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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뭉쳐 천하통일

색다른 MMORPG 셋이 뭉쳐 천하통일!!!
중국의 실제 역사인 후한 건국기- 왕명을 제패하고 건국의 위업을 달성한 유수의 이야기
일단 영상부터 감상!!!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기존 PC MMORPG에서 즐길 수 있었던 다양하고 방대한
콘텐츠, 모바일에 최적화된 플레이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구글과 원스트어에서 다운받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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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뭉치자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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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입사 제의 받은 디시인의 포트폴리오.jpg
워 이정도는 되야 구글에 입사하는건가 ㄷㄷㄷ 일단 창의력이 어마어마한데 예술을 자기만의 걸로 해석하고 표현하는게 대단함 일에 대한 집념까지 갖추셨네 + 원글쓴이가 말하는 포폴팁 저는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이런 쓸데없는 짓이 저를 부지런하게 만드는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 외엔 따른 취미생활이 없어요. 게임도 안하고 티비도 안봅니다.  그냥 일하는게 제일 재미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쓸데없는 개인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런 돈도 안되고, 또 실제 프로젝트에 사용하기에는 힘든 기술과, 디자인이지만,  이런걸 만들어봄으로써 배우는게 참 많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웠던 것들이 나를 성장 시키고 실제 프로젝트에도 유용하게 쓰였던 적이 많았어요.  그리고 이 작업을 보고 구글에서 입사제의가 와서 지금까지 구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만약에 제가 이런 개인 작업을 하지 않고 회사 일만 했었다면,  세상 누구도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 뭐를 잘하는지 몰랐을 겁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싶어 라고 말로만 하기보단,  내가 하고싶은 디자인을 개인작업으로라도 포트폴리오를 계속 쌓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쌓은 포트폴리오는 나라는 디자이너를 정의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 움직이는 모습과 더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모바일로 다시 태어난 바람의 나라, 디렉터 '태성이 형'은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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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바람의 나라>를 모바일로 옮겨온다는 책임감이 막중할 거 같다.  앞서 말했듯 슈퍼캣 창립 멤버들 모두 <바람> 팬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면 진짜 잘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처음에는 책임감보다는 "와 재밌겠다"라는 생각부터 했다. 그런데 원작을 모바일로 옮기다 보니 좌충우돌도 많이 생기고, 사명감도 점점 커졌다. <바람의 나라>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게임 아닌가? <리니지>와 함께 MMORPG 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던 게임이다. 선배 개발자분들이 빛나는 IP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걸 즐겼던 <바람의 나라> 키드였다. 작업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점점 어깨가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유저분들이 납득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 요즘은 긴장해서 그런지 한 달 반 동안 자다가 게임 걱정에 깬다. 자다 깨서 "괜찮은 거 맞나" 싶어서 게임 한 번 실행해보고 그런다. 막 안 좋은 걱정은 아니고, 머릿속에 생각이 되게 많다. # 바람의 나라 모바일로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안 한 게 없는 '태성이 형' <바람의 나라>를 모바일로 되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바람의 나라>가 버전 별로 조금씩 달라서 참고할 게 엄청 많다. 먼저 넥슨이 복각한 <바람의 나라 1996>에서 초창기 헤어를 비롯한 캐릭터 세팅을 봤다. 작년에 열린 넥슨 전시회도 가서 열심히 봤다. 중고 서점을 싹 뒤져서 <바람의 나라> 가이드북을 버전 별로 전부 입수했다. PC <바람의 나라> 팀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 가지고 있던 소스나 스크립트를 활용했다.  <바람의 나라> 만화 원작자 김진 작가는 찾아뵈었나? 정말 많이 뵈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뵈었는데, 게임 스타트할 때 작가님께 찾아가 브리핑을 했다. 이후로도 빌드 나오면 보여드리고, 구체적인 설정에 대한 조언도 많이 받았다. 한 번 찾아가면 6시간 넘게 있고 그랬다. 타이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도 작가님의 그림을 받아서 직접 새로 스캔한 거다. 김진 작가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에 대한 감사 차원으로 환수 이름 중에 '포포'가 있다. 포포는 작가님이 실제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바람의 나라: 연> CBT 버전을 플레이하면서 디테일에 많이 놀랐다. 'Loading Maps'라는 메시지와 함께 불을 뿜는 용이라거나... 게임 실행할 때 나오는 로고 오프닝도 완전히 새로 만든 거다.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띠리링' 하고 넥슨 로고가 등장하는 그거. 예전 거는 도저히 화질을 맞출 수가 없어서 새로 만들었다. 움직임마다 보고 따라서 그린 거다. 자세히 보면 파란색의 색깔이 다르다. 장돌뱅이나 주모한테 "비싸"라고 입력하면 <바람의 나라>랑 똑같이 대응하더라. 그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쳤는데 안 나오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나. NPC의 대사는 마침표 하나까지 다 찾아서 반영해놨다. 특정 울타리는 충돌이 적용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갈 수 있는 주막 버그 같은 것도 구현이 되어있다. o키를 눌러서 문을 닫고, 파란열쇠로 잠궈버릴 수 있었는데 그것도 들어가나? 고민했다가 뺐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뺀 게 정말 많다. 우물을 통해서 맵으로 들어가는 거라던지... 개중에는 어셋만 만들어놓은 것들도 있다. CBT 버전에 한두고개(십이지신의유적 동쪽 필드. 미로 같은 맵을 돌아다니며 특이한 색깔의 다람쥐를 잡을 수 있다)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굳이 없어도 되는 지역 아닌가? 추억을 줄 수 있는 건 대부분 만들었다.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아닐 수도 있지만, 괜찮을 것 같아서 넣었다. 미로 콘셉트에 맞게 다른 맵과 달리 미니맵에 적이 표시가 안 된다.  감옥이 들어가는지 궁금했다. 원래는 비매너 유저를 일정 기간 가두던 공간이었다가, 유저들이 커뮤니케이션하던 곳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나오지 않는다. 감옥이 없기 때문에 죄수복도 없다. 개인적으로 비매너 유저들 정지를 먹이는 것보다 감옥에 보내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아까 잠깐 충돌 이야기를 했는데, 플레이어 간 충돌이 없다. 비영승보(도적) 타고 다니거나 차폐(도사) 하거나 소환비서를 쓰는 재미가 없겠다. 그런 충돌이 없어서 많은 유저께서 아쉬워했다. 왜 옛날 <바람>에 길막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나. 뱀굴 1에서 뱀굴 2로 가야 하는데 "돈 주면 비켜주겠다" 이렇게 서있기도 했고. (충돌로 인해 빚어지는) 그런 모습들이 추억으로 재미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되면 스트레스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마을이나 기본 사냥터에선 충돌 없이 가기로 했다. 대신 소규모든 대규모(신수쟁탈전)든 PvP 콘텐츠에는 충돌을 넣었다. 캐릭터와 몹 사이의 충돌도 있다.  # 정점에서 시작하는 <바람의 나라: 연>, 똥은 안 나온다 <바람의 나라: 연>이 되살린 시점이 굉장히 전략적으로 유효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완전 구버전도 아니고, 구버전/신버전 같이 할 때 신버전 느낌인데, 궁사가 나오기 전이면서 환상의 섬 나온 이후, 무료화가 막 되던 시점(2005년 이후) 정도라고 생각했다. <바람의 나라>가 90년대 서비스를 시작해 점점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2000년대 지나가면서 인기가 팍 올라갔다. <바람의 나라>가 정점을 기록하던 때의 느낌을 드리려고 하고 있다. 오픈 빌드로 따지면 1999년에서 2001년 정도의 플레이 감각을 드리려고 하고 있다.  어떤 스트리머가 서른 시간 넘게 <바람의 나라: 연> 플레이하는 모습을 생중계하셨는데, 그분이 흉가에서 룹사(그룹사냥)을 하다 보니 예전 플레이 스타일이 느껴진다 코멘트를 했다. 그런가? 기자는 자동을 켜놓고 사냥하는데 예전 느낌이 안 들었다. <바람의 나라>가 컨트롤이 쉽지 않다. 주술사의 경우, u 연타(동동주 사용) 하면서 마비, 중독, 저주 돌리고, 기원이랑 공증(공력증강)으로 체마 채워가면서 딜 집어넣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자동으로 대체되니 아쉬웠다. CBT는 게임 체험의 압축 버전이다. 만드는 입장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얻으려면, 플레이 하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해주셨으면 하는 지점이 있고, 1차 CBT 때는 그게 지존이었다. 당시엔 룹사를 굳이 안 해도 됐다. 파이널 CBT만 와도 룹사와 컨이 필요하다. 파이널 CBT 해보신 분들이 옛날 <바람> 같다고 많이 말씀 주셨다. 오픈 빌드에서는 룹사의 맛, 격수(전사, 도적) - 비격수(도사, 주술사)의 차이까지 느낄 정도로 잘 해놨다. 내가 만든 게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룹사가 진짜 재밌다. 3D가 아니다 보니 시인성도 되게 좋다.  오픈 빌드에는 국내성, 부여성과 십이지신의유적까지 나오는 것으로 안다. 그 다음엔 뭐가 나올까? 북방대초원과 산적굴을 개발 중이다. 한달 주기로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똥 나오나? (일본에 가는 길에 고래사냥 이벤트가 뜨면, 고래가 갑판 위에 똥을 드랍했다. 먹을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는 아이템이다) 똥! (웃음) 필드 위에서 떨어뜨리면 냄새 난다고 도망가지 않았나? (웃음) 최근까지 고민했는데, 너무 시기가 늦고 오픈 준비도 해야 하다보니 못 들어갔다. 개발팀 안에 그런 아이디어가 모아진 '곳간'이 따로 있다. 옛날 아이템 중에 담배도 있었는데, 곳간에만 들어있고 게임에는 빠졌다. 플레이어들끼리 오목 하고 놀던 기원은 언젠간 집어넣으려고 준비 중이다. # <바람의 나라: 연> "추억 이상의 재미 드릴 수 있다" 사람들이 추억 하나만으로 게임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수하게 모바일 MMORPG로 <바람의 나라: 연>이 재밌는 이유가 있나? 시중에 나오는 게임을 다 해보는데 <바람의 나라: 연>만큼 MMO스러운 게임은 없다고 본다.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 유저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게임이 잘 없다. <바람의 나라>가 그런 커뮤니티 스러운 포인트에 굉장히 강점이 있는 게임이다. 사냥과 성장이 다가 아니다. 모바일 MMO에서 채팅을 별로 안 하지 않나? 전체채팅 조금 하고, 길드채팅 하는 정도인데, 경험상 길드에서 채팅을 해도 받아주는 분이 많이 없었다. 게임 안에서 단톡방까지 지원할 정도로 커뮤니티에 신경을 썼다. 게임 안에서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들은 자전거 이야기를 하고, 여행 좋아하는 분들은 모여서 여행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람의 나라: 연>은 세로모드를 지원한다. 모바일게임에서 왜 채팅을 안 하는지 생각해봤는데, 가로로 길어진 키보드 바가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MMO에는 채팅이 빠질 수 없는데, 우리는 그걸 쉽게 즐길 수 있다. <바람의 나라: 연>은 유저와 유저의 연결이 중요한 게임, 접속이 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게임이다. 게임에 들어간 단톡방과 오픈 채팅,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가? <바람의 나라: 연>도 솔로잉 구간이 굉장히 많은 게임 같았는데. 처음부터 파티 플레이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허들이라고 생각했다. 적응을 좀 길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오픈 빌드로 따지면 해골굴부터는 솔로잉이 힘들어진다. 그 다음에 깹굴(도깨비굴) 같은 데가면 올라간 난도가 확확 느껴지게끔 했다. <바람의 나라>처럼 상위권 사냥터에선 룹사에 대한 니즈가 강할 거라고 느낀다. 레이드 콘텐츠의 경우, 처음엔 공략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조정했다. 그래서 바로 보스를 만날 수 있게끔 지름길을 추가한 거고 보상에 약간의 차이를 둔 것이다. 아무래도 모바일이다 보니 이렇게 난이도를 낮춘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온라인게임 하는 기분을 충실히 잘 살렸기 때문에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바람의 나라>에서는 Ctrl + W만 누르면 서버에 몇 명이나 접속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바람의 나라: 연>이 '연결되어있다'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찌? 우선 '실시간 랭킹'이 <바람의 나라: 연>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볼 수 있다. 레이드 같은 경우에도 다른 유저랑 함께 플레이해야 하며, 문파나 남북대전 같은 요소들도 차츰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름값 있는 게임을 책임지고 되살리고 있다 보니 유저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맞다. 이제는 태성이 형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친근감 느껴주시는 거 같아서 좋다. 내 표정을 보더니 "힘든 얼굴로 특수분장한 거 아니냐"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신데, 재밌고 좋다. 이름도 마침 태성이다 보니 (도적 4차 승급), "닉값 한다"라는 분들도 계시고. 회사에 녹용을 보내주신 분도 있다. "태성이 형, 사슴굴에서 구했어"라면서. (웃음) 마지막 하나 남았는데 안 먹고 간직하고 있다. 게임 출시가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각오 한 마디 듣고 싶다. 지금까지는 준비 운동이었다. 어떻게 오랫동안 달릴지에 대한 트레이닝이었고. 이제 출발선에 서있고, 다음주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긴장도 되지만, 목표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바일게임에서 5주년, 10주년 넘은 케이스가 아직 많지 않지 않은가? <바람의 나라: 연>이 그렇게 서비스되는 게 나의 큰 꿈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저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스탭으로 갈 수 있을 거다. 마라톤이든 자전거든 오래 가려면 에너지바도 먹고 하지 않나? 우리에겐 유저의 관심과 사랑이 에너지바다. <바람의 나라>는 단타로 치고 빠지는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잘 만들어서 (유저들에게) 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예상보다 오랫동안 준비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 장기적으로 서비스되는 게임이 되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
#세련된 남자의 조건 1편
집을 수리해본 사람은 안다. 맘에 들지 않는 어디 한 군데를 고치고 나면, 그 전까지 존재감이 없던 다른 코너가 자신도 고쳐달라면서 스윽~등장하는 불편한 진실.  때론 옷을 입는 남자들의 고민도 그렇다. 천신만고 끝에 좋은 옷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그 옷과 부합하는 가방에 닿을 수밖에 없고, 마지막엔 시계 와 지갑 등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화하는 과정이다. 럭셔리와 동의어인줄 알았던 브랜드의 많은 제품들이 정작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뒤 레이블을 다는 OEM 제품들이었단 사실을 발견한 다음,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브랜드의 딱지보다는 자신의 스타일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격과 성능 대비 합당한지를 보는것이 요즘의 액세서리 소비 트렌드이다. 그래서 오늘은 남자의 유일한 액세서리 시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손목에서 빛나는 지성의 향기 남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그들의 관심을 압축해 소유욕을 폭발시키며 은행잔고를 마르게 하는 물건은 시대마다 달랐다. 선진국의 트렌드와 국내 트렌드 간의 시간차를 어느 정도 감안한다면, 미래에 이 나라 남자들을 폭발적으로 충동질할 물건은 시계가 틀림없다. 시계는 독특한 자기표현을 넘어서 남자가 바라보는 작은 우주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품시계를 찬다고 우주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것은 객관적으로 현재 자신과 조화가 이루어 지느냐가 첫번째다.
앙그리니의 웹툰 ㅡ 환경표시제도
[앙그리니가 알려주는 환경컷툰 제 1화 '환경표지제도'] 안녕하세요! 완경을 지키는 온그린입니다~ 오늘은 앙그리니가 알려주는 '환경표지제도'에 대해 컷툰으로 가져와보았는데요~! 그리니가 쉽게 알려주는 "환경표지제도" 한번 알아볼까요?? 환경표지제도는 같은 용도의 다른 제품에 비해 제품의 환경성을 개선한 경우에 그 제품에 로고(환경표지)를 표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환경성 개선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환경표지 제품 선호에 부응해 기업이 친환경제품을 개발 및 생산하도록 유도해 자발적 환경개선을 유도하는 자발적 인증제도입니다. 환경표지제도는 기업과 소비자가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생산, 소비할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는 정확한 제품의 환경정보를 제공하여 환경보전활동에 참여토록 하고, 기업에게는 소비자의 친환경적 구매욕구에 부응하는 환경친화적인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도록 유도하여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생활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컷툰으로 보는 환경표지제도 어떠셨나요?? 이제 환경표지제도는 잘 아시겠죠~? ♻️환경을 지키는 아트팀, 온그린의 발자국! 많이 기대해주시고 좋아요랑 댓글은 센스~ 여러분들께 다양하고 재밌는 컨텐츠로 환경에 대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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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초보자를 위한 자급제폰 구매 가이드
혹시 폰 바꿀 계획이 있는 빙글러를 위한 자급제폰 구매 가이드 나도 언젠가 폰 바꿀 때 써먹어야지 1. 자급제폰이란?? 말 그대로 '휴대폰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자급제폰 보통은 휴대폰을 살 때 통신사 직영점 or 대리점에 가서 요금제와 결합해서 약정으로 사는데 삼성 온라인몰이나 애플 스토어에서 휴대폰만 사는 방식! 2. 휴대폰이 비싸서 약정 걸어서 사는건데 직접 사는거 부담스럽지 않나요? 요즘은 신용카드사에서 24개월 or 36개월 무이자 할부를 해주는 경우가 많음! 비교하자면 일반 방식 - 24개월 할부로 구매 + 기기값과 요금을 전부 통신사에 납부(+이자!) 자급제 방식 - 24개월 할부로 구매 + 기기값은 카드사에 납부하고 요금은 통신사에 납부 자급제 방식의 좋은 점은  할부에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에 (무이자할부의 경우) 매달 4천원에서 5천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 웬만한 카드사는 이런 혜택 있으니 본인이 쓰는 카드에 있나 확인해 볼 것!! 3. 자급제폰의 좋은 점 일단 짜증나는 '약정'이란게 없음  (폰을 바꾸고 싶을 때 바꿀 수 있음, 물론 기기값 할부는 내야겠지만) 3~6개월 이상의 높은 요금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없음 그리고 일부 악질 폰팔이들에게 호구맞을 일이 전혀 없음 (그냥 휴대폰 기기 자체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든 본전) 그리고 가장 좋은게 알뜰 요금제와 시너지가 좋음 +) 굳이 알뜰 요금제로 쓰지 않더라도 기존에 쓰고 있는 대형 통신사의 요금제 선택 약정을 걸고 쓰는 것도 가능! 4. 알뜰 요금제? SKT, KT, LG 전부 알뜰 요금제가 있음 sk의 경우 세븐 모바일, cj는 헬로 모바일 등등이 그것임! 요즘 알뜰 요금제는  LTE 무제한 (10~15G 기본 제공, 다 쓸 시 하루 2G) 문자, 전화 무제한 요금제가 보통 3만원대에 책정됨 (낮은 경우 2만원대도 가능) 대형 통신사에서 6만원대 요금제가 알뜰폰에선 3만원대라는 말! 5. 결론 자급제폰 + 알뜰 요금제를 쓰면 통신비를 아낄 수 있다. 6. 자급제폰을 사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는 사람 1) 휴대폰 성지 등등을 잘 알아서 보조금 받고 잘 살 수 있는 사람 2) 대형 통신사를 가족이 전부 써서 가족 결합이나 인터넷 TV 결합 등등을 쓰는 사람 3) 대형 통신사에서 주는 제휴 포인트를 알뜰하게 잘 사용하는 사람 이라면 자급제폰에 대해서 조금 고민해보는게 좋음 다만 나는 포인트 이딴거 모르고 월에 내는 요금만 낮아지면 된다 싶은 사람은 자급제폰이 좋을 수 있음! +) 그리고 자급제폰을 살 경우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월납입형 휴대폰 보험에 가입하지 못할 수 있음. 이 부분은 애플케어나 삼성 모바일 케어로 커버 가능! 출처 : 도탁스 다들 흑우되지 말고 현명한 소비합시다.
애플을 이끈 스티브 잡스의 정성 10가지
1. '작은 것에도 완벽하라'(Go for perfect) 잡스는 작은 것도 세세히 챙겼다. 아이패드가 출시하기 하루 전에도 모든 애플 직원들은 헤드폰 잭을 교체하느라 밤을 새웠다. 잡스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2. '전문가를 활용하라'(Tap the experts) 잡스는 루브르 박물관을 설계했던 유명한 건축가 아이 엠 페이(I.M pei)를 영입해 '넥스트(NeXT)'의 디자인을 만들게 했다. 또 그는 의류 기업 갭(GAP)의 대표이자 의류계의 대부격인 미키 드레그슬러를 애플의 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3. '냉혹하라'(Be ruthless) 잡스는 자신이 내놓은 제품을 한단계 넘어설 때마다 뿌듯해했다. 그는 최초의 PDA인 팜-파일럿을 어렵게 개발한 뒤, 언젠가는 이것을 뛰어넘는 폰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의 이런 자유로운 발상은 아이패드를 발전시켰다. 4. '소수 의견에 연연하지 마라'(Shun focus group) 잡스는 생전에 사람들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테스트제품이 나오면 집에 들고가 몇 달 동안이나 썼다. 5. '연구를 멈추지 말라'(Never stop studying) 애플 브로셔의 초기 다자인 때, 잡스는 일본 소니가 사용중인 브로셔의 폰트와 레이아웃, 심지어는 종이의 무게까지 분석했다. 6. '단순화시켜라'(Simplify) 잡스의 다자인 철학은 '끊임없이 하나로 단순화시켜라'였다. 그 때문에 그는 아이팟의 다자인을 계획할 때도 디자이너들에게 전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버튼을 없애도록 했다. 아이폰의 '원형 스크롤 휠'은 이렇게 탄생됐다. 7. '비밀을 지켜라'(Keep your secrets) 잡스는 직원들에게 아무에게도 애플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직원들은 정말 필요할 때에만 얘기하도록 했다. 이같은 잡스의 '비밀전략'은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의 신제품 발표는 항상 놀라웠고, 그 결과 항상 기사의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8. '팀은 작게 하라'(Keep teams small) 처음 매킨토시를 개발했던 팀은 100명으로 조직됐다. 만약 101번째 사람을 고용했다면, 누군가는 이 사람을 위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잡스는 이러한 자신의 직원 100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다녔다. 9.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줘라'(Use more carrot than stick) 잡스는 무서운 경영자였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가장 큰 힘의 근간이기도 했다. 잡스의 열정에 매킨토시 팀은 1주일에 90시간을 일을 해야했고, 이것은 결국 매킨토시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10. '견본품도 정성껏 만들어라'(Prototype to the extreme) 잡스는 견본품마저 성심 성의껏 만들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애플 스토어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