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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야구in 한대화 (1)] #1982년 한일전 #1호 임의탈퇴

[스포츠서울 서장원기자] 1982년. 올드 야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을 안겨준 해다. 프로야구 원년이기도 했던 이 해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야구팬을 넘어 국민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

1982년 한국과 일본은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놓고 결승에서 만났다. 우승의 향방이 가려지는 경기이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한일전은 종목을 막론하고 매번 치열했으며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경기도 그랬다.

2대0으로 일본에 끌려가던 한국은 8회말 그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동점을 만든 뒤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동국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던 한대화였다. 그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왼쪽 폴대를 맞히는 3점 홈런을 터뜨리며 드라마틱한 우승컵을 한국에 선사했다. 한대화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온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거쳐 지도자로, 그리고 현재는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대화 위원을 만나 그의 야구 인생을 들어봤다. 한 위원은 "예전에도 많이 했던 얘긴데..."라고 쑥스러워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 멀리던지기 대회와 야구 입문 

한대화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멀리던지기 대회' 출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도내에서 개최된 멀리던지기 대회에 출전한 한 위원은 2등으로 입상을 하게됐고, 그 때 자신을 본 야구 감독이 "야구를 하지 않겠냐"고 제의를 한 것. 한대화는 그렇게 야구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는 "처음엔 투수를 하면서 유격수도 같이 봤다. 하지만 체격이 작아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턴 야수로만 뛰었다"고 말했다. 그의 활약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대전고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효봉이 전학을 왔다. 전학을 오자마자 1년간 휴학을 하면서 선수가 없어 내가 대신 마운드에 올라가기도 했다. 고 3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했고, 군혜택을 받았다."

▲ 3점 홈런의 사나이

한대화가 국민에게 가장 잘 알려진 순간은 동국대 시절 출전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 결승전에서 터뜨린 3점 결승 홈런을 터뜨린 순간이다. 8회말 2사 1, 2루 풀카운트에서 터진 극적인 홈런이었다. 한대화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홈에서 하는 대회이기에 우승이 목표였지만 대표팀 전력이 강하지 않았다. 또 대회 때 국사왜곡 문제로 한일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승에서 맞붙게 된거다. 관중도 역대 잠실구장 관중 수 중 가장 많았을 것이다. 홈런치고 난리가 났었다. 경기가 끝나고도 열기가 식지 않아서 어디를 가도 대우를 해줬다. 대우 많이 받고 다녔다(웃음)."

▲ 프로 입단, 시련과 전성기

대학 때 큰 임팩트를 보여준 한대화는 이듬해인 1983년 대전을 연고지로 둔 OB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많은 기대와 달리 OB베어스 시절 한대화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첫 해에는 88경기에 나서 타율 2할7푼2리, 홈런 5개, 타점 44개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으나 다음해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대화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인 땐(첫 해)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다음해에 성적이 안 좋았다. 그런데 구단에서 연봉을 올려주더라. 어린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겨울에 쉬면서 운동을 많이 했다. 그런데 보문산 약수터에서 약수를 먹고 간염에 걸렸다. 병원에서 바로 입원하라고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3번을 입원했고, 몸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몸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 나갔고, 시즌 중에도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2군으로 내려갔다."

세 번째 시즌이 끝나고 OB베어스는 한대화에게 트레이드를 제안한다. 당초 한대화는 고향인 대전에 창단된 빙그레 이글스에 가고 싶다고 희망했으나, 이틀 뒤 구단은 해태 타이거즈와 트레이드를 전격발표한다. 이에 반발한 한대화는 결국 프로야구 최초 임의탈퇴 조치를 받게 된다.

"임의탈퇴된 뒤 60일이 지나면 복귀할 수 있었다. 대둔산 암자로 들어가 47일 동안 있었다. 암자에 머물면서 몸도 좋아졌다. 60일이 지나고 해태로 복귀했다. (김인식 감독 설득으로 복귀했나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 60일간 쉬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또 트레이드 거부했었기에 해태에 가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우여곡절 끝에 해태에 간 한대화는 비로소 전성기를 맞았다. 주전 3루수로 자리잡으며 수많은 찬스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해태에서 머문 8년 간 해태는 무려 6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7번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한대화는 "해태에 가서 결승타를 많이 쳤다. 홈런을 많이 못 쳤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타점을 많이 올리니까 팬들이 기억을 많이 해준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해태에서 8시즌을 보낸 한대화는 이광환 감독이 이끌던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된 후 곧바로 우승을 맛본다. 그 해 골든글러브도 그의 차지였다. 35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속일 순 없었고, 1997년 쌍방울로 다시 트레이드 된 후 한 시즌 후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LG에서도 초반에만 3루를 보다가 주로 지명타자로 나갔다. 38세에 쌍방울로 갔는데 3루수를 시켰다. 몇 번 뛰어봤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이후 2군으로 내려가서 경기를 뛰며 1군 진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엔트리가 확장돼도 부르지 않았다. 결국 은퇴선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선수 시절 이룬 3루수 골든글러브 8번 수상과 11번의 올스타전 출전은 아직도 최다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한대화도 선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아쉬운게 왜 없겠나. 선수로 뛸 땐 통산 기록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기록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제일 후회되는 게 기록에 대한 생각을 안하다 보니 한타석 한타석 귀하다는 걸 당시에 몰랐다는 것이다. 은퇴하고 나니까 기록에 관한 부분이 많이 아쉽더라."

'[SS야구 in②] 지도자 한대화, 영광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17년'으로 이어집니다.


사진 | 서장원기자 superpow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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