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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금) 행복한큐티 마태복음 10장 16-23절

1. 우리는 예수님을 때문에 살아주고, 버티는 인생으로 겨우살이와 같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로서의 힘과 능력과 권세를 얻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포기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 그것조차 관심 없고 나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살기도 바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요? 4. 우리의 생명 되신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생명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고백을 합니다. 5. 그러나 그 고백 일뿐 자신의 삶에 제 1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공부에 노예가 되어 초중고 다 지나고, 취업에 목숨걸고, 대학교 또는 대학원 졸업하고, 여전히 일의 매여 살고 있습니다. 7. 돈에 노예. 직장의 노예, 사업의 노예, 부모에 묶여 있고, 자식에게 묶여 있고, 사역에 자유함이 없고, 교회안에서만 성도이고, 교회 밖에 서는 넌크리스천과 같은 삶을 살고, 혼자 수고만 하고 있습니다. 8. 인생의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60년, 70년, 80년, 90년, 100년이 되어버린 이대로 좋습니까? 복음을 들고 왜 삶을 살아내지 못합니까? 9. 나의 입술과 마음속으로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지만, 삶의 굴레는 계속 되는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과 난관이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0. 나의 영혼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가 회복시키는 성전을 세워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이고, 끝이지 알아야 합니다. 11. 하나님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라 하셨을 때에 머리로 계산기 돌리며 손실이 없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순종함으로 반응하면 광야 같은 인생길에 오아시스와 같은 샘을 터트려 주시고, 그 인생에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따릅니다. 13. 말씀묵상과 기도와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주시는 메시지를 들려주실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14. 나의 심령 속에서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13. “너는 지금까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거부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기 원했다.” 15. “너는 나의 뜻을 무시하고, 너 마음대로 계획하고, 준비하고, 스스로 수고만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하는 인생만 살고 있다. 너의 삶의 돌이키고 나에게 엎드려 말씀 앞에 복종해라” 16.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를 끝까지 구하십시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지혜를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붙들고, 어떠한 쓰나미가 몰려와도 물러서지 마십시오. 17. 끝까지 견디고, 통과하여 참고, 인내하며, 땅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 땅에 이루어 가는 본질을 붙잡고 살아감이 우리의 창조목적입니다. 18.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파송하시면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쫓고, 모든 병과 허약함을 치료하는 권능을 주심과 복음전도자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19. 주님의 제자로서 고난과 받게 될 핍박과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두 번에 걸쳐서 묵상해 보고도록 하겠습니다. 20. 늑대와 양 즉 늑대는 교회를 무너뜨리고, 해하려고 하는 자들이고, 양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늑대가 너희를 법정에 넘기고, 해당에 채찍질할 것이니 하라고 미리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선은 거짓이며, 지혜가 아닌 간사함이요, 균형 없는 방종이요, 교만이요, 미련입니다. 23.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 되시며, 주인 되시며, 인생의 주관자 되십니다. 나를 본 것이 아버지를 본 것이며, 나를 믿는 것이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2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대제사장과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제자들에게도 고통과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2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고통과 핍박과 고난이 있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이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26. 고난 뒤에는 축복이 있지만, 그것은 단지 고난만 있다고 축복이 저절로 온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도 고난 속에서 어떻게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27. 고난 속에서 불평과 원망과 시비와 분쟁이 가득하게 보낸다면, 고난은 계속될 것이며, 아무런 축복도 없는 고난만 받다가 끝나버리는 미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2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고통과 시련과 연단을 통과하여 정금으로 만들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사용하십니다. 29. 대장간에서 칼을 만드는 과정 없이 칼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듯,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만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30.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나를 낮추시고, 훈련하시고, 연단하심을 통하여 순종하게 만드시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한 사역을 위하여 쓰임 받게 하십니다.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행복한큐티 #행복한큐티교회 #이준영목사 #하나님 #그리스도 #말씀 #지혜 #보물 #제자 P.S 오늘 묵상내용이 길어서 다 올라지 못했습니다. 묵상내용의 전문을 보기 원하시면 아래의 밴드로 들어오십시요. 행복한티 밴드에 오시면 좀더 깊은 말씀묵상과 매일 정독묵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은혜와 영적 교제를 누릴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행복한큐티] 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band.us/n/a5a0T1o9RaH49 From 이준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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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대한 개신교적 교리.banbak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간다." 아주 간단한 명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 명제만큼 어려운 명제도 없으며, 이 단순한 명제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신학자들이 몇인지는 샐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단순한 명제에는 그에 따르는 수많은 대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에 1000원입니다."라는 단순한 명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많은 대전제가 있다 '삼각김밥'이라는 물질적 개념 '하나'라는 수치적 개념 '1000원'이라는 경재적 개념 등 심지어 거래라는 방법적 개념까지 너무나 많은 대전제가 서로 합의를 이루어야만 이 단순한 명제는 효력을 얻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를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예수, 믿음, 회개, 천국이라는 개념이 대전재가 되어야만 성립이 된다 기본적인 대전제인만큼 기본적인 개신교적 개념으로만 살펴본다면, 예수는 곧 신 그 자체이며 믿음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회개는 믿음에 대한 신자의 결과적 행위이며 천국은 신자가 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신의 나라이다 즉, 이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보충해보면 이러하다 "예수라는 신을 신적 의지에 의해 인간이 믿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밖에 없게 되며 회개한 신자는 죄로부터 자유한 신의 나라에 입성한다." 풀어쓴 명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위 사람들의 고백은 이상해진다 회개란 믿음으로부터 발산하는 결과적 행위인데 죄를 즐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자의 행위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죄를 즐기는 자는 회개할 수 없다 회개는 전적으로 믿는 자가 도달하는 결론이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즉,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이야기하는 회개와 다르다 마치 같은 숫자가 쓰여있다고 한국 화폐를 미국 달러로 쓸 수 없듯이 그들의 회개는 개신교에서 절대 사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회개란 신앙의 결과이지 신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예수가 이야기한 "내 명령을 듣고"는  신자가 지켜야 할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신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설교이다 신자니 죄를 짓지말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닌 착한 사람이야말로 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자만이 회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 화자는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회를 비판할 생각도, 종교적 진리를 정확무오한 진리라고 수호할 생각도 없다 단지, 잘못된 대전제를 가져와 명제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자 설명이다 요약하지 못한 긴글을 써 미안하게 생각한다 3줄 요약 1. 기독교적 개념으로 회개는 신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2. 신자란 죄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는 존재이지 회개할 수 있다며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3. 그러니 죄를 짓고 회개하면 천국이다라는 말은 교리적 대전제를 무시한 잡소리에 불과하다 (출처) 재밌는 글이라 퍼옴.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나도 같은 생각 ㅋㅋ