산부한테 자리를 양보해요.
이런 작고 사소한 배려들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아요. 인간에 대한 서로 간의 최소한의 예의랄까.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게 몸에 배어있어요. 이런 건 단기간에 가르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보다 집들도 낡았고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인데, 여기선 그런 아날로그적인 방식들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소정 : 특히 포르투갈 사람들이 다른 유럽 사람들보다 '젠틀'한 것 같아요. 친절하고 인종차별도 덜 하고요. 운전할 때 보면 한국 사람들과 좀 비슷한데요. 그래도 차가 아무리 쌩쌩 달리다가도 사람이 길을 건너면 무조건 서요. 한국 가서 “차 안 보고 다닌다”라고 운전하는 분들한테 얼마나 욕먹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노 키즈존'은 절대 있을 수 없어요. 처음에 식당을 갔는데 돌아다니는 아이가 없고, 모두 얌전히 앉아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 교육들은 확실하게 시키는 거 같아요.
- 가정교육에서 다른 점이 있는 걸까요? 소정 : 일단 아이는 내 집 아이, 남의 집 아이 할 것 없이 다 예뻐해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배려해주는 게 당연한 분위기고요. 식당이든 슈퍼마켓이든 아이와 함께 다니면 항상 아이에게 먼저 인사해주고 말 걸어 주고 장난도 먼저 걸고요. 또 엄마들도 내 아이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들은 본 적이 없어요. 어디 가서든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하지 못하게, 놀이터에서는 왜 친구를 밀면 안되는지, 줄을 왜 서야 하는지 조곤조곤히 가르치죠. 유럽에서 아이의 존재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 그 자체예요. 그 대신 해도 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들을 확실히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규성 : 노천카페에서 주문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8살, 10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아빠가 화가 났는지 아이들 멱살을 잡고 끌고 가버리더라고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 확 잡아요. 무섭게 혼내더라고요.
- 문화나 생활면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규성 : 여유가 있죠. 빨리빨리는 없어요. 어디에 가서든 줄 서서 기다리고요. 자랑처럼 한국의 당일배송을 말해줘도 이해를 못해요. 그게 왜 자랑인지, 왜 당일에 배송해야 하는지요.
소정 : 처음에 되게 답답했어요. 너무 느리니까. 보건소에 아침 9시에 갔는데 6시간을 기다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책, 간식을 가져오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전 뭔가 잘못됐는 줄 알았어요. 진료할 때 의사한테 말하니까 ‘의사가 없어서 그렇다.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진료만 한 시간을 받았어요. 잡다한 얘기가 대부분인데 너무 잘 해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한국은 보통 10분 진료잖아요. 여기는 의사가 저를 진료하는 동안은 다음 환자를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기다리다 지쳐서 ‘내가 돈 내고 사립병원 가고 말지' 생각했는데 나중엔 익숙해져서 ‘그런가 보다’하게 되더라고요.
한국 분들이 관광하면서 “이러니까 (포르투갈이) 가난하다. 느려 터지고 돈 벌 생각을 안 한다.”라고 하세요. 가게가 한 달도 쉬고 그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젠 ‘저렇게 사는 게 뭐 어때서. 사는 게 별건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여름에 한 달씩 문 닫고 휴가를 즐기는 그들의 방식이 부러워요.
규성 : 포르투갈 사람들은 100만 원 벌어서 40만 원 세금 내도 나머지로 즐기면서 살아요. 저금은 잘 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해변이나 다른 데로 놀러 갈 생각을 해요. 노후 제도가 잘 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프랑스 같은 나라로 많이 나가고 노인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출산 같이 아주 기본적인 건 무상이에요. 그러니까 서민들도 살 수는 있고요.
소정 : 세입자 정책이 잘 되어 있어서 집주인이 함부로 월세를 올릴 수가 없어요. 경기가 나빠서 자식들이 자립을 못해서 그런지 삼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도 많아요.
- 주로 어떤 분들이랑 어울리세요? 한국인이나 현지인 친구가 있나요? 규성 : 포르투갈에 한국 사람이 150명 정도밖에 안 돼요. 리스본엔 50명도 안 되고요. 한국 사람은 대부분 주재원이라 어울릴 수가 없어요. 현지인들과는 친해지기가 어렵고요.
소정 : 처음엔 가족과 (한국인) 친구가 있으니까 현지인 친구를 사귈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근데 오래 살다 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친해진 한국인 지인들이 일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희만 남으니 외롭고 헛헛해져요. 그래서 ‘현지인 친구라도 사귀어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규성 : (부부가) 싸우면 풀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웃음)
- 아이가 둘이라 교육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 교육환경은 어떤가요? 소정 : 포르투갈이 교육 문제는 조금 심각해요. 주택가는 교육여건이 좀 더 안정적인데 여기(민박집)는 관광지고, 학교가 술집 많은 곳에 있어요. 대부분의 학부모도 일하느라 교육에 신경을 안 쓰고요. 그래서 한국의 과외, 학원비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첫째 아이를) 사립학교로 보냈어요.
규성 : 사립학교로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를 바보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포르투갈 정부가 몇 년 전에 교사의 절반을 줄여서 수업이 ‘펑크’가 나요. 선생님이 안 와서 수업 안 하고 청소부가 파업하면 수업 안 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땐 학생이 분필이나 기자재를 옮겼는데, 여기는 그걸 다 청소부가 하거든요.
저희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절친이 외국인 아이였어요. 포르투갈어를 못하니까 외국인 두 어린이가 자기들끼리의 단어로 말하는 거예요. 지금 보내는 사립학교는 대부분 포르투갈 학생이에요. 다양한 인종이 있어서 차별은 적은 편이에요.
- 이민 오길 잘 했다고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예요? 규성 : (가족이) 같이 있을 때요.
소정 : 한국에 갔다 왔을 때 가장 많이 느끼죠. 남편 동생 둘이 은행에 다니는데 항상 새벽에 들어가니까 아이를 볼 시간이 없어요. 시부모님이랑 통화하면 ‘동생 부부가 계속 야근을 한다, 얼굴을 못 봐서 아이가 운다, 아이가 엄마 얼굴 보려고 아침 7시에 일어난다’는 말씀을 하세요. 저희는 돈은 그렇게 벌지 못해도 이렇게 나와 살기 잘했구나 싶죠.
그리고 제가 한국 갈 때마다 미세먼지가 제일 심할 때이긴 하지만, 아파트 바로 앞에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회색 빛의 도시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무슨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시 같았어요. 초 미세먼지 때문에 집 밖으로 못 나가고 창문도 열지 못할 때는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희가 많이 놀기도 해요. 맨날 커피 마시러 나가고, 골목 구경 다니고, 박물관 가고, 시간 날 때는 리스본 인근도 많이 가요. 약간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요.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할 30대에 베짱이처럼 너무 노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니까요.
규성 : 저희는 아직 차, 집도 없어요.
-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세요? 소정 :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은데 아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다시 학원에 보내는 건 못할 것 같아요. 치맛바람도 그렇고요. 한국 가면 친구들을 만나잖아요. 한 친구는 아이가 왕따도 당하고 너무 고생해서 울고, 다른 친구는 학교 일에 나서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걸 딱 보니까 한국 학교에 애를 못 보내겠더라고요.
한국 뉴스 보면 답답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요. 물론 포르투갈도 문제가 아주 많아요. 가정폭력도 많고 마약 문제도 있고. 근데 저희는 포르투갈 사람을 상대로 돈 버는 게 아니고, 남의 얘기니까요. 내 나라에서 그 꼴 보면... 방관자의 입장으로 사는 거예요. ‘내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포르투갈 사람도 아니고 되게 외로운 이방인이구나’ 생각할 때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속 편하고 어떻게 보면 되게 외로워요.
노후에는 친구들한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외국에서 가족이나 친구 없이 사는 건 어렵거든요. 다른 나라에 비해 인종 차별이 적지만 우리가 아무리 말 잘해도 이방인이에요.
규성 : 여기 대학 입학률이 20%를 조금 넘는데요. 굳이 모두가 대학을 가려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만 가는 거죠. 하지만 공교육이 그리 잘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아내는 좋은 나라가 있으면 옮기자고 해요.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저희 아버지도 70대 중반이기 때문에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요. 근데 저희는 나름대로 여기서 꾸려서 살고 있으니까 현실적으로 한국 가서 살 수는 없어요. 초반 3, 4년이라면 어떻게라도 접고 들어갈 수 있지만, 아이가 생기면 그걸 접고 갈 수가 없어요. 아이가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 한국에 기반이 없으니까요.
- 포르투갈 이민은 어떤 사람들에게 맞을까요? 추천하세요? 소정 : 스웨덴 같은 나라는 ‘교육은 정부가 할게, 부모는 경제생활을 하라’고 하잖아요. 이민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가는 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는 정말 맨바닥에서 시작해야 해요. 유로화 사용하고 나서 물가도 너무 올랐어요. 빈부격차도 많이 심해져서 서민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욕심 없이 큰돈 벌 생각 없는 사람에게는 괜찮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족이 같이 나와 살면 괜찮은데, 결혼 전에 혼자 오면 한국 사람도 없고 외로울 것 같아요.
규성 :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이민 가면 적응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여기는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사업하기도 어렵고요.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쓰러 오는 거면 좋지만, 이민으로 오면... 글쎄요. 포르투갈어를 배워도 브라질 아니고선 쓸 곳이 없기 때문에 선뜻 포르투갈을 추천하기가 어렵네요.
-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시겠어요? 규성 : 저는 여기서 살 계획인데 아내는 모르겠어요. 내년 정도면 영주권이 나오는데, 포르투갈이 비전이 없어서요. 의사 월급도 2,000유로(약 250만 원 2017년 1월 기준)가 안 돼요. 독일 의사 1년 월급과 여기 10년 월급이 같으니 다들 나가려고 하죠.
소정 : 저희가 좋아했던 리스본의 매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프랑스 테러 이후 관광객이 너무 많아지니까 제대로 시내를 못 다닐 정도예요. 소매치기도 너무 많고요. 한적하게 언덕에서 맥주 마시면서 늘어지고, 여유롭고, 저렴한 게 여기 콘셉트였는데 이제 그러기 힘들어졌거든요.
저는 차라리 조그맣게 카페 겸해서 한식당을 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요. 여름 한 달 쉴 수도 있고요. 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아니면 규모를 줄여서 손님 적게 받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남편 꿈은 작은 집을 사서 손님 3명만 받는 거예요. 저녁에 손님이랑 술도 마시고요. 그래서 신트라(리스본 근교 도시)로 가자고 꼬시고 있어요. 5년쯤 후에는 작은 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요.
조금 벌어서 조금 쓰는 인생을 생각해서 온 건데 이건 우리가 살려던 방식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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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같이 갔던 민박집인데 ㅋㅋㅋ 그때 사장님께서 재밌게 설명도 해주셨는데 여기서 우연히 뵙네요ㅋㅋㅋ 그때 좋았던 기억이 생각이 다시 나네요 다음에 또 가보려 했는데 많이 힘드셨군요 ㅠㅠ 여튼 건강하세요 다음에 방문할 수 있으면 또 들릴게요 :)
아 저도 떠나고프네여
잘읽고 갑니당:)
항상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민자라 많이 공감이 가네요 ㅋ
아. 리스본 정말 마음에 드는곳. 교육문제가 그런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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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3
게르의 밤은 밤 하늘의 은하수 만큼이나 화려했다. 내부에 나무를 때우는 난로는 장작을 넣었을 땐 반팔에도 땀이날 정도로 더웠지만, 금방 사그라들고 냉기가 게르 안에 퍼진다. 침낭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잠도 제대로 못잤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난로에는 장작도 들어가지만 말린 말똥도 연료로서 태워진다. 태워지면서 은밀하고 묵직 쿱쿱한 냄새는 따스함과 맞바꾼 공정거래였다. 다음날 아침, 길의 윤곽들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달리고 달려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한 때는 물에 잠겨있었다고 하고, 몽골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층층이 쌓인 지층이 융기 해서 마치 누군가가 땅에 크레파스로 줄을 그어놓은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원시원한 모습과 계곡 사이로 내려가는 길은 다른 세계..까지는 아니고 다른 동네로 이어져 있는 숨겨진 지름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바닥에 내려가는 길 내내 미끄러짐에 주의해야 했지만 그만큼 내려올 가치가 있었다. 매일 하루 한번씩 작은 마을에 들러 먹을것과 함께 씻기 위한 생수도 구매했다. 오늘 숙소는 현지 유목민의 게르를 빌려 물나오는곳은 커녕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5명이 마시고 씻을물로 8리터 구매했다. 아예 대용량으로 4리터씩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날은 밤에 별을 보며 함께 먹을 살라미도 하나 구매했다. 몽골이 고기가 저렴해서 주식이 고기인것 같다. 모든 메뉴들이 고기를 덮고 나온다. 대신 양고기의 냄새는 벗어날 수 없다. 돼지고기는 가격이 비싸 주로 양고기로 나온다. 나도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고기러버 지만 여기서 만큼은 채소가 더 좋았다. 마치, 치킨만 계속 먹다가 콜라 한 모금 마신것 같은 개운함이다.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은면 그자리에 세워준다. 문제는 너무 평평하게 뻗은 초원인데 모두의 배려와 함께 우산이 필수품이다. 있어도 야트막한 언덕과 낮은 짧은 풀밖에 없다. 불안불안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대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 묘하게 기분좋다 쭉 뻗은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전 숙소에 도착하진 못했지만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의 모습에 모두가 아무말없이 멈춰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지평선에 걸쳐있는 태양과 주변이 노을로 온통 붉게 물든 모습이 지평선 저 너머가 온통 맹열하게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기세가 푸른 하늘마저 새카맣게 태워버려 밤이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푸르공에서 내리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북두칠성! 누군가 밤하늘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led등을 달아놓은 줄 알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눈으로 보면서도 진짜인지 의심을 했다. 두번째 밤하늘의 별빛을 받기 위해 게르에 짐을 풀자마자 위스키 한 병과 살라미를 주섬주섬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현지 유목민의 게르라 주변에 아무도 없고 우리만 있었다. 대지의 중심이 된 색바랜 동심의 생각이 들에 괜히 들떴다. 10년도 더 지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보정도 하지 못했지만 눈에만 담아가기 아까워 셔터를 눌러댔다 돌아가면 사진 보정 하는 것 부터 배워야겠다. 너무 날로 두기엔 아까운 사진들인 것 같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1
어느샌가 문득 추워지는 비행기내의 공기가 북쪽으로 꽤나 내달린 것을 인증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저 먼 아래의 풍경은 바다와 구름을 벗어나 광활한 대지가 끝없는 지평선을 그리며 펼쳐 있었다.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의 광활한 대지는 푸른 초원이 아닌 온통 갈색빛의 따스한 삭막함이 느껴지는 갈색 파도와 같았다. 단지 멍하게 하염없이 별을 볼 수 있고, 사막도 있으며, 제대로 된 초원의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이 몽골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8박9일간 최소 5번의 밤하늘을 즐길 수 있을거란 생각에 카메라 충전기 먼저 잘 있는지 자꾸만 확인했다. 이제는 중년이상의 나이가 되어버린 고프로4와 캐논 eos 100d가 잘 버텨주길 기도해본다. 징키스칸의 나라인 몽골답게 공항이름도 징기스칸 국제공항이다. 그 아래에는 영어와 함께 러시아어 문자인 키릴문자도 함께 표기되어 있다. 나중에 가이드분께 물어보니 세계2차대전 일본이 몽골을 침략 했을 때 러시아가 많이 도와줬고 그 김에 문자도 키릴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러시아어는 잘 안 통하는것 같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고비사막을 여행할 목적으로 모인 우리 모임은 아직까지 서로의 이름과 나이만 알고 있는 헐거운 유대감의 5인조였다. 마트에서 몽골 초원과 사막을 마주보러갈 생필품과 간식들을 사며 조금씩 살기위한 대화부터 시작했다. 하나뿐인 대형 백화점에서 장을보고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8개 테이블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식당에 메뉴판에는 온통 키릴문자 뿐이다. 게다가 카운터로가서 주문하는 시스템에 음료는 냉장고에서 꺼내 카운터로 가져가 계산을 해야한다. 마치 매점에 온 듯한 느낌의 식당이다. 채소가 귀하고 고기가 흔하다보니 메뉴들이 고기가 대부분에 채소가 토핑으로 올라가 있다. 처음 파스타처럼 생긴 볶음면은 뚝뚝 끊어지는 면과 말라있는 듯한 식감에 이게 뭔가 싶었는데 먹을수록 그냥 밥 한숟갈 먹듯이 먹게 된다. 고기들은 냄새가 조금 난다. 양고기를 많이 쓰다보니 양고기 냄새가 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먹을때 나는 양고기 냄새보다 부드럽다(?)고 해야할지 신선한 양냄새라고 할지,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일행중에 민감한 분이 있었는데 손도 못대긴 했다. 그리고 몽골에서 물처럼 마신다고 하는 수테차!! 이게 매력적이다. 우리말로 하면 우유 차 정도 되겠다. 따뜻한 우유에 소금이 조금 들어가 있어 살짝 짭쪼름함이 올라오는데 식전이나 식후 가릴것 없이 마신다. 우리나라 식당에 들어가면 물부터 내어주듯이 여기선 수테차부터 내어준다. 물이 귀하기에 수테차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녹차티백처럼 판매도 해서 귀국할때 한봉 60개들이로 사왔는데 2주만에 다 마셨다... 그러고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를 다 뒤져봤는데 파는 곳이 없다. 몽골식당 한군데서 한잔에 천원에 팔고 있다. 귀국할때 더 많이 사오지 못한게 아쉽다. 숙소에서 사람들과 맥주 한잔씩을 나눈 밤을 지나 아침이 되니 초원을 달려줄 차량이 도착했다. 초원과 사막을 갈 목적이라 여행사의 패키지로 준비했다. 가이드 한 분과 기사 한 분까지 함께 총 7명이 여행을 시작했다 몽골 여행에서 차량은 suv이거나 위 사진의 차량인 푸르공 이렇게 두종류가 있다. 우리의 여행을 함께 할 차량은 '푸르공' , 러시아 군용차량이 변형되어 나온 차량인데 다른말로는 ''사람이 탄다는 것을 깜빡하고 만든 차량'' 이다. 늪지대나 초원은 쭉쭉 달리나, 타고 있으면 내 골반뼈와 척추뼈, 목뼈가 안녕한지 안부인사를 전할 수 있을 정도로 흔들림 완화가 적다. 아니 적다고 해야할지 거의 없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힘은 좋아서 잘 달려준다. 모델성도 있어서 사진도 나름 느낌있게 잘 나온다. 이제 푸르공을 타고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대 초원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늦가을이라 푸르른 초원이 아닌 갈색으로 변한 초원이었지만 끝없는 지평선의 모습에 기분이 대신 시원하게 푸르다. 교통체증 없을듯한 초원의 도로에 우두커니 서있는 교통 표지판들이 심심해 보인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 #4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전에 침낭속에서 눈을 떴다. 싸늘하게 식은 난로에 추워서가 아니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생수로 씻어야되서 바빠지기전에 가볍게 세수라도 해야했다.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 바로 아래 직사각형 모양이 화장실이다. 저곳이 이 게르 숙소의 핫 플레이스다. 아침에 화장실에 일을 해결하고 있으면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다. 문이 없는 화장실 특성상 일출의 햇살을 실시간으로 반겨줄 수 있다. 게르 주변에 낡은 차량 한 대가 타이어 하나를 마냥 기다리며 멈춰서 있었다. 그 옆에 병원 침대처럼 보이는것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조만간 차량이 치료 받고 다시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참 간단하게도 광활한 초원과 구름 몇 점 떠있는 깊고 푸른 하늘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이지만 카메라를 대는 곳곳 마다 미소짓게 만드는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가 무엇이든간에 상관이 없다. 성능이 낮거나 오래되어 낡은 카메라, 스마트폰도 풍경 한순간 한순간을 나름의 매력으로 담아낸다. 비포장길을 하루 6시간이상 달리다 보니 다리 떠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버릇이 사라질 것 같다. 다리 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쉴새없이 떨리고 떨린다. 바얀작에 도착해서 구경하는데 차강소브라가와 비슷한 모습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초원이 많다 보니 바람의 섬세함으로 조각된 이런 언덕과 계곡들이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볼일 없고 웅장한것도 아닌 하나같이 멋있고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들이 새삼 진부하게도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다. 가이드 해주신 분이 하나하나 포토존을 알려주고 시크하게 앞장서서 지나갔다. 우리야 신기하고 속까지 개운해지는 모습이지만 자주 본다면 우리나라 올레길, 둘레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산책길이 아닐까 싶다. 왜 자꾸 높은 곳에 올라서서 멀리멀리 바라보게 되는지 알 것 같다. 고개를 숙여 바로 아래의 땅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어 끝없는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하늘까지 한 편의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에 담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를 1cm라도 더 보고 싶지만 굳이 애써서 강제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 스스로의 관용의 마음이 생긴다. 신기한게 관광지라고 입구도, 관리인도 없어 단지 여행가다 잠시 쉴려고 근처 언덕에 들른듯한 느낌이었다. 다 왔다~ 하는 소리가 관광지에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어주었다. 여행하는 사람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다르고 사진 찍는 스타일이 다르니 총 5가지 방법으로 몽골여행 사진을 즐기고 있다. 넓은 지평선 만큼이나 파노라마의 시원한 사진도, 360카메라를 사용한 기묘한 사진도, 직접 눈으로 봤었던 장면들을 아른거리며 떠오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쩌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게 되면 새상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몸의 모든 긴장이 풀어지며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길을 가다 휴게소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밖에 있는 주유소가 그렇게 생뚱맞게 보일수없었다. 진짜 이 주변 모습에서 가장 생뚱맞을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찍는 우리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멀뚱히 있는 주유소가 어쩌다 지나갈 차량의 소중한 쉼터와 보충의 공간이 되어 주고 있었다. 양고기로된 덮밥과 고기 튀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수테차로 간단히 요기를 끊내고 다시 푸르공에 짐처럼 몸을 싣고 움직였다. 길 가다 보면 이런 낙타와 말, 소들이 초원을 활보하며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시 시골의 구멍가게 같은 정겹게 생긴곳에 들러 물과 술을 보충하고 푸르공에 기름도 보충했다. 게르에 도착 했을 땐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이날의 밤 하늘 별사진 주인공은 360카메라 였다. 같이 여행간 친구가 가져온 360카메라로 보는 별 사진은 화려하게 빛나는 별과 함께 화려한 시선으로 보게 해주는 마성을 지녔다. 역시나 보정은 못해 기계에만 의지하는 곰발곰손이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어보니 스마트폰의 화면 색이 다 다르다. 25초로 길게 설정해놓은 카메라 세팅값에 각자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터치 하느라 엄지 손가락이 바빴다. 두번 째 사진은 360카메라로 찍었다. 달이 완전히 지지않아 지평선 끝에 달도 함께 사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위스키, 보드카 한잔... 공기가 좋아서인지 매일밤 마셔도 숙취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별빛 밤 아래 위스키, 몽골#2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한시간정도 달려서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국립공원이라고는 하지만 국립공원 내 풍경과 오면서 본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초원 한가운데 저 멀리서 보이는 징기스칸 동상하나가 주변 풍경과는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고 있다 징기스칸 동상 주위로는 여전히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있어 동상이 더 웅장해 보이긴 하다 이런 주변 풍경 가운데 서 있다. 내부에는 징기스칸 박물관처럼 그당시 몽골 생활 모습과 유목 가옥인 게르도 전시되어 있었다. 징기스칸 동상의 말부분에도 올라가서 전망을 구경할 수 있다. 올라가면 바람이 강하게 분다.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막힘없이 달려와 징기스칸 동상을 감싸돌고 있다. 간단한 구경과 함께 나오면 한화5천원에 독수리를 팔에 올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스도 있다. 팔에 보호대를 차고 독수리를 올려놓으면 끝이 아니라 날개를 펄럭일 수 있도록 팔을 높이 흔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 내 오른손 위 눈앞에서 보이는독수리의 부리의 반짝임에 자꾸만 팔의 움직임이 작아진다 독수리를 뒤로 하고(?) 둘째날 숙소를 향해 오프로드를 다시 달리고 달렸다. 초원 중간중간 게르들이 있는 것을 보며 문득 궁금해 땅 소유에 대해 물어보니, 원하는 땅에 게르와 울타리를 치고 일정기간 지내면 그 땅의 소유가 된다고 한다. 물론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우리나라 서울과 마찬가지로 땅값과 집값을 비싸게 내야한다고 했다. 다시 한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하나가 산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묘한 모양을 닮은듯 하여 봤더니 이름 또한 거북이를 닮아 거북바위라 불리고 있었다. 늦겨울에 울란바토르보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오니 벌써 눈꽃들이 피어나있다. 거북바위 근처에 바로 숙소가 있었다. 첫날과 마지막날을 제외하고는 전부 게르에서 여정을 쉴 예정이라 기대가 됬다. 나름 여행자를 위한 게르라 화장실도 별도로 있다. 외부에.. 푸세식.. 더욱더 신기했던건 여행기간 내내 화장실이 있던 곳에는 남녀 구분도 없을 뿐더러 화장실 문이 없다;;;; 심지어 문이 있어도 안에서 닫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어서 집중시간 내내 문이 열린다.. 참으로 자연에 활짝 열린 개방적인 집중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숙소 근처에는 사원이 하나 있어서 가이드의 안내로 산책겸 구경갔다 사원에 올라 바라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북쪽에는 이런 산악지대가 많아서 초원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게르에 내려와 준비하는 저녁 메뉴는 삼겹살, 양고기등 몽골음식에 적응하기 힘들까봐 가이드분이 특별히 준비해주셨다. 게르안에는 나무때는 난로 하나와 침대가 끝이다. 이땐 몰랐지만 조명불이 들어오고 콘센트가 있으면 A급이다. 전가, 조명이 없어 랜턴으로 생활한 게르가 대부분이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어둠이 내려앉기를 수다를 떨며 기다렸다. 유심을 사도 터지지 않는 인터넷에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mp3로 전락한지 오래됬다. 별도로 저장한 노래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7일간 무한 반복되어 팝송 가사도 다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이 있으나 수도가 없어 씻는건 무조건 도시 마트에서 사온 생수로 해결해야한다. 생수로 아껴가며 씻고 나오는데 추운날씨 때문에 얼굴에 하얀 김들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드디어 몽골 밤하늘과의 첫대면!! 굳이 카메라없이 눈으로 다 담아내기에도 부족할정도로 빼곡하게 별들이 박혀있다. 출시된지 10년도 더 된 카메라에도 별들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나온다 이 화려한 은하수 아래 한병 귀하게 사온 이름 모를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추위를 몰아냈다. 하염없이 별을 보고 싶은 마음과 추위와의 인내심 대결에 위스키 한 잔은 바닥에 주저 앉아 몇 분이라도 더 하늘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