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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색감&인생샷을 얻어 갈 수 있는 전시
현시대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sns를 활발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사진에 관심을 적어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뛰어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의 소위 간지나는 사진이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든, 아름다운 장소든 어떤 사진이든. 확실한 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이 사진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sns의 유행으로 인해 현재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가 없었다. 크리스 프레이저(Chris Fraser)의 Revolving Doors/D Museum Youtube 제공 이러한 트렌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마 한 번쯤은 '인생샷을 건져봤으면 좋겠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소위 간지나는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이번에 D museum에서 준비한 전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여러분을 정확하게 겨냥한 전시를 준비했다.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라는 이름의 전시이다. 이 전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날씨를 테마별로 나누어서 테마에 맞는 사진과 영상, 여러 작품들을 준비한 전시이다. 여러분들을 위해 D-museum에서 직접 촬영한 생생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전시 관람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준비했다. 현장 분위기만 바로 알고 싶다면 맨 아래 영상만을 참고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D Museum의 위치 D museum은 서울 한남동에 옥수역과 한남역 사이에 위치한다. 갈 때는 되도록 대중교통, 그중 최종적으로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1. 자가용 타고 갈게요!->주차할 곳이 미술관 주위에 거의 없다시피하다. 만약 간다면 반드시 주차공간을 미리 알아놓고 가자. 2. 그냥 옥수역이나 한남역에서 걸어갈게요!->미술관이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걸어가면 약간 등산하는 것 같다. 걷는 걸 좀 좋아하는 편이라면 역에서 걸어갈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역에서 좀 가깝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걸어간다면 둘 중 한남역에서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옥수역에서 가는 것에 비해서 좀 더 경사가 완만하고 그나마 구석구석 볼거리도 더 많다. D Museum 도착하면 큼직한 포스터가 걸린 이 건물이 여러분을 반겨줄 것이다. 사진 밑에 보이는 것처럼 필자가 갔을 때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때가 5월 7일 대체공휴일 날인데 대략 20~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인터파크 티켓에 들어가서 미리 티켓을 구매해놓으면 웨이팅이 좀 더 짧다.(필자는 참고로 현장 티켓을 구매했다) 주로 커플이나 여성분들끼리 온 분들이 많았고 가족단위 관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의 모습이다. 이 앞에서 관람인증샷을 많이 찍는다. 이 미술관은 대개의 미술관과 다른 특징이 몇 개 있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촬영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작품 훼손 및 저작권 문제 등으로 촬영을 금지하는 미술관이 많은데 이곳은 그런 곳과 다르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덕분에 미술관은 사진이 퍼지면서 홍보효과를 얻고 관객들은  많은 사진들을 찍어갈 수 있다. Revolving Doors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이다. 문들이 열리고 닫기면서 문 옆 조명에서 나오는 빛들이 공간 안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서 공간의 색깔이 계속 변화하는데 그 색감이 독특하다. 이곳이 위에서 두 번째에 올린 사진이다. 첫 테마는 햇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햇살 속에 비치는 세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작가들이 사진 속에 담아낸다.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인상주의 스타일의 그림을 보는듯하다. 햇살 속에 담아낸 찰나의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면서도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듯한 사진들이 많다. 여기 테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사진. 위에 있는 해같이 보이는 건 사실 필자 위에 있던 전등이다. 해가 뜰 때나 질 때를 보고 있으면 뭔가 센티한 느낌이 든 적이 많았다. 이 사진을 보고 그러한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났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사진들이 많았다. 하얀 눈과 초록빛으로 빛나는 지상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사진들이었다. 극한 추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이다. 작품을 통해 본 사람들의 모습 속엔 저기에 왜 저러고 살까 싶다가도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행복이 담겨있었다. 전시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다. 밝은 것에서 어두운 순서대로 테마가 진행되고 있다. 테마별로 이렇게 입간판 같은 것이 있다. 어둠 속에 전시된 어두운 날씨의 사진들. 가장 묵직한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계단을 올라오며 걸려있던 구름들.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silver lining이라는 영미권에서는 쓰는 단어가 있다. 불행 중 희망이라는 뜻인데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이 딱 silver lining인 것 같다. 구름 가장자리에 비친 빛. 다음 테마는 밝은 것과 관련된 것인가 보다.  D museum 사이트 메인에 걸려있는 사진 바로 여기는 안개와 관련된 테마다. 공간이 안개로 가득 차있다. 곳곳에 사진 찍으면 인생 샷을 찍기 좋은 곳들이 많다. 여기서 사람들이 사진을 계속 찍는다. 가장 신기한 공간이면서 가장 몽환적인 공간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기록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마치 우리가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하듯이 말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앉아서 조용히 영상을 감상해보자. 기념품 숍이다.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나같이 다 이뻤다. 디 뮤지엄이 정말 기념품 하나는 항상 잘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밑에 두 개이다. 폰 케이스와 아트북. 특히 미술전공을 하거나 자연의 색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트북이 상당히 괜찮을 것 같다. 가격은 둘 다 만 원대 중반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현장 영상을 따로 준비해보았다. 현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한 번 느껴보도록 하자. 이번 전시는 화려한 색감을 바탕으로 전시를 구성해놓았다. 사진도 사람을 아주 생각하게 만들기보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덕분에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쉽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또한 덤으로 인생샷!을 얻어 갈 수 있다는 것. 이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인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D Museum 전시 관람 시간/D Museum 홈페이지 제공 D Museum 전시 관람 요금/D Museum 홈페이지 제공 PLAYLIT Life Is a Play Groun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나요? 군 복무 중에 휴가 나와서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를 보고 빠르게 리뷰 남깁니다. 이 전시의 전시기간은 5월3일~10월28일까지 입니다. 내일 저는 다시 제 본분으로 돌아갑니다ㅠㅠ 다음 글은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최대한 빠르게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군대에서 간송 전형필과 한국 고미술품과 관련된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다음 글은 ddp에서 꾸준히 전시하는 간송의 수장품과 관련된 글을 쓸 예정입니다!
대림미술관, ‘추억담은 미술관’ 이벤트 진행
대림미술관의 전시 티켓을 간직하고 있나요? 대림미술관은 아날로그 소재인 ‘종이’가 감성적인 매체로 확장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과 연계하여 종이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시간으로 ‘추억담은 미술관’ 이벤트를 진행한다. 서랍 및 책상 속 어딘가에 티켓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관람객을 대상으로 기획된 이번 이벤트는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그 첫 번째 선물로 대림미술관의 역대 전시 티켓을 찾아 미술관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전시를 본인에 한 해 무료 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 본 이벤트는 1월 23일부터 2월 1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해당 기간 동안 대림미술관의 지난 전시 종이 티켓 소지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들과 함께 흥미진진한 미술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CURATORS’ TALK: BEHIND MUSEUM’ 시간이 마련된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미술관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와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미술관 추억을 서로 공유하며 낭만 가득한 저녁 식사를 함께할 예정. 본 이벤트는 1월 30일 19시에 진행되며, 대림미술관과 얽힌 자신의 사연을 해당 링크를 통해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사전 신청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추첨을 통한 당첨자 선정 후 1월 23일 개별 안내될 예정. 자세한 내용은 대림미술관 홈페이지(daelimmuseum.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전시 이미지는 위에서.
(2편) 움짤로 보는 50년 전 한국.gif
이전편을 보고 싶다면 링크를 누르세요 국군의 월남전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조선경비사관학교,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패용하고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월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시민들과 장병들의 어머니들이 언덕 위에서 열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청룡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김종세 대위: '적들에게 우리 대한 국군의 전투력과 기백을 보여주겠습니다.' 대한뉴스 박무환 기자: '삼천만의 마음이 국군과 함께 합니다. 호국영령들이 대한의 남아들을 수호할 것입니다. 무운을 빕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발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식목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시민들.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있다. 가을 날, 학생들 간의 유도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어느 학교 교정.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의 힘깨나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도 삼척시에 폭설이 내렸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 생활 체육으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씨름이 소개되었다. 씨름 대회를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 소나기에도 구경하는 사람들. 우승자 김학용 (당시 26세) 씨가 황소 한 마리를 상품으로 수령하고 있다. (* 김학용 씨 훗날 프로 씨름이 생기고 감독이 되면서 강호동을 천하장사로 키워냈다. 2007년 별세.) 국군 장성들 월남전선 방문.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주월 맹호부대 병사들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월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생 생도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 '웃지않는 한국 해병대' - 미국 UPI 뉴스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 연대 병력과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당시 '철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김기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서울 운동장 특설링을 가득 메운 시민들.  복싱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김기수 (당시 27세)가 도전자 프레디리틀 (미국)과 15라운드까지 맞붙고 있다. 도전자를 압도하는 김기수.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타이들 방어에 성공한 김기수(당시 27세)의 기념촬영. 1968년, 부산시 풍경 1968년, 서울의 모습 하늘에서 본 1968년 서울 첫 개통한 아현고가의 모습, 자전거가 지나다니고 있다.
예술직품의 역사성은 태생적 조건...
<미술철학사> 1권. 권력과 욕망: 조토에서 클림트까지 표지, '팔라스(아테나)와 켄타우로스' ... 이성과 본능의 상징, 지혜와 전쟁의 여신과 무지한 반인반마 2600쪽에 달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벽돌책 3권이다. 도판이 1/4 페이지를 차지한다. 실린 그림들도 낱낱이 읽어야하니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미술 철학에 한하여 봄이 오기 전에 체계라도 잡아볼 수 있다면 성공이다. 1편. 욕망의 지렛대가 된 철학 ---------- 제1장 이중 구속에서의 해방 제2장 선구적 미술철학자들 1. 최초의 계몽주의 철학자, 첸니노 첸니니 1437년 <기예에 관한 책>의 출간되었다. 스승 아뇰로 깃다의 공방에서 12년간 배운 미술의 전통 기법과 재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한 책. 밑그림, 시노피아를 그린 후 소석회 반죽이 굳기 전에 재빨리 그리는 프레스코 화법, 거기서 반전한 건식 화법인 템페라 화법, 템페라 화법에 윤택 효과를 가미한 수지유 피복을 하는 코팅기법, 아마씨 기름에 물감을 용해한 유화 기법들이 전한다. 그는 미술가에게 인문주의적 사유와 상상의 자유를 영위하는 주체적이고 자유 의지에 따른 예술행위를 강조하며, 권세가들에게 한낱 기술공으로 생각되^던 미술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도록 주문한다. 노예의 일, 기계적이라 한 미술 노동에 품격을 입히기 위한 철학적 사고를 주문하여 미술에 대한 격상을 시도한 계몽 이론가이고자 했다. 2. 최초의 인문학적 미술 비평가, 로렌초 기베르티 투시도법을 활용한 조각 작품인 피렌체 두오모 성당 세례당의 <천국의 문>(1425~1452)과 저서 전3권의 <비망록 Commentari>(1447)이 있다. 빛과 시선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를 밝히는 미학 원리를 탐구하여 빛의 발광성(루미니즘 luminism)을 아름다움의 주된 표현 방식으로 간주하고, 자연과학과 예술 정신을 이론적으로 조화시키려 한 인물이다. 고대미술의 우수성은 이론과 실재의 일치에 있다고 보고, 스스로를 인문학적 이론가로 정립하고자 했다. 3. 최초의 존재론적 회화론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선 원근법과 기하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회화의 과학화>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모든 회화의 시대성과 역사소에 주목며 회화와 역사의 관계짓기를 시도하며 회화에 미적 본질과 사료적 가치를 담아낼 것을 주장하였다. 역사화의 한 구석에 자신의 초상이 사료화되길 바라며 회화의 역사성과 통시성에 주목했다. 역사에 개입적은 회화의 특성상 이론가나 비평가도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주인공임을 피력한다. 제3장 피렌체 현상 조토, 마사초,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가 피렌체 미술 시대를 개막한 장본인. 반중세적 인식과 자연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시대정신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회화에서 평면 이탈과 입체화를 주도했다. 휴머니즘에 근거한 사실주의와 기하학에 의거한 과학주의는 인간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발견과 실존을 화가들이 화폭에 그리기 시작했다. 부르크하르트가 인정한 시인 페트라르카는 중세를 비판하며 문화 창조를 시도한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고... 문학에서 시작된 피렌체 현상은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로부터 시작된 현실적 휴머니즘과 과학적 자연주의 로 대변된다. 이성적(도덕적) 휴머니즘을 강조한 모럴리스트, 페트라르카 감성적(예술적) 휴머니즘을 더욱 적극적으로 그려낸, 보카치오 교회의 세속화를 질타하는 단테의 <신곡> vs 인성을 탐미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미술보다 문학에서 역사적 단절주의와 포스트고전주의로, 플라톤 철학의 재발견 등이 피렌체 현상의 견인차 조토의 각성제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란다. 중세기독교는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실존적 주체에 대한 자기 반성의 기회를 빼앗아 엄숙주의 경건주의로 인도하였으나 종교와 신에 대한 회의주의는 인간적 본성을 눈뜨게했다. (p71 에서...)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카 페트라르카, 대성당과 성상 조각물들을 신격의 대리보충물로 인식하고 고고학적 열병식으로만 일관해 온 중세를 <암흑시대>로 정의했다. 고대를 <문명 시대>, 중세를 <암흑 시대>, 인문주의 시대(르네상스)로 구분한 것이다. (p72 에서...)  암흑 시대란, 역사의 동인을 오직 기독교의 유일신에게만 돌리고 인간의 힘으로 비쳐 온 문명과 문화의 빛이 차단되거나 소멸된 역사 시기를 가리킨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문화와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 왔다고 하는데... 당시 세계 속 아시아는 어떤 세상이었다는 말인가? ... 피렌체 현상은 먼저 페트라르카의 역사 인식에서 시작 되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 각성하고 조토의 회화으로 이어졌던가 보다. 모든 작품은 직간접적으로 역사를 반영하며 모든 예술의 역사성은 모든 작품의 시간과 공간에 피구속된(가다머의 `입장 구속성 standortgebundenheit`), 아무리 독창적일지라도 역사성은 모든 작품의 태생적 조건이라고... <파치가의 음모>는 피렌체 르네상스의 치부란다. 왜?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기독교의 신학으로 둔갑하는 시기였다고... 14세기에는 그에 대한 반발이 건축과 조각에서 배치법과 이미지의 형식을 통해 주도되어 왔던 것이 창유리 그림이나 벽 그림 등의 회화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시작했단다. 건축의 과묵한 카리스마를 회화의 자상한 스토리텔링이 대신하며... 타락해 가는 기독교에 대한 염증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진저리가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조토 등 예술가들의 관심을 플라톤 철학에로 옮겨가게 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신전 건축으로 극복하려던 기독교의 거대 설화라... 신학에서 인간학으로, 섭리(신앙)에서 합리(이성)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인식론으로. 제4장 피렌체의 지렛대들 그 옛날 서양의 종교 카톨릭의 수장 교황은 신성 로마제국인 프랑크 왕국과 대립의 날을 세웠던가 보다. 그리고 로마를 떠나 프랑스의 아비뇽에 일시 의탁하였던가 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언급했던 '프랑스가 그리스와 로마에 이어 역사의 권위를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 즈음의 사건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후엔 독일로 넘어가게 되지만... 앙리 포시용은 중세의 대성당을 '구세주의 족보'라고 말하며, 로마네스크 조각이 신앙의 표현이라면, 고딕 조각은 연민의 표현이고, 그 말기 조각은 독실성의 표현이라고 했다... 프랑스권 - 프랑스, 나폴리, 피렌체, 교황령 신성 로마 제국 - 독일, 프랑스 남부, 밀라노 황제와 교황의 대립은 실상은 아우리스파의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의의 제기에서 촉발하였단다.  롱고바르드족의 침입, 신성로마제국에 구원 요청, 신성로마제국 황제 인정의 수순 피렌체에서는 상업과 금융의 발달로 시민 의식 확충. 1378년 비숙련 노동자 <치옴피(길드에 가입할 수 없는 단순 노동자들)의 반란> 등이 '시민 자치 도시 국가' 피렌체를 형성해 감. 코시모 데 메디치를 비롯한 메디치 가문의 플라톤주의의 르네상스 시작. 길드 중심의 공화주의를 주장하며 1439년 <피렌체 공의회> 개최. 국가적 교회주의가 아닌 시민 중심의 인문주의 표방.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튀르크에게 함락. 플라톤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엔네아데스>에서 '방사와 유출'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최초의 유출은 신적 정신이고, 다음은 세계 정신(영적인 것의 정신), 그 다음은 물질세계와의 중간 단계에 존재하는 개별적 영혼, 마지막으로 신과 가장 먼 가중 불완전한 존재들의 집합 물질세계.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주시한 이가 비잔틴의 플라톤 철학자 플레톤, 동방으로부터 사유의 전염과 언설의 감염(인류의 정신과 지성사에는 새로움의 유입이 동방으로부터였다고)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코시모를 감명하게 하고 주치의의 아들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주관케 했다고... -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동방 교회 인적 자원의 대탈출을 야기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야만이랄 수 있는 오리엔트의 콘스탄티노플 진출이 인적 자원의 서방 진입이 유도되었다. 이것이 피렌체 현상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플라톤을 계승한 플로티누스와 플레톤, 그리고 피치노의 플라톤주의는 신과 인간 영혼의 합일이 가능하다는 이론인가보다. 인간의 지적활동으로 승화된 자아를 말함인데, 성리학과 다르지 않다. 다만 성리설은 신이 아닌 군자라는 것. 신과 인간을 구분한 서양의 철학은 동양철학보다 미개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실상은 그 신이란 것이 인간에게서 발원한 어떤 기운이 아닐까? 철학은 용어만 다를 뿐인 듯 싶고, 서양이나 동양이나 기독교나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천도교나 사상의 뿌리는 인간에 있을 뿐이라는 것 산드로 보티첼리의 템페라화, <팔라스(지혜 이성 예술의 신 미네르바를 상징하기도 함)와 켄타우로스>는 교황 식스투스 6세의 사주로 나폴리 국왕 페란테가 한 무력 도발을 단판으로 물리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화한 작품. 아폴론이 사랑한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자 그 잎이 영웅을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서 기인한, 월계수의 상징이 영웅 (p100 에서...)  폴리치아노라는 시인을 기억하고 가야겠다. 피렌체 대학의 초대 교수인 모양이고, 로렌초가 후원한 사람인 듯하다. 코시모는 예술가를 지원했고, 로렌초는 예술보다 인문학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다. 화가가 후원자를 위한 봉헌화를 그리고 화가 자신도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과시하는 시대로 왔다. 제5장 피렌체 효과 * 플라톤의 이데아 - 르네상스의 철학, 초월적이고 함의적, 종교와 인산의 분리, 인간에게 이성적 능력 부여, 최고의 도덕적 이타심과 최상의 지식 가능, 프란체스코 수도회 보나벤투라, 프란체스코는 성화를 통한 포교 주력, 피치노, 폴리치아노, 피코 델라미란돌라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비유신론) - 중세의 철학, 이성적이고 논증적, 신학을 논리적으로 가르치려 함. 논리적 오류와 모순을 무릅쓰고 신앙과 이성의 융합 가능성 강조. 신앙과 이성(철학)을 결합하고자, 연역적 논리와 변증법적 형식, 스콜라 철학자 보이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고딕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고트족의 예술'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식을 말하기도 한다고... 중세 미술 - 신의 섭리와 계시를 상징, 재현의 세계 너머의 영적 피안의 세계을 상징적으로 표현 르네상스 미술 - 역사 의식과 예술 의지가 인간의 형상과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성상주의(iconism)에서 벗어남 산드로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이교적 이신적 헤시오도스의 시집 '신통기'에서 하늘의신 우라노스의 아들 크로노스가 어머니 음부에 숨었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로 던졌는데, 생식기 주변의 물거품이라는 아프로스가 일며 태어난 아프로디테=비너스라고... 프리마베라 - 왼쪽부터 봄바람 요정 제퓌로스, 대지의 여신 클로리스, 꽃의 여신 플로라, 비너스, 헤스오도스의 세 자매(삼미신, 아름다움 아글라이아, 우아함 에?우프로시네, 기쁨 탈(레이아?)리아 - 세네카는 주는 것, 받는 것, 되돌려주는 것, 곧 관대함),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머큐리), 비너스의 머리 위에 큐피드 분쟁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 레테(망각의 화신)와 아테(재앙의 여신) 조르조 바사리 - <예술가 열전>을 쓴 미술사학의 아버지, 재생, 부활이라는 '르네상스'라는 말도 처음 사용  p123  예술가에게 철학의 빈곤은 그를 공허한 장인으로만 머물게 한다. 미켈란젤로는 14세에 철학을 만난다. 로렌초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폴리치아노로부터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를 피코 델라미란돌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적 흡수력이 강한 14세에 철학을 만난다는 것... 미켈란젤로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던가 보다. 로렌초가 죽고 줄리아노의 아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죽자 혼란한 틈에서 광기의 피렌체를 떠났다가 안정되니 돌아왔단다. 그리고 인문주의적 그림의 여전함이라니... 제6장 곽외의 천재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p145  천재성의 조건은 언제, 어디서나 같음보다 다름에 있다.  - 중세의 미술가들의 예술 의지는 원형에 대한 모방에 한정되었고, 종교적 독단주의 성행. 책에서는 다빈치가 미켈란젤로에 비해 소외와 배제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동성애에 연루되었고 그로 인해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던 점 등을 들었다... 이데올로기적인 철학보다 가치 중립작인 과학에 몰두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지로 인식 다빈치 - 미술의 과학화, 종교적 성화만, <최후의 만찬>은 형상화를 위한 재현 기법의 성서 회화, 회화와 해부학은 가시적 현시성의 도구로 표피적 현시주의, 죽음의 메시지로써의 성서주의로 시대정신이나 역사와 철학에 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고... 미켈란젤로 - 미술의 철학화, 신화를 가미한, <최후의 심판>은 신화적 요소와 회화적 융합의 지평 융합적 다빈치의 미술의 과학화의 지적 계보 ... 레온 알베르티의 기하학적 원근법과 회화론을 중간 숙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만학, 마르크안토니오 델라 토레로부터 전수된 해부학이 다빈치를 거쳐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의 해부학으로 연결됨. ... 다빈치의 회화론은 대기의 자유분방한 유동성에 의한 스푸마토(sfumato)와 빛의 명암 현상에서 비롯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의 뚜렷한 대비) 개념으로 이론화한 물리학적 대기원근법에 더하여 인체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 이해까지 동원됐다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알베르티와 다빈치의 관계가 초보자와 완성자, 또는 아마추어와 대가의 관계라고... 다빈치의 미완성은 느긋하고 게으른 습관에서 비롯된 책임감과 자존감의 결여라고... 유화 작업도 프레스코화와는 다르게 천천히 하는 작업이 가능한 게으름의 소산이라고... 철학적 미숙함과 예술 의지의 불철저함이 낳은 미완성... 흠... (p82에서...)  초상화란 내재된 인간성의 시각화이자 내면의 표상화이다.... 죽음을 투영하는 유서이기도 하고 정지된 삶의 단면도이다. - 평범한 상인 프란체스코 조콘도의 세 번째 부인. 당시 16살이던 리자 디 안토니오 마리아 게라르디니가 24세 되던 해에 그려진 '모나 리자'. 권력층의 주문도 무시하고 그렸던 그림. 다빈치는 무명의 여인을 그려 예술성을 발휘하고자... 모나 리자에 대한 수사는 어떤 의미일까? 암수 한 몸, 양성인인 안드로진(그리스어로 남andero과 여gyne). '남성의 수천 년 동안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그림이라는데... 마르셀 뒤샹의 [L.H.O.O.Q]...? 제목의 의미는? 르네상스에는 유사 강박증이 있었더란다. 고전에 대한 주석도 유사했다고... 그래서 실물처럼 그리는 초상이 유행했다고... 다빈치도 특히 라파엘로도... 진리란? 감각적 - 이성적, 가시적 - 가지적, 실재적 - 관념적, 상대적 - 절대적, 유한한 - 영원한, 가변적 - 불변적,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철학적 담론의 유형들을 살펴볼 만한... 기초 교양 - 문법, 수사학, 논리학 전문 교과 -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9명의 뮤즈, 에라토-서정시, 카리오페-서사시, 에우테르페-음악, 테르포시코레-무용, 탈리아-희극, 멜포메네-비극, 클리오-역사, 폴리힘니아-종교, 우라니아-천문 믿음, 희망, 사랑의 삼주덕 이 시현되는 이상향에 푸토(이탈리아어, 어린 유아)와 이성적 사리 분별의 미덕, 기백과 용기의 미덕,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절제의 미덕의 세 여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의라는 개념의 라파엘로의 <시민법과 교회법의 확립>, 이성-힘-열정, 지혜-용기-절제 (p175, 각주 98에서...)  로제 드 필의 <회화의 균형>에서 데생, 색채, 구성, 표현을 기준으로 라파엘로를 최고로 여김 2편. 욕망의 표현형으로부터 본 미술 ---------- 제1장 유보된 자유와 표류하는 미술 (p185에서...)  이탈리아 경제의 내리막, 모직업과 조선업의 붕괴, 일부 엘리트에게만 집중되는 부와 그들의 욕망은 산업과 무역의 발달을 저하시켰다. 전쟁과 전염병, 지동설 포기 서약 등이 서양의 중심을 이탈리아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옮겨지는 데 일조했다. 스페인을 필두로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의 패권 경쟁 양상으로 국왕이 신의 대리자이자 신 자체라는 인식, 절대왕정의 시작. 영국의 제임스 1세, 프랑스의 잉리 16세로부터 시작되어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 베르사이유궁전, 건축설계 루이 르 보, 실네건축설계 아르두망 망사르, 조경 르 노트르, 자문 극작가 라신과 몰리에르, 천장과 벽 장식 왕립 미술 아카데미 관장 샤를 르브룅. 루이 14세가 설립한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포스트르네상스와 다름 없다고... (p193에서...)  잔 파올로 로마초의 비유에 따르면 미술계는 태양계로 다빈치가 태양, 미켈란젤로가 토성, 과텐치로 페라리가 목성, 폴리도로 칼다라는 화성, 라파엘로는 금성, 만테냐는 수성, 티치아노는 달로 규정했다는데... 로마초는 훗날 프랑스 아카데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바로크는 성화에서 역사화로 가는 길이라는 거지... 앙드레 펠리비앙, 프랑스 왕립 마술 아카데미의 실제적 프로그램 구상자로 상상된 행위들의 표현이 회화의 진수라고 보고, 인간의 대사건을 그려야 탁월한 자, 살아있는 동물을 그려야 그 다음, 그리고 풍경, 꽃이나 과일 같은 정물을 그리는 화가의 순으로 위계가 있다고... 물리적 조화는 기하학적 비례를 따진 감각미보다 영혼을 담은 우아미 추구. 르네상스가 신앙에서 이성으로, 신학에서 인간학으로,성상주의애서 인문주의로 갔다면 아카데미는 인간들의 거대 서사인 역사화를 이념화한 인간사를 중심에 두었다. 근대 정신, 17세기의 정신적 주류, 과학주의와 이성적 합리주의 스페인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계몽 군주 펠리페 5세 때인 1710년부터 준비하여 페르난도 6세 때 1752년에 개원 엘 그레코 ...인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의 마니에리스모풍. 자의적이고 개성 강한.. 디에고 벨라스케스 ...루벤스 효과.  국가 파산을 선언한 펠리페 4세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 화가의 작업실을 표현한 어두운 왕가의 현실에서 자화상을 넣어 자기 반성적 역사화로.. 프란시스코 데 고야 ...비판적 이성과 철학적 신념의 화가. 엽기적이고 잔혹한 계몽주의적 작품들. <카를로스 4세와 그 일가>(1800)에 자신을 그려 넣고 권력의 중심에 있는 요부로 알려진 왕비를 <늙은 여인들의 시간>(1810~1812)으로 조롱하듯 묘사 절망과 허무에서 비롯된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생각들로 고뇌하고 저항하는 궁정 화가로.. 저자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유목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 정착하고자 하는 본능은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 욕망의 발현은 두려움을 떨쳐낸 용기있는 자들의 전유물일까? 힘이 있는 자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목 욕망이라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근대로 접어든 시대에 대서양 국가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패권 경쟁은 식민 시대를 만들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자유를 외치면서, 다른 종족, 민족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는 표리부동의 오만의 시대로... 네덜란드는 1848년(?: 1648년인 듯. 1848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시민들의 투표권이 발효되었다는데...)에 겨우 독립국가로서의 헌법을 제정했단다. 많은 전쟁과 변화가 체질화 되었달까? 네덜란드는 그렇게 제 살 길을 찾아 패권 국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구, 폐쇄 정치로 망국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패권 국가의 번영은 침략과 피로 이루어진 역사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화풍을 역사 의식과 철학이 결여된 비합리적이고 과장된 바로크식의 마니에리스모 풍의 화화란다. 절대왕정이 성립될 수 없는 네덜란드라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정체성 결여와 역사적 이념의 부재를 낳았을 것이라고... 철학적 신념(내면 세계를 통찰하는 본질 직관)과 시대 인식이 훌륭한 미술가를 낳는다고... 프란스 할스 ...웃음으로 만든 화풍의 네덜란드인을 치유하려 한 국민적 화가라고... 웃음의 기호, 그 의미태는? 저자는 웃음은 웃는 자의 자유를 표상한다고 했다. 서민들의 웃음으로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것. 웃음보다 인간적인 것은 없다고? 할스의 작품은 그렇지... 웃음은 관계의 표현이고, 사회학적이라고 베르그송이 말했다고. 렘브란트 반 레인 ...윤곽선을 안 쓰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대단히 강렬한 음영을 띠고 있다고 엉뚜하거나 천재로 인식했단다. 렘브란트는 문맹에 배운 것도 없었다던데... 34세, 53세, 62세 세 번의 초상화. 초상 욕망은 존재론적이든 인식론적이든 본래적이고 생득적인 것이란다. 그럴까? 거울의 발명과 자화상, 초상화 등에서 증명된다는데... 초상화가 인류학의 역사라면 자화상은 한 장의 자서전, 마지막 자화상은 유서이며 인생의 단면도라... 말년의 초상회는 죽음에 이르는 실존, 몸 철학이라고... 뒤로 이어서... ~~>
전 세계 아름다운 밤하늘 지역 ✨
푸른 밤,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바라본 적 있나요 ? 예전에 몽골로 여행을 떠났을 때, 초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바라봤던 은하수와 별똥별은 아직도 저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_* 저와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오늘의 카드 ! 아름다운 별빛으로 반짝이는 밤 하늘, 저와 함께 만나보실래요 ? ✨✨✨ 세로 아마조네스, 칠레 (Cerro Armazones) 초대형 망원경 E-ELT가 설치되어 있는 곳 브라이스 캐니언, 미국 유타 (Bryce Canyon) 클레이튼 레이크 다크 스카이 파크, 미국 뉴멕시코 (Clayton Lake Dark Sky Park) 노섬버랜드 다크 스카이 파크, 영국 (Northumberland Dark Sky Park) 체리 스프링스 주립공원, 미국 펜실베니아 (Cherry Springs State Park) 갤로웨이 산림공원, 스코틀랜드 (Galloway Forest Park) 아오라키 맥켄지 국제 밤하늘 보호지구, 뉴질랜드 (Aoraki Mackenzie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 젤릭 스타리 스카이 파크, 헝가리 (Zselic Starry Sky Park) 나미브랜드 국제 밤하늘 보호지구, 나미비아 (NamibRand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 몽-메간틱 국립공원, 캐나다 퀘벡 (Mont-Megantic National Park) 그랜드 캐넌, 미국 애리조나 (Grand Canyon) 모레인 호수, 캐나다 밴프 (Moraine Lake) 밴프 국립공원 안. 밤이면 별이 가득 담긴 호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재스퍼 국립 공원, 캐나다 앨버타 다른 밤하늘 보호지구를 몽땅 넣어도 남는 커다란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레이트 베이슨 국립 공원, 미국 네바다 (Great Basin National Park, Nevada) 위루나,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Wiruna) 데날리 국립공원, 미국 알래스카 (Denali National Park) 8월에서 4월까지, 낮은 5-6시간뿐. 라 포르투나 산, 코스타리카 폴로니니 밤하늘 보호지구, 슬로바키아 (Poloniny Dark Sky Park) 픽두미디 밤하늘 보호지구, 프랑스 (Pic du Midi Dark Sky Reserve) 헤드랜즈 밤하늘 보호지구, 미국 미시건 (The Headlands Dark Sky Park) 처칠, 캐나다 마니토바 여름에는 거의 해가 지지 않지만, 반대로 겨울에는 오로라와 별하늘이 지배하는 곳. 무살라, 불가리아 (Musala) 발칸산맥 최고봉 중 하나인 무살라 산은 "신의 곁"이라는 의미. 웨스트하벨랜드 밤하늘 보호지구, 독일 (Westhavelland Dark Sky Reserve) 화이트 마운틴스, 캘리포니아 (White Mountains) 낮보다도 밤이 월등히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브레콘 비콘 국립공원, 영국 웨일즈 (Brecon Beacons National Park) 최초의 밤하늘 보호지구 중 하나. 키루나, 스웨덴 (Kiruna) 북극권에 속하는 작은 마을. 로키 산맥 국립 공원, 미국 콜로라도 (Rocky Mountain National Park) 케리 국제 밤하늘 보호구역, 아일랜드 (Kerry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 마우나케아, 미국 하와이 (Mauna Kea) 아카디아 국립 공원, 미국 메인주 (Acadia National Park) 매년 "밤하늘 축제"의 개최지. 켄짐쿠직 국립 공원,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 (Kejimkujik National Park)
(1편) 움짤로 보는 50년 전 한국.gif[데이터 주의]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당시 경상남도 지역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삼베를 말리는 어머니의 분주한 모습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에서 농민들이 소를 살펴보고 있다. 1962년,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다. 6.25를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0년대 초반, 평범한 어촌 부둣가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19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다섯이 태어나면 몸이 약한 아이는 첫 돌을 채 넘기지 못하던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 직원들이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일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적인 문제였던 쥐떼 창궐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가장과, 갓난 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교복 바지를 걷어올리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 완공.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한국 관료들의 공손한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웃음을 자아내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갖춰 입은 파독 간호사들이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만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만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삼천만이 힘을 합쳐 일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