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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임지안 "목포 택시 살인 피해자 내 동생", 이동건 男동생 사건 재조명

▲ <사진/네이버tv캐스트 캡처, kbs2캡처>

목포 택시운전기사 살인 피해자가 트로트 가수 임지안의 동생으로 밝혀진 가운데, 과거 배우 이동건 남동생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오전 3시 40분께 목포시 한 공장부지 공터에서 택시기사 강모(56) 씨가 만취해 잠든 임모(28) 씨를 성폭행 하려다가 목졸라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가수 임지안이 고심 끝에 피해자가 자기 동생임을 밝히며, 만취 상태가 아니였다고 호소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28살 제 여동생은 요즘 뉴스에서 다뤄지고 있는 목포 택시 살인사건 피해자"이라며 "내 동생을 만취 여성으로 매도하지 마라.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오보 기사는 사라져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사고가 알려지면서, 배우 이동건 남동생 일도 회자되고 있다. 과거 배우 이동건의 남동생은 호주 유학 도중 2008년 3월 시드니 도심에서 괴한으로부터 흉기에 찔리는 사고로 숨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이동건의 측근은 인터뷰에서 "이동건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을 굉장히 아꼈다"면서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메트로신문=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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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던 이동건 어리둥절행 이런 기사 언제까지 봐야하나 자괴감 느껴 feat.기레기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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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덕후들한테 선물 주는 이벤트를 또 한다면서요? 그것도 순금을요? 이 구역의 덕후 덕후중의 덕후인 제가 빠질 수 없죠. 그래서 또 참여합니다 헤헤.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는 2018년의 펩덕질을 거슬러 갔더랬죠. (오죽하면 2018년 내 인스타그램 best9이 죄다 펩톤이다) 2018년에는 참 많이도 만났다. 그래서 지난 크리스마스 이벤트 카드가 어땠는지 궁금하신 분 계시면 요기(클릭) 눌러서 봐주세요 헤헤. 아, 2018년만 해도 참 여기저기 쏘다녔구나. 그렇다면 2017년에는? 2016년에는? 궁금해 져서 인스타를 뒤지려다 거의 하루 한개 꼴로 인스타를 업로드하는지라 어느 세월에 몇년 전 게시물을 찾나 싶어 방법을 선회, 티켓 예매 어플을 열었죠.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에이 제가 설마... 에이~ 지지리도 똥손이라 내가 직접 예매한 것 보다는 양도 받아서 간 공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다녀온 공연들을 60프로는 훑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인땡파크와 멜땡티켓에 남은 흔적들을 올려 봅니다. 예땡24도 있지만 그건 어플을 지워서 헤헤 패스... 인땡파크는 2015년 예매내역 까지만 거슬러 갈 수 있기에 2015년 부터만 훑을게요. 아 오랜만에 앱으로 긴 글 쓰려니까 벌써 지치네요. 앱으로 긴 글 쓰시는 분들 진짜 존경의 인사 올리옵나이다 (급존칭) 참. 이걸 다 캡처하고 크롭하는 일도 정말 인고의 시간이었다. 덕후 아니면 이런거 몬해요 몬해... 1. 2015년 이 공연은 참 여러 모로 기억에 많이 남아요. 펩톤 전에 나온 밴드의 공연에 호응을 많이 해 줬더니 그 밴드가 ‘페퍼톤스 팬들 반응 잘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칭찬을 해 줬고, 그걸 뒤에서 듣던 평이 ‘여러분들 칭찬 받으시더라고요. 좋더라고요.’ 뭐 이런 뉘앙스로 말해줘서 괜히 찡. 우리 칭찬 받는데 평이 좋아하다니 감동 ㅜ.ㅜ 게다가 이 공연이 문남 첫방 바로 전 공연이었어서 정말 한참 놀려대기도 했더랬죠. 그 때만 해도 이렇게 장수 프로그램이 될 줄 몰랐다 정말... 클투는 광주 빼고 다 갔지만(무려 제주도까지!) 제가 예매해서 간 건 대구 밖에 없나 보네요 헤헤. 역시 양도 인생... 다음 생에는 꼭 금손으로 태어나야지... 아니네 제주도는 7월이라 여기 나오는군요. 제주도 클투도 제가 예매 성공했나 봐요. 짜식 대견하네... 그리고 펩톤을 보러 안산락페도 갔더랬죠! 폭우가 쏟아져서 물에 빠진 생쥐마냥 젖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렛츠락도 펩톤이 나온대서 갔고요. 그민페는 뭐 그냥... 펩톤이 마스코트나 진배 없는데 우째 빠지까요. 그리고 넘나 행복했던 연말공연ㅜ.ㅜ 펩톤과 2016년의 마지막과 2017년의 처음을 함께 맞다니ㅠㅠㅠㅠ 2. 2016년 보통 1월은 떡밥춘궁기인데요, 이 때는 민트페스타 50회 기념으로 펩톤이! 뷰민라도 역시 펩톤이 빠질 수 없고요. 매년 당연히 가는 서재페에 펩톤이 나와서 복권 당첨된 기분으로 갔더랬죠 *_* 클투 역시 당연히 갔고요, 또 반은 양도로 갔는지 예매내역이 없네요 헤헤. 이 해에는 지산락페에 펩톤이 나왔나 왜 갔지 하고 라인업을 보니 레닷이 나와서 갔군요. 펩톤 안나왔나봐. 괜히 캡처했네요 죄송. 펩톤 나온것만 캡처 하려고 했는데... 암튼 저 레닷칠리페퍼스 개좋아해요 (네 다음 TMI) 안테나 식구들이 총출동하는 헬로안테나도 갔고요. 자리 잘 못 잡아서 펩톤은 거의 보지도 못 했던 그 날이 떠올라 또 서러워 지네요ㅠㅠㅠ 펩톤과 너무 친한 친구인 성진환의 공연에 펩톤이 게스트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요기도 댕겨왔더랬죠. 마음 따셔지는 공연이었다... 아직도 종종 회자되는 ‘핑퐁’이 이 공연에서였죠. 물론 이것도 양도 받아서 갔지만 소개하고 싶어서 취소한 티켓이라도 캡처해 봤습니다. 시도라도 했으니까... 3. 2017년 세상에. 이거 진짜 피터지는 예매였는데 제가 성공했더랬군요. 인스트 공연 한번만 더 했으면 좋겠다요 넘나 좋았던 것ㅠㅠ 물론 한 번 더 하면 그 때는 노래방 컨셉으로다가 헤헤. 그리고, 제 생일날이었던 4월 30일에는 영암을 갔죠. 생일에 최애를 만나다니! 정말 아름다운 날이었다...ㅠㅠㅠ 뷰민라야 뭐 말 할 것도 없고 루키들의 콘서트에 대선배 펩톤이 오프닝으로 나온대서 또 찾아 갔지유. 엥 왜 벌써 위드안테나지? 클투는 왜 없고? 내가 설마 한장도 예매 성공을 못 한건가? 찾아보니 2017년에는 클투를 안했더랬군요. 슬퍼... 아무튼 위드안테나 서울공연에선 펩톤이 하이터치회를 열었죠 후후후 2017년에도 펩톤을 만나러 제주에 갔고, 어김없이 gmf를 갔죠. 그리고 다시 연말공연. 신청곡을 받아 부르는 공연이어서 공연 제목도 위시리스트였죠. 너무 좋았다 정말... 4. 2018 뭐 2018년 공연이야 지난 카드에 썼지만, 실제로 내가 예매에 성공한 공연은 몇이나 되나 궁금해서 더해 봅니다. 응? 왜 벌써 단공이죠? 왜 뷰민라는 없지? 동행인이 제 것 까지 예매를 했나 봅니다 껄껄... 클투도 제가 예매 성공한 건 두개 뿐이고요 페스티벌이야 뭐 어렵지 않게 예매 성공! 2018년에도 gmf는 어김없이. 그리고 연말공연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펩톤을 만나지 못 하고 있답니다. 꺄! 진짜 너무 보고 싶다... 그래서 3월에 펩톤을 만나러 전주에 가요. 아직 한 달이 넘게 남았지만 우째요, 그것만 보고 버티며 살아야재. 그러니까 올해도 펩톤으로 버티며 살겠다 이 말입니다. 올해도 잘 부탁해요 페퍼톤스! “역시 2019년에도 페퍼톤스로군.”
스압) 원걸이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원더걸스 편
지금은 걸그룹 최고 명가라 불리는 JYP가 처음으로 만든 걸그룹이자 할머니 할아버지 부터 꼬맹이들 까지 이 그룹 노래나 춤 하나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말 그대로 국민 걸그룹 원더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원더걸스가 아이돌판 과 가요계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왜 미국에 갔고 만약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왜 원더걸스가 그토록 특별한 걸그룹인지? 이런 이야기들을 해볼텐데.... 그냥 그때는 그랬지 이런 옛날 이야기 하는식으로 풀어볼테니 가볍게 읽어봐주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원더걸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변화. 원더걸스는 그냥 단순히 십수년전 정말 성공했던 걸그룹 중 한팀. 이렇게만 정의되기는 너무 억울할만한 팀 입니다. 전국민을 춤추게 만들었고 역대급 신드롬을 만들어냈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팀. 이런 이야기들도 충분히 원더걸스의 설명이 될수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더 커다란 족적은 가요계의 트렌드 자체를 뒤엎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원더걸스의 등장 전... 정확히는 빅뱅과 원더걸스가 가요계를 양분하기 시작했던 2007년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가요계는 소몰이 창법이 유행하고 처절한 사랑 노래가 차트를 지배하고 있던 시장이였습니다. 이게 무조건 나쁘다는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때를 국내 가요계의 암흑기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정도로 다양성이 거의 말살되던 시기 였긴 했죠. 대중들이 이런것만 선택을 하니까 기획사들 입장에서도 일부러 이런 가수들을 더 만들어내고 일부터 더 굵고 처절하게 부르는 순환이 이어지며 다소 비슷비슷한 음악들만 흘러나오던 시기 였는데.... 텔미와 거짓말을 앞세워 가요계의 트렌드를 후크송의 시대로 바꿔버린 빅뱅과 원더걸스의 임팩트는 어마 어마 했었죠. 이때부터 모두들 약속이나 한듯 후크송을 쏟아내기 바빴고 당시 쉽고 반복적인 후크가 주무기인 원더걸스나 빅뱅의 후크송을 두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SM 마저도 결국 이 트렌드를 인정하고 GEE, 쏘리쏘리, 링딩동 등을 발매하며 이 흐름에 편승했던것을 보면 원더걸스와 빅뱅이 불러일으킨 바람이 얼마나 거대한것인지 알수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후에 이어질 2세대 아이돌판이라 불리는 아이돌붐, 걸그룹 전성시대 역시 이 후크송 열풍을 베이스로 시작된 흐름이기 때문에... 2007년 당시 빅뱅과 원더걸스의 성공은 이후 가요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역대 최고의 히트메이커 걸그룹 사실 그때를 직접 목격하지 않은 분들께도 텔미 - 쏘핫 - 노바디로 이어지는 신드롬 라인은 유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뭐... 정말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그룹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이때 당시 원더걸스의 위력은 비교 대상 자체가 없죠. 저 당시만 보자면 저는 역대 최고라고 해도 헛소리는 아니라고 봐요. 그 정도로 모든 행보가 열풍이였고 모든 타이틀곡을 대중들이 기다렸단듯이 알아서 신드롬화 시켰으니까요. 이 이야기들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고 ... 다들 인정하시니 길게 이야기 할거 없겠지만... 다만 저는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어요. '원더걸스는 미국 진출 실패 후에도 비교대상이 없는 히트메이커 걸그룹 이였다.' '적어도 국내에서 원더걸스는 미국 진출 전이든 후든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적이 없다.' 라고요... (미국 진출 이후 그냥 망한줄 아는분들이 의외로 꽤 있으시더라고요.) 원더걸스는 데뷔곡을 제외한 모든 타이틀곡 에서 단 한번도 주간 차트 1위 이상의 기록을 놓쳐본적이 없습니다. (실시간 1위, 일간 1위도 아니고 주간 1위를 단 한번도 놓쳐본적이 없다는 이야기 에요.) 이건 음원차트가 도입된 이례로 걸그룹 중 유일무이한 기록 이고 지금도 확인해봐야 겠지만.. 가요계 전체에서 데뷔곡 이후 단 한번도 1위를 못해본적이 없는 가수는 아마 원더걸스 밖에 없을겁니다. 히트메이커 로서는 역대 걸그룹중 비교대상이 없는게 사실이에요. 해체 전까지 걸그룹 이용자수 신기록 같은 음원 기록들을 싹다 독점하고 있었고.... 지금도 걸그룹 차트 최다 1위 기록은 원더걸스가 갖고 있습니다. 왜냐면 1등을 못한적이 없으니까요. 유일하게 단 한번도 1위를 놓쳐본적이 없는 걸그룹인데 역대 가장 크게 히트한 히트곡을 보유한 걸그룹이기도 하니 원더걸스는 지금 세간의 평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몇몇 여론들 처럼 미국 진출 이후 끝나버린 그저 그런 음원깡패는 아니였거든요.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한 이야기를 좀 길게 풀어보자면 원더걸스의 데뷔 당시 부터 이야기 해볼수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시 원더걸스를 굉장히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국민 걸그룹 이미지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원더걸스의 기획에서 부터 고려되었던 걸그룹은 푸시켓돌스 였습니다. JYP의 처음 계획은 푸시켓돌스 처럼 강렬하고 섹시하고 또 파워풀한 걸그룹을 만들겠다는것 이였는데.... 이 컨셉의 코어 중 코어인 현아가 이탈하고 예상치 못한 텔미의 대성공으로 방향이 조금 바뀌게 된것이죠. 어쨌든 이전부터 JYP는 세계 무대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음악스타일과 컨셉을 소화하는 가수를 제작하고 싶어했고 결국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얻게 되며 임정희, 민, 지소울 같은 가수들의 미국 진출 계약을 성공시키는 등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원대한 꿈에 조금씩 다가가는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진 탓에 이런 불확실한 신인 가수들의 앨범이 모두 제작 취소 되어 버리고.... (JYP가 엎었다는게 아니라 JYP와 계약한 미국 레이블들이 성공 가능성이 없는 아시아의 생짜 신인 아이돌에 대한 투자를 끊어버렸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당시 열심히 노력했던 모든 프로젝트가 한 순간 수포로 돌아간 JYP의 눈에 보였던것이 바로... 한국을 씹어삼키고 있던 원더걸스 였던거죠. 임정희,민,지소울 처럼 사실상 아무런 팬베이스나 커리어 없이 미국에서 생짜 신인으로 도전하는 아시아 뮤지션 이라는 포지션과 달리... 원더걸스는 어쨌든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이고 어리고 예쁜 걸그룹 이라는 특성 때문에 데뷔앨범 정도는 미국에서 내볼수있던 상황이였다보니... 결국 JYP 미국 도전의 마지막 이자 유일한 카드가 될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지금 이렇게 보면 팬들은 JYP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울 스토리지만.... 사실 이게 만약에라도 성공했으면 원더걸스가 당대 타 아이돌 에 비해 독보적인 위치다. 이런걸 넘어 국내 가요계에 또 다른 역대급 사건이고 K-POP문화가 지금보다 10년은 빠르게 성장했을지도 모를일이니.... 다소 무모했고 눈앞의 빅찬스에 혈안이 되어 다른 상황과 흐름을 보지못한 실수로 남았지만.... 뭐 아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라고 볼수있겠습니다. (그리고 수년간 노력한 세계 진출에 대한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JYP가 원더걸스 라도 해보자. 라고 생각했던것도 아예 이해가 안되는 심리는 아닙니다.) #원더걸스가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에 원더걸스가 그때 미국에 진출하지 않고 계속 국내활동을 이어갔다면 어땠을까요? 사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가정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저도 그냥 한번 추측해보자면... 아마 텔쏘노 로 이어지는 신드롬 라인에 한두곡이 더 추가 됐을겁니다. 그때 원더걸스는 그냥 치트키 였으니까요. 당연히 지금과는 위상이 달라졌을거고 역대에서도 더욱 손꼽히는 아이돌이 되었을거에요.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여자 G.O.D 처럼 될수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 이야기 하고 넘어가고 싶은것은... 당대 원더걸스의 대표적인 라이벌리로 묶이던 소녀시대가 원더걸스의 부재 덕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건 또 아니에요. 물론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중 누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그룹일지 알수없지만..... 당시 원더걸스가 치고 나가던 시점에서도 소녀시대의 성장이 더 탄탄했습니다. 원더걸스는 가요계 전체에서 최고의 히트메이커 였지만 이 거대한 인기에 비해 코어 팬덤은 탄탄하지 못했고 이에 반해 소녀시대는 다소 원더걸스에 밀려 라이벌이라 부르기 민망하던 타이밍 부터 훨씬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원더걸스가 미국에 가지 않았더라도 두팀의 위치가 교차되는 골든크로스 지점이 언젠가는 왔을 가능성이 높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그냥 다 가정이라 모르는거죠. 소시가 팬덤이 쎄고 탄탄한 성장을 하든 어쩌든 원걸이 그냥 하던것 처럼 매년 2곡씩 메가 히트곡 박아버리면 그냥 원걸 독주였을수도 있으니 .... 뭐 다 가정입니다만.... 걸그룹의 대중적 전성기는 짧고 만약 두팀다 대중적인 정점에 도달했다면 저는 이후 장기 레이스에서는 팬덤이 강한 쪽이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이요. # 원더걸스가 특별한 이유 위에서 원더걸스가 왜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나름 길게 이야기 해봤지만... 제가 아직도 해체한 그룹중 원더걸스를 가장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완벽했던 원더걸스의 리부트 때문입니다. 그냥 통짜로 3년이 넘는 기간을 쉬었고... 그 사이 멤버는 몇번이나 바뀌고... 결혼한 멤버도 있고.... 사실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재기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그룹이... 오랜만에 뭉쳐서 우리 그때 이렇게 잘 나갔었지. 그때 이랬잖아. 다들 기억나? 이런 추억여행을 노리고 이제는 원더걸스를 떠난 그때 당시 팬들이나 대중들에게 관심을 읍소하는 흔한 패턴들과 달리... 기존의 모든 이미지를 포기하고 완전히 예상치도 못한 밴드 컨셉으로 재도전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것 자체가 충격 그 자체 입니다. 그것도 완벽한 퀄리티의 음악들로요. (아직도 원더걸스의 리부트 티저에서 선미가 베이스를 들고 등장했을때의 소름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 진짜 원더걸스가 밴드를 한다고? 아니 선미가 원더걸스로 복귀한다고?" 이런 이슈들을 한번에 드러냈던 영상이니 아무래도 당시에는 임팩트가 컸죠.) 아시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때 발매된 원더걸스의 정규 3집 은 그 해 뿐만 아니라 걸그룹 명반을 논할때 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앨범입니다. 기존에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던.... 검증된 루트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도를 이토록 완벽하게 해낸 사례는 다른 케이스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드문 상황이죠. 심지어 자작곡들로 이런 명반을 만들어내고... 뒤 이어 타이틀 곡도 자작곡으로 발매해서 또 1위를 차지했다는게 원더걸스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수있는 대목 입니다. (특히나 특정 멤버의 재능에 기댄것이 아니라 4명 모두 이런 능력을 보여줬다는게... 정말 이례적인 일 입니다.) 개인적으로 아티스트 라는 이름은 좋은 플레이어 보다 크리에이터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봐요. 예를 들자면 저는 좋은 아이돌 보컬 중에 장범준이나 안지영 보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은 찾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냐고 한다면 후자 겠죠. 뭐... 절대적인 기준 이런건 없겠지만... 저는 이러한 이유로 원더걸스가 가장 아티스트에 가까웠던 걸그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 체제가 더 길게 유지되었다면 이후 걸그룹 판도에도 너무 멋진 롤모델이 되었을거고.... 우리는 점점 더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국민 걸그룹을 지켜볼수있었겠죠. 그래서 원더걸스가 제일 아쉬워요. 원더걸스는 음악으로 실망을 준적이 없으니까요. 다른 아이돌들은 비슷한 색깔의 후발주자들이 나올 수 있지만.... 원더걸스 같은 팀을 대체하는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원더걸스보다 더 대단한 걸그룹들이 없는건 아니에요. 더 큰 인기와 더 큰 의미를 가진 그룹들도 있고 그 팀들도 다 특별하지만.... 원더걸스가 보여줬던 임팩트가 저에게는 워낙 크게 남아있다보니 더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가장 해체가 아쉬운 그룹이고 가장 다시 보고 싶은 그룹입니다. ㅊㅊ 도탁스 모야 본문 내용 싹 다 공감 ㅠ 리부트앨범 진자 개명곡ㅇㅇ 생각해보면 원걸 아이러니때부터 수록곡도 놓을 곡이 없음 리부트가 너무 좋아서 이 컨셉으로 평생 가길 원했는데 아쉽..
경찰차 타게된 썰
친구와 술먹고 다음날 병원을 가기로했었어. 친구와 새벽 4시까지 진탕마시고 8시에 바로 병원을갔엏지. 구미에서 대구까지 갔었는데 대구의 그동네는 처음와보는 생소한곳이었지 하지만 알아주는병원이었던터라 어영부영 조심히 조심히 운전해서 병원을갔었어 병원을도착했는데 주차할곳이없더라?! 투덜투덜대며 큰길을돌아 골목으로 차를 세우고 걸어서 지도를 보며 찾아가고있었어. 가던중 굴식당이 있더라? .해장으로 굴국밥은 정말이지 넘사벽이거든, 맛있겠다하면서. 난 곧장 정신을차리고 다시병원을향해 휴대폰지도를 보며 가고있었지. 허나 술이 해독이 덜됬는지 정신이 온전치는 못했어 그러나주변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주파수를찾은다음 병윈진료를 잘 볼수있었지 이때부터가 큰난관이었어, 정신도 온전치 않앗는데 돌아온길이 제대로 기억안나는거지.. 어찌저찌 기억나는건 내눈을 사로잡던 굴식당!! 그거하나였어. 그렇게 기억을 되짚으며 걸어걸어서 30분을 찾아헤메었던가?! 이건답이없다는 판단을내렸지 아주현명했어. 19세기엔 말을 탔다면 지금의 21세기는 전동킥보드란 현대의 길거리를 지배하는 아주 날쌘 놈이 있지, 난 시간을 아주소중히여기는 타입이야, 그래서 전동키보드를 타고 공격적으로 나의 봉봉이를 향해 왔던길을 되돌아가고었지 하지만 찾을수없었어. 처음와보는 동네기도했고 거기가거기같았거든, 상가라고해도 요즘의상가들은 이름이 다비슷해 그래서 내가살던동네와의 기억이 섞이며.머릿속은 아주 혼돈 그자체였지. 내가할수있는건 하나였어, 되돌아온길이아닌 주변의 굴식당을 이잡듯이 찾는것.. 20분은 타고찾아본거같애.. 그병원 방면의 굴식당은 죄다 찾아갔었지. 전문맛집 블로거도 못할여정아닐까싶어 결국엔 찾을수없었어.... 멘붕이 찾아왔었지. 주변에 연락을해봐도 다들 하나같이 어떡하냐는 말밖에 다른해답이 없었지.. 하지만, 나와같은 사람은 분명 있었을것이라고생각했지 그래서 지식인에 검색을 시작했어 아주현명했지. 지식인의 답변은ㅇㅏ주 명로하고 간단했어 차를 잃어버렸어요 어떻게할까요? 112에 전화를 하세요... 112... 보기만헤도 다소 긴장되는,불편한 번호.. 뭐어쩌겠어,집은가야겠고 차는못찾겠고 112에전화를했지.
애비로드에 대해
존 레논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비틀스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서양인들이 신으로 여기는 예수를 감히 인간과 같은 급으로 비교한 발언은 신성불가침 영역을 건드린 금기어였다. 예수는 ‘유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찬송가 대신 비틀즈를 흥얼거리게 되었다고 한들, 너의 음악에 영혼을 팔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하듯 욕했을 것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예수의 흔적을 보기 위해 순례길을 떠나고는 했다. 당시의 순례는 오늘날의 여행처럼 몇 박 몇 일로 예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험한 길을 걷다 보면 여정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이도 많았다. 목적지는 죽은 예수나 성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당이었다. 지친 여행 끝에 도착한 성소에는 예수의 것으로 ‘추정’되는 썩은 나뭇가지나 천 조각이 보관되어 있었다. 낡아빠진 소품 앞에서 그들이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성소 방문이란 동시대 사람들이 단체로 열망하는 집약적인 목표였다는 사실만이 추정 가능한 역사로 남아 있다.     신에 대한 대중적인 열망은 오늘날 ‘셀러브리티’로 불리는 유명인들에게로 옮겨갔다. 경건한 예배당과 비명 소리 가득한 콘서트 장은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이지만, 닿을 수 없는 영역의 대상에 대한 열망에 관해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스타에 대한 추종 심리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식당이나 거리에도 어려 있다.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머물렀던 식탁을 유리관에 전시해 놓은 베트남 식당의 의도는 분명하다. 유명인이 강림했던 흔적으로 손님들을 끌어보겠다는 의도가 유난스럽게 전달된다. 같은 인간을 요란하게 떠받드는 방식은 때론 굴욕적이다. 내가 앉은 자리는 일어나자마자 원상복귀 되는데 누군가의 자리는 그대로 보존되다니. 귀족을 모시는 하인 곁에 선 농부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실 유명세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불행의 조건에 가깝다. 자신을 볼 때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니까. 대신, 죽음이 이르렀을 때. 그동안 괴롭힌 대가를 보상하듯, 만인의 뇌에 그의 이름이 자리할 특실이 마련된다. 이름이 알려진다는 건 그런 일이다. 죽으면 땅 밑에서 사라지는 법인데. 유명한 이름은 누군가의 뇌를 무덤으로 삼는다.     셀러브리티에 대한 부러움은 유치하게도, 유명인이 머물렀던 자리에 앉아 그들이 받았을 시선을 간접 체험해보는 쪽으로 흐른다. 다소 허황된 마음을 벗어나면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선택을 따라해 보고 싶은 계산이 선다. ‘돈 많고 바쁜 사람이 선택한 곳'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삶의 선택권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제 3자’가 주도하는 이 기막힌 심리는 유명인의 ‘영향력’이라고 불리며 온갖 마케팅에 이용되고는 한다.   이 심리는 경매시장에서 살짝 다른 방향으로 틀어 극도로 과열되고는 한다. 몇 만원이면 살 수 있는 화장품이 마릴린 먼로의 것이라는 이유로 몇 천만 원에 팔리는 현상은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미스테리다. 경매 시장은 유명인의 손을 닿는 건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해 버리는 동화 속의 왕과 같은 손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틀즈 역시 일찌감치 황금손이 된 케이스다.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야구공은 경매시장에서 1억 원에 팔렸고 조지 해리슨의 기타는 5억 3100만원에 낙찰됐다. 영국의 토마스라는 사람은 앨범 <애비 로드>를 녹음할 당시 비틀즈가 ‘화장지의 질이 억세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이유로 사용을 거부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한 칸에 18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애비로드를 표지로 한 12번째의 앨범 재킷을 찍을 당시, 이미 무명의 신인이 아니었던 멤버들은 금손을 가진 왕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비틀즈가 걷기 전의 ‘애비로드’는 세상에 깔린 횡단보도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도시의 질서를 위해 표시된 획일화된 기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틀즈의 앨범 표지를 장식한 이후, 애비로드는 낭만 어린 역사적 장소로 부상했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 동작은 하나의 문화적인 약호가 되었다. 심슨 패밀리까지 그 패러디 대열에 합류했을 때.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고작’ 횡단보도 위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물론 <애비로드> 표지에는 단순히 비틀즈의 유명세를 입은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예수의 탄생 기점을 중심으로 BC와 AD를 나누는 것처럼, 애비로드를 기준으로 비틀즈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되짚어 보면 <애비로드>를 찍기 한참 전의 데뷔시절이 있다. 데뷔 앨범이자 1집 앨범인 <플리즈 플리즈드 미>에는 세상에 얼굴을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천진난만한 청년들의 얼굴을 특이하게도 아래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는 순수하고 활기 넘치는 ‘앳된’ 멤버들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반면, <애비로드> 앨범 재킷에는 멤버들의 얼굴을 알리려는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들 카메라 따위는 보지 않고 무심한 시선으로 갈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를 일렬로 걷는다.’는 설정 외에는 과한 연출이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심하고 시크 한 표지를 다른 류의 앨범 재킷과 비교해 보면 비로소 우리가 이 사진을 왜 그리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한때 나는 웨스트라이프의 열성팬이었고 그들의 포즈에 미치도록 열광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5초 이상 똑바로 바라보기 있기 힘든 취향이 되었다.(그러나 나는 웨스트라이프를 좋아한다. 문제는 사진이다.) 연출된 각도와 지나친 자의식으로 점철된 이미지는 이들의 앨범에서만 발생하는 재난이 아니다. ‘매력’이란 무기로 승부해야 하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이미지마다 이런 류의 식상한 컨셉은 넘쳐난다. 그들의 내면이 실은 이런 방식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일정한 포즈를 요구하는 사진작가에 의해 억지로 꾸며졌다는 점에서 진실하지도 않다.       <애비로드>가 좋은 점은 멤버들의 자신감이 ‘가짜’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켜세운 어깨와 당당한 보폭. 자신을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자의 의식은 레논의 잔뜩 치켜 올라간 어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차의 질주를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STOP’ 싸인 위에 선 비틀즈는 누구보다 횡단보도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횡단보도는 교통‘질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규칙이다. 기존 질서에 대항하며 문명의 이기를 비판하는 히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비틀즈가 질서와 체계의 상징과도 같은 횡단보도 위를 걷는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다. 아니 어쩌면. 횡단보도는 인간성의 회복을 주장했던 히피 정신에 들어맞는 코드로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대량생산체제와 기계화의 대표주자인 자동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재조명한다면, 횡단보도는 초록 신호등 앞에서는 오롯이 인간의 것이 되어야 하는 인간을 위한 방어체계다. 어쩌면 <애비로드>는 휴머니즘을 말하고자 하는 비틀즈의 고도의 인권운동 전략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소문대로. 사이가 틀어진 비틀즈가 오랜 시간 촬영하기에는 피차 껄끄러워 스튜디오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급히 찍은 사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때의 비틀즈는 마치 그들의 실제 관계를 연출에 도입한 듯, 더 이상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다. 한 팀처럼, 동지처럼,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뿔뿔이 흩어질 행인들처럼.      어느 날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한 뒤 모두 변했다. 이미 우리는 비틀즈의 삶을 지탱할 수 없었다. 링고스타, 비틀즈 전 멤버  <애비로드> 앨범 발표 후 1년만인 1970년, 4월 9일.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했다. 세월은 흘러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늙었는데 비틀즈의 명성은 그들의 삶과는 별개로 여전하다. 인류의 해마에 들어앉아 아무도 잊어주지 않는 리듬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잡아먹는 포식자가 드문 덕분에 때론 백년을 넘게 사는 거북이처럼. 비틀즈를 집어 삼킬 만 한 건 없다. 최신 곡에 밀려서 사라지는 몇 달 전의 노래 같은 게 아니니까. 최신인기 곡이 비틀즈를 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애비로드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애비로드를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중세시대에 마침내 성소에 이르렀던 순례 객처럼,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 평범한 횡단보도에 마침내 다다르게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벤트] 올해도 역시 페퍼톤스로군
덕후들에게 선물을 주는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하고 있다기에 나덕후도 살짝 나서 봅니다. 아니 빙글 양반, 덕질 인증만 하면 갖고 싶은 선물을 준다는게 참트루...?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2018년 12월 18일. 깜찍이소다마냥 언제 지나간 줄도 모르게 올해가 홀라당 사라져 버렸네요. '나는 올해 대체 뭘 한걸까...' 자괴감에 헛헛한 마음으로 아이팟 터치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나도 몰래 만면에 웃음이 번집니다. 2018년에 내가 뭘 하긴 했네요. 덕질 말이에요 헤헤. '올해 한 일들 중 가장 잘 한 일도 역시 페퍼톤스를 보는 일이었다.'라고 생각하니 과연,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집니다. 올해 만났던 페퍼톤스를 이 곳에 복기해 보고자 하는데... 저의 덕질 일기, 같이 보실래요? 1. 4월 7일 로하스 벚꽃 뮤직 페스티벌 사진만 봐도 춥다 떡밥보릿고개였던 연초를 넘기며 나는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리하여 눈꽃 축제라 해도 믿을 만 했던 영하의 온도(실제로 눈이 내림), 코트 깃속을 파고들던 강추위에 열렸던 벚꽃 축제에도 금강으로의 초행길을 나섰더랬지요. 그것이 바로 2018 덕질의 첫 걸음. 작년에 얼려 놓은 벚꽃을 꺼내 전시한 양 '금강 로하스 벚꽃 축제'는 말 그대로 Freezing... 영하의 강추위에도 포기할 수 없는 아아메 영하의 강추위에도 봄처럼 청초하다...☆ 코트를 입고도 입술이 파래져서 덜덜 떠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내 앞에 계셨던 (패딩 입은) 팬분이 손난로를 건네 주셔서 마음도 손도 따뜻해 졌던 그 날의 기억. 역시 페퍼톤스로군... 2. 5월 9일 4년만의 새 앨범 LONG WAY 발매! 6집 LONG WAY! 당시 저의 감상평은 이러했습니다. 이렇게 가득 찬 사운드라니, 우리네 별에서 왁자지껄한 잔치라도 벌인듯 정감있는 풍요로움이네요. 이야말로 진수성찬이로다! 울컥했다가 빙그레 미소짓다가 풉 하고 뿜었다가를 몇번 하니 금세 끝나버린 앨범을 다시 처음부터.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몸은 사무실이지만 마음만은 온통 반짝반짝. 역시 페퍼톤스로군ㅜㅜㅠㅠ 떡밥 춘궁기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것! 4년 만의 새 앨범이 나오고, 떡밥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네이버 프사도 바뀌고요❤️ 그 시작은 바로 5월 2일, 천문대에서 열린 음감회... 물론 저는 페퍼톤스와 궁합이 매우 맞지 않는 관계로 당연히 광탈을 하였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합니다. 추첨해서 가는 건 맨날 안되더라고요... 이런 옷을 입고 천문대에서 음감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난 못 갔으니 할많하않...ㅜㅜㅜㅜ 참. 물론 5월 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5월 25일 뮤직뱅크까지 모두 나왔지만 전 다 못 갔기 때문에 여긴 안 적을 거예요. 흥. 그러고 보니 모두 KBS네. 소오름. 3. 5월 12일 뷰티풀민트라이프 뷰민라에 페퍼톤스가 빠질 수 없죠. 마스코트격 아니겠습니까. 앨범을 발매하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공식적인 첫 공연이 바로 뷰민라였죠. 행-복- 뷰민라에서 찍은 사진들 중 가장 맘에 드는 사진 3장.jpg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행복에 겨웠던 이 날 나의 코멘트 : 이번 뷰민라에서 찍은 사진들 중 제일 맘에 드는 사진들 *_* 이야말로 ‘신재평+이장원=페퍼톤스’가 아니던가. 보고 또 봐도 자꾸 좋아서 계속 보고 또 되뇌게 되는 순간. 사람 많은 곳은 한참 돌아 가더라도 꼭 피해 가야만 하고, 암만 맛있는 밥집이라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면 깨끗하게 단념하고 바로 다른 곳으로 가는데다가 회사도 맨날 지각에, 버스나 기차는 놓치기 일쑤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제시간 맞추는게 그렇게 힘들어서 매번 허덕이는데, 이 어려운 것들을 페퍼톤스를 보기 위해 종종 해내는 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 이게 사랑인가 봉가. 천부적으로 느긋하게(사실은 게으르게) 태어난 나를 조금 부지런하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페퍼톤스여서 정말 다행이다. 결국 역시 페퍼톤스로군. 4. 5월 16일 I'M LIVE 앨범이 나오니 마구 넘쳐나는 떡밥. 아리랑TV에서 하는 아임라이브를 다녀 왔습니다. 앞에서 보겠다고 비 내리는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티켓을 받는 나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줄 서는 거 겁나 싫어하는 내가...! 이 날 나의 코멘트 : 어제부터 종일 나를 괴롭히던 배탈이 두시간 잠잠하였다. 역시 만병통치약 페퍼톤스로군... 5. 6월 9일, 6월 10일 앨범 발매 콘서트 드디어 앨범 발매 콘서트! 예매에 실패해서 매일 새벽을 취켓팅에 시달리게 했던 앨범 발매 공연. 진짜 다음 생에는 펩톤이랑 궁합 보고 이름을 짓든가 해야지... 아무튼 좋으신 분들께 양도 받아 좋은 자리에서 잘 보고 왔습니다. 고맙고 뿌듯하고 행복했던 앨범 발매 공연 *_* 공연은 당연히 올공이 진리 아니겠어요? 이틀 다 갔습니다. 행-복- 6. 6월 14일 EBS SPACE 공감 새 앨범이 나오면 당연히 공감에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페퍼톤스 공감은 매번 당첨이 되질 않더니 이번엔 처음으로 당첨이 되었어요. 엉엉. 행복했다 정말... 그래서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일산 EBS를 다녀 옵니다. 내가 당첨이라니! 그리고 나덕후는 이장원이 숨을 쉴 때 마다 카메라에 잡히게 됩니다... 카메라 아저씨도 알아보는 덕후가 바로 나였다.mp4 7. 7월 8일 클럽투어 대전 발매공연 마지막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던 2018 클럽 투어 *_* 저는 광주를 제외한 세군데 도시를 다녀왔습니다. 뉴히피의 본고장 대전을 빼 놓을 수 없죠. 평과 쟝이 만난 곳, 페퍼톤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곳! 그래서 대전 공연 만큼은 빼놓지 않고 꼭 가려고 해요. 비단 대전 공연 뿐만은 아니지만 헤헤... 이 날의 대전도 행복했다 정말 진짜로 *_* 8. 7월 11일 춘천 올댓뮤직 대전 클럽투어를 다녀오고 며칠 되지 않아 바로 춘천 KBS에서 있었던 올댓뮤직 공개방송. 나덕후는 평일에 또 춘천으로 떠났습니다. 일찍 가서 기다리다 우로빠들 만나서 덜덜 떨리는 상태로 사진도 찍고요. 우로빠 어깨 보세요 지짜 어깨 미남이다... 할많하않... 닭갈비도 때리고 펩톤도 보고 이야 말로 꿩먹고 알먹고 *_* 춘천은 아름다웠다... 일찍 간 만큼 좋은 자리에서 행복하게 잘 본 공연이었사옵니다 *_* 이 날도 오빠들이 숨만 쉬어도 꺄르르 웃는 내가 자꾸 카메라에 잡혔지만 부끄러우니 첨부는 아니합니다. 아. 일주일에 막 세번씩 오빠들 보니까 왜 이르케 좋냐! 9. 7월 14일 부산 클럽투어 오빠들 덕분에 오랜만에 부산도 가고 좋네예. 친구들도 만나고 오빠들도 보고 일석이조! 감기몸살로 끙끙대면서도 약 기운을 빌어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껄껄. 그래서 이렇게 귀여운 춤사위(!)도 눈앞에서 보고요. 심취한 모습이 아름다운 남쟈 이런 모습도 넘나 사랑스럽고 *_* 이 날은 특히나 마이크 스탠드의 활약으로 이렇게나 신이 났더랬죠. 아프다고 안 갔으면 어쩔 뻔 했냐 정말. 이 날 나의 코멘트 : 온몸이 땀에 절어 집에 오니 새벽 한시, 종일 괜찮다 괜찮다 외던 주문의 약발이 이제 다 했는지 계속 재채기와 콧물이 번갈아 나와서 휴지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던 2018년 7월 14일, 특히 아드레날린이 매우 과도하게 분출됐던 이 영상 속 이 순간 만큼은 오래 오래 기억되길! 10. 7월 15일 대구 클럽투어 역에서 나오자 마자 훅 덮치는 더위에 혼미했던 대구, 더위를 견디지 못 해 공연장에서 쓰러져 나간 분도 계셨더랬죠. 이 날 대구에서의 내 코멘트 : 대구에서는 이번 클투 입장순서 중 가장 앞번호를 들고도 맨 뒤에서 보게 됐다. 여러 모로 겸사겸사. 그랬더니 앞에서는 몰랐던 광경이 (까치발을 하면) 한눈에 들어와서(까치발 안하면 안보임. 대구에 남자팬들 지짜 많네요. 펩톤 지짜 롹스타다... 머시쪄) 내내 벅찼네. 세상에나 맙소사 이거 정말 롹스타 아니냐... 그나저나 맨 뒤 에어컨 근처 + 대형 선풍기 사정권 + 핸디 선풍기까지 풀가동 했음에도 금세 온몸이 땀으로 젖었는데 앞에 계셨던 분들 정말 버티느라 수고 많으셨을 것 같더라. 대구 더위는 정말이지... (절레절레) 11. 8월 10일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 일주일에도 두어번씩 펩톤을 만나다가 3주 가량을 쉰 후 다시 만나러 부산에 갔더랬죠. 부산 락 페스티벌! 부산에 살 적에 부락(부산 락페스티벌)은 항상 너무 멀었거든요. 아니 다대포까지 우째 가노, 집에는 우째 오고! 그래놓고 인생 첫 부락은 서울에서 보러 갔네요 그려. 근데 또 우째 이래 가깝게 느껴졌는지, 이르케 펩톤에 단련이 되었나 보더라고요. 꾸러기 착장으로 락페에 섰습니다 락페니까 열창을 하고요. 12. 9월 2일 광주 사운드파크 페스티벌 자주 보던 습관이 금세 들어 버려서 참지를 못 하겠더라고요. 광주에서 또 공연이 있다기에 무작정 광주로 내달렸더랬죠. 숲 속에 파묻힌 공연장이 너무 귀엽더라. 페퍼톤스만 있다면 그 곳이 어디든 천국일지리니. 이 날의 코멘트 : 기차가 조금 늦어져서 수서역 도착하고 나니 지하철 막차 시간이 임박했다. 막차를 겨우 잡아타고 제일 가까운 역에 내렸지만 환승 버스는 이미 끝난지 오래. 별 수 없이 아직은 낯선 길 20분여를 걸어오면서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낯선 거리를 조금 헤매인대도 괜찮아, 난 찾아 갈테니까. 지난 추억에 무거워진 발걸음도 괜찮아, 으으음-“ 덕분에 집에 오는 길이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았어. 어쩜 오늘 같은 날 노크를 부르냐 사랑스럽게...💕 ‘너에게 달려가’ 할 때 같이 불러 달라고 눈 똥그랗게 뜨는 것도 너무 사랑스럽고, 또, 아, 머리 위에 한껏 쏟아지는 햇살- 부분에서 진짜 조명이 햇살처럼 쏟아져서 또 울컥했다. 13. 9월 8일 더 그레이트볼스 1집 발매공연 게스트 로큰롤 전도사 외로운 로큰롤러 성수오빠의 새 밴드 더그레이트볼스의 1집 발매 공연에 페퍼톤스가 게스트로 나섰던 그 여름. 오랜만에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이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했던 하루, 정말 행복했다... 성수오빠 성대모사중인 미장원오빠 성수오빠 추억팔이 중인 신제품오빠 오래 한가족이었던 만큼 서로 반가운게 보여서 행-복- 준비중인 모습 조차 청초하네요 우로빠 *_* 14. 9월 14일 조승연의 굿모닝팝스 30주년 특집 공개방송 덕분에 정말 고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굿모닝팝스 공개방송도 찾게 되었네요. 반차를 쓰고 평일 낮부터 KBS로 향합니다. 마침 뮤직뱅크 녹화날이라 아이돌 팬들로 장사진이었던 KBS홀을 비집고 들어갔더랬죠. 오랜만에 너무 좋아하는 (영어 가사로 된) 노래를 듣고 *_* 영어 가사를 쓰면 굿모닝팝스 공개 방송에 나올 수 있으니까요 후후. 15. 9월 16일 렛츠락 페스티벌 햇살밴드 어딜 간거죠? 올초 벚꽃페스티벌때부터 불안불안 하더라니 요즘은 내내 비를 몰고 댕기는 우리 (전)햇살밴드 페퍼톤스... 하지만 전 비가 와도 맥주를 마십니다 후후. 악기가 비에 젖으면 감전의 위험이 있으니 비니루 천막 아래서 공연을 하기로 합니다. 그런 모습조차 귀여워서 치솟는 내 광대.jpg 그리고 한달 가량 공연이 없었나 봐요. 이 날 저의 코멘트는 이러했더랬죠. : 어제 공연장을 나서다 문득 우울해 지는거라. 거의 매주 만나던 두어달을 보내고 나니 아, 앞으로 남은 날들은 어찌 버티나 덜컥 겁이 나는거지. 펩톤 없는 한달 우째 버틸꼬. 덕분에 근근이 살아가는 나날이었는데ㅜ.ㅜ 16. 10월 20일 그랜드민트페스티벌 페퍼톤스를 빼고 어떻게 gmf가 있겠어요. 1회차부터 개근에 빛나는 밴드! 페퍼톤스가 나오는 순간 순간이 정말 축제였어요. 진짜로... gmf에서 가장 반짝였던 순간.mp4 거대공이 떠다니고 폭죽이 터지던 순간!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 오늘 같은 날 내 맘대로! 그리고 이 날 정말 예쁘게 입었단 말이에요. 무려 퇴근길이 더 예뻤다규. 세상에. 오빠 무슨 일이에요...? 17. 12월 7~9일 LONG WAY : TO HOME 연말 공연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연말 공연 'LONG WAY'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 공연이었던 LONG WAY : TO HOME.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해서 인스타에 남겼던 나의 코멘트는 이러 했습니다. 흑. 올해 행복한 순간이 있긴 했던가 싶은 생각에 한숨 부터 난다면 이번 주말, 이 공연을 주목하세요. 무대 위에서 뿜어 내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함께 시간을 나누는 모두가 반짝이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요. 페퍼톤스 공연을 보다 보면 정말이지 잔뜩 행복해 져서 벅찬 마음 가득 담아 주위를 한 바퀴씩 둘러보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모두 나와 같은 표정이라 더욱 행복해 지더라고요 *_* 그러니까, 함께, 할래요...? 인터파크에서 페퍼톤스를 검색해 보세요. 한겨울에도, 살을 에는 강추위에도 따뜻한 햇살을 만나게 될 거예요. 올해도 여전히 따뜻했던 그대들 덕분에 잘 버텼습니다. 각 공연날의 마지막 인사를 첨부하며 마무리 할게요. 첫공 12월 7일 낀공 12월 8일 막공 12월 9일 그래서 이 때 나의 코멘트는요 : 사흘 간의 집안 모임(A.K.A. LONG WAY : TO HOME)이 끝나고 현자타임이 찾아 왔습니다. 올해는 아직 스무날도 더 남았고, 버틸 힘은 벌써 오늘로 끝이 나 버렸으니 눈치도 빠른 감기가 틈새를 비집고 멋지게 들어 앉았네. 공연을 보는 중에 자꾸 심장이 뜨겁고 눈앞이 아득해 지길래 너무 좋은 나머지 울컥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감기 때문에 목이 뜨거워서 그랬던 듯... 물론 그런 착각을 하게 될 만큼 몇번이고 눈앞이 아득할 정도로 좋았다. 매년 조금 이른 한 해의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야기. 내년에도 계속 함께라는 이유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틸 힘이 되는 이들이 페퍼톤스여서 어찌나 다행인지 몰라. 이제 2018년의 나는 장렬히 전사... 💚 적고 보니 16 종류의 페퍼톤스 공연을 다녀 왔고, 실제로 간 횟수로는 19번을 다녀 온거네요. 1년간 정말 열심히 다녔다. 페퍼톤스 덕분에 여행도 가고, 오랜만에 찾은 동네에서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돌아 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물론 '아니 19번 밖에 못 본거였어?!'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ㅜ.ㅜ 올해 정말 많이 돌아다녔네. 이게 모두 페퍼톤스 덕분. 그러니까 할 말은 "역시 페퍼톤스로군" 참. 그래서 제가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은요, 윗 사진들이 (공연 포스터와 우주복 사진 빼고는) 다 제가 찍은 사진들이란 말이에요. 근데 덕후 사진 치고 노이즈가 너무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렌즈가 구려요. 물론 카메라도 구리고. 카메라를 갖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비싸서 안된다고 하실 수 있으니 망원 렌즈라도... 물론 그것도 비싸서 안된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갖고 싶다고 말이라도 해 봅니다. 이런 사진은 이제 그 만 빙글 산타 할아버지...? 저는 좋은 사진 찍는 덕후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