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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 원양 (夏侯惇 元讓) A.D.? ~ 220

이 칼럼에서 앞서 다뤄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나아가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대부분,
본래의 생애와 인물됨이 평가절하 내지는 너프를
잔뜩 받거나 또는 버프를 이빠시 받은데 비해...
버프or너프를 떠나 그 실제와 소설 속의 이미지 차이가
확연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오늘의 주인공인
"하후돈"이다.
오늘날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인 "패국 초현" 출신이며
조조와 동향이고 여기는 당시 서주의 소패 인근인데,
그때의 이 곳은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과 후한의 수도인
낙양, 그리고 업과 허창과 함께 후한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인 꽤나 잘 나가는 동네였다.

도시남자 하후돈은 어려서부터 터프가이의 싹수를
뽐내며 자란 대개의 무장들과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학문을 배우던 나름 곱상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고
대체로 학당에 나가 공부하고 교육받던 당시의 학생들과
달리 집으로 스승을 모셔 배우는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은근 좀 사는 집 아들이였던거 같다.
하기사, 파탄에 가까운 후한 말의 배곯는게 일상인
여느 백성들에게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중산층 이상은 되었다는 반증.(올~~)

그러던 돈이가 14세 때....
어떤 이가 그의 스승을 하후돈 앞에서 모욕하자,
그 자리에서 패죽였다는 기록을 보건데
단순 중2병을 넘어 이미 그 나이 때부터 완력도,
의기도 남달랐던 슈퍼청소년이였던거 같다.
지금 만약 어떤 중학생이 누가 지네 담임 흉본다고
그 사람을 때려 죽이면 바로 소년원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후돈이 강직하다며 사람들이
그의 의로움을 칭찬한걸 보면.....
진짜 후한 말 중국이 개판은 개판이였던 모양.ㅋ
어릴 때부터 조조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체구가 작고 근력도 그냥저냥이던 조조의 주먹 노릇을
했던 하후돈은 그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도
조조가 거느렸던 숱한 인물들 중 가장 드높은 충성을
바친 맹목적인 조조빠였고 조조 역시 자기 휘하의
문무에서 날고 기던 무수한 쫄자들 중 하후돈을
가장 아꼈기에 그런 하후돈은 그래서인지 항상
본인의 능력 이상의 직위와 직책을 맡았었다.



연의에서는 물불 안가리고 무예와 용맹이 대단하여
조조세력의 초창기, 전투에 앞장서는 맹장으로 그려지나
사료에는 그의 군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심지어 여포가 활개치던 시절에는 조조와 여포의
전투에서 여포군의 사항계에 속아 인질로 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하후돈을 득템하여 몸값을
요구하던 적들에게 당시 조조휘하의 '한호'라는
하후돈의 부장이 협상 그런거 없이 인질범들을
그대로 공격했고 하후돈은 그 혼란을 틈타 탈출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ㅋㅋㅋ

물론, 한호 입장에서는 인질극에 휘둘리다 군세가
꺾이고 군법이 문란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그랬고
후에 조조 또한 한호를 매우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앞으로 그 어떤 인질극에서도 절대 상대와
타협없이 인질의 생존과 구출여부 떠나 공격하라는
메뉴얼을 정했다는... (하후돈 지못미;;;)
하후돈은 이 당시 여포와의 전투에서 인질로
잡히는 것도 모자라, 화살에 왼쪽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며 "장애인"이 되는 오지게 재수 잡치는
일까지 당하고 만다는.... T-T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간지폭발의 하후돈은 바로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적장이
쏜 화살에 왼눈을 직격 당하자 화살을 뽑아,
딸려 나오는 안구를 씹어 먹으며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말달려
자기 눈에 활을 쏜 고순의 부장인 조성을 한 창에 꿰어 죽이는
그야말로 개간지의 카리스마를 뿜는 장면이 나오지만.... .

이건 진정 개소리 of the 개소리가 아닐 수 없고
하후돈이 받은 역대 최고최강의 버프라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전투 중 누가 어디에서 쏜지도 알 길 없는
난전이 어딘가에 맞고 원바운드 되어 눈으로 튀었거나
또는 아슬아슬히 눈가를 스쳤거나 해서 다쳐 그리 된 것.

실제로는 눈에 화살을 맞으면 거의 즉사하거나
쌔뻑좋게 살아도 어마무시한 통증과 출혈에 의한
쇼크로 그대로 의식을 잃는다....

아무튼 저무튼간에,
하후돈은 이렇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요즘 기준으로
시각장애 6급에 해당하는 "단안실명 시각장애인"이 된다.
참고로 단안실명은 시각장애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ㅋㅋ
애꾸관련 이야기를 더해 보자면,
일단 한 눈이 저리되면 당장 원근감과 남은 눈의 시력도
크게 떨어지며 일상에서 남은 눈의 피로도 쉽게 온다.
저 당시의 전투는 거의 대개 칼과 창이 맞붙는 백병전!
사지 멀쩡해도 사소한 삑사리 한 번에 죽거나 병신이
되기 십상인 와중에 시야각이 크게 제한되는 애꾸는
엄청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설령 하후돈이 진짜 혼자 무쌍난무를 찍는 무력깡패라
할지라도 저 시점부터는 전투력이 급감했을 것이며,
실제로 하후돈은 저 시점부터 전투의 전면에 나서는
지휘관보다 주로 후방지원이나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닉 퓨리처럼 검은 안대를 차고
나와 궁예간지를 자랑하지만, 역사기록에는 안대착용에
관련된 언급이 없기에 아마 그냥 드러내고 다녔을걸로
추측한다.

하후돈이 삼국지연의나 그 후의 여러 매체들에서
맹장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외눈"에서 오는 어딘가 모를ㅎ
오히려 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착안된 것.
동서양 막론, 예나 지금이나 외눈 + 검은안대는 강력한
악당보스의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지금도 영화나 만화보면
외눈들은 약국이나 안과에서 주는 하얀안대가 아닌
어디서 샀는지 꼭 검은안대를 했고 그 대상들은 해적선장,
빌런, 주인공의 동료라도 나중에 배신 때리거나 또는
악당이였다 어떤 계기로 주인공 일행되는 놈들이 많다.
(하긴, 같은 애꾸라도 하얀안대 끼면 바로 환자이미지)
애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는 게..ㅋ
"애꾸눈"이미지는 정사나 연의나 솔직히 별반 그리
눈에 띄는 업적이 없음에도 하후돈이 조조측의
빼놓을 수 없는 장수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고..
당시에야 빡치고 우울했을 하후돈 본인이겠지만
눈 하나를 내준 덕에 거의 2,000년 가까이 지난
현세에서도 하후돈을 조조측의 메이커 장수가 되게
해줬으니 너무 억울해 할 건 없지 않나 싶은ㅎㅎㅎ

훗날, 후한 최고의 아가리파이터이자,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예형"이 하후돈을 "완체장군(完體將軍)"이라고
깠는데, 저 말 뜻 그대로는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는..
이는 애꾸인 하후돈을 비꼬아 놀리는 말이다.
혹자는 비쥬얼이 좋았던 하후돈을 허우대만 멀쩡하다며
놀리는 한편, 나름 외모는 인정한다는 말이였다고도
하는데, 사료의 원문과 예형의 스타일 및 당시 분위기를
고려 시... 그냥 비꼬고 놀린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위에서 살짝 언급되었지만,
당시 기준에 하후돈은 용모가 꽤 먹어주던 모양인지
외모의 훈훈함, 멋짐을 짧막하게나마 언급된 자료들이 있다.

성격도 대단히 좋은 양반이였던 걸로 전해진다.
조조따라 거병 후, 줄곧 조조진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훗날 무관직의 정점인 대장군에 올랐음에도
생애동안 청렴하고 검소하여 물욕을 부리지 않았고
간혹 어쩌다 포상을 받아도 자신의 부장들과 병사들에게
배분 해줬으며, 애꾸가 된 다음 하후돈이 지나가면
종종 병사들이 "맹하후(盲夏侯/장님하후돈이란 뜻)"라며
수군대고 놀려도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막사에 들어가
혼자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부장들이나 간혹 병사들과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웃으며 떠들기도 하여 병사들에게는 위엄 서린 어려운
지휘관이라기보다 친근한 형님 타입이였고
한중정벌 당시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순찰 중
예상 못한 코스에서 장로의 병사들과 마주해 난전을
벌이던 생사위기에 처했을 때, 부장 하나가
"장군! 에워싼 적병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급히 외치자,
"다행히 내 눈에는 적병이 반만 보이니 괜찮네!"라며
위기상황에서도 농을 치는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
조크도 날릴 줄 아는 나이스가이였다.

장수들에게는 군법을 엄정히 적용했으나
일반 병사들에게는 비교적 널럴히 대하여
큰 중죄가 아니라면 되도록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라
누가 조조에게 소원수리라도 긁었는지,
조조에게 불려가 군기강 해이유발 관련으로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군중에도 학자를 초빙해와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열도 대단했고, 그래서인지..
단지 야전임무뿐 아니라 다양한 군사관련 행정처리도
탁월했다고 한다.

토목에도 소질이 있는지, 진류태수 시절에는
가뭄이 들자 병사들 동원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그때 본인도 같이 작업복을 입고 흙을 짊어 날랐다.
위에 나열된 사례들을 보면 알겠지만,
병사들과 가까움 + 후방보급임무 위주 + 군무행정탁월
+ 공사에 능함 이런 특징들이 어우러져,
삼국지 좀 아시는 분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하후돈의
별명 중 하나인 "행보관" 타이틀이 생겨난 것.

실제로 군사적 업적이 거의 없음에도 조조가 그를
여러 기라성같은 명장, 맹장들의 윗자리에 앉혔던 것도
조조 역시 충성심이 드높고 관리력이 준수하며
훌륭한 인품으로 후배장수와 병사들을 아우르는
큰 형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그게 다행히 하후돈의 적성에도 맞았다.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출신을 떠나 거의 대부분
하후돈을 잘 따르는 편이였고 전형적 무장임에도
책사들과도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지냈던 걸로 보여진다.

서황과 장료가 조조휘하로 들어왔을 때
다른 기존 장수들에게 그들을 인사시키며
빠른 적응을 도운 것도 그였고 장합과 고람이
원소측에서 투항했을 때도 관도대전 마친 후
환영한다며 잘 해보자는 서신을 보낸 것도 그였다.
대체적인 이미지처럼 맹장은 비록 아니였으나
무장임에도 뛰어난 보급과 행정능력 및
부하나 후배들을 잘 아우름과 동시에 변함없는
조조를 향한 충성과 겸손, 청렴을 갖춘 듬직한
하후돈을 조조는 매우 아껴, 무슨 일이 있건
좋은일의 포상에서는 항상 하후돈을 챙겼고
수시로 그에게 필요한건 없는지 살폈으며
하후돈이 눈을 다쳤을 때, 하루동안 잠도 안자고
하후돈 곁을 지켰으며 하루에 세 번씩 하후돈의
부상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부득불 하후돈을 꾸짖은 후에도
몰래 하후돈에게 사람을 시켜 선물이나 술, 고기 등을
보내 하후돈을 뒤로 달랬고 공식석상에서는
직위로 부르며 군신의 예로 대했어도 사석에서는
조조가 이름을 부르며 격의없이 대한 몇 안되는
인물이였다.


그런 아낌을 받아서인지....
조조의 죽음이 임박한 무렵 크게 상심하여 본인도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다, 끝내 조조가 사망하자
슬픔 속에 지내다 결국 병상에 누웠고
조조 사후 즉위한 조비가 그를 위로하고 그간의
공로를 기려 대장군에 봉했지만 이미 병이 깊어
골골대던 하후돈은 대장군 임명 후 몇 달 뒤 사망한다.
완력에서는 허저나 전위에 비할 바 아니였다.
무예가 뛰어나 장료나 하후연처럼 전술적 활용도가
뛰어난 것도 아니였다.
장합이나 서황같이 우수한 지휘관도 아니였다.
후방에서 서포트를 잘했다한들,
행정처리가 탁월했다한들,
무수한 조조 아래의 먼치킨 문관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뭐 하나 유별난 게 없이 이도저도 아니라 할 수도 있는
그였지만 주군에 대한 깊은 충정,
부장들은 물론, 당시로서는 소모품으로 여겨지던
병사들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대함 그리고 고위직임에도
늘 청빈했던 참공직자의 자질이 충분했던 그였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숱한 이들을 제치고
철저한 능력지상주의자였던 조조의 총애를 받은
그의 행보는 그 시대는 물론, 지금도 귀감이 된다.



장애를 딛고 오로지 성실함과 인성으로
대장군이 된 하후돈의 성공스토리가 부디
여러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를 바라며
지금껏 다음 칼럼까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연재하던 것을 이번은 무리해서 바짝 당겨
연재해봤다는.....ㅎㅎㅎ
.
나라 망친 아줌마 투톱의 뿌리가 뽑힌 기념비적인
현시국의 첫 주말을 부디 다들 즐겁고 알차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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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에서 유일하게 믿고 보는글입니다! 정말 감사드리며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텐데 편하게 일고있으니 고마움을 뛰어넘어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ㅜㅜ
우와.. 빙글의 무수한 컨텐츠들 중 제것이 탑이자 온리라니 T-T 정말 고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내 눈에는 적병이 반밖에 보이지않는다넼ㅋㅋㅋㅋ확실한건 하후돈의 진정한무기는 인맥을 다룰수 있는 여유와 유머러스함. 담대함이겠네요 새벽에 잘봤습니다
그러게요ㅎ 그게 무기였고 장점이던, 현세에서도 충분히 제몫할 사람 아니였을까 싶어요
오 이번칼럼은 유머감각이 돋보이시는 칼럼이네요~언제나 느끼는거지만 필력이 정말 뛰어나세요
우와... 정말요?ㅎㅎ 솔직히.. 저는 제가 써서 그런지, 쓰는 중간중간 그리고 다 쓴 후, 오탈자나 문법, 띄어쓰기, 문맥흐름관련해서 잘못되거나 이상한 부분 없는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수정하고 다듬느라 여러 번 읽어보는데...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종종 필력칭찬 해주시는 분들의 말이 기분은 좋으면서도 잘 와닿진 않아요ㅋㅋ
흥미진진하네요!
그렇죠?ㅎㅎ 고마워요, 주말 재미지게 보내세요
전 여지껏 하후돈이 장료나 서황과 맞먹는 맹장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면모가 있었다니 색다르네요~ 글 잘봤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올라오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ㅋㅋ 나라 망친 아지매 두 분이 탄핵 당하는 이 좋은날 삼국지 칼럼까지 읽을 수 있다니 기쁨이 두배네요~
오히려 매번 너무 오랜만에 올리다 이번은 좀 바짝 당겨 올렸는데ㅋㅋ 되도록 빨리 연재하고자 애는 쓰지만 쉽진 않아서 ;;; 양해 부탁 드려요 ^^ 재현님 댓글은 반갑게 기다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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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별로였던 육중완 행동.jpg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MBC <나혼사 산다>를 다시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 본 에피소드에는 김동완, 육중완, 이국주가 나와 김동완이 두 회원님들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육중완의 행동이 참 별로더라구요~ 밥을 먹기 전 김동완이 육중완, 이국주에게 열심히 스키를 가르쳐 줬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파스타에 스테이크까지 열심히 만들어주었습니다. 자기는 밥도 못먹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요~ 맛있게 먹는 이국주. 그런데 계속 김동완에게 김치 찾는 육중완. 이국주가 그걸 보다가 육중완에게 나중에 결혼해서 와이프에게 이러면 안된다. 와이프가 밥도 못먹고 열심히 요리해주고 있는데 자꾸 김치만 찾고 이런건 느끼하다, 맛 없다 이런 표현 같으니까 해주는 사람의 기분이 상할 수가 있다 ㅡ 고 얘기해요. 하지만 육중완은 전혀 이해불가. 육중완이 이국주말에 반박한답시고 내놓은 말이 저거...으이구 그 말이 아니잖아요... 답답한 이국주. 그게 아니라 어느 정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거죠~ 김치먹고 싶은 사람은 김치먹고, 안먹고 싶은 사람은 안먹으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하는 육중완. 지금 그게 포인트가 아니라 김동완은 수업도 가르쳐주고 요리도해주고 밥도못먹고 있는데 열심히 요리해줬더니 맛있다 이게 아니라 계속 김치 찾고 중얼중얼... 이국주말 무시하고 바로 또 김동완에게 밥은 없냐고 하는 육중완 ㅡㅡ 요리하는 사람한테 자꾸 밥달라 김치달라 으휴... 상대방의 성의에 최소한의 배려 보여주는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외로운 빙글러에게 하트와 댓글로 관심 좀 주세요. (찡긋_★)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소설이 된 게임, 다섯 작가의 빛나는 상상력과 '웃픈' 현실
[서평] 하이퍼리얼리즘 게임소설 단편선 '엔딩 보게 해주세요' 요다 출판사의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게임 업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던) 소설가 다섯 명의 게임 소재 소설이 담긴 단편 소설집이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의 김보영, <S.K.T>의 김철곤 등 이름난 작가들이 앤솔로지에 참여해 SF, 판타지 독자의 이목을 끌고 있다. TRPG 작품을 쓰는 김성일 작가까지 다섯 명 모두 게임 시나리오를 만든 적 있으니 작가의 경험이 소설이 된 셈이다. 김보영의 <저예산 프로젝트>는 증강현실 게임이 보편화된 한국에서 독창적인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이세연과 그의 팬이자 안티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시니컬한 '나'는 "느낌을 구현하지 못했다면 게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어"라는 고집 센 이세연과 그녀의 게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다양한 시공간에 렌즈를 맞추면서 게임과 선택이라는 주제를 말하는데, 비현실적이면서도 갭모에가 느껴지는 결말에 여운이 길게 남는다. <마비노기>의 팬픽을 쓰다가 게임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로 활동 중인 전삼혜는 <당신이 나의 히어로>를 썼다. '마지막 왕'이라는 가상의 판타지 RPG를 리메이크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메인 플롯. 이전 작품의 이세연 게임이 증강현실이었다면, 마지막 왕은 '감각 동기화 게임'이다. 게임을 새로 만들면서 일어나는 개발팀의 에피소드가 게임이 제공한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어느 유저의 사연과 만나면서 훈훈함을 자아낸다. <성전사 마리드의 슬픔>은 김성일의 TRPG <메르시아의 별>을 하는 플레이어들과 PC(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이 없을 때 장난감이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설정의 <토이스토리>처럼 PC에게 플레이어들이 즐기는 게임과는 다른 캐릭터와 줄거리를 부여한 셈이다. 작가는 플레이어들의 게임과 PC의 속사정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데, 유능한 TRPG 마스터가 아니라면 짜낼 수 없는 이야기다. <성전사 마리드의 슬픔>의 무대 <메르시아의 별>. 같은 작가가 썼다. 김인정의 <앱솔루트 퀘스트>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수 없음'을 소설로 썼다. 팀플레이 과정에서 나름의 애정을 쏟았던 게임 시나리오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치열하게 보여준다. 이는 블라인드 게임라운지의 인기 포스트를 읽는 듯 절절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임사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이전투구가 다소 텁텁한 맛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작가는 그렇게 대충 사는 것과 너그럽게 사는 것이 대체 뭐가 다른지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한 김철곤의 <즉위식>은 시놉시스만 읊어도 재밌다. 다 망해가는 MMORPG 회사의 사업부장 '탁민'이 '무만왕국'으로부터 자기 나라에 게임을 서비스하고 싶으며, 왕자의 국왕 즉위식을 게임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청탁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이 착착 이루어지면서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데, 다섯 작품 중 (사업적으로) 가장 비현실적이지만 인물들의 배신과 집착은 그와 반대로 현실적이어서 기묘한 재미를 준다. (출처: 요다 출판사) '오래전'을 '오랜전'으로 쓰는 등 중간중간 오탈자가 거슬린다는 점과 책 표지와 내용물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소설집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요즘 그런 부류가 과연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싶지만) 게임을 모르는 SF, 판타지 독자들도 즐겁게 페이지를 넘길 것이며, 게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적 있는 이라면 '웃픈' 감정이 일 것이다. 게임이라는 작품, 상품, 놀 거리 주변을 공전하며 기사를 쓰는 기자도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이 소설집으로 게임 개발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으나, 게임을 향했다가 굴절됐던 상상력이 소설의 형식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은 독보적이었고, 흥미로웠다. 기자는 작가들에게 모종의 동질감도 느꼈는데, '창작하려는 사람의 상상력은 어떤 방향으로든 결실을 보는구나' 싶었다. 기자도 직업적으로 글을 써서 사람들 읽히는 사람 아닌가? 오르한 파묵은 하버드에서 한 강의에서 소설이라는 산문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사고들을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동시에 믿고, 이해하게 만드는 특별한 구조"라고 정의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존재를 잊고, 소설이 작가의 창작이라는 것도 잊는다. 독자는 소설이 팩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동시에 모른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 "아찔하고 모호한 느낌"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아찔하고 모호한 소설이다. 다섯 작가는 게임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고, (성공 사례도 있었겠지만) 대개 좌절을 겪었다. 추측하건대 좌절의 원인은 '어른의 사정'이다. 게임은 종합 예술이면서 동시에 팔아야 하는 물건이다. 이 필연적 딜레마를 작가들은 소설로 극복한 것처럼 읽힌다.  그렇게 웃픈 현실은 빛나는 상상력으로 승화된다. 이를 생각하면 앤솔로지는 전에 없던 특별한 소설집으로 다가온다. 오르한은 같은 강의에서 "소설이란 논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상상을 통해 자유롭게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에 호소하는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정리하자면 <엔딩 보게 해주세요>는 '어른의 사정'이 투여되지 않은, 생생하고 애정 넘치는 추체험이다. 인용한 오르한 파묵의 강의는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민음사)에 정리되어있다.
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게임평론가는 대체 뭐 먹고 살아요?"
게임평론가 이경혁을 만나다 이경혁 평론가는 약속 장소에 전기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직업적 글쓰기를 하느라 육아를 전담하는 그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이웃들 혼을 쏙 빼놨다는 수다로 기자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기자는 그와 필요한 말보다 잡담을 더 많이 나누었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자신도 모르게 전기자전거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다.  넋을 놓고 전기자전거의 효용과 멋짐을 듣게 하는 그는 다행히 사이비 종교 전도사가 아니라 게임평론가다. 이경혁은 15년의 회사원 생활을 그만두고 각종 매거진에 게임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을 주제로 한 교양 강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한국 게임 씬(Scene)에서 그 수가 극히 적은 '평론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앞으로의 꿈은 있을까? 무엇보다 뭐 먹고 살까? # "게임평론가는 뭐 먹고 살아요?" "게임평론가는 뭐 먹고 살아요?"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 음...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웃음)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부터 평론가는 아니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 이런저런 일을 했다. 오페라 공연 기획을 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마케터로 일했다. 이후 신용평가사에서 10년을 일했으니, 직장인으로 15년을 살았던 셈이다. 투잡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처음에는 경제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 먹고 살만큼 돈은 버니까. 지금은 직업적 글쓰기를 하고 있지 않나? 전업으로 글쓰기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회사를 때려쳤을 때 마인드는 '안 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든, 붕어빵이라도 팔아야지'였다.  한국 사회에서 글만 가지고 먹고사는 프리랜서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면서 봤고, 주변에 그렇게 일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예측은 했고 각오도 되어있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연재할 매체가 끊이지 않았고, 단가도 나쁘지 않았다. 식구가 3명인데 가정을 유지할 정도는 됐다. 연재 원고 고료와 강연료가 주수입원이다. 달마다 고정 수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에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슬기로운 미디어 생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등 게임 관련 교양서를 5권이나 냈다. 책을 5권 냈는데 수입은 별로였다. 몇 권 못 팔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제일 많이 팔았다. (웃음) 책을 안 읽는 분위기다. 지금 출간된 게임 책들을 보면 인문사회교양 쪽보다는 제작 실무 관련 도서가 대부분이다.  굽시니스트가 그린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만화 큰 일이다. 이렇게 대답하시면 누가 게임평론을 하려고 하겠나? 아이, 나는 솔직히 그냥 진짜 뽀록 같은데. (웃음) 누군가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이렇게 가라고 추천하기 되게 어렵다. 솔직히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이 운이 누군가에게 또 찾아올까? 글쎄. 게임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예전엔 블로그였다. 블로그에서 예전에 글 열심히 쓰다가 쌓이면 기자나 에디터에게 발굴되어 데뷔 아닌 데뷔를 한다. 내가 게임 글을 쓸 때는 블로그의 쇠퇴기였다. 미디어스라는 미디어 비평지에서 페이스북에 개인적으로 남기던 소감을 인상깊게 봐주시고, '게임으로 글을 써보라' 먼저 제안했다. 근데 이런 운이 흔하겠는가? 나는 정말 쉽게 온 거다. 쓰겠단 사람은 얼마나 많고, 잘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나? 글쎄? 잘 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하나? 그럼 나는 잘 쓰나? (웃음) 나는 미사여구를 써가며 예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글 잘 쓰는지 보는 건 독자들 문제고, 내가 딱 이렇다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나는 실력에 비해서 뽀록을 많이 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지면에 실리니까 내공이 쌓이고, 치고 나갈 수 있게 된 거지. # 국방일보 '전쟁과 게임' 연재한 게임평론가는 어떻게 집안을 설득했나? 그간 어디에 기고해왔나 짚어보자. 미디어스에서 매체 비평을 2년 반 했다. 거기서 게임을 주제로 써달라길래 그에 대해 비평했다. 게임 콘텐츠 자체에 관한 이야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 게이머들 이런 주제를 번갈아가면서 썼다. 그게 책으로 나왔는데 제목이 <게임, 세상을 구하는 또 하나의 창>이다. 원래 제목은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반려됐다. 난 그게 더 좋았는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영어로 하면 디스 이즈 낫 게임이네? (웃음) 그러네? (웃음) 이후에 매일경제에서 '게임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몇 년 기고했다. 역시 게임 관련된 건 아무거나 쓰라고 해서 진짜 아무거나 썼다. 매주 연재였으니 1년에 52개를 썼다. 1년에 게임 52개를 해보고 소개할 수 있나? 이게 쉽지 않다. 대작 나왔다 하면 100시간은 기본으로 써야 하는데. 고육지책으로 게임 환경, 정책, 최근 이슈 등을 포괄하는 1인 웹진처럼 움직였다. 매일경제로 넘어가면서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이 길을 간 거다. 본격적으로 게임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갈 수 있도록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다. 내가 매경에서 3년 정도 글을 썼으니 150개 정도 되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다 연구 아이템으로 축적됐다.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반대는 안 하셨나? 의외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저어했다. '아이씨, 이거 와이프한테 뭐라고 설명하지?' 이전 회사는 안정적인 곳이었다. 신평사라고 하면 다들 알 건데, 이걸 포기해야 했던 거다.  와이프는 회사 다니면서 내가 스트레스받는 걸 보고 있었다. 퇴사하려고 짐 정리를 하는데 진통제 박스가 3개가 나올 정도로 머리 아파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줬다.  나도 또 와이프를 열심히 설득했지. '언젠가 게임 대학이 생길 수도 있고, 거기 교수가 되어갖고...' 그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설득을 했다. 와이프가 알면서도 받아줬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군필자들이 국방일보에 연재했던 '전쟁과 게임' 코너를 기억하고 있다. 기자도 당시 스크랩했던 국방일보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 국방일보로부터 요청이 들어왔을 땐 농담인 줄 알았다. 그곳 편집자분이 굉장히 열심히 설득해줬다. 20대 남성 60만 명이 강제로 보는 매체라고 설득하더라. (웃음) 혹해서 2년 정도 기고를 했다.  2017년에 <소녀전선>에 K-2가 추가된다고 해서 그걸 주제로 글을 썼는데, 난리가 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머게시판에 올라가고, 디씨인사이드 힛갤도 갔다고 그랬다. 담당자가 그러는데 당시 국방일보 역대 트래픽 최대치를 찍었다고 한다. 화제의 '전쟁과 게임' <소녀전선> 편 (출처: 국방일보) 어떤가? 20대 남성 60만이 강제 구독하는 매체에 글을 정기적으로 실어보니. 국방일보의 가장 큰 문제는 쓴 사람은 지면 결과물을 보기 어렵고, 읽는 사람은 내가 소개한 게임을 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소개하는 게임을 해볼 도리가 없는 군인들로부터 '울화통이 터진다', '지금 나 약 올리는 거냐?' 이런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건 뭐 악플도 아니고, 웃긴 이야기도 아니고...  요새는 사병들도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되니, 이런 문제는 많이 사라졌다. 밀덕 아니면 국방일보를 잘 읽지 않을 거다.  # 사람들이 영화평론가는 알아도 게임평론가는 모른다 막상 게임 전문지에는 글을 기고하지 않았다. 사정 뻔히 알지 않나? 매체가 잘못했다기보단 구조적으로 필진을 구축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게임사에서 광고비를 집행하는 구조 아래서 자유롭게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종합 일간지는 힘의 균형이 배분되어있다. 어쨌든 조중동은 세니까. 광고를 던지면서 "우리 좀 봐주세요" 하는데, 게임은 전문지고 힘이 세지 않다. 게임 전문지의 커버리지 바깥의 글쓰기를 연구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지가 평론 공간으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신문을 돈 주고 사보던 시절이 아니다. 당장 신문 돈 주고 사보라면 누가 볼 것인가? 그렇게 선순환이 되면, 독자들이 돈을 내고 양질의 기사를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이면 정말 좋겠지만, 그걸 누가 어떻게 시도할 텐가? 정말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어떤 게임지가 시도를 할 것인가? 그나마 한계 안에서 디스이즈게임은 가끔씩 세게 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요즘 디스이즈게임은 유튜브 열심히 한다. 유튜브 안 만드시나? 자기가 할 이야기가 떨어지는 순간, 쉽지 않을 거다. 나도 유튜브를 해보고 싶었지만 퍼블릭한 곳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유튜브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관종력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는 분야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게 좋고 할 말이 있다면 유튜브가 좋겠지. 글과 영상은 엄연히 다르다. 글은 정제된 것이라서 천천히 생각할 수 있다. 영상은 빠르게 흡수되는 대신 행간이 사라진다. 그래도 여유가 되면 유튜브를 해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이야기만 2년 째 하고 있다.  평론이 뭘까? 문학평론가와 영화평론가는 알아도 게임평론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평론가는 거의 대중문화의 스타 덤에 오르지 않았나? 80년대 영화평론이 요즘과 같은 대우를 받았느냐면, 아니잖은가? 60~70년대 상업, 흥행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평론 씬에서 이론이 연구되면서 90년대 들어서야 그 맹아가 싹튼다. 영화가 오늘날 사회를 이야기하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매체라는 위치를 점하는데 평론이 큰 역할을 했다.  평론가들이 그 공을 세웠기에 영화라는 미디어의 위상이 올라간 거다. 개개인의 작업으로 일궈낸 결과라기보다는 씬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게임도 그렇게 적지 않은 인고가 있을 것이다. 그때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보는 게 힙했던 시절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렇지. 대중성에 비춰보면 게임은 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이다. 영화는 얼마를 내면 모든 조건이 맞춰지는데, 게임은 다르다. AAA급 타이틀을 해보려면 최소한 플레이를 위한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플레이 타임이 맞춰져야 한다. "<데스스트랜딩> 정말 훌륭해, 꼭 한 번 해봐"라고 권하려면, 듣는 사람한테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어야 한다. <데스스트랜딩> 해본다고 플스방에 가봐야 앞부분만 해보는 거 아닌가? 그러면 또 "스팀 게임 하면 되잖아?"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거야 게이머들이나 고사양 쓰는 거지. 모바일? 모바일게임은 대중적이지만 어떤 게임을 평론할 수 있겠는가? 많지 않다. 대중성과 평론이 매칭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 평론이 될 만한 게임은 게이머 커뮤니티 안에서 소비되는 상황이다. <데스스트랜딩> 평론가 이경혁의 주 독자층은 게이머가 아니다? 내가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데, 게이머들이 내 글이 보는 이유는 "이거 재밌어?"를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가 느끼기로 내 독자는 대중 교양 독자다.  대중 교양 독자들이 대체로 주목하는 건 게임이 텍스트로 머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회의 어떤 면을 볼 수 있는지다. 내 목표도 게임 안 해본 사람들에게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전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게임 이야기하는데 무슨 사회 이야기를 꺼내냐?" 하면서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평론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텍스트 안에 머무는 경우가 있고, 텍스트 밖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데,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측면들을 소개하고 싶다. "왜 게임 이야기에 사회를 집어넣느냐?" 그러는데 모든 매체는 결국 사회가 만들지 않나? 작가의 경험과 창의성을 통해 가공되어 나오는 것 아닌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회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 게임의 플레이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창의성을 가진 수용이다. 그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내가 평론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이것은 진정한 평론이 아니야"라고 폄훼하는 게 평론 씬이 크는 데 가장 나쁜 방해요소가 아닐까 한다. 글을 읽고 나서 "이야, 이거 재밌네" 해도 평론이 될 수 있는 거다. # "이 나이 먹고 석사 학위"...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출연 이어 CBS 라디오 고정까지 요즘은 무슨 글을 쓰고 있나? 논문 학기라 논문 쓰느라 정신이 없다. 하반기부터 일을 좀 하지 않을까? 이 나이 먹고 석사 학위를 따고 있다. 논문 주제는 무엇인가? 맛만 보여달라. 게임 플레이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플레이라는 게 정의하기 어려운데, 결제 양식과 플레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던 시절과, 부분 유료화 게임을 즐기던 시절의 플레이가 같지만 다른 점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현재 본인이 재학 중인 연세대에서 게임 연구 그룹을 띄웠다고 들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게임 연구를 진행해왔던 윤태진 교수와 문화 연구소 '예거센터'를 만들었다. 크래프톤과 제휴를 맺고 중장기적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크래프톤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포스트에 올라온 '게임문화연구'가 연구소의 브로슈어 같은 건가? 연구 주제를 도출하면서 학술대회 안의 연구지 안에서만 돌던 자료를 대중에도 공개하자는 인식이 있었다. 크래프톤이 네이버포스트를 쓰고 있으니 거기에 우리 주제를 걸고 대중들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테스트 삼아 글을 10개 정도 올렸다. 크래프톤 공식 홈페이지의 '게임문화연구' 반응이 어땠나? 반반이었던 것 같다.  글을 주신 분들이 모두 게임 전문 연구자는 아니었다.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게임과 접목해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쓰긴 했는데,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눈높이에는 못 미쳤을 것이다. 게임에 대해서 미학, 예술적으로 접근했던 글들은 반응이 괜찮았다. 이런 시도들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체로 단편적으로 끝났다. 후속이 나오지 않으면 똑같은 걸 몇 년 뒤에 다시 하게 되는 꼴이다. 기획을 장기적으로 끌어나간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18년까지 대학교에서 게임 관련 교양 강좌를 진행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을 강의했다.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강의였는데, 2017년 1학기 성대 강의평가 1위를 찍었다. 당시 개설된 게임 관련 강의들이 대부분 제작 실무였는데, 인문사회를 주제로 강의한 것은 많지 않아서 흥미로웠던 강의다. 지금은 다른 분이 맡아서 하고 계시다.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가 그 수업 수강했던 것은 알고 있는가? 그분이 내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소식을 접하고 레포트를 찾아보니 굉장히 잘 쓰셨더라. '역시 내 수업 덕에 게임을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결국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모이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성대에서 게임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교양으로 듣지 않았을까?  그밖에 시사 교양 팟캐스트에 굉장히 오래 출연하고 있다. '그것은 앓기 싫다'라는 팟캐스트인데, 2017년 <배틀그라운드>를 소개하는 코너로 처음 출연해 지금까지 비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주제는 게임 이야기하지만, 시사/교양이니까 늘 사회 이야기를 한다. 청취자들이 콘셉트를 좋아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까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유튜브는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이 없다. 반면에 팟캐스트는 듣기 좋은 환경이다. 들으면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것이 인연이 되어 CBS 주말 라디오 '주말엔 CBS'에 고정 출연 중이다. 지난주 방송은 <민식이법이 무서워>라는 게임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게임을 주제로 사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 이 코너에 오래 열정을 쏟을 생각이다. 청취율이 얼마가 됐든, 보편적인 매체에서 발언권을 얻는 게 좋은 접근이다. KBS 스페셜 <더 게이머>에도 출연하지 않았나? PD가 그해 여름부터 프로게이머를 주제로 작업했는데, 한국 e스포츠 초반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자문도 했다. 나는 e스포츠 탄생에 광대역 망을 깔았던 전길남 박사의 역할이 컸다고 봤고, 박사님을 꼭 모셔야 한다고 자문했다.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에 출연한 이경혁 평론가 # 게임평론가 이경혁의 연구과제, "연구하고 글을 써서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 요즘 무슨 게임을 즐기고 계신가? 논문 때문에 잘 못하는데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를 재밌게 했다. 전작부터 광팬이었거든. 게임 나오자마자 논문 접고 난리를 쳤는데, 세이브 파일이 날아가는 바람에 논문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한패(한글패치) 넣으시다가? 아... 그랬나 보다. 기자도 그랬다. 그런가? (한숨) 한패 때문인가 보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 좋아서 하는 케이스 말고, '숙제'가 되어버린 게임도 재밌게 할 수 있나? 게임기자도 마찬가지 아니신가? 나는 '새 게임 나왔다, 장르는 뭐다, 어떤 형식이다, 가격은 얼마다' 이 정도가 아니니까 게임을 오래 해야 한다.  에휴... 그걸 언제 다 하고 앉아있어? AAA급 게임이 쏟아질 때는 숨을 못 쉬겠다. 육아까지 하고 있으려니까. 도저히 게임 할 짬이 안 난다. 나는 3D 멀미가 있어서 1인칭 게임도 잘 못한다. 그래도 아이템이 나와야 하니까 참고 막 하는 거지. 진짜 힘든 게 뭔지 아나? 끝까지 잡고 했는데 할 이야기가 없는 거다. 그래픽 몇 점, 사운드 몇 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되면 그냥 그날 하루 공친 거다. 아무래도 업계에 게임평론가가 드물다보니 "어떻게 하면 평론가가 될 수 있을까요?" 묻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냉정하게 게임평론가, 칼럼니스트가 되는 길은 2가지가 있다. 학업을 마치고 데뷔하거나, 다른 일을 10년 정도 하다가 들어오던가.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들어왔다. 의도하고 들어왔던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잘 버텼다. 당장 월세를 고민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게 쉬울까?  실제로 "게임과 관련된 글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묻는 메일이 있었다. 그래서 답변하기를, 나인 투 식스(9 to 6)에 여가가 보장된 직장에 가라고 제안했다. 그런 여유가 생기면 투잡을 시도할 여력이 생긴다. 그렇게 기회가 열리면 전업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들이 들어갈 만한 일차 타겟인 게임 전문 매체는 이미 기자 중심으로 돌고 있다. 고정 지면을 받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러면 기성 매체의 필진으로 들어가기는 쉽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그 정도가 아니다. 그리고 기성 매체 고료가 은근 짜다. 그러면 책을 써서 낼까? 팔아봐야 얼마 안 나온다니깐? 결국 튼튼한 기반 없이는 힘들다. 전업으로 게임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업 게임 연구와 글쓰기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담론이 커지지 않겠나. 사회적으로 게임이 인정받을 여지도 커지고. 앞으로의 계획이 따로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는 시장에 게임 칼럼니스트 이름 걸고 일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 혼자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씬의 구축이 중요하다. 어디 가서 고료를 받을 때도 내가 업계 표준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싸게 받지 않도록, 재수없게 굴고 있다. 이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화평론 이야기 잠깐 했듯이, 여러 사람이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와야 한다. 그래야 먹고사는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다. 처음에 내가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언제까지 게임 관련 글쟁이의 탄생을 운에 맡길 거냐? 운이 없어도 올라설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구하고 글을 써서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 그 답을 찾는 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초상집 개
가족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슬픔에 빠진 사람은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어 초상집의 개들은 잘 얻어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 그래서 초췌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다니거나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초상집의 개’ 같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 누구보다 뛰어난 이상과 지혜를 갖춘 공자는 군자로서 이상적인 정치를 펴고 싶었지만 전국시대로 혼잡한 세상은 아직 공자의 위대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때였습니다. ​ 결국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이리저리 배회하던 공자는 정나라라는 곳에서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중 공자를 보았다는 한 노인의 말을 들었습니다. ​ “말을 들으니 동쪽 성문에 계시는 분이 자네들이 찾는 스승인 것 같네. 생긴 것은 성인과 같이 풍채 좋고 잘생겼는데 무척 피곤해 보이는 몸에 너무도 마른 것이 꼭 초상집 개처럼 초라해 보이더군.” ​ 노인의 말을 듣고 동쪽 성문에서 공자를 찾은 제자들은 노인의 말을 공자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박한 평가를 들은 공자는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 “성인같이 생겼다는 말은 과찬이고 맞지 않지만, 초상집 개와 같다는 말은 지금 내 모습과 맞는 것 같구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일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 하지만 그 ‘때’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면 일을 일으킨다. – 관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10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 번째 카드 (+ 글씨 잘쓰는 꿀팁)
안녕하세요 :) 필사모임 쓸모있씀이 벌써 열번째 카드를 맞았습니다!!! 👏 무사히 열 번째 카드까지 오게되어 뿌듯해요. 처음 시작할 땐 그냥 호기롭게 시작했었는데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네요 ㅎㅎ 이번 카드도 잘 부탁드려요! 그동안 참여 못하신 분들도 이번 카드에는 댓글 한번 남겨주고 가세요 😊 오늘은 좋은 문장 대신에, 글씨를 잘 쓰는 법을 소개해볼까 해요. 저도 어디서 꿀리지않는 악필인지라 ㅎㅎ 악필 교정에 관심이 많은데요. 글씨 교정하는 꿀팁을 찾아보고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많은 유튜버분들의 강의를 찾아봤는데요. 모두 공통된 팁을 알려주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정리를 잘해주신 유튜버 두분의 영상을 소개해드릴게요. 우리 같이 예쁜 글씨로 필사 해봐요 ~! 첫번째로 유튜버 '샒의 삶' 님 1. 모눈연습장 활용 글씨의 여백과 간격을 맞추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그걸 맞추는데에 모눈연습장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칸에 맞춰서 일정한 간격으로 쓰는 것을 추천했어요! 2. 자음, 모음 통일감 있게 쓰기. 사람마다 글씨체 스타일이 있는데, 어떤 글씨체건 중요한건 통일감 이라고 해요. 정자체면 자음 모음 모두 정자로, 흘림체면 모두 흘리게 쓰는 게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상황에 따라 여러 굵기, 색 활용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면? 제목, 내용에 따라 굵기와 색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추천해주셨어요! 이건 다이어리를 쓸 때 기준이긴 하지만, 필사를 할 때도 중요한 단어는 더 굵게 쓴다던가 제목은 다른 색으로 쓴다든가 한다면 보기에는 더 좋겠죠?!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영상도 첨부할게요! 두번째는 '나인'이라는 글씨체로 유명하신 유튜버의 영상이에요! 마찬가지로 원본 영상 함께 첨부할게요 :) 너무 좋은 강의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1. 모눈연습장 활용 이 분도 마찬가지로 모눈연습장을 추천해주셨어요. 글씨크기, 간격 맞추기 어려운 분들에게 추천! 2. 핵심은 글씨의 높이 / 크기 / 간격 이 세가지만 일정하게 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아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자세한 설명은 바로 아래로! 1. 높이 글씨의 높이를 일정하게 해야해요! 그러니까 세로 길이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글씨를 평행선에 가둘 수 있도록! 2. 크기 글자 하나하나의 크기를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해요. 11pt 로 쓰던 글씨는 그대로 11pt로 써야지, 한글자는 11pt, 그 다음 글자는 12pt 이런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말! 3. 간격 마지막은 간격인데요! 간격에도 여러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해주셨습니다. 3-1. 띄어쓰기 간격 글자 간격이 일정하듯, 띄어쓰기 간격도 일정하게 쓰도록 주의! 3-2. 자음, 모음 간격 이거 보면 정말 글씨 잘쓰시는 분들은 여러 부분을 신경써서 정성들여 쓴다는게 느껴져요 😭 음절 하나하나의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하듯, 음소 하나하나의 간격도 일정하게 해야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말이죠! 어렵네요 😂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3-3. 글자 간격 자간이라고도 하죠! 넓은 것 <<< 좁은 것 이 더 정갈해보인다고 해요. 그리고 이 역시 일정해야 하고요! 4. 이것만은 절대금지! 마지막으로 설명해주신 절대 하면 안되는 세가지입니다. 1. 겹쳐서 쓰기 2. 끊어서 쓰기 3. 연속해서 쓰기 인데요! 놀랍게도 저는 세가지를 모두 하고 있었어요 하하 예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제 글씨라서요 푸하하 이거 완전 제 글씨체 같은걸요? 이렇게 보니 제가 왜 악필이었는지, 제 글씨가 왜 못나보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영상으로 보고싶으신 분들을 위해! 영상으로 보면 더 이해가 쏙쏙된답니다.ㅎㅎ 이 자료는 오로지 두분의 내용을 가져온 것이랍니다! 좋은 영상 올려주신 샒님과 나인님 감사합니다!!! : ) 오늘의 문장은 간단하게 윤동주의 <서시>를 놓고갈게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 카드의 댓글로 필사사진 달아주세요! :)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참여하지 못하신분들도 오늘은 꼬옥~! 댓글 기다릴게요!!! 고럼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 신규 참여신청👇
비운의 황녀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어느 왕자 이야기 (feat. TMI 파티)
태초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 오랫동안 영국을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은 4남 5녀를 낳았는데, 공주들이 유럽 왕실 여기저기로 시집을 가고....외손녀들도 여기저기 시집을 가면서 유럽 왕실마다 자기 피를 남김. 이건 존나 큰 문제였음. 왜냐면 (대충 있어보이는 관련 사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기 때문이다. 혈우병은 뭐고 보인자는 뭐냐면 자 일단 인간의 X 염색체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있는데, 이게 결함이 있으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혈우병이 되는 거임. 혈우병이 진짜 무서운 점은 외상이 아니라 내출혈의 경우임.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고이면 혈종이 생겨서 장애나 사망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임. 보인자도 뭔지 설명해줌. 혈우병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X 염색체에 결함이 있는 거임. 남성은 XY라 X 하나에 결함이 있으면 바로 혈우병임. 근데 여자는 성염색체가 XX라 하나가 결함이 있어도 다른 X 염색체가 보완을 해서 본인은 혈우병 증상이 없음 ㅇㅇ 하지만 본인의 X 염색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자식한테 그게 내려가면 혈우병 유전이 되기 때문에 보인자라고 부름.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이 혈우병 보인자란걸 몰랐음. 그 시대에 염색체에 대한 개념도 없을 뿐더러 부모님과 남편은 혈우병이 없었고 본인도 혈우병 증상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빅토리아 여왕 부모님 둘 다 환자가 아닌데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난건 돌연변이라서임. 문제 없던 염색체도 나이가 들면 혈액응고 인자가 자기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빅토리아 여왕 아버지가 50대에 낳은 늦둥이 딸이었기 때문에 여왕이 보인자로 태어난게 학계 정설. 여왕의 혈우병 인자는 둘째 딸인 앤 공주, 다섯째 딸 베아트리스 공주, 넷째 아들 레오파드 왕자에게 내려감. 사진이 둘째 딸 앤 공주임. 앤 공주는 독일의 헤센 대공국으로 시집 감. 앤 공주는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됨.... 2남 5녀를 낳았는데 막내아들 프리드리히 왕자가 앤 공주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 받아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기 때문 ㅠ 프리드리히는 놀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죽을 부상이 아니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과다 출혈로 사망함. 일곱 아이들 중에서 프리드리히를 가장 아꼈던 앤 공주는 죽을 때까지 프리드리히를 마음에 묻고 살았고, 프리드리히가 죽고 태어난 막내딸 마리 공주에게 집착하게 됨. 거기에 디프테리아 라는 전염병이 헤센 대공국에 퍼졌고 어린 마리 공주가 사망함. 막내 아들 딸을 전부 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앤 공주도 디프테리아로 죽음. 앤 공주의 둘째, 즉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대공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짐. 당시 러시아 황제의 동생이었던 세르게이는 엘리자베트처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아픔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졌다함. 당시 러시아 황실은 불안정했고,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로 시집 가는건 이 할미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라고 난리를 쳤지만 원래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들리는 법. 여튼 둘이 결혼하는 날.... 앤 공주의 다섯째 자식이자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알릭스도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함. 여기서 알릭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임. 세르게이의 조카였던 니콜라이도 당연히 삼촌 결혼 축하하러 왔다가 알릭스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짐. 빅토리아 여왕 : (환장) 앤 공주가 일찍 죽은 후 빅토리아 여왕은 실질적으로 외손녀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주며 양육에 많이 관여했는데, 금쪽같이 키운 손녀들이 쌍으로 러시아라니 환장을 안 할 수가 없음. 심지어 엘리자베트는 황족이긴 해도 황위랑 관련 없는 대공이지만 알릭스는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였음. 뭐 그치만 알릭스는 이름도 러시아 식으로 바꾸고 종교도 개종해가며 니콜라이와 결혼해 러시아의 황후가 됨.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탸사, 알렉세이 5남매를 낳음. 자 여기서 잊고 있던 혈우병 인자가 ㅎㅇ 하고 나타남. 빅토리아 여왕 -> 앤 공주 -> 알릭스 -> 알렉세이 황태자 루트임. 겨우 얻은 귀한 막내아들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으니 알릭스는 미칠 지경이었음. 알릭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 중 최악의 악수가 라스푸친....(코난에 나오는 걔) 머 이건 상관 없는 이야기니 패스 이 사람은 앤 공주의 장녀이자 알릭스의 언니인 빅토리아 공주임.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 함. 유럽은 원래 이럼. 빅토리아 공주는 4남매를 낳는데 막내아들 루이가 존나 잘생김. (사진 오른쪽이 루이고 왼쪽은 영국 왕임) 위에서 말했듯 어머니 앤 공주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빅토리아-엘리자베트-알릭스 자매의 양육은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많이 관여함. 그래서 빅토리아 공주나 루이는 본인을 영국인으로 생각했다함. 여튼 루이는 러시아에 놀러감. 러시아 황후인 알릭스는 이모,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모부, 러시아 황녀들은 루이에게 이종사촌이니까ㅇㅇ 루이는 한살 연상이자 셋째 황녀인 사촌누나 마리아 황녀에게 반함. 폴인럽해버린 것이에요. 사촌인데? 할 수 있는데 이거 20세기 초반 일임. 유럽, 특히 왕실은 근친혼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음. 근친혼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된건 현대 ㅇㅇ 루이가 돌아온 후에도 둘은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황제 일가는 폐위 후 유폐 당함. 마리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루이는 전전긍긍하며 마리아가 무사히 살아남길 기도했지만 1918년, 황제 일가는 모조리 총살 당함 ㅠㅠㅠ 196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본인 피셜에 따르면 루이는 마리아 황녀와 진지하게 결혼하고 싶었다고 함. 루이는 폭탄테러로 사망했는데 죽는 날까지 서재에 마리아 황녀의 사진을 놓고 살았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끗 하기 아쉬우니까 TMI 1 루이의 친누나인 앨리스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났고 평생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수녀원을 전전했음. 앨리스는 그리스 왕자와 결혼했는데 남편도 일찍 죽음. 거기다 그리스도 왕정이 전복 되는데 루이는 그리스에서 도피한 누나랑 조카를 자기 집에 데려옴. 루이는 이 조카를 자기 친아들처럼 키웠는데 그 필립이 영국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aka 망언제조기) (아버지가 그리스 왕자라 필립도 그리스 왕족인데 여왕이랑 결혼하려고 그리스 왕위계승권 포기함. ) 따지고보면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직계후손이고, 필립 공도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자라 둘이 8촌임 ㅇㅅㅇ 필립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루이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함. 여기서 존나 블랙코미디.... 원래 영국 왕실에서는 1970년대에 루이 공의 손녀인 아만다를 찰스 왕세자랑 결혼 시키려고 했음. 근데 왕실 사람들은 이미 찰스가 카밀라랑 이렇고 저렇고 하는 관계인거 알고 있었고, 루이 공의 딸인 패트리샤 부부는 "시발 안 됨 ㄴㄴㄴㄴ 내 딸을 찰스랑 결혼 시킨다고? 지랄 ㄴㄴㄴㄴ" 라고 격렬히 반대함. 때마침(?) 루이 공이 폭탄테러로 사망하면서 패트리샤 부부는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저희 부부 멘탈이 너무 힘듭니다. 이 시기에 딸 시집 보내기 싫음 ㅈㅅ" 이라고 거절하면서 결혼은 파토나고 찰스는 다이애나랑 결혼함. 존나 선견지명 오졌던 부분. 어쨌든 루이는 현 영국 왕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어른이라 최근 태어난 영국 왕자 이름도 루이라고 지음. 루이는 원래 프랑스식 이름이라 영국에서는 인기 없는 이름이기 때문에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영국 왕족임. TMI 2 마리아 황녀가 죽은 후 루이는 당대 최고의 부자 상속녀였던 에드위나랑 결혼함. 에드위나의 개인재산이 록펠러 재산의 10분의 1....존나 부자 ㅇㅇ...... 둘의 결혼은 오픈 매리지, 즉 니가 누구랑 섹스하고 사귀든 상관 안 함. 대신 내가 누구랑 사귀고 섹스하든 상관 ㄴㄴ 라는 계약을 맺고 한 결혼이었음. 에드위나는 온갖 사람들이랑 염문설을 뿌렸는데 대표적으로 1. 자와할랄 네루 (;;;) 2.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 = 루이의 형수 = 자기 동서 (.....?) 3. 남편 루이의 섹파 (......????) 루이의 전섹파랑 사귄게 아니라 루이의 현섹파랑 사겼다함....WOW 여튼 루이의 형수이자 에드위나의 애인이었던 (.....)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은 당대 미국 최고 재벌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 가문의 며느리 글로리아 모건이랑 사겼는데 글로리아 모건은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양육권을 두고 시댁이랑 재판 뜸. 이 재판은 TV에 방영될 정도로 당대 이슈였고 존나 추잡한 폭로전이 오고갔는데, 재판에서 시댁이 양육권을 얻으려고 글로리아 모건이랑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이 사귀는걸 폭로했다함. 개막장;;;;;; 유투브에 찾으면 아직도 있음ㅋ.... 여튼 이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아들이 앤더슨 쿠퍼 ㅇㅅㅇ 앤더슨 쿠퍼는 커밍아웃한 게이인데, 자기 외할머니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자기의 동성애 성향이 유전인가 괴로워했었다구 함. - 대체 어쩌다가 앤더슨 쿠퍼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쨌든 끗 - 출처 : 여성시대 / 오로오로오로로
정보 덕모 (程普 徳謀) A.D.? ~ ?
나도 안다.. 아무도 안궁금해하고, 아무도 안좋아하고, 아무도 관심없을 그런 인물이라는거. 심지어 그 인기에 걸맞게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런데 맨날 피자, 치킨, 갈비, 삼겹살, 소세지, 파스타, 회, 스테이크만 먹을 수는 없잖아? 가끔은 그냥 김치하고만 먹거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을 때도 있는거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정보". . . .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향은 유주의 북평에 있는 토은현. 손견시절부터 시작해, 손가를 따르던 주요 인물들 중 고향이 최북단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에 대전사람도 있고 인천에 대구사람도 살고, 부산에 삼척사람도 일하고 제주에 광주사람도 놀고 그런게 아무렇지 않지만 저 당시의 중국에서는 대체로 워낙에 넓기도 넓고 거기에 도로나 교통같은 인프라도 저질인데다... 농경사회라 지주건 소작이건 일단 "땅" 이 일터라 그 땅을 벗어나면 먹고 살기가 벅차니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벗어나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비록 정보가 농사꾼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한 지역이 고향에서 1,000km도 넘는 자동차로 쉼없이 휴게소 한 번 안들리고 가도 반나절을 운전해 가야하는 거리! 손견때부터 손가를 따르긴 했는데, 언제 어디에서 어쩌다 손견을 따른건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손견 만나기 전부터 말단이나마 관직에 있던거 같다. 마냥 칼만 휘두르고 힘만 쓰는 무식쟁이 장수는 아니였고, 책사나 재사 수준이야 당연히 못되겠지만 기본적 학식은 갖춘 사람인데다 이런저런 처세술과 식견도 있는 나름 "배운" 장수였다. . . . 손견 자체가 원술의 휘하 장수다보니 그 휘하 장수의 휘하 장수인 정보는 아무래도 무슨 눈에 띌 대활약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무슨 어마무시한 무예실력이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이렇게 말하면 좀 돌아가신 분께 죄송할 말이지만, "그냥 좀 쓸만한" 장수였지, 어디다 내로라 할만한 그런 급은 솔직히 아니였던거 같다. 삼국지연의 속에서는 "철등사모"라는 자신만의 템을 쓰는것으로 나오는데... 연의가 다 그렇듯, 저 당시에는 저런 무기가 없던터라.. 정보의 철등사모는 픽션이다. 무슨 병장기를 썼는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손견 사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며 강동 일대에서 양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름 쏠쏠히 활약했는데, 이 당시는 손책 휘하에 별 다른 장수도, 병력도, 책사도 없다보니 정보 정도만 되어도 큰 도움이 되었던거다. 혹자는 '뭐? 그때 책사가 없다고?? 주유 있잖아!' 하겠지만, 주유는 손책이 막 원술 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책에 합류한게 아니고, 주유 자체가 병법과 책략에 대단히 뛰어난 사람인건 맞지만 전형적인 모사 타입이라기보다 전국시대에서 초한쟁패기 무렵의 한신같은 총사령관 타입인지라 마냥 주군 곁에서 꾀를 내기보다 독자적인 군단을 이끌고 직접 움직이는 스타일이였다. 게다가 주유는 이미 꽤 큰 세력의 호족출신이라 손책이나 손권이 쥐어주는 병력만 받아 운용하는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직속병력들을 적잖이 거느리고 있었고 그 병력에 대해서는 손가들도 마음대로 터치를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위, 촉과 구분되는 오세력들만의 특징이자 핸디캡. . . . 그에 비해 정보는 호족도 아니고, 형남지역이나 그 이하 강동/강남 지역에 무연고자라 그냥 손씨들 하나 보고 따라 다녔던 사람이라 손씨들이 수족부리듯 할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거의 셋트로 묶이는 황개, 한당, 조무들도 정보와 비슷한 처지였고 다 저렇게 손견을 따르면서 엮인 동료이자 전우였다. 손책 사후, 손권으로 정권이 급 바뀌던 때는 오의 격변기면서 위기였던 시절이였는데... 이건 손책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손책이 본인의 단명을 예견한건지, 그냥 지 급한 성깔 탓인지 급하게 세력을 다지느라 유화책 그딴거 다 개줘버리고 자기 안따르고 비협조면 죄 개패듯 쓸고 다니며 꿇려놓다보니 손책이 죽자마자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런 애들을 번거롭지만 다시 돌며 매타작을 다녔는데, 이때 정보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연의에는 딱히 이사람의 성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잘들 모를텐데, 저런 반란군 토벌 당시 윗선에서 듣고 놀랄만큼 꽤나 잔혹하게 토벌을 했다고 하며... 끝까지 항거하다 잡히면 그런 놈들 전부 모아다가 산채로 불구덩이에 쳐넣었다고 한다.. 자, 슬슬 정보의 인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ㅋㅋ 위에서 말했듯 마냥 힘만 쓰는 무장은 아니였고 나름 글을 읽은 장수다보니 거기까진 좋은데, 자기와 달리 힘만 쓰는 전형적인 무장들을 알게 모르게 은근 무시하고 까는 경향이 있었다, ;;;; 저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먹고 살기도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보니 날때부터 금수저 물고 나거나, 진짜 혜안있는 부모를 만난게 아니라면 대체로 책은 커녕 글조차 못 읽는 문맹들이 발에 채였는데... 아무래도 무장들 중에 문맹 혹은 그냥 간신히 자기이름이나 쓰거나 간단한 문장들이나 읽고 쓰는 수준의 장수들이 정말 많았다. . . . 예를 들어, 가난한 농민의 집에 태어나 밭갈고 논메는데 자기네 지역의 주자사나 군벌이 병력을 징집한다기에 징집되어 병졸이 되었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공 세워 말단 장수가 되었다가 공적을 인정받아 더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이러다보면 당장 전장에서 싸우고 병사들 관리하기도 바빠 따로 글을 익히거나 책을 볼 틈 같은게 없다. 게다가 한자라는게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도 아니다. . . . 여튼 정보는 저런 소위 무식한 장수들과는 은근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거나해서 당장 자기와 가장 오랜시간 생사고락 함께 한 황개, 한당, 조무와도 막 절친베프가 아니였고 혼자만 살짝 겉돌았다. 저런 정보의 인성이 제대로 터진 계기는 바로 적벽대전 앞두고 군비를 점검하고 전쟁준비 임하며 주유와 함께 좌도독, 우도독을 나눠 맡으면서다. . . . 연의에서도 이 부분이 나오며 처음에는 한참 어린 주유와 동급대우 받는 것에 불쾌해하다 주유의 병력운용과 훈련 등을 시찰 후 주유를 인정하는 걸로 그려진다. 그런데 저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참 안타깝지만. .. 주유와 동일선상 놓이며 불쾌해한게 팩트. 나중에 주유를 인정하는건 픽션이다..-_-;;;; 실제로는 내내 못마땅해했고 그 후로 주유 사망까지 딱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 . . . 암만 봐도 학식, 병법, 책략, 용병, 대국안, 전략기재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주유근처도 못가는게 명백했고 외부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정보 혼자 그걸 인정않고 그저 자기보다 한참 나이도 경력도 적고 짧은 주유가 자신과 도독을 나눴다는게 불만이였다. 엄밀히 말해.... 주유에게 도독직을 나눠줬다기보다, 그간 정보의 경력과 나이를 예우해 정보에게 도독직을 나눠준거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적반하장이였던 정보다. 여튼 그래도 공사는 구분하여 적벽대전은 잘 치르고 이후 형주 남군을 맡고있던 조인까지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것이 그의 마지막 레코드. 그러고는 얼마안가 열병을 앓다 석달 가량을 투병 후 다이.. 생몰연대는 없지만 오에서 정보를 부를 때 대개 많은 공을 세운 이를 예우해 부르는 호칭인 "정공"이라 부른걸 볼 때 사망당시 꽤 나이가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 . 성 뒤에 공을 붙이는 자체는 공이 많은 이를 예우하는, 영어로 치면 성 앞에 Sir.을 붙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단순히 젊은이가 공 많다고 붙이진 않았고 대개 공이 많은 원로들에게 붙이는 경어같은 개념이다. 아무래도 공이 많다보면 자연스레 나이도 많으니까~ 정보! 하면 떠오르는 기념비적인 활약 자체는 없어도 오의 창업주의 부친이 젊었던 시절부터 별 기복없이 차근차근 공을 세워오며 적벽대전 앞두고 소수였던 항전파였던데다, 나이 지긋해서도 은퇴않고 야전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비록 인품이 좋은 양반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손가에 대한 깊은 충심 자체는 진심인데다 못 배운 애들을 돌려까고 어린 애들을 무시하긴 했어도 그러다 과욕이나 만용부려 팀킬을 한다거나 얼빠진 짓으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등의 행동까진 없는, 그냥 요새 사회에도 어딜가나 있는 그냥 흔한 꼰대아재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였을 그 당시는 오히려 노장이 젊은 장수나 인재들과 오픈마인드로 논의하고 후배의 지시를 고분히 받는 트인 사람이 흔했던 시절은 아니였으니 마냥 정보의 심성이 뒤틀렸다기보다 그냥 결국 정보도 그 시대의 보통사람이였던ㅎ . . . 이번 정보편은 쓰는 나도 노잼이니, 읽는 여러분들도 노잼이였을거다. T-T 인기스타도, 빌런도 아닌데다 임팩트도 없다보니. 그래도 오늘편을 통해 "편식은 좋지 않다"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ㅋㅋㅋ
'2.0' 라스트오리진 “유저들에게 정말 죄송하고, 감사하다”
복규동 개발총괄 이사, 이태웅 라스트오리진 PD 인터뷰 스마트조이의 ‘성인용’ 전략 모바일 게임 <라스트오리진>은 2019년 1월 처음으로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지금까지, 약 15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말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개발사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는 많은 유저가 접속을 시도하면서 정상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2달가량 서비스가 연기되기도 했고, 과도한 선정성을 이유로 구글 플레이에서 퇴출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야심차게 준비한 각종 신규 콘텐츠 및 이벤트는 업데이트 때마다 온갖 버그와 사건사고로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사고와 논란 속에서도 <라스트오리진>은 특유의 ‘오타쿠 취향의 성인 게이머들을 제대로 노린’ 게임성과 운영이 호평받으며 확고한 팬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상업적으로도 원스토어에서 고정적으로 매출 순위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안정적인 성과를 내며 자리를 잡은 상태입니다. 최근 진행한 ‘2.0’ 업데이트 또한 약 1년 만에 신규 지역(7챕터)과 ‘서약’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주목받는 데 성공했는데요.  디스이즈게임은 스마트조이에서 <라스트오리진>의 개발을 총괄하는 복규동 개발총괄 이사, 그리고 이태웅 <라스트오리진> PD를 만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왼쪽에서부터 스마트조이 복규동 개발총괄 이사, 이태웅 라스트오리진 PD 이태웅 PD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유저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아는데,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이태웅 PD(이하 이): <라스트오리진>의 PD를 맡고 있는 이태웅이다. 과거에 여러 회사에서 PC 및 모바일 게임을 개발했으며, 스마트조이에는 지난 1월에 합류했다. 개인적으로 <라스트오리진>을 오픈했을 때부터 즐긴 진성 유저이기 때문에, 유저의 입장에서도 이 개발팀에 합류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복규동 이사님과 함께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복규동 개발총괄 이사(이하 복):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 PD님이 오셨다고 해서 내가 개발팀의 일선에서 물러난다 거나 빠진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이제는 <라스트오리진>은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다(웃음). 일을 효율적으로 분담하기 위해 모셨으며, 앞으로 보다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 라스트오리진, 분명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라스트오리진>이 첫 오픈 이후 벌써 16개월 정도 지났다. 최소한 상업적인 면에서 보면 나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되는데, 개발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복: 상업적인 면만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완전한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시 ‘게임’ 이니까. 유저들에게 조금 더 많은 재미와 만족을 주어야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것들이 많고, 구현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안정적으로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난 이후에 ‘성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상업적인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웃음), 게임이 이 정도로 성과를 낼 것이라고 혹시 예상했는가? 복: <라스트오리진>을 개발하면서 주변에는 항상 ‘매출 10위권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웃음), 현재의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 구조를 생각해보면 분명 우리 게임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지만, 현재 한국 모바일 게임시장을 보면 ‘과금력이 높은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한 ‘페이 투 윈’(Pay 2 Win) 게임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게이머 중에는 분명 ‘타임 투 윈’(Time 2 Win) 게임에 대한 니즈가 강한 유저들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지금의 <라스트오리진>과 같은 형태의(과금이 착한) 게임을 개발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도 <라스트오리진>은 구글 플레이 출시 직후 매출 순위 10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최대 매출 순위 6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대단하다고 본다. 그런 생각이야 사실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복: 나름대로 과금과 관련된 자료를 정말 철저하게 조사했기에 개인적으로는 확신이 있었지만, 역시 실제로 <라스트오리진>이 지금의 형태로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노두섭 의장님을 포함해 현재의 스마트조이 경영진 여러분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두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만약 <라스트오리진>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게임 업계를 그만 떠날 생각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안 된 것에도 정말 감사하고 있다. (웃음) 이: 개인적으로 복규동 본부장님과는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 <라스트오리진>의 행보를 보면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과금 구조를 보고선 ‘정말 어려운 길을 걷는구나’ 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결국 이러한 과금 구조가 없었다면 이 게임이 여기까지 올 수는없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조이 사무실 전경. 스마트조이는 <라스트오리진>의 상업적인 성과 덕분에 개발자들을 대거 충원하고 인력을 늘렸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을 하지 못하고 현재는 인력을 나누어서 한 건물 내 다른 사무실을 추가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사무실에 빈공간이 안 보이고 촘촘해 보인다. # 게임을 통해 유저들이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라스트오리진>은 지난 1년간 참 많은 일을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혹시 가장 ‘위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자면? 복: 역시 지난 2019년 3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배포 정지를 당했을 때를 꼽고 싶다. 사실 다른 이슈야 우리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고 쳐도, 스토어에서 배포 정지당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특히 배포 정지의 이유에 대해 구글은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도 않았고,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말 이때는 “별도 홈페이지를 통해 앱을 배포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원스토어로 메인 플랫폼을 옮기면서 ‘완전판’인 지금의 <라스트오리진>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복: 우리도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라스트오리진>은 처음부터 성인용 게임을 표방했지만, 이는 ‘야해서’가 아니라 본래 스토리 및 그 연출 등이 ‘잔혹해서’ 였다. 대표적으로 6챕터의 연출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서비스하면서 유저들의 니즈를 계속 파악하면서 개발의 방향을 정하다 보니 지금의 형태가 된 것 같다. [참고기사] 구글 차단된 라스트 오리진, ‘완전판’으로 원스토어 사전 예약 시작 <라스트오리진>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퇴출된 이후, 구글에서는 속칭 '검열 버전'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대신 원스토어를 메인 플랫폼으로 삼아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16개월 전에 처음 인터뷰했을 때는 유저들이 직접 ‘조작하며 전략을 연구하는’ 게임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지금 보면 ‘오토’(자동) 중심의 이른바 ‘통발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복: 개발자로서는 지금도 <라스트오리진>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활용해 유저들이 전략을 짜고, 컨트롤해서 승리하는 게임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유저들에게 이러한 내 개인의 희망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유저들이 자동 중심의 게임을 재미있게 여기고, 또 ‘완벽한 자동 덱’을 맞추기 위해 전략을 연구한다면 그에 맞추는 것이 맞다고 본다.  기존에 선보인 콘텐츠나 앞으로의 이벤트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신규 콘텐츠나 보상이 아닌 순수한 ‘재미’를 위한 콘텐츠에서는 간혹 수동 조작과 전략이 필요한 모습을 선보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벤트 중간에 몇 번 선보인 ‘챌린지 스테이지’를 상설화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 데 이러한 부분은 계속해서 유저들의 반응을 보아가며 조율하겠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게임을 통해 유저들이 ‘재미’를 느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라스트오리진>은 2차 창작이 정말 활발한 게임인데, 혹시 개발자들이 이에 영향을 받는 것은 없는지?  복: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활발한 2차 창작 작품들을 개발자 모두가 보고 있으며, 또 즐거워하기 때문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유저 여러분들의 2차 창작을 보면 정말 보람도 느끼고, 재미있을 때도 많다. 최근에 한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스스로 개최한 ‘2차 창작 대회’의 경우에는, 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조금 시리어스한 부분을 강화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을 정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2차 창작은 2차 창작이기 때문에, 너무 휘둘리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창작자로서 다들 욕심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유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다는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2차 창작자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분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스트오리진>은 다양한 2차 창작이 활발한 게임으로도 주목 받았다. 2차 창작 작가 중에는 '공식'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편이다. # 2.0 업데이트 안정화 이후에는 매달 빠르게 콘텐츠 업데이트할 것  최근 2.0 업데이트를 진행했는데, UI를 제외하면 겉으로는 크게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2.0 업데이트는 “앞으로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생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동안 <라스트오리진>은 캐릭터 파밍이나 이벤트 외에는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2.0 업데이트였다. 물론 업데이트를 하면서 장시간에 걸친 서버 점검이나 버그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다. 유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0 업데이트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이제 여름부터는 매달 큰 규모의 콘텐츠를 차례대로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최근 인력을 대폭 충원하기도 했다. 6지역 이후 7지역은 근 1년 만에 출시되었는데 8지역은 훨씬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준비 중인 콘텐츠들을 소개하자면?  복: 최근에 서약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었고, 아마 6월에는 7지역의 새로운 스테이지들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7월 적용을 목표로 ‘숙소 개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라스트오리진>은 잠수함인 ‘오르카’를 주요 배경으로 하는데, 지금은 이 오르카의 많은 부분이 비어 있다. 이 부분을 플레이어가 다양하게 꾸밀 수 있을 것이며, 쾌적한 플레이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다양한 시설을 설치하고 캐릭터들을 배치해서 그 반응을 지켜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선사할 것이다.  또 7월에는 대형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고, 동시에 앞에서도 말했던 상시로 즐길 수 있는 ‘챌린지 스테이지’ 또한 가급적 빠르게 선보일 계획을 하고 있다. 잠수함 '오르카'는 현재 많은 부분이 비어있다. 이런 숙소를 개발할 수 있는 숙소 개발 콘텐츠는 7월 업데이트 예정이다 조금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를 소개하자면? 복: 아직 기획단계로만 있는 콘텐츠 중에 ‘로그라이크’ 형태의 콘텐츠가 있다. 로그라이크답게 매번 유저들에게 ‘새로운 긴장감’을 선사할 수 있는 콘텐츠로 개발하고 싶은데, 아주 좋은 보상 같은 것을 걸면서 유저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어찌 되었든 게임을 즐기는 시간에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준비중이니 기대해주었으면 한다. 또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8챕터도 준비하고 있다. <라스트오리진>은 6챕터까지가 프롤로그였으며, 이제 7챕터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기에 8챕터에서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며 기대해주었으면 한다. 확실한 것은 6챕터에서 7챕터가 업데이트된 것보다는 빠른 속도로 유저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저로서 <라스트오리진>을 즐길 때 아쉬웠던 점은 역시나 ‘즐길 거리’가 빠르게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2.0이 안정화되고 추가 인력들이 자리를 잡으면 앞으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콘텐츠들도 빠르게 업데이트하고 싶다. 현재 자동화면이나 업데이트에서 즐길 수 있는 ‘퍼즐’ 또한 ‘블랙잭’ 같은 다양한 미니 게임으로 선보일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복: 캐릭터의 ‘카드’를 순수한 콜렉션 형태로 모을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스트오리진>의 7지역은 근 1년만에 추가되었지만, 다음 8지역은 훨씬 빠르게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7지역 스토리를 보면 노골적으로 주인공 세력이 여러 섬을 ‘영지’로 개발한다는 내용이 암시되는데, 혹시 이에 대한 시스템 추가는 기획되고 있는가?  복: 당연히 준비되고 있다. 정확한 콘텐츠명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영지 개발/점령전’ 이라는 느낌으로 현재 개발 중이다. 하지만 개발 순위는 챌린지 스테이지 이후로 밀려 있는 상태다.  이 영지 개발/점령전은 잘 사용하지 않는 바이오로이드를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로 기획중이지만 아무래도 일단 이런 콘텐츠를 선보이기에 앞서 다양한 스테이지 및 기초 콘텐츠를 깔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조금 뒷순위로 밀린 상태다. 상세한 내용은 정해지면 유저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 최근에 게임에 업데이트된 콘텐츠로 주목해볼만한 것으로는 역시 ‘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스템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복: 아무래도 오타쿠 게임이니까. 기능이나 성능을 떠나서 ‘감성’적인 부분에서 유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더욱 밀접한 애착 관계를 이루고,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서약 시스템의 핵심은 역시나 유저들이 자신만의 이름을 정해줄 수 있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만의 고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라스트오리진>에는 B등급 캐릭터라고 해도 애정을 가지고 키우는 유저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능 때문에 스테이지 공략에 활용하기 힘든 면이 있는데, 부디 서약 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성능과 관계없이 키웠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참고로 이번에 서약 시스템과 함께 웨딩 스킨들이 몇 종 추가되었는데, 앞으로도 웨딩 스킨은 꾸준하게 개발할 것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많은 기대를 부탁하고 싶다. 웨딩스킨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꾸준하게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복: 유저 여러분들에게 정말… 정말 죄송하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부족한 게임을 지난 1년 동안 이 만큼이나 사랑해주고 과분한 기대를 보내주셨는데,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것에 정말 죄송한 마음 뿐이다. 처음 이 게임의 서비스를 준비할 때는 정말 많은 것을 선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게이머 여러분들의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콘텐츠, 그리고 조금 더 재미있는 게임. 정감 가는 게임을 여러분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정말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 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물론 우리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고 해서 그걸 모두 유저들에게 즐기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즐길 거리를 다양하게 풀어놓으면 유저들이 그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부족한 점을 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게임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테니 따듯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라스트오리진>은 지난 5월 중순, 2.0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이틀 이상 서버 접속이 불가능했고, 이후로도 각종 오류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유저들은 되려 개발자들이 주말에 집에 가지 못하고 작업할 것을 염려하며 이를 격려한다고 각종 구호품(?)을 스마트조이에 보내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