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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이 가장 떨어지는 유로 득점왕

반 바스텐, 시어러, 클루이베르트, 비야, 토레스 그리고 그리즈만까지..
4년 마다 열리는 유로 대회의 득점왕들은 빅리그에서 상당한 이름값을 떨치던 선수들의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역대 유로 득점왕 명단을 보다보면 다소 낯설은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유로 2004 - 밀란 바로스'.
물론 밀란 바로스도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리버풀'에서 말이죠.
하지만 유로 개막전 시즌이었던 2003/04때 장기 부상으로 시즌을 제대로 소화 못하며 18경기 2골에 그쳤었습니다.
물론 국가 대표에서 꾸준히 골망을 흔들어댔던 바로스였지만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을겁니다.
오웬, 비에리, 토티, 라울, 클로제, 앙리, 라르손과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밀란 바로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1차전에서 라트비아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한 데 이어, 네덜란드를 씹어 먹기 시작한거죠.
당대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 받던 '스탐'을 앞에 두고 담대하게 돌파를 해내는 저 모습을 보세요.
두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콜러의 골을 완벽하게 도왔죠.

두번째 골은 네드베드 -> 콜러 -> 바로스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팀워크가 돋보이는 장면인데요.
페널티 박스 바로 앞에서 환상적인 발리킥으로 포문을 열어 제꼈습니다.

바로스의 대활약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8강 진출을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했던 독일과 만나게 됐는데요.
바로스는 독일의 수비를 찢어 놨고, 저승사자가 되어 독일을 탈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습니다.

8강전에서 만난 덴마크한테도 바로스는 얄짤 없었습니다.
특유의 스피드를 앞세워 느린 덴마크의 수비진을 공략했고, 깔끔한 마무리로 두골을 기록했죠.
바로스는 3-0 승리의 주역이 되어 4강 진출까지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4강에서 만난 그리스의 수비 축구 앞에서 체코는 1-0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바로스의 득점 행진이 마감되는 순간이었죠.
그래도 5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한 밀란 바로스는 유로 2004의 득점왕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밀란 바로스는 어떻게 됐냐구요?
유로 2004는 밀란 바로스의 인생 대회였습니다.
이후 리버풀과 아스톤 빌라, 리옹, 포츠머스 이곳저곳에서 뛰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습니다.
터키 갈라타사라이에서 득점왕에 오르긴 했지만 여기서도 전성기가 길지는 못했구요.
놀랍게도 바로스는 35살이 된 현재까지 자국의 슬로반 리베레츠라는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17경기 2골 3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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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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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당시 엄청난 임팩트 였지만 더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준 그리스 덕분에 가려졌죠. 유로 2004 하면 차리스테아스 헤딩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하리스테아스의 헤딩 임팩트는 ㄷㄷ
유로2000은 누누고메즈가 유로2004는 바로스가 임팩트를 담당했죠 뭐 역사는 승자인 우승팀만 기억하니 잊혀졌지만요
원래 제목이 없나여?
지금 확인했네요 ㅋㅋㅋ!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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