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사회 약자 문제 해결하는 소셜벤처 ‘토도웍스’ 심재신 대표 인터뷰
'이동권'의 역사는 ‘쟁취’의 역사다.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려면 왕의 허락이 필요했던 중세 농노들은 신분제 사회를 붕괴시키며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이제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에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다. 여기에 더해 배와 자동차, 비행기 기술의 ‘쟁취’는 두 다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 ‘이동권’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이동의 자유가 당연한 현대사회에서 '이동권'이라는 단어는 사소하게 느껴진다.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 여기니 입에 오르내릴 일도 없다. 그러나 공기처럼 흔해보이는 이동권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약자들에게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는 ‘쟁취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여기, 휠체어 탄 장애인들에게 좀 더 편하고 자유로운 이동권을 선물해주겠다고 나선 소셜벤처가 있다. 수동 휠체어를 전동 휠체어로 만들어주는 키트를 개발한 기업 ‘토도웍스’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휠체어 보조 키트를 개발한 '토도웍스' 심재신 대표
당연해야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장애인 이동권’
토도웍스의 심재신 대표(만 41세∙사진)는 살면서 휠체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심 대표가 휠체어를 눈으로 처음 본 건 딸의 장애인 친구 준이(가명)와 함께 외출했을 때였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차에 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준이 같은 경우는 학교에 전동 휠체어가 있는데 집에 가져오질 못해요. 차에 실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외출을 자주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수동 휠체어는 내리막길이 아닌 이상 팔 힘이 많이 들어서 혼자 끌고 다니기 힘들거든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장애인, 노약자 등의 교통약자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법조문 밖을 벗어난 이동권은 울퉁불퉁한 보도 블록, 경사진 오르막길 등 거친 현실 앞에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이동의 불편함은 장애인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고통으로 남는다. 심 대표는 준이를 통해 이 같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실감했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게 휠체어 보조 키트 ‘토도드라이브’의 시작이었다.
심 대표가 주목한 것은 수동 휠체어와 전동 휠체어의 접점. 자동차나 버스, 비행기에 싣기 쉬워 교통 이용이 비교적 용이한 수동 휠체어와 힘 들이지 않고 이동이 가능한 전동 휠체어의 장점만 취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면 ‘이동의 자유’를 조금이나마 찾아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구상이었다.
“기존 전동 휠체어는 버튼으로 쉽게 조작이 가능하지만 부피가 크고 무게만 100kg이 넘어요. 사람이 혼자 들기도 힘들죠. 그렇다면 접을 수 있고 가벼운 수동 휠체어에 모터를 달아 전동 휠체어처럼 움직이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준이에게 선물로 하나 만들어 줬어요.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스토리펀딩 진행 당시 제품 테스트를 함께 했던 지민이는 '엄마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심 대표가 취미 삼아 만든 키트에 대한 소문은 주변에 금세 퍼졌다. 준이의 휠체어를 본 다른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필요하다’며 연락을 해오기 시작한 것. 감당되지 않을 정도의 요청이 쌓이자 그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아보기로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펀딩을 시작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연락이 엄청나게 왔거든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품이라는 댓글도 많이 달렸고요. 목표 금액 달성에 성공해 설치준비를 하는데 주변 분들이 권유를 하셨어요. 정말 필요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검증받았으니 만들어놓고 썩히지 말고 사업화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면서요. 저도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 ‘토도웍스’라는 기업을 만들게 됐습니다.”
‘모두’를 위한 기업의 탄생
‘토도웍스’를 만들기 전 심 대표는 기업체의 의뢰를 받아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중소기업의 16년차 최고경영자(CEO)였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빠른 시간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샘플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의 주된 업이었기에 휠체어 키트를 사업화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전 회사와 ‘토도웍스’의 일은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예전엔 기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개발했다면 지금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죠.”

경기도 시흥에 있는 토도웍스 공장에서 제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엔지니어들
토도웍스의 모토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제품을 만들자’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모두’를 의미하는 ‘토도(todo)’와 ‘작업(works)’을 더해 회사 이름을 지었다.
토도웍스를 탄생시킨 제품이자 토도웍스의 첫 작품인 ‘토도드라이브’는 모터와 조이스틱, 배터리로 구성돼 있다. 제품 범용성이 뛰어나고 부피도 작아 접이식 휠체어 등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수동 휠체어에 장착이 가능하다. 제품의 무게는 4.5kg에 불과하며 가격도 기존 제품에 비해 저렴하다.

“국내에 판매되는 수입 제품들이 18~20kg 정도 나가거든요. 사업화를 하려고 보니 우연히 만든 제품이 전세계에서 나오는 휠체어 보조 키트 제품군 중에서 부피가 가장 작고 무게도 제일 가볍더라고요. 그걸 만들고 나서 알았어요.”
'이동의 자유'로 일상을 되돌려주다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설치된 토도드라이브 수는 180대 가량. 토도드라이브를 사용해 본 고객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동이 자유로워지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생겼다”는 것.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주된 이유인 것 같아요. ‘토도드라이브를 달고 가족 여행을 처음 가게 됐다’든지, ‘엄마와 나란히 산책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들이 들려오거든요. 하다못해 ‘마트를 갈 수 있어 기쁘다’는 분도 있어요. 휠체어를 타보지 않은 분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간단한 일상 생활을 하는 것도 휠체어를 타고선 어려운 게 많거든요.”
토도드라이브에는 장애인에게 ‘이동의 자유’를 찾아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심 대표는 말한다. 외출을 즐기게 된다는 것은 휠체어 사용자의 삶 자체가 달라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토도드라이브를 장착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굉장히 많이 바뀌는 걸 확인했어요. 그 전에는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동의 자유만 보장받더라도 ‘나 이제 전동타니까 네 가방 들어줄게’하면서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요. 전과 달리 계속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려 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확산시켜야죠.”
심 대표에게 토도웍스는 단순히 장애인 보조 장치를 만드는 곳 이상의 업체다. 그는 장애인에게 좀 더 자유로운 이동권을 선물하는 일을 넘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내 최초 어린이 휠체어 교육장’ 사업은 그 일환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휠체어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럼 이 아이들이 바깥으로 더 많이 나올 수 있게 되고 지금보다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활발한 장애인 학생 한 명이 주변의 비장애인 친구 수십 명의 생각을 바꿀 수 있죠. 어릴 때부터 인식이 바뀌게 되면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장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질 거예요.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에요. 정말 하고 싶고 지지받고 싶은 일입니다.”
기사∙인포그래픽= 비즈업 김현주 기자 joo@bzup.kr
사진 및 영상 촬영∙편집= 비즈업 김경범∙백상진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