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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정미재판관은 어떤 사람인가?


♬♪♩이정미는 어떤 사람인가?♩♪♬

♡.최근 퇴임한 이정미(李貞美) 재판관은
     울산 출신이다.

1962년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현초등학교, 학성여중을 졸업했다.

이정미 재판관이
마산여고를 졸업한 것은
교육자였던 아버지 이재만 씨가
1970년대 후반 울산에서 마산으로
전근 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가난한 교육자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 무척 많은 고생을 한
이정미 재판관이었다.

당시에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무척 강직한 성품이셨다.

당시에 울산이
경남도 소속이어서
아버지는 울산에서 경남 마산의
모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야했고
가난했던 이정미 재판관의
가족들도 마산으로
솔가하여 이사를 간 것이었다.

당시 홀로 경남 벽지학교로
전근갔다가
학교 숙직실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거나
폐인이 된 교사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래서 울산여고를 다녔을
이정미 재판관이
마산여고를 졸업하였던 것이다.

대현초등햑교에서
전교 수석을 놓지 않았던
이정미 학생은 학성여중에서도
전교 1등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 故고 이재만씨는
휼륭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1980年代 초에
경남에서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1986년 울산 대현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오빠인 울산대 이 모 교수는

“어릴 적 동생은 책을
손에서 놓는 법이 없었고
집중력이 좋고 무척 차분한 성격”
이라고 전했다.

오빠 이 교수는

“이정미 재판관은
어릴 적 찬물에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고,
바쁜 가운데서도
늘 울산에 내려와
가족들과
지냈다”며

이정미 재판관의 각별한
가족사랑을 전했다.

이 재판관은
1980年代에
몇 명 되지 않는 女性 재판관
中 1名으로서
全國的 주목올 받았다.
울산 출신으로
마산여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이정미 재판관운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7年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된 뒤
울산지법, 서울서부지법,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부산고법,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그가 당시 울신지법원장이던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아래서
재판관을 지낸 것을 보면
울산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이정미 재판관은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으나,
10·26 사태를 보며,
법학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살벌한 유신 치하에서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중정부장의 재판이
관심사였고,

신군부의 압박을 받은
재판관들에 의해 김재규는
사형 언도되고,

교수형애 처해지는 것을 보면서

재판관이 되고 샆다는 꿈을 가져,
법대로 진학한 것이다.

꿈이 있는 곳에 길은 열리는 법이다.

그동안 이정미 재판관은
의사가 산모에게 제왕절개 수술의
위험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고
수술하여, 산모가 후유증으로 숨졌다면,
의사에게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

임대아파트의 하자 보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판결 등,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을 많이 내렸다.

이정미 재판관은 2011年 3月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취임한 뒤에,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빙점을 찍은 뒤,
2017년 3월13일 헌법재판소를
떠난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정미재판관님_()_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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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재판관님
역사교과서에 길이 남겨야할 분...아...국정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